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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 | 애완견의 철학 - 늑돌이와 함께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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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8-02-09 11:45 조회2,3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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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기다리는 동안의 불안감 때문…

잘 못하면 무관심, 잘하면 칭찬하는 아이 키우기와 같은 원리"

 

훈련인가, 교육인가? 아니면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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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이 주인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영특해서가 아니라 그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 사진·중앙포토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뭐야?”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린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어. 그렇게 되면 내게 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나도 네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될 거야.”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나한테 꽃 한 송이가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꽃이 나를 길들였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를 길들여줘 제발.” 여우가 말했다. “누구든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는 알지 못해.”

“어떻게 하는 건데?”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아주 많아야 해. 말은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거든. 그러나 날마다 조금씩 다가앉아도 돼. 넌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해. 넌 네 장미꽃에 책임이 있어.”

- 쌩 떽쥐페리의 <어린 왕자> 중에서

"손!”

이렇게 말하면 앞발을 척 내미는 강아지가 있다. 개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을 때 키우는 사람의 기쁨을 나는 잘 안다. “아! 우린 통하고 있는 거야”라는 기쁨과 뿌듯함이 솟구친다. 아이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왔을 때처럼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 늑돌이는 그런 재주를 보여주지 못한다. 산책길에 늑돌이를 보고 예뻐하는 이들이 늑돌이를 쓰다듬은 다음 으레 “손!” 하고 말하면, 늑돌이는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나는 조금 무안해져 “얘는 그런 것 안 가르쳤어요” 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다. 마치 못난 자식 감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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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늑돌이에게 “손”이라는 말을 알아듣도록 가르치려 해본 적이 있다. 처음 “앉아”를 가르칠 때 금방 알아듣고 앉기에, 곧이어 “손!”이라고 해봤는데, 아무리 해도 통하지가 않았다. 참을성이 부족한 나는 “그래, 누구를 위해 이런 훈련을 하나” 싶어 금방 그만두어버렸다.

“앉아”라는 말은 개를 진정시키고 훈련하는 데 효과적인 가장 초보단계의 방법이다. 늑돌이의 훈련은 이 초보단계에서 끝나고 말았다. 간식을 줄 때마다 “앉아”라고 몇 번 했더니 늑돌이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만히 앉아 간식이 놓여 있는 책꽂이를 올려다본다. 그러니 “앉아”라는 말도 이제는 하지 않게 되었다.

개를 주제로 한 영화 <하얀 신(White God)>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개를 잃어버린 소녀가 언덕에서 어느 고급주택을 내려다본다. 그 집 마당에서 주인이 개에게 “손!”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난 저런 거 안 가르쳐”라고 혼잣말을 한다.

내 마음도 꼭 그렇다. 어쩌면 늑돌이가 영리하게 금방 “손”이라는 지시를 이해했다면 나는 자랑스러워했을 테지만, 늑돌이에게 “손” 훈련을 억지로 시키려들지 않은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은 군대 간 아들이 휴가 나와 늑돌이와 놀다가 털 뭉치를 던지면 몸을 날려 입으로 척척 잘도 받아내는 늑돌이가 기특했던지 이번에는 “손!”이라고 말했다. 옆방에서 듣고 있던 내가 “그런 훈련을 왜 시키니? 늑돌이한테 아무 도움도 안되는 걸.” 그랬더니 아들도 “그렇지. 나 좋으라고 한 거지”라고 수긍하고는 다시는 “손”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늑돌이가 처음 집에 왔을 때 늑돌이를 먹이고 버릇 들이는 일은 당연히 늑돌이를 데려온 아이 차지였다. 나는 아이 한 명 키우는 것도 힘이 부치는 엄마인지라, 강아지 ‘육아’를 떠안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물론 귀여운 강아지를 안 안아줄 수야 없었지만, 그저 인사 정도였다. 아이는 제 방에서 강아지 늑돌이와 밀월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형제도 없고 조용한 아이가 늑돌이와 지내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 서열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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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 사료. 수의사들은 사료만 먹일 것을 권하지만, 위생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며 가족이 먹는 음식을 주어도 큰 문제는 없다. / 사진·중앙포토


  늑돌이는 내 소관이 아니었지만, 완전히 모른 체하고 지낼 수는 없다. 강아지든 로봇이든 어떤 존재가 식구처럼 같이 생활하게 되면 ‘관계’라는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강아지가 커지면 어디서 재울 것이며, 또 수놈이니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한다면 언제 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긴다.

그런 크고 작은 결정은 늑돌이와 같이 사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일에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다. 그리고 나는 그런 문제에 정말로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다. 아마 늑돌이를 데리고 온 아이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우선 늑돌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버릇은 어떻게 들일 것인지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인터넷 검색을 해볼 수밖에.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수의사의 의견이 어떠한지 알고 싶었다.

그리하여 알게 된 것은, 개는 서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물이니 누가 대장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개는 잠자리가 서열에 결정적이니, 잘 때는 개가 사람보다 낮은 곳에서 자야 하며, 산책할 때도 사람보다 앞서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지금 보면 이런 정보는 다 엉터리였지만, 그때는 정말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아이가 혹시 늑돌이를 끼고 자지 않을까 싶어 데리고 자지 말라고 조언할 정도였다. 지금 늑돌이와 함께 자는 나로서는 잠자리와 서열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 그리고 개나 늑대는 무리지어 생활하는 동물이라 같이 어울려 자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산책할 때 개가 앞서나가게 하지 말라는 조언만큼 비현실적인 말은 없다. 어린애와 함께 길을 갈 때나 문을 열고 들고날 때도 몸집이 작은 아이를 앞세워야 안전하다. 어린애가 서열이 높아 앞세우는 게 아닌 것처럼 개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줄을 잡고 다니는 산책길에 어떻게 개를 뒤세우란 말인지, 이런 조언을 한 사람은 과연 진짜로 개를 키워본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한동안 아이 방에서 자던 늑돌이는 아이가 밤새 불 켜놓고 음악 듣고 기타 치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섯 달쯤 뒤부터 우리 부부가 자는 안방에 들이게 되었고, 늑돌이는 꼭 가로누워 자곤 했다.

이때는 이미 내 마음이 늑돌이에게 활짝 열린 다음이라 나는 잠들기 전에 늑돌이에게 다가가 어둠 속에서 얼굴을 어루만지고 내 뺨을 부비면서 “늑돌아, 사랑해. 부비부비. 잘 자”라고 속삭여주었다.

그러자 언젠가부터 늑돌이는 내게 다가와 제 뺨을 부비는 걸로 내게 사랑을 표현하게 되었다. 내가 앉아 있을 때도 그렇게 하지만 내가 누우면 특히 잘 그러니, 아마도 잠자리 인사의 영향인 것 같다.

가끔 산책길에서 다른 개와 보호자들을 만나곤 하는데, 삼삼오오 모여 마치 자식자랑이라도 하듯 저마다 키우는 개 이야기를 늘어놓곤 한다.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우리 늑돌이는 다른 사람이 주는 간식도 잘 받아먹지 않고, 귀여운 짓이라곤 하나도 하지 않고 있다가 내가 몸을 조금이라도 비스듬하게 기울이면 다가와 제 뺨을 내 뺨에다 대고 부비부비하는 필살기를 펼친다. 그러면 모두 “와! 저 애교 부리는 것 좀 봐!”, “꼭 사람같이 하네!” 감탄하며 부러워한다.

늑돌이를 처음 데리고 왔을 때 아이는 사료와 배변 패드도 사왔다. 어디서 배웠는지 아이는 사료를 물에 불려 주었는데, 내가 보기에 처음엔 양이 좀 많다 싶더니 나중에는 늑돌이가 더 먹고 싶어 하는데도 더 주질 않았다.
 

왜 더 주지 않는 거니?”

양을 지켜서 줘야지 너무 많이 주면 안돼요. 나 몰래 더 줄 생각하지 마세요.”


아들에게 이런 엄격함이 있었나 싶어 새삼 놀랐다. 속으로 “나는 너 먹고 싶어 하는 만큼 다 주었는데 넌 왜 늑돌이 한테 그리 인색하게 구는 거야?” 하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렇지만 아이가 없을 때는 아이가 의심한 대로 늑돌이가 먹고 싶어 하는 만큼 양껏 주었다.

아이를 키울 때도 젖을 얼마만큼 먹여야 하는지, 또 시간 맞춰 먹여야 하는지 울 때마다 먹여야 하는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초보엄마들은 이런저런 이론에 우왕좌왕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고민을 거쳐 아이가 먹고 싶어 할 때마다, 먹고 싶어 하는 만큼 젖을 물렸기에 시간 맞춰 일정한 양을 줘야 한다는 논리를 믿지 않는다. 충분히 먹으면 사람이든 개든 식탐을 부리지 않게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출처: 중앙일보] [미니시리즈 기획 - 애완의 철학②] 늑돌이와 함께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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