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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학 | [다니엘 한의원의 체질칼럼] 아주 예민한 목음인, 별 말이 없는 목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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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호동 작성일17-05-24 16:36 조회5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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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지난 주 한 통의 전화를 받았을 때 떠오른 옛 성현의 글귀. 10년 전까지 밴쿠버의 Kingsway 선상에서 한의원을 했을 때 바로 옆 건물에서 비즈니스를 하던 이가 종종 필자에게 진료를 받곤 했었다. 그 당시 나이 쉰을 조금 넘겼을까, 겉으로 봐도 무척 말랐고 늘상 어깨가 아프고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 애를 먹었는데, 이 곳 의원을 방문해서 약을 복용해도 별 차도가 없어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는 것 처럼 바로 옆 필자의 한의원을 방문하곤 했었다. 

그리고 10년 이상이 흘렀다. 수 년 전에 비즈니스를 그만두고 몇 차례 필자 한의원을 방문하여 치료를 받기도 하였지만 그로부터 무소식이어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지난 주 전화를 받은 것이다.

환자는 저 남태평양의 ‘피지 (Fiji)’ 사람이다. 영어가 이곳 본토 발음까지는 아니어도 유창하다. 그래서 어찌 저 태평양 한 가운데, 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그리 잘하나 뒤적여 보니, 한 때 영국의 식민지였었다. 흠, 쉽지 않은 역사, 가슴 아픈 역사네..

한편 환자의 인종은 황인종 같지도 흑인 같지도 않다. 인도사람 같기도 하고. 그래서 또 찾아보니, 영국의 식민지하에서 많은 인도인들이 피지로 이주한 기록이 있다.

환자는 ‘이웃사촌’이라서 그런지 필자와 가깝게 지냈다. 지금은 60대 중반이 되었지만 이 사회는 ‘나이’ 서열이 없이 누구나가 ‘친구’인 것처럼, 그 당시 오다가다 한마디씩 대화하고 가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는데, 그러한 것이 좋은 인상으로 남았는지, 아니면 그 당시의 치료가 도움이 되었는지 지난 주 불쑥 다시 연락을 해 온 것이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가족은 잘 지내나요?”라는 말을 더한다. 진료 때문에 이루어진 통화인데 서로의 가족의 안부에 관해서까지 오고가니, 다시 생각해봐도 그 당시 좋은 이웃이었던 것 같다.  

체질은 목음인. 상당히 예민한 아주머니다. 이것저것 세세하게 물어온다(그 당시). 소화력이 몹시 떨어져서 입맛이 없었는지 먹는 것이 시원치 않았고 그래서 아주 말랐었다. 변이 좋지 못하고 늘상 관절에 통증을 달고 살았으며 수면불량으로 애를 먹곤 했었다. 그리고 한 번씩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이 모든 증상들이 다 대장의 무력으로 기인된다. 그 당시 ‘대장 (large intestine)’이 차고 약해서 그렇다 라고 누차히 설명을 해 주었는데,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것 같고 받아들이려 하는 것 같지도 않았었다. 그래도 어찌하랴. 대장 치료를 할 밖에. 그리고 식이에 관해서 꼼꼼히 챙겨주었다.

“고기를 드세요. 질 좋은 소고기를 드세요. 그리고 생선이나 해물은 삼가세요. 바나나를 드시면 안 됩니다.” 그 아주머니는 늘 난감해 했다. 바닷가에서 자라서 그런지 주로 생선과 해물을 먹었는데, 대신에 육식을 해야 한다는 처방이 영 못마땅한 지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왜요? 종교 때문인가요?” 한 번씩 치료받으러 올 때마다 이 ‘육식’ 문제로 조금은 舌戰(설전)이 오고갔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그 이웃이 당시에는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데 사람 마음, 그 본인도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어찌 타인이 가타부타할 수 있으리요.

지난 주 전화를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갑자기 ‘그 노인’이 떠오른다. “아, 그 노인 있지요? 자주 저를 찾아온 그 분 있잖아요?” 그 노신사는 필자의 한의원 Kingsway, 길 건너 주택에 살고 있었다. 그렇게 보니, 그 지역에 인도인 계통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키와 몸집이 제법 컸던 피지에서 온 노인. 늘상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필자 한의원에 들어올 때마다, 웃으면서 “Daniel!”이란 호칭을 꼭 먼저하고, 본인이 이렇게 아프니 이렇게 치료해 달라고 했던 노인. 딸 몇이 있다고 했다. 그 당시 일흔은 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걷는 모습이나 말투가 늘 느릿느릿했다.

그의 체질은 지금도 기억한다. 목양인. 사람이 (몸집이) 크다. 걸음이 느리다. 그는 어깨와 허리가 아플 때마다 불쑥 찾아왔다. “고기를 드세요. 그리고 날마다 걸으세요.” “No problem!” 그리고 시간이 나면 가족 이야기를 하고 음식 이야기를 하고 운동 이야기를 했다. 그런 시절, 그리고 10년 이상이 훌쩍 지나버렸다.

“He passed away.” (돌아가셨어요.) 조금은 짐작을 했었음에도 왜 그리 놀랍고 서운했을까. 그 당시 그의 나이가 일흔을 넘겼으니 지금은 여든하고도 수년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역시 아쉽다. 사람 생명이 이 땅에서 悠久(유구)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한 때 환자로서 또 이웃으로 알고 지낸 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그것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비록 가족이나 친척은 아니어도 왜 이리 마음이 스산하고 슬프고 아프기까지 한 것일까.

공자가 그랬다. “좋은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오랜만에 멀리서 (휴, 그래봤자, 같은 밴쿠버 동네..) 걸려온 전화 한통이 반가웠는데, 한 사람의 생명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하자,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것 못한 것 같아 멀리서 들려온 목소리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아 보인다. 더구나 그 소식이 죽음에 관한 것이라면…

오래 살아도 120년을 넘기지 못하는 인생. 그 안에서 삶은 낡아가거나 약해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삶에 별의별 악다귀 같은 것들이 기어들어 오고 스며 들어온다. 질병이 그 중에 하나다. 이 질병이란 작자는 누가 반긴다고 때를 가리지 않고 불쑥 혹은 스물스물 찾아 와 우리 인생을 이렇게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까. 이 놈은 아무리 가라고 가라고 사정을 하고 애원을 하고 강권을 해도 절대 물러가지 않아 생명을 좀먹는다. 악다귀 중의 악다귀, 그래도 너도 언젠가 박멸될 날이 올 것이다.

질병만 악다귀인가. 사람 사이의 분열과 다툼, 시샘과 중상모략도 사람을 지독히 독하게 하고 악하게 하고 아프게 한다. 인간 갈등 역시 무시 못 할 악다귀다. 가난도 악다귀고 자존감의 결여도 그러하며 부에 취해 온갖 호사를 누리면서 방탕히 사는 것 역시 악다귀다. 거만도 무도덕도 악다귀고. 그러고 보면 120도 못사는 우리 인생에 들러붙어 있고 또 여차하면 기어들어오고자 천지 사방으로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저 더러운 악다귀들이 왜 이리 많단 말이냐.

그럼에도 인생 최대의 악다귀 중의 악다귀는 죽음이다. 필자는 그리 생각한다. 좀 더 오래 살고 싶고 좀 더 건강히 좋은 것 많이 보고 살기를 바라도 죽음이 부르면 어찌하랴. 그래도 죽음이 사람의 생명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의 힘-사랑과 인간애, 의지적 힘, 결단, 지혜 그리고 영원을 향한 희망을 절대 앞서거나 따라잡지 못한다. 그래서 죽음이 우리 인생을 시샘하고 못살게 굴며 굴복시키려 저리 못난 짓을 행하나 보다. 그러하니 어차피 죽을 생명, “이리 산들 어떠하고 저리 산들 어떠하냐. 내일 죽을 목숨 오늘 마음껏 즐기다 가라. 그리고 그 못난 목숨 부지할 것은 무엇이더냐.”는 죽음의 속삭임이다.  우주의 끝이 있다면, 우주의 시간적 공간적 영원이 있다면 그 영원 너머에나 있을 죽음이란 악다귀가 마치 가장 가까이 있는 벗처럼 찾아와 손짓하면서 같이 가고자 한다면, 그래 언젠가는 누구나 가는 그 길을 가겠지만, 너와는 절대 벗 삼지 않으리라는 우뚝 솟은 기개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언제가 저 죽음이란 악다귀가 인간은 나와 더 이상 벗이 되기를 원치 않나보네 하고 스스로 벗 되기를 포기하고 영원너머로 물러갈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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