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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 [다니엘 한의원의 체질 칼럼] 소양인과 소음인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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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호동 작성일17-07-12 12:25 조회1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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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쯤인가, 이웃나라 미국 (카나다에 살다보니, 이웃나라가 미국이라니, 참 재미있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시애틀의 한 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학교는 작고 아담하면서 푸른 숲으로 둘러 싸여 있고,  방학임에도 이 곳 저 곳에서 젊은 학생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활기가 넘쳐나 보인다.

 

그 때, 몇 년 전 미국 콜로라도에 갔을 때의 느낌이 들어온다. 금발의 젊은 청년들. “어, 여기가 어디지… 어이해 이렇게 백인들이 많은 것일까…” 그런데 여기가 어디던가. 서양인의 나라 미국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 주된 인종이 백인인 것은 당연지사인데, 거의 백인들로 가득한 켐퍼스가 뭔가 낮선 느낌이 든 것은, 그 동안 카나다에서 살면서 많은 백인들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벤쿠버 카나다, 분명 이곳은 서양인의 도시가 틀림없는데, 별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매일 만나는 한국 사람들, 대학 켐퍼스나 거리에서 보이는 많은 중국인과 인도인들 그리고 그 외 다종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오래 전, 흑인 하면 저 멀리 미국에서 노예생활하는 사람들이 전부인줄 알았다. 한국에 살면서 흑인을 만난 적이 있었을까. 이민 처음 왔을 때만해도 흑인이 많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기에 대화했다는 기억도 별로 없고. 그런데 수 년 사이로 그 전과 달리 흑인을 자주 보게 되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하루는, 나이를 좀처럼 가늠할 수 없는 흑인 한 사람이 필자를 방문했다. “어떻게 오시게 됬습니까?” “I saw your sign.” (간판을 보았습니다.) 불편한 곳을 물어보니, 여러가지다. 혈압이 있고 당뇨도 있고 만성적인 관절통이 있으며 복부 비만이 눈에 띈다. 하도 통증이 심해서 지나가다가 혹시나 ‘침’치료가 도움이 될까해서 들렀다는 것이다.

 

체질은 토양인. 토양인의 장기의 특성을 비롯해서 그외 이해할 만한 사항을 간단간단 전달하니 비교적 잘 알아듣는다. 관절통증이 심하기에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이상 방문해야 한다고 권하니 그리하겠노라고 한다.

 

침치료를 받으면서 통증에 완화가 있고 그 전과 달리 피로감이 주니, ‘‘체질’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Herb’ (한약)에 관심이 있는 그에게 약을 처방하고 음식에 관해 지침을 주니 ( 닭고기, 감자, 사과, 오렌지 그리고 꿀이 맞지 않는다.) 보통 말 잘듣는 학생 (환자)이 아니다.

 

그가 나이 일흔을 넘긴 것에 필자는 놀랐다. ‘흑인 아저씨,’ 아니 ‘흑인 할아버지’는 자기 나이를 희롱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아픈데가 있어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보인다. “You look so young! (젊어 보이십니다.) 그는 밝고 긍정적으로 살고자 하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답변한다. 그가 토양인이기 때문일까. 심장이 모든 체질 중에서 가장 큰 토양인. 神明(신명)을 머금고 있는 심장의 기운이 가장 큰 토양인의 성정을 따라 그는 저렇게 명랑하고 밝게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인생 노중에서 어떤 계기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해서 그런 것일까.

 

그는 가나에서 왔다. 그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그럴까. 그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 근대사에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그를 통해서 알게 된 재미난 사실은, 1960년대에 대한민국과 가나는 같은 경제적,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막 근대화 (현대화)를 향해 매진하던 시기였다. 정치적 경제적 상황 (수준)이 거의 비슷하였다는 것이다 그 때 그런 질문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시다시피, 한국은 경제적으로 강국이 되었지만, 가나는….” 필자가 차마 다 말을 맺지 못하자, 빙그레 웃으면서 그가 말문을 연다. “지도자의 역량과 의지 차이가 아니었을까요.” 그의 두 나라를 보는 견해가 참 재미있다. 지도자의 역량과 의지의 차이라…. 1

 

하루는 그가 자신의 부인을 데리고 왔다. 夫唱婦隨(부창부수)라는 한자가 이 부부에 딱 잘 어울린다고나 할까. 무슨 말인고 하면, 그 부인되는 이 역시 얼굴이 방글방글이다. 어디가 아픈가 물어보니, 옆구리가 원인 모르게 아프고 역시 관절에 통증이 제법 심하다고 한다. 비만도 있고.

 

체질은 수양인. (소음인으로 이해하면 된다.) 치료를 받으면서 관절 통증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얼굴색이 밝아 보이고 한의원에 올 때마다 말수가 조금씩 많아지는 것이 필자 편에서 좋아 보인다.

 

수양인 체질. 필자는 수양인을 ‘신선’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신비스럽거나 세속을 초월했다는 것 보다는 자기 세계의 어떤 고고함, 깨끗함, 단아함 혹은 세밀함 등을 의미한다. 수양인 체질은 토양인과 정 반대의 장기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정 반대의 장기 구조는 반대되는 성향을 만들고, 그래서 이 두체질의 만남은 음과 양이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이 강한 것처럼 장기 구조상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하기에 잘 맞는 체질적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부부. 그들을 통해 들은 가나라는 나라 그리고 풍습. 진료실에서의 몇 차례 이상의 짦은 만남이지만 그들에게 보여지고 느껴지는 인성. 필자는 이런 식으로 의미를 부여해 본다. 만약에 한국땅에서 계속 살았다면, 생전 저렇게 멀리에서 온 사람들, 인종이 다른 사람들, 풍습이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보고 말을 나눌 기회가 있었을까.

 

사람 사는 세상, ‘편견’에 묶일 때가 많은 것은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 같다. 21세기, ‘지구촌’이라는 구호아래 세계가 점점 가까와 지고 있지만, ‘편견’은 여전히 국가간, 인종간 그리고 한 사회 내부 구성원 간의 사이를 좀처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현실이요, 아마도, 어쩌면 세상이 언제가 끝일지는 모르지만 그 때까지 그리될 수도 있을 지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편견’의 굴레는 무겁고 강력하다. 이 ‘편견’이라는 사람 뇌와 폐부와 전신의 사지말단의 깊숙이까지 내재되어 있는 사고를 어이 도려내고 거기에 소위 ‘四海同胞主義 (사해동포주의)’를 새길 수 있을까.

 

한 때는, 어리숙하게도 어떤 ‘그룹의 사람’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낸 적이 있었다. 소위 문학하는 사람들, 철학하는 사람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데 이것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의미일까. 더 이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인종이나 知力을 떠나 모든 이가 동일한 가치가 있다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울 때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때로는 아직도 ‘자기’가 중심이 되어 사람이나 사물이나 사태를 파악하고 인식하려고 하려는 것 같고. 그것도 ‘편견’일까. 만약에 그것도 편견이라면, 세월이 조금 더 필요할 지 모른다. 가나에서 온 노부부를 진료실에서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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