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한의원의 체질 칼럼] 체질과 적성 > 칼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Vancouver
Temp Max: 7.98°C
Temp Min: 5.13°C


칼럼

건강의학 | [다니엘 한의원의 체질 칼럼] 체질과 적성

페이지 정보

작성자 권호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7-20 09:22 조회3,454회 댓글0건

본문

 

 

“전공이 뭐죠?” 필자는 최근 SFU에서 공부하는 학생과 대화한 적이 있다. “물리학입니다.” 스물을 갓 넘었을까하는 학생이 그 어려운 물리학을 공부하다니,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여 평소에 궁굼하던 몇가지를 묻는다. “물질과 에너지는 상호교환된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잘 압니까?” 그는 그렇다고 답한다. 가시적인 물질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바뀌고 외부의 에너지로 인해 물질계에 변화가 온다는 물리학의 한 분야는 필자의 시선을 끌어당기고도 남지만, 실제 물리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이를 이해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졸업하면 계속 공부할 생각인가요?” 그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컴퓨터 사이언스를 같이 공부하고 있는 학생은,  그렇다고 무엇을 한다고 딱 정한 것이 없다고 한다. 어, 갑자기 조금 난감한 마음이다. 저 젊은 나이에 두 가지 전공을 가지고 애를 쓰는데, 그리고 내일 모래 졸업하는데 직업을 무엇으로 해야 할 지 어떻게 job을 찾아야 할 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하니..

 

필자가 대학 일학년 첫 날 수업에 가보니 여학생들을 좀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는 달리 나이 들어 보이는 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더 많아보이는 것에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겉으로 보아도 스물 중반, 더러는 서른까지 되어 보이는 아저씨들이 앉아 있기에 ‘저 나이에 대학 들어왔으면 꽤나 고생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 중에는 이미 타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한의과에 들어온 학생들이 있었는데 대개는 예전 전공이 자신과 별로 안 맞았거나 졸업후 하는 일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전망도 그리 밝지 않아서 큰 맘 먹고 다시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온 이들도 있었다. 그 때는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미 대학을 졸업하여 직업이 있는 상태고, 그들 중에는 결혼하여 자식까지 있는 이도 있었는데, 뒤늦게 비싼 학비와 적지 않은 세월을 들여 쉽지 않은 공부를 다시 하겠다니 참 대단하는 존경심과 더불어 좀 안됬다는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는데, 정작 본인들은 나름대로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만족스러워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때 나이 서른을 지나고 심지어 거의 마흔이 되어 졸업한 이들이 지금은 다들 만족하고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금은 학력고사 혹은 수능 시대가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어느 대학 어느 과를 정할 것인지 고심을 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일성 싶다. 성적이 아주 탁월한 학생들이야 본인이 가고 싶은 학교 그리고 과를 쉽게 선택하겠지만 부득이 점수에 맞추어 정해야 하는 학생들의 고민은 (부모 역시)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한국은 대학 간판에 좌지우지 되고 소위 ‘사’ 자의 학과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기실 자신의 적성을 잘 파악하여 학교와 전공을 선택한다면 사회적, 국가적으로 손실이 적을 것이요, 개인적으로도 나중에 과를 잘못 선택하여 귀한 인생을 허비했다는 허무감이나 낙심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부모는 자신들의 바람보다는 자녀의 취향이나 적성을 잘 고려하여 조언을 한다면 그들의 진로나 앞날에 도움이 된다 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오장육부를 가지고 있지만 그 성향이나 취향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상당히 차이가 있음이 틀림없다. 이것이 이제마 사상의학에서 시작된 ‘체질’이다. 지구상에 70억의 인구가 있다고 할 때, 물론 70억 인구 모두의 체질이 다 다른 것은 아니다. 이제마 선생은 사람의 장기의 구조가 생래적으로 네가지로 나뉘어 진다고 본다. 장기의 구조의 차이에서 사람의 성향 (성정)의 차이가 비롯되는데, 그 네가지 체질은 태양, 소양, 소음 그리고 태음인이다. 자 이러한 네가지의 체질에 입각하여 체질적 적성에 대해서 논해본다.

 

소양인은 일단 급한 성향이다. 서두르기를 잘하고 늘 부지런히 움직인다. 한 자리에서 우직히 앉아 있기 보다는  일단은 몸을 움직여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지구력과 생각을 요구하는 분야보다는 빠른 판단력과 순발력을 요하는 분야를 선택하면 적절할 것이다.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가운데 소양인이 많은 것은 그들의 성향을 잘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소양인은 날렵하고 운동신경이 잘 발달되어 직업적인 운동이 적절할 수 있다. 한편 사교성과 친화력이 좋기에 세일즈나 외교관 계통도 맞을 수 있다. 또한 의기감이 정의감이 강하기에 직업군인쪽으로 뛰어 들어도 무방하므로 사관학교 쪽을 택해도 무난할 것이다. 단, 소양인은 급하고 용두사미격인 체질이기에 한 자리에 오래 앉아서 사무를 보는 직업, 예컨대 은행원이나 문필가 혹은 지구력과 냉정한 판단력을 요구하는 사업가로서의 수완은 그리 뛰어나지 않으니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편 소양인은 시각이 발달하여 미술가로서의 재능이 많다고 보고, 실제 미술가들 가운데 소양인 체질이 압도적으로 많다. 더불어 수녀들 가운데 소양인 체질이 많은 것도 체질적인 특성이 반영이 된 것으로 본다.

 

소음인은 품성이 얌전하고 온순하며 세심 그리고 조금은 소심한 편이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것 보다는 앉아서 생각하기를 좋아하므로 사람을 많이 상대하면서 설명하고 설득하는 분야보다는 개인적인 일을 하는 분야를 정하면 좋을 것이다. 이런 특성상 문필, 사무, 교육, 법, 은행가 그리고 종교 계통이 무난할 것으로 본다. 은행원 가운데 소음인이 단연코 많은 것은 흥미로운 사실인데, 그만큼 소음인 체질은 숫자 계산에 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리있는 해석이다.   

 

한국인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태음인은 의젓하고 신중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싫고 좋은 내색없이 묵묵이 주어진 일을 끈기있게 수행하는 경향이 있어 소를 태음인에 비유하기도 한다. 태음인은 사업가적인 기질이 뛰어나다고 본다. 뚝심이 있고 지구력이 있어 초반에 잘 안된다고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기보다는 쭉 밀어붙이는 힘이 있어 결국에는 성공할 가능성이 많은 체질이다. 이런 면에서 경영학 (그 중에서 회계학은 확실히 소음인에 적성상 더 맞다) 계통이 적절하다. 한편 태음인은 과묵하면서 덕이 있어 보여 정치가 (돈 밝히고 거만스럽고 부패한 정치가가 아닌) 쪽으로 나가도 무난할 것으로 본다.

 

이제마 선생의 사상의학의 분포에서 한국인 가운데 가장 적은 수를 차지하는 태양인 체질은 앉아서 곰곰이 생각한다든지, 꼼꼼하게 장부를 정리한다든지 , 글을 조리있게 쓴다든지 (그럼에도 필자의 소견으로는, 소위 대문호라고 하는 이들 가운데 태양인이 제법 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남의 눈치를 보거나 시키는 일을 순순히 따르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 주로 새로운 것,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것에 관심을 두고 독창적, 창의적이라 보면 맞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학이나 정치 혹은 종교 계통이 어울릴 수 있다. 태양인은 창의성이 강하여 예술적 안목이 있고 특히 음악에 크게 두각을 타나낼 수 있다. 세계적인 성악가들 가운데는 압도적으로 태양인이 많을 것은 이 체질의 장기 구조가 폐가 커서 역시 폐활량이 좋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한편 장기 구조상 태양인은 마라톤에 능하다. 권도원 박사의 체질 감별상 손기정 옹이 태양인으로 감별되었고, 정황상 황영조씨도 필시 이 체질에 속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람일이란 것이, 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아는 실상이다. 공부에 있어도 자신이 하고싶어 하는 분야가 자신과 맞는 지 모를 수도 있고 혹은 하고싶어도 못할 수도 있으며, 우연히 혹은 타의에 따라 시작한 전공과 직업이 알고보니 가장 맞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기도 한다.  학생들이 (특히 고등학생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대학생) 자신의 성향이나 취향을 간파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미래의 전공이나 직업에 대해서 생각하고 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살다보면 시행착오도 있는 법, 다만 어떤 경우에나 너무 낙심이 없으면 좋겠다. 인생이 짧다면 짧아보이지만, 또 그리 짧지만은 않다. 생의 끝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사람마다 특히 젊었을 때, 먼 미래를 바라보고 계획하고 매진하다보면, 혹시라도 있을 시행착오 후에는 더 낫고 바람직한 삶이 보일 것이고 또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칼럼 목록

게시물 검색
권호동
그레이스강
김경태
김양석
민동필
박혜영
서동임
심현섭
아이린
안세정
유상원
이경봉
이용욱
조동욱
조영숙
주호석
최광범
최재동
최주찬
한승탁
Total 0건 1 페이지
칼럼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게시물이 없습니다.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