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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청년 철학 산책 -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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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진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0-06 10:19 조회2,2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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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자신의 심연으로부터 던져지는 두가지 핵심적인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끝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17살이후 32년간 나를 옥죄이며 맴돌던 2가지 질문.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때로는 잠시 망각하며 살았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살아왔다.

한 때는 그 질문들을 마음속으로 짓이기며 “개똥철학”같은 질문이라고 비하했었다.

하지만 그 두가지 질문은 끈질기게 내 마음 속으로부터 울려나와 내 의식을 지속적으로 타격하고 있었다.

 

끊임없는 노력과 좋은 인연이 이어져서 마침내 그 정답을 얻었을 때, 내나이는 이미 40대 후반을 달리고 있었다.

아아… 이 사실을 내가 20대에 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훨씬 더 보람된 삶을 살아올 수 있었을텐데…

긴 한숨과 탄식과 기쁨이 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한 나라의 미래는 청년들에게서 찾아야한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기성세대는 우리 청년들에게 모범적 사회와 보람된 삶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의식의 명확화”를 얻어야한다.

마침내 개인의 보람된 삶의 성취를 통한 모범적사회를 일구어가는 길을 걸어야 한다.

바로 이 길을 세계 각국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모든 대한민국 모든 청년들에게 스스로 찾을 수 있또록 돕고 또한 동행하여 앞으로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실천의 방향을 잡아야한다. 

그리하여 반드시 현실에서 발전해나가는 올바른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함께 증명해 나가자.

10회에 걸쳐서 우리의 삶과 세상을 이루는 기본 구성요소에 대해서 살펴보고 결론을 얻을 것이다.

10회 연재 이후에는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질문에 대담 형식으로 답해 드리고 공개적인 토론을 이어갈 수 있도록 2차 연재를 상상해 본다.

 

우리 지구촌 사람들의 인생에 드리워진 짙은 고통의 장막은 참으로 거대하다.

하지만 이런한 상황을 이겨낸 인간의 생명력과 의식의 맑기는 더욱더 빛날 것이다.

모진 풍파를 이겨낸 나무가 더 단단한 뿌리와 생명력을 얻을 수 있듯이 우리도 그러한 삶을 

만들수 있다.

실천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걱정만하고 있는 기성세대은은 우리 청년들은 더 이상 희망을 줄 수는 없다.

 

What kind of a future would this country hold?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세계 3대 투자전문가 짐 로저스(Jim Rogers)가 지난달에 한국사회에 던졌던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몇가지 조건을 조합하면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짐 로저스는 이야기한다.

그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조건은 바로 “그 나라의 젊은이들이 도전적인가?”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시각은 그렇다고 차치하고,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자.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은가?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현실을 이겨내고 미래를 살아갈 준비를 한다는 전제하에서 유효하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좋은 삶을 살아서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해 노력함을 말한다.

좋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육체적 건강과 의식의 맑기가 좋아지는 보람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육체적 건강은 의식의 발전과 향상을 위한 기반이며 바탕이다.

의식의 발전과 향상은 궁극적으로 완벽한 지혜의 경지로 근접해 간다는 것이며, 완벽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세상의 사실과 흐름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할 수 있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한 삶의 방식과 삶의 길을 제안한 수 있다.

 

“모든 결과는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진리를 우리의 삶의 길에서 당연하지만 지혜롭게 전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떠한 경우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원인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설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않을까?

물론 살아가다보면 잘못된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고 잘못된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상황을 만날수도 있다.

우선은 잘 살아가는 삶의 길을 집중적으로 찾아보고, 잘못 살아가는 삶은 나중에 다루어보기로 하자. 이 부분은 “세상의 선과악”이라는 주제와 연결된다.

 

짐 로저스의 질문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보자.

우리의 삶과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의 미래를 밝게 만들 수 있는 첫번째 철학적 사유의 주제는 바로 “부지런함”이다.

부지런함이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잘 활용해서 좋은 결과를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힘써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힘써서 부지런히 악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아마도 악마의 조종을 받는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지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노력하였지만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대단히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인간의 제한적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하지만 그 어떠한 경우라도 세상의 모든 일은 진리(“모든 결과는 원인을 가지고 있다”)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이 산책의 말미에 설명해 드리겠다.

 

우리는 왜 부지런해야 하는가?

철학적 사유를 행할 수 있는 기반은 우리의 육체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의 육체가 살아 있을 때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내린 결론을 육체를 통해서 실행할 수 있다.

육체가 없다면 철학적 사유를 실행하고 그 효과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철학적 관찰과 사유의 결론은 진리의 발견이다.

진리가 보편적인가 절대적인가의 논쟁은 추후에 별도의 주제로 다루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진리의 발전의 주체인 육체를 지키고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원동력은 바로 부지런함이다.

부지런히 오늘의 삶을 살아서 우리의 육체를 유지할 수 있는 의식주를 얻어야만 한다.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대다수의 청년들은 기본적 의식주를 얻기위한 위한 삶의 무게를 이겨나감과 동시에 미래의 성장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의식주의 모자른 부분을 채우고 동시에 공부하는 청년들의 고통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만큼 우리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삶의 무게가 크기 때문이다.

나이 어린 청년들이 삶의 무게를 이겨내기 위해서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고 그들의 성스러운 삶의자세에 안타까운 심정으로 응원을 보낸다.

 

필자도 대학에 다닐 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삶의 무게를 짋어지면서 동시에 학업을 진행해야했던 힘든 시절을 지냈었다.

그런 과정에서 고통과 안타까움이 따랐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함과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괴리감을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부모나 친척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학업에만 열중하고 있는 청년들은 다행히도훨씬 좋은 출발점에서 학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과 관계없이, 철학적 사유의 주체인 우리 자신을 지키면서 도전적 삶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기 위해서, 앞으로 연재될 주제와 글의 내용을 치열하게 파고들고 비평하고 수정하고 흡수하여 주기 바란다.

우선 현대철학의 한계를 살펴보고 이후 현실적 삶의 문제들을 해부해 보고자한다.

1회 철학의 한계 

 

근대에 들어서면서 서구 역사에서는 신의 불합리성과 종교의 타락을 비판하는 종교개혁과 함께 인간의 이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가 나타났다. 정신이 깨어난 서구의 지식인들은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성과 함께 사실적 이치를 중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절대적인 신을 대신하여 선택한 ‘인간의 이성’에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신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인간이 대신 앉았으니 신의 계시가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만 스스로 세상의 주체가 되어 살아갈 수 있는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이성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느냐 하는 인식론이 대두하게 된다. 이러한 주제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신의 속박에서 벗어난 이성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성과 진리의 힘으로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고 자신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인간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과거 신에 의지했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이제 스스로 진리를 찾고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과 직결되는 과제였다. 인간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면 종교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고, 모순덩어리로 대두된 중세의 억압적이고 관념적인 교회체제를 벗어버리고 그들이 원하는 인간 중심의 사회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인식론에는 데카르트, 스피노자와 같은 대륙의 합리론과 로크, 홉스, 흄과 같은 영국의 경험론이 있다. 양자는 모두 이성을 신뢰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합리론이 이성이 가지는 특성을 중시하며 ‘인식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에, 경험론은 이성을 통해 획득되는 ‘지식의 효용성’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종교의 권위 없이도 이성을 통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제시한 근대 철학자는 데카르트였다. 사실 스콜라 철학으로 대표되는 중세 사상은 진리의 근거를 신에다 두고 있었고, 이성의 활동이 가능한 근거도 신에다 두었다. 따라서 신, 계시, 초자연 등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이성은 그 진실성을 보장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이성이 독자적으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느냐 하는 시대적인 과제를 수학의 확실성과 명백한 증명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했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가진 이성을 중시하였다. 이성이란 인간만이 가진 신성한 것으로 신이 부여한 완전한 신의 속성 중 하나로 보았다. 그래서 무엇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렇게 사고하고 있는 자신의 의식이라는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절대적 명제를 제시했다. 그리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존재임을 근거로 자기의 이성을 모든 진리와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러한 이성적 사유는 순수 논리적이므로 이치에 부합하고 앞뒤 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보편타당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따라서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 이성을 바탕으로 모순 없이 논리를 전개해 나가면 인간은 어떠한 진리도 인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전개한 논리라 해도 진리가 아니고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이아몬드 산’이 그러한 예인데, 다이아몬드만으로 이루어진 큰 산이라 하면 생각 속에서 논리를 만들어 상상할 순 있어도,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비현실적인 논리 전개는 인간의 사유로만 가능하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일이다. 이로 인해 대륙의 합리론은 인간 이성의 완전성과 진리의 인식 가능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그에 반해 영국의 경험론은 이와 대립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인간의 특징인 이성의 신성성을 인정하지 않고, 감각과 경험을 중시한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 백지 상태로 태어난다고 보며, 이성이란 인간의 감각이 모여 형성되는 것으로 보편적 경험이 진리로 인식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합리론에서 절대자(신)는 사유할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경험론의 입장에서는 신은 경험할 수 없는 대상이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영혼 또한 경험할 수 없으므로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 흄이라는 철학자는 본인이 경험론자임에도 경험론이 100% 어김없이 진리를 인식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즉, 경험론에서는 유사한 경험이 보편적 인식이 되어 진리로서 이해하게 된다고 하였지만, 보편적 경험 또한 하나의 거대한 신념일 뿐 완전한 진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만약 1,000번 같은 일이 발생해도 1,001번째는 다른 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보편적인 경험이 절대적 진리가 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신성과 진리를 인식하는 데 한계를 보이자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3대 비판이론을 세움으로써 그 절충점을 모색했다. 그는 먼저 『순수이성비판』이란 저서에서 인간 이성의 진리 인식 가능성에 대해 비판한다. 인간은 고귀한 이성이 있어 사유할 수 있으나 그 사유는 완전할 수 없으며 경험에 의해 제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험할 수 없는 신성이나 진리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면 인간이 신성과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면, 어떻게 자신과 세상을 위해 선하고 도덕적으로 살 수 있는가? 칸트는 여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한다. “순수이성으로 사유하여 올바른 진리를 도출하여 여기에 따라 실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만 이것을 철학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실천이성비판』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답을 제시한다. 철학의 영역에서 신과 영혼과 절대적 진리의 문제를 포기한 칸트는, 현실적 필요성에서 신과 영혼의 존재 이유와 도덕적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인간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나 신성에 대해서 명확히 인식하거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따르고 실천하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속에 이성보다 더 높은 천부적인 ‘실천이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주장하였다. 칸트는 머리 위에서 빛을 내는 별과 같이 가슴속에 빛나는 도덕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은 실천이성에 따라 선을 실천하며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률에 따른 실천이성은 천부적으로 선의지(善意志)를 요구하게 되는데, 이러한 선의지를 내는 이유는 인간이 최고로 선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영혼 불멸이 요청되며 이를 위해 자연히 행위와 목적의 원인인 절대자(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영혼은 절대자를 경외하며, 자율과 자유에 따른 내면의 도덕성인 정언명령(定言命令,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을 따르게 되는데, 그 내용은 “네 의지의 준칙이 동시에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로서도 타당하도록 행동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너의 내면적인 행위의 원리가 세상의 보편적인 원리와 일치하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칸트 철학에서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도출되지 못했던 개념들이, 실천적인 필요성에 의해 도덕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인간이 왜 도덕적 행위를 통해 진리를 찾고 최고선을 추구해야 되느냐 하면,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만이 이 세상을 선하게 통치하는 절대적인 신을 만나고 내세의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실천이성비판』은 철학의 완결판이라기보다는 철학의 퇴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사실과 이치에 따른 합리적 사유를 통해 신성과 진리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고, 전해져 내려오는 종교적 관념과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 도덕적 행위를 설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칸트는 철학자로서 큰 한계를 느낀 듯하다. 그래서 오랜 사유를 통해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신성과 진리를 어떻게 알고 실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최종적인 답을 제시한다. 이것이 바로 3대 비판서 중의 마지막 작품인 『판단력비판』이다. 여기서 칸트는 미(美)와 도덕의 유일한 판단 원리는 자연 및 예술의 합목적성(合目的性)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칸트는 ‘미’란 대상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이 그렇게 판단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어떤 대상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바로 그 사회의 구성원과 사회 목적에 있어서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여기서 고전적인 미의 정의에 대한 혁명적 반전이 이루어지는데, 이를 철학에서는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한다. 기존에 미라고 하는 것은 그 실체가 본질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입장이었다면, 칸트에 이르러서 미에 대한 시각이 주관적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서양사상사에 도도히 흐르고 있던 플라톤의 본질적 미학 이론인 “진리는 아름답고 조화롭다.”라는 ‘진선미 일치이론’이 약화되고, 사회의 필요성에 따라 주관적인 대중의 미를 중시하는 근대 미학 이론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러한 한계를 안고,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에 이어지는 대륙의 합리론은 인간의 이성적 사유를 중심으로 이 세상을 전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헤겔의 거대 관념론으로 이어진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인간의 이성을 신의 신성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고 이 세상마저 신의 의식이 변화하여 나타내는 정신적 과정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의식과 사유로 모든 것을 해석했다고 하여 ‘절대적 관념론’이라 불린다. 그는 신의 의지는 내적으로 단순한 의식과 합리적 이성을 거쳐 완전한 절대정신(絕對精神)으로 발전한다고 보며, 밖으로 표출된 절대정신은 역사 발전과정을 통하여 개인과 사회, 국가로 발전한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철학체계를 확장해서 국가와 윤리, 종교 등 모든 것을 설명하고 그 모든 것의 배후에 신의 의지인 절대정신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세상에 나타난 신의 의식은 세 단계로 발전하는데, 개별 인간에게는 주관적 정신으로 나타나고 역사 속에 형성되는 사회 공동체에서는 객관적 정신으로 나타나며 최종적으로는 신의 절대정신으로 완전한 형태를 나타낸다고 본다. 

헤겔은 이러한 세상의 발전 과정을 정반합(正反合)으로 이루어지는 변증법(辨證法)으로 설명한다. 즉, 역사 속에서 신의 의지에 의해 하나의 뜻이 현상으로 나타나면, 어느 정도 유지되다가 그로부터 한계와 문제가 나타나고 이것을 보완하여 더 완전한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사회에서 개인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률이 생겨나면(정), 이 법률은 너무 엄격하고 비인간적이므로 도덕에 의해서 보완될 필요성이 생긴다(반). 하지만 도덕이 너무 개입하면 법률이 불안해지고 사회가 위험해지므로 다시 참된 인륜(人倫)을 통해서 더욱 높은 차원의 인간세상이 나타나게 된다는(합) 것이다. 그래서 인간세상은 법률과 도덕과 인륜이라는 발전 단계를 거쳐 그 윤리성이 더욱더 고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절대정신은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해가면서 완전한 단계로 발전해 나가는데 이러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이 세상은 궁극적으로 신을 닮은 완전한 절대정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헤겔은 이 세상이 절대정신의 자기 구현의 표현으로, 신의 의지인 절대이성이 결국 이 세계를 조화있고 완전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따라서 세계 역사는 다소 문제는 있어도 결국 이성적이며 조화있게 발전하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헤겔에 있어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 된다. 

이와같이 헤겔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신의 완전한 뜻에 의해 나타나는 질서로 설명하는 이론체계인 절대적 관념론을 만들어 냄으로써 세인의 추앙을 받으며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세상에는 생생한 삶과 직결된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생생한 현실을 외면하고 단순한 사유와 논리로 이 세상이 이상적으로만 흘러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즉, 관념론의 근본적 한계인 사유와 현실이 일치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논리적 사유로는 산만한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지만, 현실 속에서 그것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의 이론의 문제점은, 이 세상이 신에 의해 나타난 완전한 세상으로 완전한 이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본 것은 옳았지만, 세상에 좋은 원인이 쌓이면 좋아지지만 나쁜 원인이 쌓이면 조화를 잃고 불행해진다는 이치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당시 세상이 자비로운 신의 뜻과 인간의 이성적 발전에 따라 계속 진화한다고만 생각했지, 인간들이 짓는 탐욕과 폭력에 의해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파멸에 빠진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한 한계로 인해 그는 정복자 나폴레옹을 세계정신의 출현이라고 보는 오류를 범하고 어용 철학자로 비판받았던 것이다. 이처럼 현실 속의 단편적 현상만 보고 자신의 상상과 생각을 조합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이상주의자가 가장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헤겔의 관념론에 대해 독일의 철학자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는 헤겔 철학이 철학을 위장하여 신의 완전한 뜻과 의지를 설명하려는 신학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은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며 인간이 자기의 소원과 이상을 객관세계로 투사하여 마치 독립한 실체인 것처럼 상상한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따라서 관념적인 신과 마찬가지로 헤겔의 절대정신도 실상은 존재하지 않은 망령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헤겔 철학을 일러 종교와 철학의 용납할 수 없는 야합(野合)이며, 절대적 권력을 자랑하는 전체주의 국가를 옹호하기 위한 ‘어용 철학’이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포이어바흐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신의 뜻으로 보고 정당화하는 헤겔과는 달리, 사실을 중시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인간을 참되게 설명하는 것에 철학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헤겔의 관념철학에서 소홀하게 다루어진 자연의 실재성을 중시하며 철학은 인간을 위한 인간학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처럼 관념적인 신의 뜻과 질서를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과 인과율만 인정하려는 사고방식은 모든 것을 물질과 자연의 이치로 설명하려는 유물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를 발전시킨 대표적인 주자가 그 유명한 마르크스(Karl Marx)다. 그는 포이어바흐가 서구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적 흐름을 인간적 본질로 대체했다고 그 공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본질은 각 개인에게 내재하는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관계의 총화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조건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의 실체를 보고, 그 원동력과 법칙을 분석하여 사회학적 필연의 법칙으로 공산주의 사회를 도출하려고 했다. 그는 계몽과 의식 변화를 통해 인간다운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사회 개혁을 기대하는 포이어바흐, 생시몽, 오언, 푸리에와 같은 초기 공산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하고, 자신들을 ‘과학적 공산주의’라고 해서 사회의 법칙성에 따른 실질적인 공산주의 혁명을 추구했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 해방을 단순한 이기심의 극복이나 개인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경제적 속박과 사회 계급이 관련된,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로 보았다. 정치적인 투쟁으로 저변에서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가 그들을 착취하는 부르주아(bourgeois)에 대항하여 계급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이전의 개혁적이고 온건한 사회주의 운동과는 달리 노동자 계급에 의한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해방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문제와 역량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수단으로 직결시키려 한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철학이 단순한 이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실천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해가 지고 나서 날아다니는 철학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뒤집어버리려는 유물론적 혁명적 사고는 기존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평안히 살고 있던 다수의 시민들과 많은 지식인들의 마음에 강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좌•우파 간의 갈등으로 사회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러한 공산주의 물결이 사회를 뒤흔들고 제국주의로 인한 국제적 전쟁과 탐욕적 자본주의의 폐해가 세상을 불안과 공포 속으로 밀어 넣자, 근대문명의 기반이 되었던 서구의 보편적 가치였던 합리적 자연관과 이성적 인간관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율, 이성, 진보 등이 핵심 개념이었던 근대정신은 18세기 후반부에 이르자 이성의 합리성과 완전성에 대해 회의하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나면서 해체를 요구받게 된다. 

그래서 니체와 같은 철학자들은 인류 문명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한계와 불안을 목격하면서, 전통과는 달리 인간의 생생한 삶 속에서 본질적으로 작용하는 그 무언가를 찾아 진리와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즉, 근대 이후 인간들이 문명을 발전시켜 왔지만 결국 진리를 찾지 못하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 등으로 세상을 더욱 악하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인간세상에 존재하는 무언가 본질적인 것을 찾아 그것에 충실하게 살아감으로써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의 이성에 근거하여 세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주류적인 철학 흐름과 달리,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삶에 충실하자는 감성 위주의 비합리주의 철학이 나타났으니, 이것이 바로 ‘생(生)의 철학’이다. 그들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이성의 합리적•과학적 사고보다는 직관이나 체험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인간에게는 이성보다 더 중요한 생명적 요소가 있으며 이것을 찾아 여기에 충실하게 살 경우 자연과 조화되며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대표적인 학자로는 쇼펜하우어, 니체, 딜타이, 지멜, 베르그송 등이 있다. 그들은 생명의 세계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실체를 발견하여 이에 따라 살아가는 게 가장 자연에 부합되며 생명의 본질에 충실한 삶이라 주장했는데, 이러한 삶의 실체에 대해 니체는 권력의지라 했다. 즉, 인간에게는 근본적으로 권력에의 의지가 있어서 이를 충족시킬 때 비로소 인간의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 수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자기가 비겁하기 때문에 정의를 찬양하고, 자신의 부끄러운 무능을 숨기고 싶어서 강한 자를 비난하는 현 인간 사회의 도덕을 주인의 도덕이 아니라 하인의 도덕이며, 군주의 도덕이 아니라 노예의 도덕이라고 비판하며 최고의 권력을 얻고 인간 완성의 경지에 오르는 초인(超人)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인간에게는 죽음의 의지, 즉 본래부터 무로 돌아가고 싶은 의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힌두교 마야(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이 세상의 고통과 혼란은 맹목적인 생의 의지로 인해 비롯되는 것으로, 이러한 생의 의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세상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으며 인간 내면의 평안은 찾을 수 없다고 보고, 모든 생의 의지를 버릴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와 평안에 이른다고 보았다. 그래서 불교의 해탈에 이르는 것을 가장 완전한 경지로 보았다.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모든 생명체에게는 그 근본 속에 생명의 약동, 즉 엘랑비탈(élan vital)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세상의 움직임은 단지 기계적인 법칙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엘랑비탈이 창조적으로 움직이며 나타나는 과정으로 본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과학의 발달로 모든 것을 물질적으로 설명하는 유물론이 너무 성행하여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인생의 참된 의미가 경시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유물론에 맞서 생명의 힘을 보여주고, 물질에 종속된 인간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즉, 이 세상의 본질은 살아 꿈틀대는 생명력의 창조적 진화에 있으며 인간의 삶의 본질은 정신적 창조 활동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근원적 힘은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공감과 사랑으로 삼투되어, 사치와 허영 없이 소박하게 살아가는 높은 차원의 확장된 자아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들이여! 너희들은 물질적 욕망의 노예가 아니다. 자유로운 생명이다.”라고 외치며 철학자의 의무는 물질적 지성의 만연을 저지하고, 진정한 생명의 자유를 고양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각 철학자가 자기 체험과 아이디어(생각)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한 것이었기 때문에 맞는지 틀리는지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결국 생명력을 잃고 시들어 갔다. 즉 외부적으로 닥친 거대한 제1차•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변적인 철학적 사유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으로 사회적 갈등과 비인간적 현실은 심화되고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수천만의 시체가 하루살이보다 못하게 산야에 쌓였는데, 그 속에 신의 존재가 어디 있으며, 인간의 의미와 가치가 어디 있느냐 하는 삶과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몰려든 것이다. 

그리하여 지성인들의 의식 속에는 허무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했으며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무(無)로서 그 속에서 인간은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연명하고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한계상황에서 자기 삶의 실체적인 본질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주어진 삶을 보람 있고 가치 있게 사는 실존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그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이것이 서구의 마지막 철학인 ‘실존주의’이다. 

이들은 20세기 서구 사회가 창조한 기계문명(機械文明)이 만들어 낸 우민적인 대중사회와 제1차•제2차 세계대전 후에 붕괴된 인류의 정신적 위기에 대해 깊이 성찰한 후, 실증적 과학에 대한 과신을 경고하고 근원적인 불안과 소외상황에 노출된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여 그 속에서 인간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확립하려고 시도하게 된다. 

실존주의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와 유신론적 실존주의로 나뉘는데,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사르트르,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신이 사라진 무의미한 세계와 무한한 자유 앞에 홀로 선 인간은 이런 한계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체적 책임을 지고 당당히 운명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사물의 경우 본질이 실존에 앞서지만,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하며, 인간이 실존을 이해하기 전까진 그것을 규정하는 본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희미한 인간의 눈으로는 인간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으니 자기가 부딪히고 있는 현재에 중심을 두고 모든 것을 해석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인간이 신의 품을 떠나 자유를 회복하고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상황에서 첫 번째 느끼는 반응으로 ‘멀미’를 지적한다. 자유를 갖고 있으므로 무엇인가를 할 수밖에 없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그 무한한 자유성에 어지럽고 구토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본질은 무로서 우리를 안내해 줄 신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 스스로 목적과 방향을 정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유 속에서 선택하고 움직일 때 실존이 이루어지므로, 스스로 인식하고 행위를 하여 그 책임을 다할 때 실존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자유와 함께 내던져진 인간의 삶은 총체적인 사회 참여(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통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실존을 구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유신론적 실존주의의 대표적 철학가들인 키르케고르와 야스퍼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한계상황에 홀로 직면한 인간은 오직 신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찾고 소외를 극복하게 된다. 즉, 인간은 죽음, 투쟁, 고통, 책임과 만나게 되는 한계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실존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데, 이때 자기 자신에게 순수하게 돌아감으로써 자신의 실존과 만나게 되고, 신을 통해서만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실존적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야스퍼스는 철학이란 과거와 같이 세계의 거대한 조감도를 그리는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에 파고드는 활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실존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절대자를 초월적 대상으로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자와 개별적인 실존적 만남을 통해 자신의 한계상황을 극복하는데 문제의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키르케고르는 “실존은 하느님 앞에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본래부터 유한한 인간은 오직 신 앞에 설 때 실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서 실존은, 완전한 신 앞에서 의미 있는 존재인 자기를 자각하여 참된 자아를 회복할 때 비로소 진정한 실존이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그는 신을 떠나온 현대인은 근본적인 모순과 한계에 빠져 있으므로 다시 신을 찾아야만 소외 상황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된다고 하였으며 전통 기독교 신앙으로의 복귀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많은 철학자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실존주의 철학들은 인간의 한정된 이성적 사유에 의존한 관계로 인간들이 진정 궁금해 하는 삶의 본질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궁극적인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실존주의는 개인의 책상 위에 놓인 하나의 지식에 불과했을 뿐, 현대사회의 소외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현대문명의 근본적인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신, 생과 사, 인간과 환경, 생명과 물질과의 관계를 모두 이해하고 생명의 존재 이유와 삶의 길에 대해 분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철학자들의 시각은 칸트의 말대로 경험과 한정된 이성에만 국한되어 있으니 이에 대한 답을 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근세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주체성과 이성의 자유를 찾아 신의 품을 떠난 인간은 이제 스스로 의지했던 이성의 한계에 부딪히게 됨으로써 마지막 마음의 안식처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의미와 가치마저 상실하고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우주 공간에 홀로 내던져진 미아가 되어 무의미하게 죽음을 맞는 극한적인 인간소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신도 잃고 진리도 잃고 길도 잃고 희망도 잃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성인은 눈뜬장님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 비밀을 잘 밝히고 있다. 즉, 가려진 시각(편견)을 가진 인간은 세상을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진리의 인연을 만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는 시각을 깨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플라톤도 인간은 동굴 속에서 세상의 그림자를 보고 세상인 줄 착각하고 있다고 하여 동굴의 우상이라는 말을 만들었으며, 칸트는 인간의 이성이 신성이나 진리를 절대 인식할 수 없다고 갈파한 것이다.

따라서 현대문명의 근본적인 한계인 무의미와 인간소외 문제를 해결하려면 눈뜬장님의 시각으로는 아무리 해답을 찾으려도 찾을 수 없으므로, 먼저 그 눈을 밝혀 있는 존재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시각과 지혜를 얻은 후에 세상 속에 깃든 진실과 진리를 밝히는 것이 순서라 할 것이다. 

 

2회 마음의 힘과 그 진실 

 

Q1.

자기계발서 중에 『시크릿』, 『호오포노포노의 비밀』과 같은 책은 ‘마음의 힘’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강조하기도 하고, ‘마음의 정화’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 책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마음가짐에 따라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을까요? 

A1.

인간의 주체는 의식이며 세상은 뜻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마음을 지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주위를 봐도, 어렵고 멀게만 보이던 일들을 성취해내는 사람을 보면, 일을 대할 때 매사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해내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힘’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의 힘’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내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이미 지어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들로 인해 결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일들을 무시하고 내 마음만으로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상상이며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통의 인간이 지닌 의식의 힘은 매우 약해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데,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을 생각만으로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을 환상 속에 집어넣어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게 있어 성취하고자 한다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선 내게 닥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인식해야합니다.

다음은 그 문제의 원인을 확인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문제의 원인은 복합적입니다. 따라서, 문제를 만들어낸 다양한 원인을 확인하고 나열해서 밖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이제 밖으로 드러난 문제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합니다.

그 해결책들을 강한 의지와 용기로 실행해야만 비로소 자신이 품은 소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간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문제의 인식과 원인 파악, 해결책 찾기, 실행과 점검으로 이어지는 꾸준한 노력을 이어갈 때 마침내 현실에서 좋을 결과를 기대하고 수확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사회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는 상태에서 타인과의 협업을 추구하는 지혜로움을 발휘하는 능력 있는 세련된 젊은 인격체들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Q2.

요즘 TV, 인터넷, 자기계발서적에서 ‘힐링(healing)’ 이란 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어서 찾아보기는 하지만, 정작 어떻게 현실에 적용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A2.

‘힐링’이란 단어 뜻 그대로 ‘상처를 고치고, 아물 수 있도록 치유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요즘 ‘힐링’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보거나 베스트셀러에 오른 도서들을 보면, 그 당시에는 마치 모든 것이 금방 이루어질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정작 ‘치유(힐링)’에는 별 효과가 없어 사람들은 실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말이 기존에 나온 지식에 “상대를 이해하라,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마음만 잘 쓰면 문제 될 게 없다." 는 식의 내용을 덧붙여 글을 짜깁기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언을 가까이하면 일시적으로는 위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는 사실과 이치에 맞지 않는 처방이기 때문에 곧 문제가 불거지게 되고 종국엔 그 상처가 덧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몸에 병이 생겼다면,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하며, 처방에 맞는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에 상처가 있다면, 듣기 좋고 아름다워 보이는 말로 위안을 얻을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 실천해야 합니다. 

 

갈등이 있다면 부딪쳐 화해해야 하고, 맺혀 있는 응어리가 있다면 그 배경과 원인을 살펴 풀어내야 합니다.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서나 도전을 강조하는 이야기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나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 너도 해봐라.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루어진 책들이 매년 서점에 수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건이 갖춰지고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각자의 근본과 바탕과 환경이 다르므로, 누가 그 일을 이뤄냈다고 해서 나도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자기 계발 서적같이 두꺼운 책을 보는 것보다 지금 ‘나는 어떤 처지에 있는가?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 일을 했을 때 나에게 어떤 결과가 돌아올 것인가?’를 지혜롭게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변화는 지식을 배워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에서 주체적으로 깨치고 원인을 지을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3회 악이 이기는 세상 

 

 

Q1

대학생이 되고 나이가 더 들면서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게 더 많아졌습니다. 비리와 부조리가 만연한 세상을 보면 이 세상에 무슨 질서가 있는지 모르겠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A1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이는 현대인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의문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세상은 혼란과 무의미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뚜렸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매일 동물처럼 투쟁하고 욕망을 추구하다가 어느 순간 인생을 마치는 게 인간의 삶이라는 어두운 체념이 우리 사회 저변에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은 죽었고 이 세상에는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없으니, 남들 보기에 한바탕 멋지게 살아가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망과 부귀영화를 추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던 성자들은 이 세상이 완전한 뜻에 따라 움직이는 완벽한 시스템이며, 인간이 가야 할 정해진 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현대인들의 생각과 성자들의 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결론은 세상 안에 있습니다.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면, 완전한 이치와 시스템이 우리를 감싸고 있으며, 바로 눈앞에 실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하거나 출근을 하여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것도 우리가 만드는 원인이 그에 상응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완전한 질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완전한 법칙이 세상을 지키고 있음에도 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인과因果)의 법칙이 공기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그 중요함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세상 속에 빛이 사라지고 무질서가 횡행하는 것도 크게 보면, 바로 이처럼 완전한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세상이 어둡고 무의미하며 악과 고통이 범람하는 것은 영악한 인간들이 이러한 완전한 인과의 법칙이 존재함을 알고 질서를 어질러 더 큰 이익을 취하려는 나쁜 뜻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이익을 얻었지만, 그들이 지은 나쁜 원인들은 한 치의 어김없는 인과의 이치에 의해 고통과 부조화로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히고 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인류가 지은 악이 세상을 덮을 만한데 세상이 이정도로 어지러워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완전한 법칙이 세상 속에 흐르고 있기에 자연의 진리와 생명의 길을 배우고 깨쳐 자신을 좋게 만드는 길을 행하면 좋은 세상과 인간 완성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올바른 길을 모르고 무지와 탐욕에 빠져 함부로 거짓과 악을 행하게 되면 세상을 망치고 자신 속에 업을 쌓아 이생과 후생에서 불행한 자기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Q2

우리가 아는 유명인들 중에는 과거에 큰 악행과 살생을 저질렀음에도 아직도 호의호식하면서 권세를 누리고 있고, 여생마저 큰 어려움 없이 살 것 같은데, 이들의 악행은 어떻게 대가를 받게 될까요? 

 

A2 

세상에는 완전한 원인과 결과의 이치가 흐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은 모든 행위와 결과는 어떠한 인연을 만나면 반드시 그 결과를 세상에 드러내게 됩니다. 

원인과 결과의 그물망은 피해나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어떤 사람도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다만, 때와 인연이 무르익지 않아 현재의 세상에서 그 결과의 이익 또는 손해를 받지 않을 뿐입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동안 교묘한 처세로 몸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마음의 평안은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완전을 추구하는 맑음이 있기에 누구나 죄를 짓고서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서, 나쁜 짓을 하게 되면 상대에게 맺힌 한이 악행을 지은 사람의 마음과 연결되어 죽어서도 상대의 한에 묶이기 때문에 그 영혼이 영적 자유를 얻지 못해 좋은 곳에 갈 수가 없게 됩니다. 

 

이것이 뜻으로 이루어진 마음의 신비이며 선을 행해야 하는 이유이며 계율을 지켜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원인과 결과의 법칙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완전하게 심판받게 됩니다.

 

죽음 앞에서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결과인 영혼으로 완전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심판받게 됩니다. 개개인이 살아오면서 쌓아온 좋은 일과 나쁜 일의 결과가 모두 다르기에 그들의 운명은 하늘이 정해 놓은 완전한 뜻과 질서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래서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높이 오르는 이치에 의해 한과 욕망과 집착 때문에 무거워진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마음을 정화하여 맑고 가벼워진 영혼은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악한 자가 평생을 호의호식하는 걸 보고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지만, 성인(聖人)들은 악한 자가 불안한 마음에 고통스럽게 살고, 죽어서는 지옥의 고통을 받다가 미물이 되어 흩어지는 것까지 보고 이 세상을 완전한 시스템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Q3

하지만 현실에서 악한 사람이나 잔인한 국가가 선한 사람과 평화스러운 국가 위에 군림하고, 하늘이 이를 방관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A3

지금 세상은 인간의 시각으로는 선악을 판단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미 선악이 뒤범벅되어 누가 더 선이고 악이라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지금 국가 간의 분쟁을 볼 때는 침략을 당하는 나라가 선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 침략당한 나라들 중에도 과거에는 다른 민족을 점령하여 그들의 피 위에 서 있는 나라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은혜와 원한이 뒤섞여 내려와 오늘날까지도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 속에 움직이는 뜻과 이치를 봐야 합니다. 

세상은 완전한 뜻 속에 있습니다. 

세상이 흥한 곳에는 흥하게 하는 뜻이 있고, 세상이 망한 곳에는 반드시 그만한 원인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뜻과 이치를 볼 때 비로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선과 악이 싸워 악이 이길 때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악이 이긴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강해진 곳이 이긴 것입니다. 

 

이 힘이란 것은 선하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에 맞게 힘을 모을 때 생겨나는 것이며 강한 힘이 약한 힘을 이기는 법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한 병자호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터전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선을 침입한 여진의 청나라가 악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진족들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현실을 중시했고 능력 있는 자를 우대했으며 자기 민족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순박함과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이겨내는 국민들의 강한 기질과 약한 민족의 힘을 하나로 모은 누르하치의 강한 지도력이 만나 조선을 침략하고 거대한 명나라마저 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유교적 이상주의에 의해 글 읽는 선비들이 우대받는 문약한 세상이 펼쳐졌고 입으로만 백성을 위하는 탐관오리들이 득세했으며 사농공상의 차별을 두어 현실적으로 힘이 되는 상공업을 경시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삶은 배고프고 어둡고 고통스러워졌으니 힘이 생겨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진실입니다.

 

이처럼 현실은 힘과 힘이 부딪히는 경쟁의 현장입니다.

 

여기서는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지배하는 자연의 적자생존 법칙이 작용합니다. 이러한 현실 세계에서는 힘을 길러 살아남은 것이 중요하며 선과 악을 따지는 것은 그 이후에 해야 할 일입니다. 

힘을 기르지 못해 침략을 당한 나라가 선과 정의를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렇다고 역사 속에 강자의 힘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속에도 지은 대로 받는 완전한 뜻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강대국들이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 세계적인 강국을 만들었지만, 그 힘을 세상을 축복하는 데 쓰지 않고 다른 나라를 수탈하는 악덕을 범한 나라는 결국 그만한 응보를 받았습니다. 

 

몽골은 송나라와 수많은 민족을 정복했지만 그들의 미움을 받아 다시 쫓겨나는 복수를 당했으며, 근대의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도 자국의 이익과 영토 확장을 위한 침략 전쟁으로 다른 나라의 원한을 산 결과, 결국 제1차•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자체가 폐허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 미국이 유럽 부흥 계획인 마셜 플랜(Marshall Plan)으로 지원하지 않았다면 지금 유럽은 폐허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미덕을 발휘하여 국가의 힘을 하나로 모으면 나라가 융성하고 발전하지만, 그 힘을 이용하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악을 범하면, 그 악이 세상을 고통에 빠뜨리고 결국 자신도 불행한 나쁜 결과를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사회문제와 인류의 역사를 볼 때 지엽적인 것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되며 전체적인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4회 억울한 마음이 들 때 

 

 

Q1

저는 고등학생 때, 폭행과 금품 갈취를 당했습니다. 보복이 무서워 누구에게도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 공포감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지금도 그 악몽이 떠오릅니다. 그때의 트라우마와 분노는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를 겁니다. 이런데도 그냥 저 혼자 피해자로 남고 묻어 두어야 할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 잘 대처하는 걸까요? 

 

A1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는데, 요즘은 욕망과 거짓이 판을 치는 어두운 세상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 지상천국이 오지 않는 이상 억울함이 없는 세상은 바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애타게 밝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노력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한과 억울함이 없는 좋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과거의 나쁜 일과 만남 때문에 받은 고통스럽고 억울한 기억과 원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대가 상대에게 갚을 길이 없다면, 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감수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상처 입은 영혼들처럼, 그대 또한 상처를 안고 아물기를 바라며 그들을 용서하고 잊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좋은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좋은 삶이란 한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삶을 말합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더 좋은 자기를 얻고자 함이며, 더 좋은 자기란 더 자유롭고 지혜롭고 평안한 영혼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른 이치를 배우고, 삶을 지혜롭고 용기 있게 헤쳐 나가 회한이 없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맑고 진실한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이 쌓여 마음이 맑고 가벼워지면 세상을 보는 눈과 지혜가 생기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며, 자유와 평안과 좋은 영혼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원한과 욕망과 집착이 쌓이면 마음이 어두워져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어리석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되며, 무거워진 영혼은 밑으로 가라앉아 극도의 고통과 불행한 결과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그대는 이러한 생명의 이치를 깨우쳐서 마음속에 맺힌 원한과 억울함은 잊어야 하며, 그것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 마음이 맑고 가벼워져, 자유롭고 평안한 영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인들도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신 겁니다. 

 

물론 자기 마음속에서는 상대를 용서하지만, 그 잘못된 일의 옳고 그름은 밝혀서 세상이 다시는 그런 잘못된 일에 빠지지 않도록 방심하지 않고 주의해야겠습니다. 

 

 

Q2

저를 괴롭힌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나 보니까, 그냥 학교생활을 하면서 잘살고 있습니다. 저를 괴롭힌 자들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벌을 받나요? 그들의 죄는 죽으면 사라지는 것입니까? 

 

A2 

그대가 억울함과 원한을 잊는다고 해서, 그대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의 과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은 대단히 엄격합니다.

한번 저지른 잘못은 자신 속에 남아서 언젠가는 그 나쁜 결과를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 잘못을 모르는 용서 못 할 악인들도 있는데, 그들의 과오는 자신 속에 씨앗으로 숨어 있다가 어떠한 계기를 만나면 그 습성이 다시 튀어나와 잘못된 말과 행동을 되풀이하게 되므로 반드시 그 나쁜 결과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우주는 하나의 완벽한 시스템입니다.

인간의 의식 세계는 뜻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하나로 통합니다. 

그래서 내가 상대에게 한을 지니게 하면 상대가 원망하는 마음으로 나를 꽉 잡고 있으므로 다음 생에도 영혼이 자유롭지 못하여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합니다. 따라서 죄의 무서움을 안다면 인간은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지은 공덕은 반드시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올바른 진리의 길을 가는 자는 이것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모든 좋은 일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 애태우며 노력합니다.

 

그러니 이제 그대가 해야 할 일은 그대 자신을 위해 마음에 맺힌 한을 풀고, 더 나은 자기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입니다. 

 

올바른 진리와의 인연을 통해서 세상을 바로 보는 눈과 용기와 지혜를 얻어서, 다시는 그런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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