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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한힘 세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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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현섭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3-06 13:55 조회3,2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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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을 모신 6백년의 긴 세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우리의 자랑스런 유산

 

 

종묘는 서울 한 복판 그것도 번잡하기 이를 데 없는 종로 3가에 위치하고 있다. 종로 3가 지하철역에서 내려 동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지하철 역 구내에는 여기 저기 노인들이 모여 앉아 환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색다르게 보인다. 원래 종묘 앞 공원에 노인들이 할일 없이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것을 얼마 전에 나무를 심고 울타리를 치면서 앉을 자리를 없애버리고 말았다. 모이다 보면 낯 익은 사람들끼리 장기도 두고 점심에 싸구려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도 마시고 하던 것이 지하철 역 구내로 옮겨오게 되었다. 그 바람에 종묘 앞이 훤해졌고 훨씬 격이 올라간 기분이다. 물론 예전에는 종삼이라는 이름으로 유락가가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지만 지금은 다 옛 이야기가 되었다.

 

서울에는 지금도 5대 궁(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남아있지만 가장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곳이 종묘이다. 종묘는 커다란 사당이고 제사지내는 곳이니 일반인들이 들여다 볼 흥미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종로통을 지날 일은 많았으나 수없이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막상 종묘에 들릴 생각은 못했다. 나 역시 이번 탐방이 두 번째 방문이다. 종묘 역시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시간마다 안내자의 인솔아래 단체관람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종묘는 한마디로 조선왕실의 사당이다. 서원에도 불천위 신주를 모신 사당이 있고 사대부의 저택 뒤에도 자체 사당을 가지고 있다. 우리말에 '신주 모시듯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당에 모신 신주는 조상의 혼령이 서려 있는 대체할 수 없는 귀중한 상징물이다. 부모의 은덕을 모르고, 살아서 불효하고 돌아가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여겼다. 그러하니 왕으로서는 백성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돌아가신 선왕의 신주를 잘 모시고 절기에 맞추어 제례를 올려야 하고 그럴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데 그런 곳이 바로 종묘이다.

 

종로 대로를 향하고 있는 외대문을 지나서 나무가 울창한 숲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정전이 나온다. 정전으로 향하는 돌길은 가운데 길이 신도(神道)라 해서 도톰하게 올라와 있고, 오른쪽은 임금이 왼쪽은 세자가 걷는 길이다. 신도는 임금마저도 감히 걸을 수 없는 길이다. 오직 보이지 않는 조상의 혼령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지금도 팻말을 올려놔 관광객들이 올라서서 걷지 말도록 주의하고 있다. 정전 앞 넓은 마당에 들어서면 일자로 늘어선 정전의 단일 건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우선 한국에서 제일 긴 건축물이다. 가로의 길이가 101m에 이른다. 다른 건물의 용마루는 휘어있지만 정전의 용마루는 중국의 건물처럼 자로 그은 듯이 반듯하다. 용마루가 휘지 않으면 건물이 웅장하고 위엄 있게 보인다. 단청은 물론이고 일체의 장식이 없이 소박하면서도 엄숙해 보이는 한국의 전톰 미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기와집이다. 건물은 건물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와 어우러져야 비로소 가치가 돋보이게 마련이다. 정전의 앞마당인 묘정(廟廷)은 사각의 커다란 평석을 깔아놓았는데 여느 때는 텅 빈 공간으로 정전을 떠받들고 있다. 넓은 묘정이 없었다면 정전의 웅장함도 없다. 더욱이 선대의 왕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곳일진대 거룩함마저 감돌고 있다. 서양으로 말하면 신전에 방불하는 곳이다.

 

정전은 왕과 왕비가 승하 후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다음에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건물이다. 역대 19대왕과 왕비를 합해 49분의 신주를 모시고 있으며 국보 제227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쪽에는 공신당이 있고 서쪽에는 칠사당이 있어 디귿 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공신당은 정전에 모신 역대 왕의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며, 칠사당은 궁궐의 모든 일과 만백성의 생활이 무탈하게 잘 풀리도록 천지운행과 관계되는 신에게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1392년 개성에서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1394년 8월에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같은 해 12월 다른 궁궐에 앞서 종묘를 제일 먼저 짓도록 명했다. 조상을 모실 사당을 최우선으로 마련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10개월 후에 완성된 종묘는 처음에 고려에서 쓰던 대로 '태묘(太廟)'라고 했으며, 태조의 4대조의 신주를 개성에서 종묘로 옮겨 왔다. 이것은 예로부터 국왕의 정궁 오른편에 사직단을 세우고 왼편에는 왕실의 사당을 짓는 전통에 따른 것이었다.

 

정전에서 나와 서쪽으로 영녕전이 정전 규모의 반쯤으로 비슷한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다. 영녕전은 세종 때(1421년) 종묘에 모시던 태조의 4대 추존왕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그 왕비들의 신주를 옮겨 모시기 위해 세워진 별묘이다. 왕의 신주 16위, 왕비의 신주 18위 총 34위가 모셔져 있다.

 

종묘제례는 왕이 친히 행하는 가장 격식이 높고 큰 제사로서 정전에서는 일 년에 다섯 번, 영녕전에서는 봄가을 두 번 봉행하였다. 종묘제례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56호 지정되어 있으며, 종묘제례악과 함께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는 일 년에 한 번 5월 첫째 일요일에 경복궁에서 시작되는 왕의 행차행렬과 아울러 정전에서 전주 이씨 종친회의 주관으로 제례를 올리고 있다.

 

제례에는 세종대왕께서 작곡한 제례악이 연주되고 팔일무라는 무용이 곁들여져 종합적인 제사예술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종묘는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등재기준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죽은 자들을 위한 혼령의 세계를 조영한 건축답게 건물의 배치, 공간구성, 건축 형식과 재료에서 절제, 단아함, 신성함, 엄숙함, 영속성을 느낄 수 있다. 건축물과 함께 제사, 음악, 무용, 음식 등 무형유산이 함께 보존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정기적으로 제례가 행해진다는 점에서 종묘의 문화유산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종묘와 종묘제례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유례가 없는 유일한 문화유산이다. 왕도를 옮기면서 바로 건축을 하고 정기적인 제례를 올리기 시작한지 600년의 시간을 끊임없이 이어왔다. 외국 여행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것, 저런 것이 없느냐고 묻는다. 이제부터는 '왜 외국에는 어느 나라에도 종묘 같은 게 없느냐'고 물어야 할 차례이다.

 

세계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한국인들이 무심히 지나치던 종묘는 참으로 독특한 한국적인 문화의 총화라고 여겼다. 임금의 권위와 영화를 상징하는 곳도 아니고 오직 조상에 대한 숭모와 효정신을 드높이는 제례의 장소로서 세계에 드러낼 만한 한국정신문화의 표상이라고 여겼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종묘가 가진 의미를 잘 살리고 이를 후세에 온전히 계승해 나가야 한다. 자신을 가볍게 여기면 남들도 나를 무겁게 대해 주지 않는다. 종묘에 들어갈 때는 왕의 길로 걸었고, 나올 때는 세자의 길로 걸어서 나왔다. 유월의 녹음이 길 위에 배어 있었다.

 

종묘를 나와 청진동을 향했다. 재개발로 자리를 옮긴 오랜 단골집 '청일집'을 찾았다. 막걸리에 녹두빈대떡을 돼지기름에 부쳐내는 선술집이다. 지금도 빈대떡 위에 어리굴젓을 올려서 먹는 집이다. 60년대 말부터 다녔으니 50년이 다 되어온다. 아직도 나를 알아보는 주인이 있어 훈훈한 곳이다. 컬컬한 막걸리 잔 위에 흘러간 세월들이 떠 있었다.

 

 

한힘 심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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