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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수업] 25.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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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작성일17-04-19 17:00 조회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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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199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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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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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국보 제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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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국보 제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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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괘릉의 서역(중앙아시아·서부 아시아·인도를 이름)인 무인석상

 

 44년 전 낙엽 지는 가을!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을 간다고 서울역에 모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라 7~8시간 덜컹 덜컹 되며 도착한 곳이 경주역이었다. 경주는 처음이었다. 이곳에서 나흘(4일) 동안 머물 예정이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숙소가 바로 불국사가 있는 아랫마을(사하촌)에 있었다. 나흘 동안 불국사를 실컷 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침 일찍 아무도 없을 때 무게를 잡고 연화교, 칠보교, 백운교, 청운교에서 사진을 찍었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신라는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중 가장 먼저 나라를 세웠지만(기원전 57),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가장 늦었다. 그러나 불교문화를 가장 발전시킨 나라는 신라다. 신라는 고구려를 통해 불교가 들어와(5세기 중엽 눌지왕 때) 민간에 전해지다가 법흥왕 때(6세기)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널리 믿게 하였다.

 

  사람의 지혜가 발달하면서 왕을 더는 신으로 보지 않았다. 이제 왕은 새로운 권위가 필요 하였고, 그 권위를 보장해 준 것이 왕은 곧 부처(진리를 모두 깨친 사람)라는 믿음이었다. 또한, 모든 인간의 불평등을 죄를 많이 지어 생긴 것으로 정당화하여 귀족 사회를 유지하는 데 이용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이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 원인이 되었다. 특히 법흥왕(514~540)에서 진덕 여왕(647~654)에 이르기까지 왕의 이름을 불교식으로 붙였는데, 이것은 왕실을 석가모니 집안이 다시 태어난 것으로 여겨 ‘왕이 곧 부처다’라는 사상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불국사 고금 창기'라는 기록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 15년(528)에 법흥왕의 모친이자 지증왕의 부인인 영제부인이 새 사찰을 짓고 싶은 소원을 해 불국사를 처음 지었다. 이후 574년에 진흥왕의 모친인 지소 태후가 크게 새로 세웠으며, 이때 아미타여래 상과 비로자나불을 조성해 봉안했다. 문무왕 10년(670년)에는 무설전을 건설해 화엄경을 강의하고 경덕왕 10년(751)에 그 유명한 김대성이 크게 중수하면서 청운교, 백운교, 석가탑, 다보탑 등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이전 사찰과는 달리 개인이 짓되 국가가 아닌 가족적인 기원을 동기로 해서 지은 절이라는 건축 동기가 우선 두드러진다. 경주 시내가 아닌 교외 토함산 기슭에 짓되 석축을 쌓고 경사지를 이용해 지었으며 그 석축이 건물과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 내는 경관이 빼어난 절로 유명하다.

 

  불국사는 우선 대웅전(석가모니 불상이 있는 건물)과 쌍탑(석가탑, 다보탑)이 있는 중심 영역 바로 옆에 극락전을 위한 또 하나의 회랑(복도)으로 둘러싸인 영역이 붙어 있다. 뿐만 아니라 북쪽으로도 비로전과 관음전을 위한 두 개의 영역이 언덕 위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건물 배치는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서 획기적인 변화이지만 다양한 교파에서 절대적으로 믿는 불상이 한곳에 모셔져 있다는 것으로도 특이하다. 즉 정토교의 아미타불, 화엄종의 비로자나불 그리고 민간 신앙으로서 유행했던 관세음보살이 중심 영역 주변에 모여 있는 셈이다. 이러한 경향이 후세로 가면서 보편화 되는 것으로 보아 불국사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완전히 다른 모양의 동 ․ 서 쌍탑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묵직한 남성미를 상징하는 듯 서쪽의 석가탑은 보편적인 신라 석탑의 형식이다. 1966년 도굴범에 의해 훼손된 석탑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한 다수의 사리장엄(국보 제126호)이 발견되었다. 또한 석가탑 보수 공사 중 아랍산 유향(노랗고 투명한 덩어리로, 약재ㆍ방부제ㆍ접착제 따위로 사용한다)이 발굴되었는데 이것은 아랍 상인들이 인도와 중국을 지나 마침내 아시아의 끝자락 신라에까지 들어왔음을 보여 준다. 그 근거로, 신라 38대 원성왕(785~798)의 능묘로 알려진 괘릉이 있다. 이 능에는 이색적인 무인석상이 서 있다. 이 무인석상은 분명 서역사람을 조각한 것이다. 이 무인석상이야말로 신라와 서역 간에 있었던 인적 교류에 대한 증언임에 틀림없다. 우아하고 맵시 있는 여성미를 나타내는 듯 동쪽의 다보탑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아울러 다보탑의 조형적인 창의성이 크게 돋보인다. 불국사는 신라인들의 사찰 건축과 탑의 조형에 관한 주관적인 해석과 창작의 자유로움이 맘껏 발휘된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불국사는 불국토(부처님이 계시는 나라)의 이상을 조화와 균형 감각으로 표현한 사원(절)이다. 정문 돌계단인 청운교와 백운교는 직선과 곡선을 조화시켰으며, 축대는 자연의 선에 인공적으로 맞추어 자연과 인공을 연결시키고 있다. 복잡하고 단순한 좌우 누각(사방이 탁 트이게 높이 지은 다락집. 범영루, 좌경루)의 비대칭은 간소하고 날씬한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복잡하고 화려한 다보탑과 어울려 세련된 균형감을 살리고 있다. 

 

  지남철을 예로 든다면 북(N극)극에 북(N극)극을 대면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는가? 반대로 남(S극)극에 남(S극)극을 대면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는가? 서로 밀어 낼 것이다. 그러나 북(N극)극에 남(S극)극을 대면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는가? 딱 달라붙을 것이다. 전기도 +선과 –선이 만나야 전등이 켜진다. 농사도 적당한 햇빛과 물이 있어야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음(-)과 양(+)을 어울리게 하기 위한 신라인들의 신비스러울 정도의 조화, 배려에 대한 감성은 놀라울 정도다. 오늘날 강조되고 있는 어울림, 베풂, 봉사, 효도 등 이 모두가 조화와 배려에서 출발한다. 죽을 때 자기가 갖고 있었던 모든 것을 갖고 죽는 가?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그럴 바에는 죽기 전에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주고 가볍게 떠나자. 발걸음도 가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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