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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쉽게 풀어쓰는 한국사 수업] 27. 신라의 황룡사 9층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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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창섭 작성일17-05-03 12:32 조회1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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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복원 상상도 - 6세기 진흥왕 때에 세워진 황룡사(553 창건~646 완공)는 나중에 건축된 9층 목탑(643 창건~645 완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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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터 - 담장내 면적이 동서 288m, 남북 281m, 총면적 2만여 평으로 동양에서는 최대의 사찰이며, 당초 늪지를 매립하여 대지를 마련하였음이 밝혀졌다. 

 


“서라벌에 절들이 별처럼 펼쳐져 있었고 탑들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다.”  <삼국유사>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521년) 불교를 수용했다. 그러나 불교는 신라에서 꽃을 피워 신라에서 결실을 맺었다. 17만여호(집)가 살았다는 서라벌(경주)에 ‘별처럼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던 절과 탑을 상상해보라. 특히 월성 동북쪽의 황룡사 9층 목탑은 서라벌의 랜드마크였을 것이다. 탑 높이가 자그마치 80m(30층 정도의 아파트)나 됐다. 금칠을 입힌 황룡사 목탑의 위엄이 얼마나 대단하였을까?

  “서라벌 시민들은 아마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우뚝 솟은 목탑을 바라보며 나라의 안녕과 개인의 화복을 빌었겠지요.”(조유전 선생) 황룡사 목탑을 조성할 무렵 신라는 누란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642년 대야성 등 40여개 성이 백제군에 함락됐다. 선덕여왕(643년)때 자장이 당나라에서 유학을 하고 있을 때 신인(神人)이 나타나 “황룡사 호법룡은 나의 장자로 범왕의 명을 받아 그 절을 보호하고 있으니, 본국에 돌아가 그 절에 9층탑을 이룩하면 이웃 나라가 항복하고 ‘구한’(1층은 일본, 2층은 중화, 3층은 오월, 4층은 탁라, 5층은 응유, 6층은 말갈, 7층은 거란, 8층은 여적, 9층은 예맥을 의미한다.)”이 와서 조공하며 왕업이 길이 태평할 것이요, 탑을 세운 뒤에 팔관회를 베풀고 죄인을 구하면 외적이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 서울 인근 남쪽 언덕에 절 하나를 지어 내 복을 빌어준다면, 나 또한 그 은덕을 보답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한다. 이에 유학에서 돌아온 자장은 선덕여왕에게 건의하여 9층 목탑을 세웠다. 

  그러면 선덕여왕은 이 거대한 황룡사 9층탑을 왜 세웠을까?

  첫째, 다른 나라로 부터 나라의 안녕과 왕실의 번영, 백성의 평안을 위한 애국적 마음에서, 신라 백성들을 단결시키고, 국력을 과시(신라 국왕의 권위)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신라의 불교는 호국불교, 즉 나라를 지키는 불교다. 이에 신라 사람들이 황룡사 9층탑을 세운 것은 고려의 팔만대장경과 마찬 가지로 부처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황룡사 9층탑은 각각의 층이 당시 동북아의 아홉 나라를 의미하고 있다. 9층 목탑은 부처님의 힘을 빌려 당시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침략을 받지 않게 해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번에는 기록에 나와 있는 자료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기록 : 삼국사기, 신라본기 5, 선덕왕 14年 3月

  『3월에 황룡사 탑을 창조하니 이는 자장의 청을 따른 것이다.』

  문수보살은 불교의 이치를 전해 주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너의 나라 왕족은 바로 천축의 찰제리종왕[인도의 왕족]으로 이미 불법을 깨닫고 계시를 받은 자이다. 그런 특별한 인연이 있으므로 다른 오랑캐 족속과는 다르다. 그러나 산천이 험준해서 사람들의 성질이 조급하고 잘못된 사도(올바르지 않은 길)들을 많이 믿는다. 그 때문에 하늘이 이따금 재앙을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 안에 고명한 중들이 있기에 임금과 신하들이 편안하고 백성들이 화평한 것이다."

  말을 마친 문수보살은 곧바로 사라졌다. 자장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물러나왔다. 또 한 번은 자장이 중국의 태화자라는 연못가를 지날 때였다. 어디에선가 한 신령스러운 사람이 나타나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곳까지 왔는가?" "불도를 깨치기 위해 왔습니다."대답을 들은 그 사람은 합장하고 절하며 다시 물었다. "그대의 나라에는 어떤 어려운 점이 있소?" "우리나라는 북으로는 말갈, 남으로는 왜국과 인접해 있으며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가 번갈아 침입하니 이런 이웃 나라들의 횡포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그대의 나라는 여왕을 모시고 있소. 여자가 임금이니 덕은 있으나 위엄은 없으므로 이웃 나라들이 넘겨보는 것이오. 그대는 하루빨리 고국으로 돌아가 나라의 힘이 되도록 하시오." "고국에 돌아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힘이 되리니까?"   "황룡사의 호법룡[불교를 보호하는 용]은 바로 나의 맏아들인데 신의 명령을 받고 그 절을 호위하고 있는 것이오. 지금 본국으로 돌아가면 절 안에 9층탑을 세우도록 하오. 그리하면 이웃 나라들이 모두 항복하고 동방의 아홉 나라가 조공해 올 것이며 나라가 길이 평안하리라. 탑을 세운 뒤에 팔관회[불교의 8계명을 받드는 행사]를 베풀고 죄인들을 석방하면 외적들이 감히 해치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경기 지방 남쪽 해안에 자그마한 절을 짓고 내 복을 빌어 준다면 나 또한 그 은덕을 갚으리다." 말을 마친 신령은 자장에게 옥을 바치고는 이내 사라져 버렸다.”  자장은 선덕여왕 즉위 12년 되던 해, 당 황제가 하사한 불경과 불상, 가사 등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자장은 황룡사 9층탑 건립을 왕에게 건의했다. 선덕여왕은 대신들과 이 일을 의논했다. 모두들 탑을 세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신라에 있는 장인들만 가지고는 어려우니 기술이 뛰어난 백제에서 장인을 초빙해 오자고 의견을 모았다. 선덕여왕은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서 사자를 백제로 보내 금은보화를 주고 솜씨 좋은 장인을 데려오도록 했다. 백제에서는 그 청을 받아들여 아비지라는 장인을 신라로 보냈다. 아비지는 명을 받고 와서 공사를 시작했다. 이간 용춘이 2백 명의 보조 장인을 거느리고 아비지의 지시에 따라 공사를 진행했다.

  드디어 첫 번째 절 기둥을 세우기로 한 날, 아비지는 고국인 백제가 멸망하는 꿈을 꾸었다. 꿈이 너무나 생생한 것이 아무래도 자기가 맡은 공사가 신라에는 이롭되 백제에는 좋지 못한 일인 것만 같았다. 이런 의심이 생기고 보니 공사를 맡아 할 마음도 순식간에 사라져서 아비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감독관 용춘을 찾아갔다. 아비지는 절 기둥을 세울 준비로 정신이 없는 용춘에게 말했다.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한 것이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용춘은 갑작스러운 아비지의 말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로 그때였다. 돌연 땅이 진동하고 사방이 캄캄해지더니 황룡사 금당 문이 열리며 한 노승이 기골이 장대한 장사 하나를 거느리고 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노승과 장사는 절 기둥을 세우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비지는 이 광경을 보고 부처님의 뜻을 깨달았다. 마음을 바꾼 그는 다시 전처럼 열심히 공사에 매달려 마침내 거대한 9층탑을 완성시켰다. 9층탑을 세운 뒤로 천지가 태평해지고 삼국이 하나로 통일(676년)되었으니 탑의 영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대한 목탑이 신라인들의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는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황룡사도, 9층 목탑도, 절 안에 모셨던 금동장육존상도 1238년 몽골 침입으로 불에 타 절터와 탑터만 남아 있다. 

 

심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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