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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 셰프 오세득, 셰득이라 불러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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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0-17 06:47 조회1,9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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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 오세득, 셰득이라 불러주오

누구는 ‘오재벌’이라 하고 누구는 ‘허세득’이라고도 하는 데다, 요즘은 또 핫해지기까지 해서 어깨에 힘 좀 들어갔겠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직접 만나 본 그는 오히려 소탈하고 매력적인 요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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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이탈리아 여행 중이었다. 간단한 통화를 마치고, 자세한 인터뷰 관련 내용을 카카오톡에 남겼지만 그는 오랫동안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야 그를 만났다.

“SBS 플러스에서 하는 ‘셰프끼리’ 촬영차 떠난 여행이었는데,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면서 제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거예요. 그날 배용준씨가 결혼 발표를 했는데 그보다도 순위가 높아 ‘오세득이 누구냐’고 난리가 났던 것 같아요(웃음). 그러고 나니까 문자 메시지가 정말 많이 왔어요.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을 열어서 보여주기까지 했다. 여전히 확인하지 않은 카카오톡 메시지가 1000여 건이 넘었다. 프렌치 레스토랑 ‘줄라이’의 오너 셰프인 오세득은 요즘 대세 셰프들 중에서도 특히 핫하다. ‘셰프끼리’ ‘마이 리틀 텔레비전’ ‘올리브쇼’ 등 고정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만도 여러 개.

“셰프들이 주방에 있지 않고 자꾸 TV에 나온다고 안 좋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데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요리사의 입지가 좋아진 것 같아 뿌듯해요. 예전에는 오히려 하대 받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뛰어난 요리 실력에 방송 감까지 좋은 셰프들이 등장하면서, 셰프가 동경의 대상이 되고 선망하는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때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이던 ‘실장님’에게 환상을 가졌던 것처럼, 요즘은 셰프가 그런 존재가 됐다.

“저는 나중에 제 아이가 요리사가 되겠다고 하면 적극 찬성할 거예요. 왜냐하면 실력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에요. 오로지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거든요. 할 수만 있다면 무한대의 창작이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요.”

셰프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 ‘요리는 창의력’이라는 말에 절로 공감이 간다.

“요리는 창의이고, 놀이죠. 그런데 사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음식은 없어요. 음식의 역사가 엄청나게 길 텐데, 이미 모든 음식이 존재한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모든 새롭다고 하는 음식은 기존의 어떤 것을 카피한 것인데, 이렇게 봤을 때 어떻게 카피하느냐가 바로 요리에 있어서 창의가 되는 거죠. 제가 짜장 라면 맛있게 끓이는 방법 하나 알려드릴까요? 건더기 스프는 불려 쓰고, 대파, 양파, 양배추를 썰어 넣어요. 그다음에 냉동 만두 두 개를 꺼내다가 속을 부셔서 넣어요. 생각만 해도 맛있겠죠? 이래서 요리는 창의이고, 놀이라는 거예요.”

그는 요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달랐다. 고교 시절 첫사랑 때문에 요리사가 되었다는데, 만약 요리사가 아니었으면 뭐가 되었을까 싶다.

“학교 다닐 때는 돈이 없잖아요. 문제집 산다고 거짓말해서 받은 돈으로 먹을 거 사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래서 그때 여자 친구한테 했던 말이 ‘나중에 훌륭한 요리사가 돼서 맛있는 거 많이 해줄게”였어요. 그때 그런 계기가 없었고, 그래서 요리사가 안 됐다면 아마 두 가지 중에 하나가 됐을 거예요. 농부 아니면 여행 작가. 특용 작물 재배를 하고 있거나, 오지 탐험을 다녔을 것 같아요.”

특용 작물을 재배하는 농부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그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라는 식재료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다. 이는 전국 방방곡곡을 많이 돌아다니면서 익힌 것이다. 또 제주도 농장에서는 녹차도 재배하고 있다.

“제 소유는 아니고, 저는 농장 조합원 중의 한 명이에요. 약을 뿌리지 않고 산양이 잡초를 뜯고 닭이 벌레를 잡아먹도록 방목하는 유기 생태 농업인데, 몇 년 전 제주도에 갔다가 현지 농민들과 인연이 닿아 함께하게 됐어요.”

농장으로부터 좋은 재료를 가져다 쓰고, 또 다른 채널을 만들어 농민들이 농작물을 헐값에 넘긴다거나 밭을 갈아엎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그의 장기적인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노인 사업과 교도소 교화 교육 등 그는 사회사업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언젠가 레스토랑으로 편지가 왔어요. 교도소 재소자인데 사회에 나가서 할 게 없어 걱정이라는 내용이었어요.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요. 교도소에 들어가서 법적인 책임을 다 하고 사회로 돌아왔는데, 나와 보니 할 게 없어요. 그러면 사회적 재수감밖에 더 되겠습니까. 소년원 아이들의 경우,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사회적 재수감자로 살기에는 살아갈 날이 너무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고 싶어요. 요리하는 데는 국영수가 필요하지 않거든요. 자기가 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이런 뜻을 전하려고 교도소에 전화를 했더니 제가 누군지를 묻더라고요. 그때 ‘나를 설명하려면 이름을 알릴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 밖에도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반찬공장 만들기’ 등 그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듯했다. 그중에는 후배 양성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고려직업전문학교에서 호텔조리학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자기를 먼저 만들어라, 기회가 너를 선택할 것이다.’ 그의 평소 신조이기도 하다.



여성중앙
기획=조영재 사진=이동현(ca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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