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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 [다니엘 한의원의 체질 칼럼] 꿈에 귀신이 목을 조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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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표기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03-01 16:03 조회1,6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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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잠자는 동안 외부에서 기인하는 정신적, 신체적 자극 새롭게 해석하는 것 

     

사람은 그 기력 여부나 스트레스의 많고 적음과는 별도로 어느 정도는 꿈을 꾼다. 아침에 일어나서 꿈이 생생한 것 같고 기억이 남아 있는 것 같다가도 대부분은 서서이 뇌리에서 사라져 버리고, 아무리 기억을 하려고 해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혹은 내용이 너무 허무맹랑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 나타나거나 겪지 않을 허무맹랑한 것들이 나타나거나 무의미하고 지리멸렬하게 느끼지고 혹은 불쾌하거나 기괴한 것들이 나타나서 ‘개꿈’이라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어떤 꿈도 ‘개꿈’이란 것은 없다는 것이 꿈을 연구하는 이들의 관점이다. 정말 아무리 현실에 부합하지 않아도 사람의 꿈에는 분명 의미가 있는 듯하다.

 

꿈에 대해서 필자는 아마도 평생동안 기억할 만한 환자가 있다. 어느 여름, SFU 에서 공부하는 어떤 한국 여학생이 거의 매일 밤마다 꿈에서 귀신이 찾아와 괴롭히는 악몽으로 시달린다면서 필자를 방문했다. 아담하면서 예뻤던 스물을 갓 지난 유학생이 핏기없는 얼굴로 심각히 하소연한다. “꿈에 귀신이 나타나 밤새도록 괴롭혀요…” 꿈에 나타난 귀신의 형상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는 말의 내용이 하도 생생하여 듣는 도중 필자도 소름이 돋았는데, 그 귀신이 자신의 목을 조르면서 악마처럼 웃을 때 그 당사자의 공포와 절망감은 어땠을까.

체질은 목음인. 목음인은 태음인 중의 음인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심하고 예민하고 소극적이면 소음인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사실, 가장 세심하고 예민하고 몸이 차면서 불면으로 고생하기 쉬운 체질이 목음인이다. 목음인 학생이 한국을 떠나 홀로 타지에서 공부하면서 과도한 공부의 양과 불투명한 장래에 대한 걱정 등으로 기력이 쇠하고 心氣가 허한 것에서 꿈이 비롯된 것으로 보고 몇차례 침을 놓고 체질에 맞는 보약을 처방하였다. 그리고 보름 정도 지나면서 스물 초반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회복한 그 여학생은 활짝 웃으면서 더 이상 귀신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까만 도포를 입은 남자 귀신이 목을 조르면서 “죽여 버리겠다!”는 꿈은, 필자는 꿈 (해석)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분명 현실의 그 여학생의 마음과 연계가 있음이 틀림없다. 그 여린 여학생의 내면 깊은 잠재의식 가운데는 혹시라도 공부로 인해 죽을 (죽고싶을) 만큼 고통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거기에 ‘까만색’의 도포, ‘남자 귀신’ 그리고 ‘목’은 각각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세상에 개꿈은 없다. 꿈은 잠자는 동안 외부에서 침입 (기인)하는 정신적, 신체적 자극을 대규모로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꿈은 가깝게는 바로 전날의 경험과 연결된다. 지난 주 어느 날, 환자 한사람을 치료하면서 그 우람한 체격이 눈에 확 들어 온 적이 있다. 같은 날 어떤 아기를 보면서 아기에 대한 선망스런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날밤 꿈에 겨우 석달 정도 되었을까 하는 어떤 (예쁜) 아이가, 거의 열 살을 넘은 아이만큼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거친 말을 하고 힘을 휘두르는 것을 보면서, 꿈에서 “너 그렇게 빨리 크면 안된다며 그 아이의 활동을 저지한 적이 있다.” 다음날 도무지 개연성이 없는 꿈을 두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면서 아기와 그 우람한 체격의 환자가 매치 (연계)된 것이 아닌가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아이에 대한 사랑스런 마음이 있었음이 틀림없지만, 아마도… 그 환자의 우람한 체격 대해서는 선망스런 마음이 없었기에 그러한 꿈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말하고 바라고 행한 것을 꿈꾼다. 꿈의 내용은 개개의 인격, 연령, 성별, 신분, 교양의 정도, 끊임없는 생활 방식, 그 때까지의 생활 중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경험에 따라 정해진다. 또한 마음 속에 잠든 모든 감성적 욕망과 혐오는 어떤 까닭으로 자극되면 여러 표상으로 하나의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이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기에 꿈이 아무리 기묘해도 결코 현실세계와 동떨어질 수 없다. 꿈의 재료는 체험에서 나온 것이고 꿈 속에서 재생, 기억 그리고 기가막히게 각색된다.

 

꿈은 윤리적 요구에 관해서 아는 바가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잠 자는 동안에는 보다 도덕적이지 못하고 동정을 느끼지 않고 극악의 범죄, 도둑, 살인, 타살을 완전히 무관심하게 그리고 그 행위를 후회없이 행하므로 꿈 속에서는 양심은 침묵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성적 관계는 꿈 속에서 극히 방종하기도 한다. 꿈 꾸는 사람은 수치를 모르고 모든 윤리적인 감정과 판단을 잃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간의 도덕적 본능이 꿈 속에서도 유지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융) 누구나 꿈 속에서는 완전히 자기의 성격에 따라 행동하고 말한다. 도덕심이 굳은 사람은 꿈 속에서도 도덕적이다. 그는 유혹에 저항하고 증오, 시기, 분노, 악덕에 대해 자기를 닫는다. 꿈 속에서는 진실이 있다. 진실한 사람은 꿈 속에서 수치스러운 일을 결코 하지 않는다. 깨었을 때 행한 것을 꿈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최상의 인간.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잠시 너의 꿈을 들려주어라, 그러면 나는 너의 내심이 어떻다는 것을 너에게 말해 줄 터이다.”생활이 순수하면 꿈도 순수하고 불순하면 꿈도 불순하다.

자, 꿈에 대해서 조금 더 나아가 본다. 꿈은 사람의 소망, 욕망, 충동이 (역사적 소재의 극미량을) 극적 형식으로 가공된다. 이것이 꿈이다. 현실의 소망과 충동이 가공되어 나타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꿈을 해석할 때는 꿈의 상징을 알아야 한다. 더불어 꿈을 꾼 사람의 인품과 그의 생활 환경 그리고 꿈을 생기게 한 계기를 알아야 한다. 거기에 꿈의 의미가 있고 해석이 있다.

 

지난 주 아이를 갖기 원하는 환자로부터 꿈 이야기를 들었는데 필자 편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 두개의 가방을 들고 어디를 가는데, 가방 지퍼가 열려서 가방안의 모든 옷가지가 밖으로 빠져나갈 것 같아 몹시 애를 태웠다는 것이다. 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방과 가방 안의 내용물이 안에 있었느냐 밖으로 빠져나갔느냐에 있다. “다행히 안에 있었습니다.” 그 때 필자는 참 다행이라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프로이드는 꿈을 “하나의 所望 充足(소망충족)이다.”라고 정의한다. 필자는 그의 꿈의 정의나 해석이 정확한 지의 여부를 떠나 그의 꿈의 정의에 적지 않는 감명을 받는다. 꿈은 무의식 중의 마음의 작용이다. 그 내용이 도무지 각 사람의 현실에 부합되지도 개연성도 없을 지라도 실타래를 풀 듯 하나 하나 풀어보면 왜 그런 꿈을 꾸게 되는지 논리정연한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전에 비해 꿈이 조금씩 많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프로이드나 다른 이의 이론에 관한 책을 읽고 나름대로 조금씩 꿈의 해석에 관심을 갖게 되고 꿈을 풀어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강렬해 진다. 그래서 간혹 꿈이 많다는 환자가 있으면 시간을 내어 꿈의 내용을 물어 본다. 그리고 혼자서 조심스럽게 풀어보고자 한다. 또한 별 싱겁고 쓸데없는 것  같고 웃기지도 않는 꿈을 꾼 날은 (필자)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삶을 한 번 더 둘러보게 된다.

사람은 신묘막측한 존재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요, 우주의 모든 정기의 집합체다. 그 중에 사람의 마음은 구만리 첩첩산중과도 같아서 아무리 찾아 들어가려해도 다 찾아들어 갈 수 없는 迷路(미로)다. 그 곳에 인간의 生老病死 (생로병사)와 五慾七情(오욕칠정)의 비밀이 들어 있다. 사람이 어떻게 그 마음의 세계를 이해하고, 과거의 상처나 패배감 혹은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현재의 한 싯점에 묶어 두어 그 마음에 작용하는 오욕칠정으로 부터 자유케 할 수 있단 말인가? 약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정신 생리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은 단순히 뇌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에 따른 작용에 불과하다 하여 뇌의 화학물질의 공급과 차단으로 마음을 잡고 치료하려 하지만 이는 “언 발에 오줌 눟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프로이드나 또 몇몇은 사람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기 위해 꿈을 따라가고 해석하려고 했으며, 그리고 여러 경우에서 성공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치료했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꿈은 희망이라 한다. 꿈이 있다는 것은 삶의 긍정적인 태도라고 한다. 나이 스물에 꿈을 꾸었고 지금도 꿈을 꾼다. 꿈은그 실현성 여부를 떠나 마음에 어떤 활력이 되고 인생의 방향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의식 (수면) 중의 꿈에도 삶의 어떤 활력과 방향 더 나아가 현실생활에서의 상처나 한계 그리고 불만족을 치유하고 조정하는 어떤 힘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필자는, 어떤 때는 왜 이리 꿈이 많지 하면서도 꿈꾸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소중히 되새겨 본다. 그리고 그런 마음과 자세가 현실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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