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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날고 싶어 죽겠다' 중력 거역하던 '암벽타기 신'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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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edbear300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7-04 13:19 조회1,3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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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거역하며 자연의 가장 높은 곳을 올랐던 ‘암벽타기의 신’ 딘 포터 결국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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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다(I want to fly).”

9년 전 딘 포터가 암벽등산 전문지 ‘록 & 아이스’ 잡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34세에 이미 암벽타기에서 같은 세대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었다. 진심이담긴 말이었다.

포터는 그 뒤 오랫동안 산을 떡 주무르듯 다루는 기술을 갈고닦아 왔다. 남미 파타고니아의 세로토레산과 피츠로이산,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엘 캐피탄과 하프 돔, 스위스의 아이거, 미국 유타주의 델리키트 아치 등을 누비고 다녔다. 2개 이상의 사지를 이용해 기어올라야 하는 단단한 표면이라면 포터보다 더 확실하고 빠르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신장 196㎝인 그는 체격뿐 아니라 능력·기량·체력 등 모든 면에서 다른 산악인들을 훨씬 능가했다. 진정한 암벽타기의 신이었다. 그는 선수가 아닌 예술가를 자처했다. 이 같은 솜씨, 자연을 캔버스 삼아 그가 펼치는 찰나의 예술행위는 정복이 아니라 교감을 지향했다. “자연의 베품에는 끝이 없다”고 그가 말했다.

핸드홀드(handholds, 암벽의 손잡이)와 풋홀드(footholds, 발 디딜 곳)를 찾아 다닌 지 10여 년. 포터는 새로운 교류수단을 찾아내려 몸이 달아 있었다. “날고 싶다.”

포터는 베이스(BASE, building, antenna, span, earth) 점핑에 뛰어들었다(건물·안테나·타워·절벽 위에서 점프한다는 의미). 곧 자신만의 방식을 개발해 ‘프리베이싱(freeBASEing)’이라는 재치 있는 이름을 붙였다. 장비 없이 암벽을 타고 오른 뒤 허공으로 뛰어내리다가 낙하산을 펼치는 방법이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최고의 가능성으로 뒤집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다”고 포터가 언젠가 프리베이싱을 가리켜 말했다. “(죽으려고 나는 게 아니라) 날고 싶어 죽겠다”는 사고방식 말이다.

그는 윙수트 플라잉(wingsuiting)을 시작했다. 윙수트는 양팔 밑과 다리 사이에 천을 댄 날다람쥐 형태의 활강용 특수 낙하복이다. 2009년 8월 포터는 맨손으로 아이거에 오른 뒤 북벽에서 몸을 날렸다. 윙수트 비행 시간 세계 기록을 수립했다(2분 50초). 그 모습을 담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홈페이지 동영상에는 ‘날지 않으면 죽는다(Fly or Die)’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2년 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은 포터에 관한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날 수 있는 사나이(The Man Who Could Fly)’라는 제목을 달았다.

포터는 자기 일에 관한 한 이상주의자였다. 암벽타기의 기존 패러다임을 거부했다. 중력을 거부하려 무진 애썼다. 자신의 예술적 추구에 방해가 될 경우엔 법에도 저항했다. “기본적 자유의 문제”라고 그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말했다. “환경을 해치지 않고 자연 속을 이동하는 행위가 불법이 될 수 없다.”

“딘 포터는 하나의 자연 현상이었다”고 중견 암벽 타기 저술가 존 롱이 몇 주 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말했다. “그는 자연을 이루는 한 요소였다.”

지난 5월 16일 새벽 동이 트기 직전, 포터(43)는 태프트 포인트 절벽에서 불법적인 베이스 윙수트 점프를 시도했다. 요세미티 계곡 골밑(Valley floor, 곡저)으로부터 910m 높이의 봉우리다(베이스 점핑은 모든 국립공원에서 금지돼 있다). 포터는 친구 그레이엄 헌트와 함께 이웃 산등성이의 V자형 계곡을 통과한 뒤 낙하산을 펼칠 계획이었다. 포터는 지난 5년간 요세미티 내에서 비슷한 점프를 수십 차례 했지만 사고 한 번 없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관리소 마이크 고티어 대변인에 따르면 이 봉우리에서만 최소 20회 이상 점프했다.

“사고당할 뻔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포터가 지난해 여름 ‘록 & 아이스’ 잡지에 말했다. 하지만 사람이 만든 법은 언제까지든 거역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연의 법칙을 거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나도 극한 고속 다이빙을 많이 하지만 윙수트만큼은 사양한다”고 맥심 드종(55)이 말했다. “윙수트 플라잉에 뛰어든 등반가는 거의 모두 사망했다.”

드종은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주 칠리왁에서 활동하는 우주항공 엔지니어다. 비행의 원칙과 실기를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한다. 그가 세운 회사 ‘씬 레드 라인 에어로스페이스(Thin Red Line Aerospace)’는 기상천외한 우주항공 문제들을 밥 먹듯 해치운다. “차세대 화성과 금성 우주비행용 공기 팽창식 주거공간을 개발 중”이라고 그가 말했다. “항공우주국(NASA) 일이 우리 사업의 99%를 차지한다.”

드종은 지난해 NASA일에 못지 않게 엄청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비행자가 낙하산을 펼치지 않고도 지상에 착륙할 수 있는 윙수트를 개발하는 일이다. 포터는 그 비행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기업 스폰서의 후원으로 드종에게 협력을 요청해 지난해 상반기 동안 칠리왁에 들어 앉았다.

드종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그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포터 같은 낭만적 감정은 없었다. “신이 자네를 날게 할 생각이었다면 날개를 달아줬을 걸세.” 드종이 포터에게 충고를 던지곤 했다. “포터, 자네는 호모사피엔스야.”

포터가 워낙 신화적인 인물이었지만 드종도 상당히 인상적인 업적을 쌓았다. 드종은 경험 많은 등반가이자 열렬한 패러글라이딩 애호가다. 2년 반 전 하루 사이에 수직 거리 등반 비공식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를 뛰어넘는 7925m였다. 21시간 동안 시앰 산(Mount Cheam, 현지의 2103m 봉우리)을 4회 등정했다. 정상에 도달할 때마다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포터를 만나기 오래 전 그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고 드종은 돌이켰다. “1990년대 초 킹 투트(솔트레이크 시티 바로 남쪽에 있는 고난도의 경사면)에 이 젊은 친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눈대중을 하더니(이전에 지정된 코스가 없었다) 틈새에 얼음이 있는데도 장비 없이 타고 올랐다. 정신 나간 짓이다. 기사를 읽고는 혼자 생각했다. ‘3년 내에 저 세상 사람이 될 확률이 80%인 친구가 또 나왔군’하고.”

그러나 조심스런 협력으로 시작됐던 관계는 곧 우정으로 꽃을 피웠다. 높이에 열광하는 두 진짜 사나이(alpha males)는 형-동생 관계로 발전했다. “포터가 맘에 들었다. 집사람이 우리가 쏙 빼 닮았다고 하더라”고 아들 둘을 둔 드종이 돌이켰다. “‘당신에게 포터 같은 진짜 절친은 아마 처음일 거야’라고 아내가 말했다.”

포터는 뉴햄프셔대학에서 3학기를 마친 뒤 중퇴하고는 곧장 요세미티로 향했다. 그 10여년 전 드종은 고국 벨기에에서 메디컬 스쿨을 1년 다닌 뒤 그만두고 캐나다 서부행 편도 항공권을 구입했다. 판박이 같다 해도 두 사람에겐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그중 1명은 실용주의자였다. “포터는 비행에 관해 상당히 감성적이었다. 무슨 일에나 그랬다”고 드종이 말했다. “그는 자연과 그런 식의 교감을 원했다. 나 같은 엔지니어 관점에선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이었다. 사람은 바위 위에 내려앉고 죽은 사슴을 쪼아먹는 까마귀처럼 행동해선 안 된다. 하지만 포터는 그런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올해 윙수트 비행 중 25명 목숨 잃어

드종은 포터에게 패러글라이딩하는 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설계한 비행복을 입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윙수트는 패러글라이더 날개와는 다르다”고 드종이 말했다. “절벽 위에서 합판 1장을 달고 뛰어내리는 격이다.”

지난해 6월 그들은 윙수트를 입고 비행기를 타고 나가 시범 비행을 했다. 포터는 3660m 고도에서 뛰어내렸다. 드종에 따르면 “최대한 많은 거리를 하강한 뒤 감속(stall)했다.” 낙하산 줄을 잡아당겼다는 뜻이다. 포터는 새 윙수트를 착용하고 단 한 차례만 시험비행을 했다.

1904년 스코틀랜드 극작가 JM 배리는 재미있으면서도 마법적인 캐릭터 피터팬을 세상에 선보였다. 피터팬을 설명할 때 빠뜨려선 안 되는 3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날 수 있다. 둘째, 성장하지 않는다. 셋째, 가공 인물이다.

8년 뒤 프란츠 라이헬트라는 33세의 재단사가 에펠탑에서 뛰어내렸다. 자신이 디자인한 맞춤 윙수트를 착용한 채로. 인기 절정의 연극 ‘피터팬(Peter Pan; or the Boy Who Wouldn’t Grow Up)’이 런던에서 그때 상영 중이었다. ‘나는 재단사(Flying Tailor)’로 불린 라이헬트는 머리부터 땅에 떨어졌다. 근대 역사상 최초의 윙수트 사망자로 기록됐다.

베이스 점핑은 고정된 지점에서 뛰어내린 뒤 낙하산을 펼치는 극한 스포츠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아드레날린 샘솟는 자극을 좇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필수 스포츠가 됐다. 그러나 베이스 점핑이 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베이스 점프 윙수트 플라잉에 비하면 ‘입문용 약물(gateway drug, 알코올이나 마리화나 등)’에 불과하다. 베이스 점핑에선 자살하려는 사람처럼 곧장 아래로 뛰어내리다가 낙하산을 펼친다. 윙수트 플라잉에선 비스듬하게 하강한다. 시속 190여㎞의 속도로 하강하는 동안 수직 거리 30㎝ 당 수평 거리 60㎝를 이동한다. 비행하는 느낌에 거의 가깝다.

드웨인 웨스턴은 윙수트와 베이스 점핑을 즐기는 호주인이다. 2002년 베이스 점핑 세계 타이틀을 획득했다. 1년 뒤인 30세 때 콜로라도주 웨스턴에 있는 로얄 고지 다리로 뛰어내렸다. 1200회 넘게 베이스 점프를 했지만 사고 한 번 없었다. 하지만 한 번의 사고로 운명이 갈린다.

포터에게 예술적인 신조가 있었다면 ‘두려움을 향해 나아가라’였을 듯하다. 그는 소년 시절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죽는 꿈을 꿨다. 비교적 수월하게 산봉우리에 기어오른 뒤 뛰어내리는 솜씨는 그의 가장 큰 초인적인 특성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보다는 거의 매일 자신의 가장 큰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섰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포터는 결코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많이 점프했느냐보다 하지 않았느냐에 더 자부심을 느낀다”고 그가 지난해 여름 스포츠 매체 SI.com에 말했다. “때때로 걸어 내려간 것이 내 목숨을 구했다.”

“나는 윙수트 베이스 점핑이 안전하다고 여긴다.” 지난해 절친 션 리어리가 유타주의 자이언 국립공원에서 사망한 뒤 포터가 자신의 블로그에 썼다. “하지만 올 들어서만 25명이 윙수트 비행 중 목숨을 잃었다. 우리 시스템에 결함이 있는 게 틀림없다. 내 이해의 한계를 뛰어넘는 치명적인 비밀 말이다.”

지난 5월 16일 포터와 헌트는 요세미티 계곡의 높은 봉우리에서 뛰어내려 ‘돌아오지 않는 곳’으로 떠났다. 포터의 헬밋에 부착된 고프로(액션 카메라) 영상을 보면 헌트가 먼저 계곡의 측면에 부닥친 듯하다. 포터는 아마도 그를 피하기 위한 동작을 취한 듯 얼마 후 계곡 반대쪽의 바위와 충돌했다. 그들의 유해는 46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누구의 낙하산도 펼쳐지지 않았다. 딘 포터는 43세였다. 그에게는 자연사였다.

글=존 월터스 뉴스위크 기자
번역=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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