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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송해 선생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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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0-05 06:06 조회1,2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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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 12시 2분에 전화를 받았다.

일요일 아침 11시 20분에 송해 선생의 인터뷰가 갑자기 정해 졌다는 통보였다.

마침 쉬는 날이었다.
게다가 다른 일정을 계획하고 있던 터였다.
20여 일 전의 만남이 떠올랐기에 출근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장사익 선생과 그의 지인 이십 여명과 저녁 일곱 시 모임,
부랴부랴 마감을 하고 5분 늦게 도착했다.

그 자리에 예정에 없던 송해 선생이 있었다.
인사를 드리니 소주 한잔 따라주며 한마디 했다.
“이 자리에 제일 먼저 온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온 사람에게 소주 한 잔 드리죠.”
송해 선생 특유의 넉살과 푸근한 웃음 덕에 꼴찌로 참석한 민망함을 웃음으로 풀 수 있었다.

송 선생에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모임이었다.
그렇지만 이내 당신이 주도한 모임처럼 좌중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참석한 이들과 일일이 소주 한 잔씩 주고받으며 순간적인 재치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입력,
아흔을 앞두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두어 시간 남짓의 만남이었지만 언제고 꼭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휴일 출근을 했다.

11시 20분, 원로 연예인 상록회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나 혼자가 아니었다.
취재기자는 당연하고 방송 촬영팀 3명, 디지털 뉴스팀 1명이 더 있었다.
이 정도면 대규모 취재 팀이었다.

이윽고 송 선생이 당도했다.
취재팀 규모를 보고 적잖이 놀란 듯했다.
일전에 봤던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이내 그 표정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인터뷰를 고사했었다고 했다.
토요일 저녁 내내 설득을 당했다고 했다.
마지못해 약속하고 나온 참인데 대규모 취재팀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뜩찮았던 게다.

사무실로 들어서니 그리 넓지 않았다.
인터뷰 공간을 정하고 각자 카메라 위치를 정해 자리를 잡으니
맘껏 움직일 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동영상 카메라와 사진을 함께 작업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영상과 사진에 이용되는 조명부터 다르다.
더구나 사방에 동영상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으면 이동할 때마다 동영상 화면에 잡히게 마련이다.

이럴 땐 어쩔 수 없다. 눈치껏 서로 양보하며 각자의 일을 해야 한다.
더구나 송 선생이 마뜩찮아 하며 시작한 인터뷰니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인터뷰가 시작되니 송 선생의 표정이 달라졌다.
한마디 한마디가 청산유수다.

“죽은 나무가 와도 살아있는 나무가 되게 하고, 시든 꽃이 와도 싱싱한 꽃으로 만드는 게 사회자죠.”
‘전국노래자랑’을 여태껏 진행해 온 철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죽은 나무 같았던 취재팀들이 어느새 살아있는 나무가 되어 송 선생에게 빠져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떠난 아들과 북에 두고 온 어머님의 사연을 들려줬다.
주체할 수 없는 북받침, 억지로 참고 또 참는 듯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흘러 버렸다.
아버지로서의 눈물과 아들로서의 눈물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송 선생의 손수건이 눈에 들어왔다.
흥건했다.
거의 아흔 해 삶에도 주체할 수 없는 아픔의 흔적이었다.

인터뷰가 아니라 한 편의 영화를 보며 울고 웃은 듯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5분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최근에 출간된 송해 평전의 제목이 ‘나는 딴따라다’이다.
송 선생 스스로 ‘딴따라’라고 했으니 우리 시대 최고의 딴따라 표정을 보여 달라고 했다.

스스럼없이 웃었다.
대중을 웃기고 울려 온 딴따라 송해 선생의 웃음, 오히려 그 웃음이 더 아렸다.
테이블 위의 손수건은 여전히 흥건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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