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우아한 비행] 가족에 대하여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Vancouver
Temp Max: 7.98°C
Temp Min: 5.13°C


LIFE

생활 | [한나의 우아한 비행] 가족에 대하여

페이지 정보

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6-13 12:03 조회2,082회 댓글0건

본문

11.jpg

 

오랜만이었다. 마이애미, 뉴욕, 내쉬빌, 밴쿠버, 말레이시아에서 온 우리가 서울에 모였다. 내가 미국에 돌아가지 못한 이후로 처음이니 몇몇 사촌들과는 육년 만이었다.

 

은퇴 후 말레이시아에 의료선교를 떠나신 큰 아빠, 큰 엄마와는 더 오래된 듯 했다. 알래스카와 시애틀, 일본에 사는 다른 사촌들, 케냐로 선교를 떠난 작은 아빠는 아쉽게도 이번 모임에 함께 하지 못했다.

 

감사하게 부모님도 밴쿠버에서 먼 길을 오셨다. 그러고 보니 가족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각자의 다른 길에 주어진 삶을 순응하며 살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얼굴들을 그리워했고, 새로운 작은 얼굴들로 허전함을 달랬다. 함께하지 못한 세월이 얼굴에 묻어난다. 며칠의 만남이 짧았다.

 

캐나다에서도 그랬지만, 가족 없이 한국에서 다시 맞는 명절은 더 쓸쓸했다. 모두들 귀향 길에 올라 서울을 떠날 때, 홀로 남겨진 긴 연휴를 주체할 수 없었다. 때가 되면 챙겨야 하는 가족의 경조사에 지인들은 부담스럽다 했지만 은근히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와 기댈 언덕이었던 가족이 그리웠다. 지금 부모와 친척들이 함께 하니, 바로 여기가 집이 되었다. 내게도 가족이 이렇게나 많았다, 반가웠고 든든했다. 수년 만에 만난 우리는 서로가 눈앞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동안의 부재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절실하게 느꼈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만남이 있다. 하나는 하늘이 내린 주어진 만남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관계가 있다. 가족이 그럴 것이다.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이기에 운명적이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선택한 만남이 있다.

 

각 삶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 친구, 스승, 동료들이 있다. 하늘이 내린 주어진 만남들과 항상 함께하면 좋겠지만, 살다 보니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럴 수 없는 일이 더 많다. 그렇다면 같은 길을 가다 만난 길벗들이 가족만큼이나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가까이 사는 내 또래를 보면 유독 딸 생각이 나서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언젠가 누군가는 엄마에게 찾아와 제 엄마가 생각 난다며 엄마를 끌어안고 울었다고 했다. 나 역시 매일 뵈는 부모님 또래의 학교 어르신들에게 시선이 가는 것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 마음은 지금 함께 할 수 없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었다.  

 

수년 만에 함께 한 가족들을 통해 길 위에서 만난 벗들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라고 했다. 삶의 길 가운데 이뤄진 수많은 만남의 흔적이 한 사람의 무늬를 이룬다.

 

성경에서 다윗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굴로 도망간다. 은신처 혹 피난처란 뜻의 아둘람에는 환난 당하거나, 빚진 자들,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였다. 그들과 함께 다윗은 일어날수 있었다.

 

갈수록 분노와 화의 표출이 사나워지는 사회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것이다. 거대한 세상에서 친밀감을 이루고, 이성적인 세상에서 감성을 잃지 않는, 익명의 세상에서 각자의 고유한 이름을 불러주는 그런 피난처 같은 곳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깊고 진한 가족과의 만남은 기쁨이었다. 짧은 재회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그들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이었다. 지금 같은 자리에 있지는 못하지만 내가 걷고 있는 길에 대한 신뢰는 내게 격려가 되었다.

 

하지만 모두 떠나고 흩어져 각자의 일상에 돌아오니 여러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와 오늘을 함께 걸으며, 나의 지금을 잘 알고 있는 이들, 내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용납해주는 쉼이 되고 격려가 된 또 다른 가족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문득 그들의 존재가 고맙다.

 

두려웠던 한국의 삶에 새로운 결의 무늬를 이뤄준 사람들이다. 지금이 덜 외로운 이유가 그들에게 있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196건 5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