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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한나의 우아한 비행] 손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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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in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2-15 11:20 조회1,3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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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 통역사인 성범씨 부부를 따라 농인 바리스타 부부가 개업할 작은 카페를 방문했다. 일원동에 도착했을 때, 카페는 다음날 개업준비로 한창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성범씨는 자연스럽게 수어로 바리스타 부부와 대화한다. 수어를 모르는 나를 위해 성범씨는 입과 손으로 말하고, 수어를 말로 통역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려주었다. “우리가 캐나다에 갔을 때 함께 교회 다니던 분이에요.” 라며 나를 소개해주었을 때, 나는 수어로 ‘안녕하세요’ 정도는 배우고 갈 걸 하는 아쉬움이 뒤늦게 들었다. 괜히 또박또박 인사하며 더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멀리서 왔다며 그들은 나를 환대해주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정리해 자리를 잡았다. 

 

처음으로 농인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나는 눈이 반짝거렸다. 언제나 다른 언어의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의 만남은 설레는 일이니까. 손의 언어가 나비처럼 카페를 날아다닌다. 그 나비 손짓에 매료되었다. 나의 관심을 알아차린 성범씨는 몇 가지 상식들을 일러주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수화’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됐으나, 최근 ‘수화’를 한국 공식 언어로 제정하라는 내용의 ‘수어기본법’ 운동이 시작되면서 국립국어원과 한국농아인협회에서 ‘수화’대신 ‘수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청각 장애인이란 이름은 ‘장애’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농인’이라고 하면 듣지는 못해도 ‘수어’라는 언어를 사용하여 그들만의 문화를 가진 소수 집단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을 칭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는 ‘농인’, 그 반대되는 단어는 ‘청인’이 된다는 것이다.

 

바리스타 부부가 우리에게 선보일 커피를 만드는 동안 카페 ‘소곤소곤’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농인이 어떻게 카페를 운영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커피를 배우고 바리스타로 다른 카페에서 얼마간 일했던 부부는 어느 정도 소리를 인지할 수 있고, 구화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입술을 읽고 분위기를 통해 맥락을 추측해 손님에게 대응할 것이다. 청인을 상대로 장사하는데, 그들의 ‘다름’에 관해서 손님들이 미리 알 수 있도록 어떤 글귀라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제안했다. 혹 오해라도 생길까 우려했다. 그러나 농인이라는 것으로 동정 받지 않고 커피 맛 자체로 승부하겠다며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잘 들리지 않는 대신 손님을 눈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집중하겠다 했다.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은 농인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이고 장애는 국경선이라 했다. 

‘손으로 말하는 사람들 나라’에 처음 들어와 내내 수어를 통역해주는 성범씨를 보니 부모에게 영어를 통역하던 나의 모습이 교차 되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모들도 어느 면에서 농인의 모습이 아니었는가. 농인들 사이에 청인으로 태어난 코다 (Children Of Deaf Adults) 들이 갖는 정체성 혼란과 이중언어 자로서의 삶은 1.5세인 우리 모습이 어딘가 닮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간다. 때론 그 차이가 차별이 되어 가슴에 생채기로 남기도 하고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차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종적인 차별이 아니라 횡적인 다름’일 뿐이다. 결국 하나 같이 다른 조각이 맞닿으면 각각의 다른 무늬와 결의 어울림으로 한 장의 그림이 된다. 그 무늬에는 우열이 없다.

 

바리스타 부부의 다른 농인 지인들이 응원 차 카페를 찾았다. 그곳에선 유일하게 나만 수어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손으로 말하는 나라’ 사람들은 언어의 몸짓이 크고 얼굴의 표정이 다양하다. 뭐랄까 훨씬 생동감이 있다. 손으로 말하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나라 또한 입으로 말하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나라만큼이나 특별하고 아름답다. 돌아오는 길에 성범씨에게 눈치껏 배운 ‘감사합니다’ 라는 수어를 했다. 정성껏 내려준 여러 종류의 커피도, 소수민족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그들의 존재도 참 고마웠다. ”돈 많이 버세요. 응원할게요.” 배우고 싶은 외국어 한 개가 늘었다.

 

 김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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