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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전쟁 나면 재산 내놓고 최전방 섰던 귀족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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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2-20 14:24 조회1,6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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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조 저커버그 기부로 본 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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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그가 보유한 페이스북 주식의 99%를 살아생전 자선 사업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전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이는 현재 시가로 450억 달러(약 52조원)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미국 부호 중엔 마크 저커버그 외에도 앤드루 카네기,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고액 기부자가 많다. 기부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 부호들의 억대 기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의 상징으로 꼽힌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프랑스 등 유럽 사회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 지도층의 필수적인 덕목으로 인식된다. 언론과 각종 자료를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미를 되짚어봤다.

기원과 역사

초기 로마시대에서는 왕과 귀족의 기부·헌납 등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와 책무를 강조하는 전통이 강했다. 도서관과 공중목욕탕 등 공공시설 건설에 왕과 귀족이 사재를 털어 건설 비용을 부담하는 일이 많았다.

 귀족의 의무는 전쟁과 같은 국가적 위기 국면에서 더 강조됐다. 초기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이 벌어지면 자신의 재산을 내놓고 전장의 선봉에서 적군에 맞서 싸우는 것을 도덕적 책무로 여겼다. 제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전쟁에 참여한 수많은 귀족이 전사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로마의 최고 통치 기구인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15분의 1까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예가 한니발이 이끈 카르타고와 기원전 218년부터 16년 동안 벌인 제2차 포에니전쟁이다. 당시 16년 전쟁 동안 로마의 행정·군사 권한을 쥔 최고 지도자인 집정관의 전사자 수는 13명에 달했다. 예종석 한양대 교수는 저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초기 로마 귀족은 노예와 귀족의 차이를 사회적 책임 이행능력에서 찾았다…로마에서 국민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지 않는 사람은 집정관·호민관 등 권력자가 되기 쉽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유럽 귀족의 헌신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백년전쟁이 벌어진다.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프랑스 도시 ‘칼레’는 영국군의 포위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항복한다. 영국은 항복한 ‘칼레’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신 저항에 대한 책임을 물어 도시 대표 6명의 처형을 요구했다. 칼레 시민은 혼란에 빠졌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도시의 부호 중 한 명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가 처형당하기를 자처하고 나섰다. 시장·법률가 등 칼레의 귀족들도 여기에 동참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6명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감동해 그들의 목숨을 살려주고 칼레 시민의 안전을 보장했다.

 유럽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현대에까지 이어진다. 영국 왕실과 귀족의 헌신은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945년 3월 공주의 신분으로 영국 여자 국방군의 소위로 입대해 구호품 전담 부서에서 활약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 왕자는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진 포클랜드전쟁에 헬리콥터 조종사로 참전하기도 했다.

영국 왕실뿐 아니라 귀족도 1·2차 세계대전에서 헌신했다. 세계적인 명문 사립학교인 영국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엔 이런 영국 귀족의 희생을 엿볼 수 있는 상징물이 하나 있다. 이튼 칼리지엔 전통적으로 귀족과 부호 등 명문가 자제들이 입학했는데, 이 학교 교회 벽엔 1·2차 세계대전에서 숨진 이튼 출신 전사자 2000여 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미국 부호의 고액 기부

유럽 귀족의 희생정신은 미국에선 기업인·정치인 등 보다 넓은 의미의 사회 지도층이 갖춰야 할 도덕적 책무로 받아들여졌다. 마크 저커버그의 예처럼 부호들의 고액 기부가 활발하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년)는 미국 철강 산업을 독점할 기회를 버리고 1901년 모든 사업을 정리해 당시 4억8000만 달러를 자선사업 등 사회에 환원했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100억 달러(약 11조6000억원)가 넘는 거액이다. 미국 부호들의 기부 정신은 현대에 이르러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 등 신흥 부자에게로 이어졌다. 이들은 재산 대부분을 살아생전 기부할 것을 약속하며 활발한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미국 부호들의 고액 기부는 미국 사회 전반에 기부 문화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미국 내 자선 활동 보고서를 내는 시민단체 ‘Giving USA’가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국민이 기부한 액수는 총 3583억 달러(약 41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인디애나대는 “지난해에 미국인의 70%가 평균 3000달러(약 34만8000원)씩을 기부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인이 지난해 기부한 총액은 미국 국민총생산(GDP)의 2%에 달하는 금액으로 미국은 GDP 대비 기부액 비율에서 세계 1위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서구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례는 많다.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 가문이 그렇다. 최부자 가문은 최국선(1635~1682년)부터 최준(1884~1970년)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만 석 이상의 부를 유지했던 대표적인 부자 집안이다. 최부자 집안은 10대에 걸쳐 흉년 때마다 수입의 3분의 1을 빈민 구제에 쓰는 등 수많은 자선 활동과 사회공헌으로 칭송을 받았다. 최준은 일제 강점기 상해임시정부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던 독립유공자다. 그는 마지막 재산을 털어 지금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와 계림학숙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조선 정조 시대 전 재산을 털어 기근에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1만8000여 명의 제주도민을 살린 김만덕(1739~1812), 6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정리해 여섯 형제가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우당 이회영 집안,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석주 이상룡 가문 등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선조들이 많다. 독립운동가이면서 한국에서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하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기업인의 모범을 보여준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1895~1971년)도 대표적이다.

 이런 역사적 사례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사회에서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는 먼 얘기처럼 들린다. 2013년 기준으로 현금 기부자 비율은 32.5%로 기부 문화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뗀 수준이다. 5년 안에 1억원을 기부할 것을 약속하는 아너 소사이어티 클럽에 가입한 고액 기부자는 지난달 20일 기준으로 930명으로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정책은 기부 문화의 확산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2013년 개정된 세법은 중산층 이상 고액 기부자들의 세제 혜택을 대폭 줄였다. 세금을 늘려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언론은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고액 기부자에 대한 전향적인 정책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동안 해마다 복지예산을 큰 폭으로 늘려오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선 태부족한 상황이다…대안은 기부·나눔의 확산이다. 자발적 기부 문화를 활성화해 민간 영역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넓혀 가면 정부의 재정부담도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세제혜택 정책을 과감하게 펴나가는 일이 보다 현명한 처사다.”(중앙일보 2015년 10월 20일 ‘양극화나 불평등을 세금으로 다스릴 수 있을까’)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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