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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탈북 과정의 상상 못할 고통,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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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edbear300 작성일15-07-04 12:45 조회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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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수기, 20여 개국서 펴내는 탈북인 이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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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행위예술센터에서 열린 테드(TED) 강연에서 이현서씨가 탈북자 인권 등에 관해 영어로 설명하고 있다. [TED]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수가 3만 명에 육박한다. 이들은 북한 정권의 압제와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등졌지만 탈북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북한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이들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현서(35)씨도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탈북자 중 한 명이다. 

2013년 2월 탈북자로선 처음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세계적 지식 강연회인 테드(TED)를 통해 북한의 실정을 폭로했다. 그의 강연 동영상은 현재까지 4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지난 2일에는 자신의 경험담을 엮은 '7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한 탈북자 이야기'를 영국에서 펴냈다. 조만간 독일 등 세계 20여 개국에서도 발간할 예정이다. 이씨는 영국 BBC방송 등과 인터뷰했으며, 곧 미국을 방문해 CNN 방송 등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책 발간을 앞두고 독일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11년간 중국서 숨어 살다 남한행 

-한국보다 해외에서 먼저 책을 펴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국인들은 탈북자 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해외에서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굉장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해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이후 한국에서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어떻게 탈북을 하게 됐나.

“나는 비교적 풍족한 집안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라는 교육을 받았고 그대로 믿었다. 17세였던 1997년 북한이 굉장히 폐쇄적이고 공포스러운 사회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압록강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기에 중국에 대한 호기심도 컸다. 결국 홀로 강을 건너 국경을 넘었다.”

-탈북 이후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텐데.

“중국인으로 가장하고 10년 넘게 선양(瀋陽)과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살았다. 이름도 원래 박민영에서 미란·순향·순자 등으로 여러 차례 바꿨다(이현서라는 이름은 서울의 작명소에서 새로 지었다). 체포될 위기도 있었지만 중국어가 유창했던 덕에 음식점 종업원, 한국 기업의 통역직원 등으로 일할 수 있었다. 2008년 중국 당국의 탈북자 단속이 심해지자 서울로 왔다.”

-탈북 때 북한에 가족은 없었나.

“엄마와 남동생이 북한에 남아 있었다. 2009년 말 브로커를 통해 가족을 중국으로 탈출시켰다. 당초 베트남을 통해 서울로 데려올 계획이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라오스로 경유지를 바꿨지만 뜻하지 않게 가족들이 라오스 당국에 체포돼 몇 달간 수감됐다. 당시 나는 가진 돈을 모두 써버린 상황이라 사면초가에 빠졌다. 

기적이 일어났다. 우연히 만난 호주 출신의 배낭 여행객이 내 사정을 듣고 1000달러가 넘는 돈을 건넸다. 내가 ‘왜 도와주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당신을 돕는 것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때 세상을 보는 내 시각은 크게 바뀌었다. 냉소적이었던 태도가 변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따뜻한 감정을 갖게 됐다. 2013년 호주의 한 방송국 주선으로 시드니에서 그 은인과 재회하기도 했다.”
 
지난해 4년 연하 미국인과 결혼

-남한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 영화관에 갔을 때다. 나는 팝콘·나초 등 한글로 쓰여 있는 영어 메뉴를 읽고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탈북자가 처음에는 이런 문화적 차이에 많이 놀라게 된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미팅을 하러 간다’는 말은 탈북자들에겐 굉장히 생소하게 들린다.

외래어가 너무 많이 혼용돼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입을 준비했다. 2011년 늦깎이로 한국외대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영어와 중국어를 복수전공했다. 중국에서의 생활이 큰 도움이 됐다.”

-현재 생활은.

“4년 연애 끝에 지난해 결혼했다. 상대는 4세 연하의 미국인이다. 위스콘신주 출신으로 한국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하고 있다. 그는 내 삶의 동반자이자 조력자다. 그의 도움으로 뉴욕타임스 등에 영문 에세이를 수차례 기고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미국 스탠퍼드대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공식 회의 등에서 북한 인권 상황을 주제로 강연할 기회도 있었다. 다른 나라들의 초청을 받아 방문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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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가족도 탈북시켜 함께 생활

-지금 생활에는 만족하나.

“탈북 후 나의 꿈은 가족과 함께 서울에서 사는 것이었다. 다른 가정과 마찬가지로 가족끼리 평범하게 사는 것이 바람이었다. 결국 그 꿈은 5년 전에 실현됐다. 하지만 엄마는 50년 넘게 북한에서 살았기에 두고 온 형제와 친척들을 매우 그리워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의 공기마저 그립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심지어 엄마를 북한으로 돌려보낼 생각까지 했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여전히 이산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압록강을 넘었던 17세로 돌아간다면 아마 강을 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앞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이산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선 통일이 돼야 하는데.

“통일은 정말 ‘꿈 같은 일’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남북한이 원하는 통일 방식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일부 남한 사람들은 막대한 통일 비용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남한에 살고 있지만 북한은 내 고향이다. 그곳에는 죄 없이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동포가 있다. 이들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통일이 돼야 한다. 

최근 세계적 금융사인 골드먼삭스가 내놓은 보고서는 통일에 대한 희망을 더욱 밝게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북한이 통일된 후 천연자원이 풍부한 북한의 잠재력과 남한의 기술과 자본력이 결합된다면 2040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이 일본·독일·프랑스를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발 그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마지막으로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탈북자들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일반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끔찍한 일을 겪는다. 전쟁이 아닌 평시인데도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여러 차례 받으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들의 고통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책을 펴낸 목적이다. 

또 일부 탈북자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의도를 갖고 거짓된 증언을 해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이로 인해 탈북자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내 책이 조금이나마 탈북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또 그들의 명예 회복에도 보탬이 되길 바란다.”

베를린(독일)=서지은 코리아 중앙데일리기자 
seo.ji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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