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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 흙·물·바람에 매일 아침 큰절 … 풀 잘 매는 ‘풀매도사’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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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작성일15-09-05 08:14 조회2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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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변산서 농업공동체 실험 20년, 윤구병 대표

 

윤구병 대표가 파안대소를 하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생계형 웃음’이다. 코보다 입이 튀어나와 그가 웃고 있지 않으면 주변에서 “어디 아프냐, 고민이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고 했다. “바보가 돼서 남을 즐겁게 해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칠순 노인은 여전히 꼬장꼬장했다. 바짝 자른 머리칼, 총기(聰氣) 번뜩이는 눈망울, 삿된 세상과 한판 붙어보자는 태세다. 말본새도 직선을 닮았다. 에둘러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부드럽다. 수시로 큰 웃음을 터뜨린다. 뻐드렁니가 훤히 드러날 정도다. 아이 같은 천덕스러움이 남아 있다. 아동전문 출판사 보리 대표를 맡고 있는 윤구병(72)씨 얘기다.

 지난 1일 경기도 파주시 출판문화단지에 있는 출판사를 찾아갔다. 1995년 충북대 철학과 교수를 등지고 저 멀리 전북 변산에 내려가 농촌공동체를 일군 그의 지난 20년 결산서가 궁금했다. 농사와 출판이라는 낫과 호미를 들고 도시·기계문명과 맞서온 그다. 게다가 말기 간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출판사 4층 개인사무실에 들어가니 한낮의 열기가 후끈하다. “여름에도 에어컨을, 겨울에도 난방기를 틀지 않는다. 혼자 쓰는데 참으면 되지, 에너지를 낭비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원칙에 충실한 외골수 할아버지다.
 

전북 변산에서 농촌공동체를 일군 윤구병 대표의 20년 전 모습.

 -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 변산에 내려올 때는 젖먹이 농사꾼이었다.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몇 해 열심히 농사를 지으니 배에 초콜릿 복근이 생기더라. 탤런트 권상우는 쌍절곤으로 복근을 만들었다지만, 하하하. 한때 내 별명이 ‘풀매도사’였다. 누구보다 풀을 잘 매서 붙은 말이다. 도시인 10명이 할 일을 혼자 해내기도 했다.”

 - 행복을 찾아 시골로 갔다고 했는데.

 “대학에서 15년 동안 철학을 가르쳤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절박함이 없었다. 군사정권 시절 교수라는 자리의 한계도 있었다. 학생들은 죽어가는데 정작 교수들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런 시간이었다. 주변에선 반대했지만, 그리고 믿지도 않았지만 쉰이 넘어 내 행복을 찾아 나섰다.”

 - 행복이란 파랑새를 결국 찾았나.

 “이 나이에 행복해해도 되나, 어린 시절을 빼고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공동체는 행복의 원천이다. 힘 닿는 데까지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갖다 쓰는, 돈 없어도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향한 징검다리를 놓으려 했다.”

 - 그게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

 “물론 인간관계는 어렵다. 만나고 틀어지고 헤어지고 등등. 대여섯 명으로 시작한 공동체가 이래저래 60명 가까이 됐다. 공동체 주변에 독립가구를 이룬 이들을 포함하면 100여 명이 함께 산다. 지금까지 1000여 명이 거쳐갔다. 재미있는 건 공동체 생활을 사계절 이라도 겪어본 사람은 대부분 도시가 아닌 농촌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 유기농을 고집하고 있다.

 “100년 전 농법 그대로다. 2만 평 가까운 논과 밭에 쌀·보리·밀·콩·조·수수 등 100여 가지를 키운다. 공동체 구성원은 경작권만 있을 뿐 토지소유권이 없다. 제초제·농약·화학비료 등이 없는 ‘5무 농법’을 쓴다. 돈이 필요하면 마을공동 ‘돈통’에서 꺼내 쓰고, 그 사용처를 적어놓으면 된다.”

 - 유기농산물이 더 비싸다. 역설적이다.

 “맞다. 인건비 비중이 큰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도시 소비자들이 알아야 할 게 하나 있다. 대다수 사람이 고른 크기의 ‘규격품’만 찾는다. 감자를 예로 들면 작고 볼품없는 건 버리기 일쑤다. 자연에선 크고 작은 게 섞여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값이 올라갈 수밖에…. 양파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보리출판사 전시장과 경영철학.

 - 도시농업, 도시농부가 요즘 인기인데. 

 “반가운 일이다. 화분이나 옥상, 빈터에 고추·호박을 키우는 야무진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주곡(主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컴퓨터 칩이나 시멘트를 먹고 살지 않는다. 주곡 자립 없이는 자주국방도 없다고 본다. 평소 청년 절반을 시골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 농촌에 선뜻 내려갈 젊은이가 있을까.
 

‘나무 한 그루 베어낼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자’고 썼다.

 “시골 노인 한 명이 도시인 20명을 먹여 살리는 지금 같아선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요즘 가장 큰 화두인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를 풀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도시에선 사는 게 전쟁이다. 모두가 폭발 직전이다. 농작물은 오래 두면 썩기에 서로 나눌 수밖에 없다. 마음이 평화롭게 된다.”

 - 2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어릴 적 땡볕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께서 종종 ‘눈은 게으르고 손은 부지런하다’고 말씀하셨다. 산더미 같은 일도 하다 보면 끝이 난다. 시골 일이 그렇다. 한철 한철 나면서 사람도 철이 든다. 반면 도시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종살이에 가깝다.”

 윤씨는 “하루를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시작한다”고 말했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머리와 두 팔, 두 다리를 방바닥에 대고 해와 바람, 땅과 물에 큰절을 올린다. “하느님이, 부처가 뭔지는 잘 모른다. 다만 나의 몸과 생명을 이룬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린다. 세상의 평화를 빈다”고 했다.

 - 머리 모양이 수도승 같다.

 “지난해 여름 진도 팽목항에서 머리를 잘랐다. 우리 아이들에게 지은 죄에 대한 참회다. 학생들이 왜 피하지 않고 선실에 그대로 남아 있었는가. 학교에서 하나의 ‘정답’만을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정말 몹쓸 짓을 해왔다. 교육의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것 아닌가. 한번은 전철에서 어떤 노인이 내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고 ‘사회 혼란을 조장한다’며 야단을 치더라. 자기 아들, 자기 손자가 죽었다면 그렇게 했을까.”

 - 지난봄에 암 판정을 받았다.

 “인간 칠십 고래희(古來稀)다. 이 정도 산 것도 드문 일이다. 징글맞게 오래 살았다. 병원 치료는 받지 않고 있다. 병이든 교통사고든 이 나이에 죽으면 다 자연사다. 무슨 염치로 더 살겠다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겠나. 지난 40여 년 우리 세대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후손이 살아야 할 기본자산, 물과 공기와 땅을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더럽혀왔다. 일흔이 넘으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표현이 좀 심한 건 아닌지.

 “빈말이 아니다. 노인들이 청년들의 재산과 일자리를 꿰차고 있으면 되겠는가. 지난 세월 온갖 ‘삽질’로 자연을 망쳤으면서도 젊은이에게 기대고 살겠다면 너무 뻔뻔한 일 아닌가. 문명의 물줄기를 돌려야 한다.”

 -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았는데.

 “10년 전쯤 일이다. 출판사 지분, 변산공동체 토지 등을 공익재단 여러 곳에 넘겼다. 다해서 100억원쯤 될까. 가족 동의와 공증도 받아놓았다. 어차피 죽어서 가져갈 게 아니다. 돈은 어쩌다 잠시 내 손에 들어온 것일 뿐이다.” 

 - 어린이 책 출간에도 힘써왔다.

 “30년이 넘었다. 외국 동화책만 번역했던 관행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고 본다. 우리의 숨결이 들어 있는 창작 그림책에 주력했다. 동화도 많이 썼다. 아이들은 스펀지다. 모든 걸 빨아들인다. 그런 아이들에게 아프리카 코뿔소나 사자만 보여준다면 그 또한 죄악이다. 우리 산하의 동식물을 옮겨놓은 세밀화 시리즈가 가장 큰 보람이다. 물질자원은 부족하지만 생명자원은 그 어느 곳보다 풍부한 게 우리 땅이다. 사실 세밀화 출판은 국가가 나설 일이다.”

 - 도시화·세계화에 반대하나.

 “세상을 거꾸로 살자는 게 아니다. 지난 역사는 노예제·신분제 등을 깨뜨려왔다. 생명·평화라는 근본을 생각하자는 얘기다. 예컨대 바느질은 수천 년을 이어온 ‘완성된’ 기술이다. 반면 컴퓨터는 몇 개월마다 새 버전이 나오는 ‘불완전한’ 기술이다. 지금까지 전쟁과 폭력으로 이어진 과학기술이 부지기수다. 불교 화두에 ‘방하착(放下着)’이 있다.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뜻인데 나는 평소 ‘마음 놓고 살자’라고 풀어왔다. 오늘도 내가 꿈꾸는 세상이다.”

글=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뿌리깊은 나무’ 한창기의 가르침 “매사에 완벽하라” 
 

왼쪽부터 한창기, 이오덕,권정생.

사람은 혼자 크지 않는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윤구병씨에게도 숱한 스승이 있었다. 그는 가장 먼저 중2 때 수학을 가르쳤던 김희철 선생을 꼽았다. “교실마다 쓰고 남은 분필 꽁다리를 모아 사용하셨죠. 올곧게 사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고지식한 분”이라고 기억했다. 고교·대학 시절 학자금을 대준 학원사 김익달(1916∼85) 회장도 있다. 국내 최초의 『세계대백과사전』을 발간한 출판인으로 유명하다. 윤씨는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하셨지만 장학회를 만들어 수많은 시골 아이를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윤씨는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을 창간한 한창기(1936~97)씨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처음 도입한, 한국잡지사에 한 획을 그은 종합교양지다. 서울대 철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윤씨는 76년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으로 일했다. “우리나라 민예품을 가장 사랑하신 분입니다. 완벽주의자였죠. 잘못 그은 선 하나, 잘못 자른 사진 하나도 참지 못했어요. 그분에 비하면 저는 구멍이 숭숭 뚫린 사람입니다.”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씨와 권정생(1937~2007)씨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말을 갈고 닦는 ‘같은 배’를 탄 동료 작가이자 선배였다. 윤씨는 “하실 일이 많이 남았는데 안타깝게 가셨다. 토박이말의 아름다움을 일깨우셨다”(이오덕), “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그 누구보다 컸다”(권정생)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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