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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민초 이유식의 러시아 여행기] 20일 간의 러시아 여행을 떠나다 - [넷째 날]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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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12-13 07:13 조회9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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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에서 보이는 네바강변 

지난밤 식사를 겸한 와인에 취했는가 아니면 합석했던 존 합킨스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했다가 은퇴를 하고 지금은 의과 대학 운영에 컨설팅을 하고있다는 닥터 데이비드  부부와의 대화의 꽃 덕분이였던가 두 글래스이면 족한 와인을 5글래스나 마셨으니 밤 잠은 달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여행을 할 때 마다의 느낌이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정보도 듣고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서로 나눈다는 것은 참 즐겁다는 생각을 했었고 유명한 의과대학 교수였지만  이 검정머리 촌놈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소탈하고 꾸밈없는 데이비드 박사를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 온다. 

우리는 내일 즉 28일 관광 이야기에 꽃을 피웠는데 세인트 피터스 버그를 러시아라 한다면 이 곳을 흐르는 네바 강은 세인트 피터스버그 라며 의견을 주고 받았다. 즉 네바 강은 유럽에서 제일 짧은 강으로 강심은 20미터로 가장 깊고  강의 길이는 46마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강을 따라 세인트 피터스버어그에는 500개의 다리가 있고 360개의 운하가 파여있으며 이 강물은 유럽에서 제일 큰 호수인 라도가 호수를 지나 걸프만을 통과 필란드로 들어간다.

이 강의 역사는 수없이 많으나 그 중 1240년 알랙산더 황제가 스위스의 노고로도군을 격퇴한 강으로 유명하다. 이때 이 강의 이름이 지어졌는데 네바스키를 네바로 명명 했다 한다. 이어 1700 년에서 1721년까지 북쪽을 점유키위한 스위스와 큰 전쟁을 치룬후 세인트 피터스버어그라 명명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 시는 원래는 크나큰 늪과 수렁에 빠진 황무지 였으나 도시로 개발하면서 북쪽의 베니스라 불리기도 했다.  

현재 42개의 섬과 델타로 구성되어 있다. 1703년 피터스 대제가 그의 이름을 따 세인트 즉 성 피터스 버어그라 했고 1`712년 부터 1918년 까지 러시아의 수도였으며 현재의 인구는 5백만명이며 면적은 1439 킬로미터이다. 오전 일정의 관광은 유수포프 궁전에서 시작이 되었다. 그 때 조용히 흐르는 샛강 모카라는 표현을 유수포프 궁전이라 명명했다. 

1770년에  프랑스 설계사  진 바피티스티 바아린 디 몬테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1830년에서 1917년 사이에는 거부이며 만인의 존경을 받는 유수포프가 사용한 개인 사저였었다.유수포프 궁전은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드라미틱한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기에 좀더 파고 들어가 본다. 

내용은 유명한 소설가 그레고리 라스프틴이 누군가에 의해 죽게 된다. 이 때가 1916년의 일이다. 

그의 죽음은 유수포프 가족이 뒤에서 조종을 한 결과였고 이유는 라스프틴이 러사아를 발전적으로 정착해 나감에 제일 큰 걸림돌이라는 생각 때문이 였다. 

그가 죽은 날은 1916년 12월 16일인데 아직까지 그 사인 규명을 못한 미제로 남아 있다 한다. 좀더 재미있는 라스프틴의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으나 여기에서 생략하고 푸쉬킨과 케서린 대제와의 관계 그 궁전을 관람을 했다.

오후에는 네바강에서 보트를 타고 시의 중심가  운하를 관광을 했다  운하가 지상의 다리와 너무  근접하여 머리를 잔득 숙이거나 몸을 낮추지 않으면 머리가 강 다리에 부딛치게 되기에 곳곳에 주의 싸인이 붙어 있었다. 

강 주변을 관람하기 보다는 금방 금방 밀려오는 운하와  강 다리 사이에 몸이 부딛치지 않게하기 위함에 더 신경이 쓰였다. 이 보트를 타면서 38세로 세상을 떠난 푸쉬킨이 그날 시인의 자존심을 걸고 그의 부인을 잃어버리지 않기위해 프랑스의 망명귀족 단데스와 최후의 결전장으로 가기전 커피를 마신 그의 사저 창가의 싸인을 보았다. 그 때 푸쉬킨은 무슨 생각을 하며 결투에 임했을까를 음미해보며 운명의 작난은 야속하다는 생각을 했다. 러시아가 낳은 영국의 쉐익스피어라는 푸쉬킨에 관하여서는 내일 푸쉬킨 광장을 관광을 한 후 다시 무엇인가 그의 생애를 써 보리라는 생각을 하며 시내 중심가의 뱃놀이 관광을 마첬다.

유람선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는 이날의 여행 안내자 러시아인 알렉세이가 레닌그라드에 관한 장황한 연설을 한다. 이 곳에서 일찍이 영문학 BA 디그리를 받은 알렉세이는 유창한 영어로 애국에 불타는 60대가 가까워오는 안내자로 자기가 러시아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1941년 9월 부터 1944년까지의 독일군과의 전쟁이야기에 꽃을 피운다. 

말만 듣던 레닌 그라드에서의 생생한 전쟁비화를 러시아 현지인으로 부터 설명을 듣는다는 것은 뜻 깊은 일이라 생각했다. 1944년 1월 나치 독일군의 봉쇄가 끝이 났을 때 6십3만 2천명의 시민이 배고품과 질병 추위로 죽었다. 이 때 세인트 피터스버어그
의 인구는 3백만명이였고 아이들은 4만명이였다. 히틀러는 이 시를 봉쇄 하고 폭격과 중화기로 공격을 감행하면 반드시 항복을 하리라고 그의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3년 이상의 폭탄과 포탄 속에서도 끝내 항복을 거부하며 배고품과 죽음으로 항전을 한 곳 이 곳이 그 유명한 레닌 그라드 항전이다. 예컨데 식품은 고갈되어 한사람의 하루의 식량은 4.4온즈의 빵으로 연명을 해야했고 교통수단이나 히팅은 전혀 불가했으며 전력과 물의 공급도 중단되었다. 개와 고양이도 모조리 식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집의 판자나 나무 조각 가구 등은 전부 열기를 얻기위함에 사용되었다. 

사람들이 살기위한 유일한 탈출구는 라도가 호수로 가는 길 뿐이였다. 이 호수가 얼었기에 이 호숫길로 탈출을 시도한 수 십만의 시민이 얼어 붙은 호수 위에서 죽어갔다. 이 때 챠이코프스키는 시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말라고 그 유명한 심포니  7 악장을 작곡했다.현재 그 시절의 항전에서 이겨낸 러시아의 늙은 사람들은 그 때를 기억하며 아직도 영웅심과 조국애에 불타고 있다는 열변이다.
 
이렇듯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3백만명의 러시아인들은 레닌의 방어 전략에 적극 동참했으며 혹한과 굶주림에 떨며 총과 대포를 사격할 능력을 상실한 나치 히틀러군의 전략을 간파한 레닌의 붉은 군대는 지리멸멸하는 독일군에게 총 공격을 가하여 레닌이 대승을 이루게 된다. 이로서 세인트 피터스버어그는 독일군의 봉쇄에서 벗어나며  공산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룩할 수 있는 볼쉐비키 혁명으로 이어지며 레닌이 정권을 잡게되는 단초를 마련케 되었다고 역설을 한다. 

세계1차대전의 종식은 레닌의 공산 볼쉐비키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어 니콜라사와 알렉산드라로 이어지던 로마노브스의 왕조의 몰락을 가져오게된다. 그 후 세계제2차대전의 발발은 레닌의 명령에 의하여 스탈린이 전선을 지휘하며 2차대전을 승라로 이끈 스탈린이 레닌이 죽자 그의 뒤를 승계하게된다. 그러나 공산 혁명이 순조롭지는 않았고 1917년 과 1918년 사이 공산혁명에 반대하는 백색 군대와 그해 7월에 내전이 일어나며 백색 군대의 패배로 노마노프 왕조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 때 왕조의 전 가족이 레닌의 명령에  의해 처단 되었는데 처단되기 전 레닌은  왕정의 건재함을 보여주기위해 가족의 사진을 찍는다는  거짓말로 그들을 지하실로 유인후 왕족의 가족들 모두를 처형하였고 그들의  시신을 광산에 방치했다.  

그들이 처형당한 후 80년이 지난 1998 년에 그 왕족들에게 새로운 장례를 치루고 현재  세인트 피터스에 있는  피터와 폴 성당에있는 성 캐더린 에배당에 마지막 안식처를 마련했다 한다. 이어 까라마 조프카의 형제들이라는 소설을 남긴 도스토에브스키 박물관을 관람을 했다 

이 박물관에는 도스토예브스키의 개인이 사용한 장비와 화폭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1971년 그의 출생 150년을 맞이하여 개관이 되었으며 그의 최후의 소설인 까라마 조프가의 형제들은 지금도 문고판으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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