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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넘실넘실 춤추는 배추 바다, 슬금슬금 관광객 유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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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8-24 12:41 조회1,0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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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고랭지 배추밭 투어

매봉산 배추밭은 1960년대 화전 정리사업에 따라 130만㎡의 땅을 개간해 만들었다.


가을이 시작하기 전에는 강원도 고랭지 배추밭에 가야 한다. 강원도의 고랭지 배추는 봄에 모종을 심어 추석이 오기 전에 수확하기 때문이다. 하여 이맘때 강원도 배추밭에 가면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뒤덮은 배추가 바람과 함께 춤을 추는 장관을 마주할 수 있다.

여름 끄트머리 우리 땅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이채로운 풍경이라 할 수 있다. 밭에서 누릴 수 있는 낭만은 프랑스 남부지방의 포도밭이나 전남 보성의 녹차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밥상에 끼니마다 올라오는 채소가 나고 자라는 풍경은 어떤 비경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 그림 같은 풍경의 이면에는 우리가 겪어온 세월, 그러니까 저 높은 산까지 올라가 돌밭을 일구며 살 수밖에 없었던 애달픈 이야기가 서려 있다. 여름이 끝나가는 계절, 강원도 태백에 있는 고랭지 배추밭 두 곳을 갔다왔다. 이른바 ‘태백 배추밭 투어’다.

배추 바다와 풍력발전기의 이색 조합-매봉산

지난 6일 태백에서 삼척으로 가는 35번 국도 삼수령 휴게소 앞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주차장이 차고 넘쳐 왕복 2차선 도로의 한쪽 차선이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수십 명이 땀을 흘리며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봉산(1303m) 자락에 펼쳐지는 풍광을 보겠다고 이 소동을 치르는 것이었다. 7~8월 주말이면 하루에 2000명이 이곳에 몰린단다.

매봉산 북쪽 사면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랭지 배추밭이다. 해발 1100~1300m 산자락 130만㎡(40만 평) 면적에 배추가 자란다. 이곳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가 화전 정리사업을 벌이면서 산을 개간하고 화전민에게 내준 땅이다. 그리고 이들은 고지대에서 재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채소라는 배추를 심어 50년 세월을 살아왔다.

김상구(63) 문화관광해설사는 “매봉산은 자갈밭이라 물이 잘 빠지고 해가 진 뒤에도 자갈에 온기가 남아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준다”며 “배추가 자라기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매봉산이 ‘관광지’로 거듭난 것은 지난 2004년부터다. 풍력발전기가 들어서면서 배추밭과 기이한 풍경을 연출했고, 이때부터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인파가 꾸준히 늘어나자 2012년 태백시는 삼수령 휴게소와 매봉산 어귀를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좁고 고불고불한 농로에 관광객이 차를 타고 갔다가 농민과 얼굴 붉히는 일이 많아져 차량 진입을 제한한 것이다. 셔틀버스는 배추밭이 한창 바쁜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한 달만 운영된다.

참나무와 자작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나 매봉산 자락에 들자 거짓말 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진초록의 배추밭이, 아니 배추 바다가 산등성이를 덮고 있었다. 강한 바람에 배춧잎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이미 수확을 시작한 밭도 있었다. 군데군데 붉은 흙이 드러난 땅이 있어 헝겊 조각을 기운 누더기 같았다. 배추를 골라내 트럭에 실어나르느라 일손이 분주했다. 어림잡아 배추 600만 포기가 추석을 앞두고 전국 방방곡곡의 시장으로 향한다고 한다. 여기 배추는 주인이 미리 정해져 있어 현장에서는 배추 한 포기도 살 수 없다.

매봉산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한중간이다. 하여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작정하고 백두대간을 걷지 않더라도 배추밭 주변의 산책코스를 걷는 사람도 많다. 셔틀버스가 서는 전망대에서 출발해 매봉산 꼭대기를 돌아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바람의 언덕까지는 1㎞ 거리밖에 안 된다.

배추밭을 옆구리에 끼고 숲 속으로 들어섰다. 참나무가 햇볕을 가려 더욱 서늘해졌다. 때마침 숲 속에는 동자꽃·하늘나리·꽃며느리밥풀 등 여름 야생화가 만발해 있었다. 짧은 산책길을 걸어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바람의 언덕’에 다다랐다. 북쪽 사면의 배추밭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드넓게 펼쳐졌다. 세찬 바람에 눅진한 땀기가 말끔히 가셨다.

궁벽한 마을, 여전히 고단한 삶-귀네미마을

태백 귀네미마을 배추밭에서 아낙들이 김을 매고 있다.
매봉산에서 북쪽으로 16㎞ 떨어진 귀네미마을에도 고랭지 배추밭이 있다. 마을이 배추밭으로 바뀐 역사는 길지 않다. 1986년 광동댐이 삼척에 들어서면서 수몰지에 살던 37가구가 귀네미골, 그러니까 태백시 삼수동 24통으로 터를 옮겼다. 전해져온 마을의 이름은 우이령(牛耳嶺). 산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모양이 소귀를 닮아서였다. 어느 집 늦둥이 아들내미 이름 같은 ‘귀네미’란 이름도 우이령을 한글로 옮긴 것이다. ‘이상향으로 가는 길 어귀’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하나 귀네미는 이상향과 거리가 멀었다. 겨울에는 마당에 쌓인 눈을 녹여서 식수로 써야 했고, 장 보러 가려면 경운기를 탈탈 끌고 대장정에 나서야 했다. 가장 고된 일은 농사였다. 나라에서 밤나무 우거진 산을 개간했지만 먹고 살 길이 마땅치 않았다. 귀네미마을 주민 김춘자(73)씨는 이렇게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엔 옥수수나 감자도 심어보고, 곰취도 키워봤지요. 땅이 돌밭인데다 바람도 세서 배추 외에는 키울 작물이 없었어요.”

그렇게 힘겹게 배추밭을 일궈온 세월 30년, 이제 사람들은 귀네미마을을 ‘배추고도’라고 부른다.

귀네미마을로 가는 길에는 자작나무가 짙푸른 숲 속을 하얗게 밝히고 있었다. ‘일출이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표지석을 지나 마을로 들자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서편 풍력발전기 위로 해가 걸렸을 무렵, 꼬불꼬불 이어진 길을 따라 해발 1100m까지 올라갔다. 푸른 배추밭이 하늘과 맞닿은 풍경이 매봉산과 다르지 않았다. 한쪽에서 아낙들이 김을 매고 있었다. 말을 걸어보니 귀네미 사람들이 아니었다.

“삼척에서 넘어왔어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 일당 6만원이면 나쁘지 않지요.” 곧 일을 마친 아낙들은 가파른 비탈길을 기어가다시피 엉금엉금 내려갔다. 종일 몸을 숙이고 잡초를 뽑았으니 허리에 돌덩이를 얹은 것 같을 터였다.

귀네미에는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몇 해 전 TV 프로그램에 마을이 소개되고 찾는 이가 반짝 늘었지만 지금은 민박도, 음식체험관도 개점휴업 상태다. 김진복(53) 통장은 “여름 한철 배추 보겠다고 사람들이 오는 터라 민박도, 식당도 운영하는 게 쉽지 않아요. 누가 이 외진 곳까지 오겠어요?”라고 반문했다. 마을에는 이제 23가구만 남았다. 배추밭도 처음 개간했을 때 69만㎡(21만 평)에서 56만㎡(17만 평)로 줄었다. 세월이 좋아졌다지만 궁벽한 산자락에서 사는 일은 여전히 고되다.

마을을 나오면서 다시 생각해봤다. 왜 배추밭이 우리에게 짠한 감동을 주는 걸까. 아마도 그건, 밥상에서 매일 만나는 가장 일상적인 채소가 상상 너머의 풍경 속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가파른 산자락에서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들의 세월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김치 한 조각 집을 때마다 초록빛 배추 바다가, 거기서 일하던 아낙들의 굽은 허리가 눈에 어릴 것 같다.

◆여행정보=서울시청 기준으로 태백 매봉산까지 자동차로 약 4시간30분 걸린다. 매봉산과 귀네미마을 모두 35번 국도변에 있다. 매봉산 배추밭에 가려면 삼수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거나 택시를 타야 한다. 태백시에서 한 달간 운영하는 무료 셔틀버스는 지난 17일까지만 운행했다. 삼수령에서 전망대까지는 3.6㎞로 걸어서 1시간 거리다. 택시가 삼수령에서 바람의 언덕까지 올라간다. 편도 8000원 수준.

구와우마을에 있는 구와우순두부는 아침마다 직접 만든 순두부를 내놓는다. 순두부 6000원. 033-552-7124. 과거 광부들이 먹었다는 물닭갈비를 하는 집도 많다. 1인분 6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숙소는 해발 1100m에 위치해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켤 일이 없는 오투리조트가 있다. 실버객실 22만원. 033-580-7777. 태백시청 문화관광과 033-550-2080.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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