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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 청동칼 이후 5000년, 인류가 찾아낸 두께 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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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1-25 00:07 조회2,2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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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질은 고도의 문명화된 행위다. 최초의 인간이 다른 동물을 먹이로 획득했을 때, 기껏해야 그 살점을 뜯거나 잡아 찢었을 것이다. 

고기요리, 칼질에 달렸다


최초의 금속 칼은 청동기시대(기원전 약 3000~700년)에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철기시대에 와서 진정한 ‘칼의 시대’가 도래했다. 본격적인 ‘식용 칼’의 시대는 18세기 산업화로 탄소강 제작기법이 확립되면서부터다. 

이제 날붙이 제조업은 생선 칼, 과도, 페이스트리(빵) 칼 등 특수 용도의 다양한 칼을 내놓기 시작했다. 서양 식탁에선 포크와 나이프가 식기 필수 세트로 자리 잡았다.

썬다는 것은 많은 요리의 기본이다. "시인에게는 펜, 화가에게는 붓, 요리사에게는 칼"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요리에서 식재료는 이미 알맞게 썰려서(다듬어져서) 식탁에 오른다. 빵이나 생선을 써는 것은 식탁 매너에 가깝지 썰기의 본질은 아니다. 

본질적 칼질이 발현되는 것은 서양식 육류 ‘스테이크’에서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첫 데이트나 가족 나들이가 ‘함박스테이크’ 등 경양식으로 귀결되는 이유다. 칼질은 세련됨·부유함·격식을 은유한다. 그 시대엔 하다못해 돈가스라도 썰어야 ‘분위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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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 앞에 한 덩이 스테이크가 있다.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 표면은 비밀을 감춘 듯 근엄하다. 얼마나 뜨거운 열기를 거쳐 왔는지 그 온기가 코끝으로 전달되는 것만 같다 (보통 섭씨 300도 이상에서 겉을 주로 익히고 오븐에서 마무리한다). 

고기 온기가 쉬 달아나지 않게 식기를 뜨겁게 데우거나 때론 개인용 팬(pan)에 담아내기도 한다.

자, 이제 칼질이다. 짐승의 복부를 가르듯 나이프를 찔러 서걱서걱 썬다. 매끈하게 잘린 단면으로 연홍빛 속살(미디엄으로 익혔을 경우)이 드러난다. 어떤 남자라면 앞자리 여성에게, 막 획득한 사냥감을 건네듯이 고기 조각을 잘라 건네줄지 모른다(그러나 고기는 잘라 놓으면 육즙이 마르면서 맛이 떨어지기에 본인이 잘라 입으로 가져가는 게 가장 맛있다).

한 덩이 고기가 짐승의 몸에서 베어져 당신의 입으로 들어갈 때까지, 칼질은 여러 차례 반복된다. 당신이 최종 소비자로서 행사하는 칼질은 고도로 문명화된 행위의 종착점, 즉 가장 안전하고 깔끔하게 계획된 행위다. 

예컨대 나이프를 보라. 분명 날카롭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칼이긴 하나 요리사가 쓰는 부엌칼에 비견할 수는 없다. 접시 위에서 이 칼로 자를 수 있으려면 고기는 부드럽게 익혀 나와야 한다(중세 시대엔 개인 단검을 식탁에서도 사용했다 하니 그때 스테이크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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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의 형태는 ‘통썰기’에 알맞게 계획돼 있다. 나이프를 위에 올리고 직각으로 썰면 근섬유와 고기의 결합조직이 끊어져 부드럽게 씹힌다. [사진 나인스 게이트]

 
더 눈여겨볼 것은 방향이다. 일반적으로 안심·등심·채끝살 스테이크라면 약간 직사각형 형태로 두툼한 덩이가 나온다. 이걸 굳이 포를 뜨듯 칼을 뉘어 잘라 먹는 이는 없을 것이다. 

자신 앞에 놓인 고기에 나이프를 올려 직각으로 썰어내면, 이게 바로 고기 결과 반대 방향인 ‘통썰기’다. 통썰기는 고기섬유 방향과 직각되게 써는 방법으로 주로 스테이크나 구이용 고기에 사용된다.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기 위해 양념·조리를 최소화하는 스테이크에선 근섬유와 고기의 결합조직을 끊어내는 통썰기가 필수다.

반면 타원형 돈가스를 나이프로 잘라내면, 단면에 비스듬한 고기 결이 확인된다. ‘가스썰기’다.  돈가스나 비프가스용 고기를 썰 때 사용하는 방법으로 일정한 크기로 통썰기를 한 뒤 고기섬유의 방향대로 다시 수평으로 써는 것이다. 

통썰기를 거친 고기보다 질긴 대신 튀김 등 조리를 가해도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는 장점이 있다. 인도 카레용 ‘깍둑썰기’, 중화 볶음요리용 ‘막대썰기’ 등 각 요리에 맞는 적합한 칼질이 식재료의 장점을 최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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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 따라 나이프 손잡이를 선택할 수 있는 ‘더스테이크하우스 바이 빕스’.

 

 

오랫동안 한국인에게 고기는 갈비나 불고기 혹은 얇게 저민 상태의 직화구이가 일반적이었다. 

스테이크류가 식당 메뉴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한국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 팜코트를 전신으로 하는 조선호텔(현 웨스틴조선) ‘나인스 게이트’에서 70년대 가장 인기 높은 메뉴가 ‘로스트 비프’였다. 

77년 11월 24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그해 대종상 여우신인상을 수상한 김영란이 수상 소감으로 "오늘 밤 이 기쁨을… 엄마와 감독님, 나 셋이서 비프스테이크 파티나 조촐히 열겠다"고 말했다. 당대 스테이크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90년대 ‘TGI프라이데이스’ ‘베니건스’ ‘아웃백스테이크’ 등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기면서 스테이크가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2000년대 이후 미국식 스테이크하우스가 트렌드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뉴욕식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의 명가로 소문난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서울 청담동), BLT 스테이크하우스(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등도 차례로 입점했다.

BLT의 박홍희 셰프는 “5㎝ 두께로 두껍게 자른 고기를, 표면은 바삭하게 속은 부드럽게 익혀야 ‘썰고 씹는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더스테이크하우스 바이 빕스’(청담동·여의도)에선 고급 수제 나이프 ‘라이올’ 여섯 종류를 제공하며 기분에 따라 골라 쓰는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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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엉덩이 쪽 등심 부위의 가장 윗부분을 긴 꼬챙이에 꿰어 숯불에 구운 브라질리언 피카냐. 전문 카버가 테이블별로 돌아다니며 양껏 썰어준다. [사진 텍사스 데 브라질]

 
두껍게 잘라 익힌 고기가 속살의 육즙 때문에 더 맛있다는 것은 정설이다. 브라질식 슈하스쿠(여러 재료를 꼬챙이에 꽂아 숯불에 구운 브라질의 전통요리)를 내놓는 ‘텍사스 데 브라질’(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인근)에선 고기를 아예 통째 들고 와 양껏 썰어준다. 

이를 전담하는 이들을 카버(Carver)라고 부른다. 재료를 손질해 꼬치에 꽂는 것부터 숙성과 굽기, 그리고 완성된 슈하스쿠를 손님 테이블에 들고 가 직접 잘라 접시에 놓아주는 역할까지 도맡는다.

미국 본사 총괄셰프 에반드로 카레나토는 “브라질리언 피카냐나 플랭크(flank·치마살) 스테이크 등은 얇을수록 식감이 좋기 때문에 최대한 얇게, 양다리구이나 허브 포크로인 등의 메뉴는 꼬치를 기준점으로 45도 각도로 도톰하게 자르면 그 맛이 배가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섬세하게 계획된 고기가 당신 접시에 놓였다. 자, 이제 칼을 들자.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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