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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갭 이어(Gap Year), 나의 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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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욱 작성일17-04-07 13:34 조회3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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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 이어(Gap year)’란 학업을 병행하거나 잠시 중단하고 봉사, 여행, 진로 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통해 향후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을 말한다. 영국을 포함한 여러 서구 지역의 나라들은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1년 간의 기간에 걸쳐 다양한 경험을 쌓는 ‘갭 이어’를 가진다. 내가 이 단어를 알게 된 건 요즘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갭이어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고 나서이다. 문득 작년 한 해가 내게도 '갭 이어'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 이 맘 때 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까 말까 하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고 있는 일이 더 이상 재미가 없었고, 과연 내게 더 적성에 맞고,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똑같은 일상으로,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만 가고, 시간은 멈춰 서서 더디게만 흐르는 느낌이었다.  일을 하다가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처음엔 어떤 일이라도 가리지 않고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나중에 더 좋은 직장으로 들어갈 거란 생각으로 임시적으로 시작했던 일이 십 년을 넘겨 버렸다. 이젠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체력의 한계가 느껴지고, 내가 과연 이 일을 계속해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들의 방학기간처럼, 한 두 달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곤 했었다. 결국 심사숙고 끝에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처음엔 불안한 마음도 들고, 당장 생활은 어찌하나 하는 강박감이 물밀듯이 밀려왔지만 지난 1 년간의 시간은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처음엔 아침 일찍 일어나 일터로 나가야 한다는 강박감 없이 늦게까지 잘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여유롭고 무지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쉬면서 내게 맞는 일이 무엇이고,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했고, 한 번의 선택이 나에겐 아주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들 녀석과 봄방학 기간 동안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다. 30년 만에 친구를 만났고, 내가 다녔던 모교를 둘러보고, 친지들을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다. 대구에서 유명했던 김광석 거리와 근대화 골목거리를 구경하기도 했다. 옛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고, 맛난 먹거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바쁜 일상 때문에 미뤄 두었던 책을 읽기도 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틈틈이 봉사활동을 찾아 다니기도 하고, 모자란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평소에 잘 도와주지 못했던 집안 일도 거들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면서 아이들과 얘기하는 시간도 늘었다. 아내가 힘든 집안일을 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거란 아내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도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만들어 바쁘게 보낸 시간들이었지만 내겐 정말 값지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내게 이 일 년이란 시간은 재충전을 하고,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계획하게 해 준 시간이었다.

 

일 년이 지난 내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얘기가 일단 얼굴이 밝아 보이고 생기 발랄해 보인다고들 한다. 일에 찌들리고 힘들어 보였던 일 년 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밝게 웃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은 내가 생각해 보아도 많이 달라진 듯 했다. 현재 정부지원 취업프로그램에 다니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앞으로 잘 될 거라는 희망이 있어 마음이 한결 가볍고,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작년 한 해 동안의 경험은 정말 내게 소중한 시간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똑같고,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잠깐 멈춰 서서 내가 걸어온 길을 잠시 되돌아 보고,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이제 불도우저처럼 쉼 없이 앞으로만 나아갔던 내 인생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인생의 간이역에 멈춰 서서 다시 출발을 기다린다. 쉬는 시간이 단순히 시간낭비가 아니라 좀 더 멀리 가기 위해 내면을 채우는 시간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지금 돌이켜 보면 돌아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새롭게 출발하는 느낌이지만 내겐 또 하나의 시작인 셈이다. 출발선에 서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 언뜻 보면 별로 차이가 없는 듯하고, 과거의 시간이 헛되이 지나쳐 버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바뀐 게 있다면 지금 난 행복하고,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다는 거다. 갭 이어, 지난 일 년은 내게 있어 끊어진 일 년이 아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준 나침반이었다.

 

정재욱/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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