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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한나의 우아한 기행] 봄, 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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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나 작성일17-04-07 13:40 조회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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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선상님, 우리 가하를 계속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면서요. 가하가 복이 많지요. 금요일 퇴근하고 우리집에 놀러오이소.” 새학년이 시작되기 전 가하 할머니의 반가운 초대가 있었다. 우리 셋은 언덕 위 할머니 작은 집에 동그랗게 모여 파티를 했다. 가하의 영어 선생으로 일년을 더 살 수 있다는 감사의 파티. 서로가 헤어지지 않고 가까이 사귀며 살 수 있게 된 기쁨의 파티. 할머니는 사위가 사온 귀한 와인도 기꺼이 내놓으셨다. 우리는 함께 축배를 들었다.  할머니를 계속 뵙고 싶어서라도 이 학교에 남고 싶었다. 


3월 학교는 분주하다. 내내 같은 공간인데도 3월 학교의 공기는 새롭다. 낯선 얼굴, 설렌 마음, 서툰 몸짓들로 학생들도 선생들도 떨린다. 작은 사람들과 내게 새 계절의 낯설음이 부드럽게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학교에서 맞는 세 번째 봄, 어떤 작은 사람들과 무슨 일들을 함께 겪으며 성장하게 될까.    


학교이외에 하루에도 여러 선생을 만나는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영어를 가르쳐야할까. 치열한 영어 교육 현장에서 “영어 공부를 왜 해야하냐” 질문 하는 작은 사람들 앞에 매일 선다. 어른들만큼 빡빡한 스케줄로 여기저기 이끌려 다니는 지친 초등학생들을 어떻게 동기부여 해야 하는지도 고민이다. 하지만 제일 씁쓸한 것은 영어 교육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비정규직 교육 노동자’로 매년 불안한 미래가 신경 쓰인다는 것이다. 때론 급하게 제출할 서류를 작성하느라, 걸려온 이런저런 전화에 대답하느라, 교실에 놀러온 작은 사람들과 눈도 마주지치도 못하고 보내야 했던 적도 여러 번이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는 기억해야 하는데, 종종 급한 일로 작은 사람들이 뒤로 밀려난 것은 미안한 기억이다. 


준이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다. 준이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셨다. 동네 어린이 집 원장 선생님으로 오래 일한 준이 어머니도 늦둥이 아들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 놓았다. 학교생활에 힘겨운 준이가 영어 수업만큼은 재미있어 한다며 고맙다는 말과 올 한해도 잘 부탁한다는 내용 이었다. “우리 준이 이름 많이 불러주시고, 칭찬 많이 해주세요. 선생님 언제 한번 뵙고 싶네요.” 어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다가 선명해졌다. 내가 어떤 선생으로 한해를 살아야 하는지.


다시 주어진 봄에 선생으로서의 마음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내게 두통을 가져올 무리한 요구와 타협해야할 현실이 무엇인지 알기에 비장한 다짐의 시간이다. 무엇보다 작은 사람들의 시선을 관찰하고 나의 눈높이를 그들에게 맞추어야한다. 그들은 내게 새로운 우주를 소개할 것이며, 나는 영어를 가르쳐 준다는 이유로 무수히 뭉클한 찰나를 선물로 받을 것이다. 


“얘들아, 저 봄 봐라! 창문을 열었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힐끔 보곤 끝입니다. 지들이 그냥 봄인데 보일 리가 있나요.” 매해 봄마다 교실 앞에 성실히 핀 노란 산수유나무를 자랑해야겠다. 너희들이 내 봄이라고 한껏 치켜세워줘야겠다. 교실 안, 봄이 도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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