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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엄마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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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재 작성일17-05-15 10:01 조회2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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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총각 때 친구와 하숙을 같이 한 적이 있다.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이 층 단독주택 이었는데 친구와는 같은 은행에 다니는 직장 동료이기도 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두 번꼴로 대전에서 상경해 친구의 이부자리와 빨래들을 챙겨주고는 했다. 어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워 엄마라고 부르며 응석을 부리는 삼십이 다 된 친구의 모습이 다소 생경하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친구 어머니가 내게 넌지시 물었다.
“총각은 어머니가 안 계신가?”
“아니요. 계십니다.”
“그런데 이사 한지 몇 달이 넘었는데 한 번도 안 오시지?”
“……차멀미가 심해서 버스를 타기 힘들어 하십니다.”
“그래도 그렇지. 아들이 이사했는데 궁금하지도 않으신가……”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동생을 낳다가 출혈이 심해 사망하셨다. 출혈이 멈추지 않자 애기를 받던 동네 유일의 조산원은 어머니 배 위에 얼음 한 덩이를 올려놓고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6.25전쟁이 끝나고 2년쯤 지난 뒤라 모든 의료 환경이 열악했고 119구조대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저녁 무렵 집안 여기저기서 아스라히 연기가 피어오르고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다. 집에서 키우던 개 한 마리가 안개 같은 연기 사이로 뛰어 다니고 향냄새가 진동을 했다. 세 살 이전을 기억하는 사람을 천재라 하지만 그날의 충격이 워낙 큰 탓이었을까? 지금도 그때의 모습이 마치 눈앞에 습자지를 댄 것처럼 희미하게 떠오르고는 한다.
 
핏덩이 동생은 분유조차 없던 시절이고 젖동냥을 하기도 어려워 미군이 운영하던 보육원으로 보내졌고 세 살배기인 나의 양육은 외할머니의 몫이 되었다. 외할머니는 나를 끔찍이도 아껴 24시간 안거나 업고 다녔다고 한다.
이 년쯤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대청마루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졸고 있는데 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검정색 비로드 치마와 흰 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은 중년 부인이 아버지와 함께 들어섰다. 마루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화사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예쁘게 생겼구나! 몇 살이니?"
“다섯 살 이예요……”
새 어머니와의 첫 만남이었다.
며칠 후 아버지는 부엌 아궁이에서 사진을 태우고 계셨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었다. 차마 다 태우기가 안타까웠는지 몇 장을 따로 빼내어 놓으신 것 같았다. 당시 철없던 누나가 새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남아있던 사진 몇 장은 결국 아궁이 속으로 들어갔고 잠시 불꽃으로 타올랐다가 이내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이로써 어머니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한 장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새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신 이후로 남동생 둘을 더 낳았다. 동생들은 새 어머니 품을 뒹굴며 엄마, 엄마 하며 재롱을 떨었고 나는 먼발치서 가끔씩 그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새어머니는 콩쥐 팥쥐에 나오는 그런 계모도 아니었고, 신사임당같이 특출한 현모양처도 아닌 그저 평범한 분이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유리 벽 같은 것이 앞을 막고 있어서 선뜻 엄마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에서 엄마란 말이 맴돌다가 막상 부를 때는 어머니란 말이 튀어 나왔다. 결혼 전 객지 생활을 오래했지만 한 번도 오신 적은 없었다. 친구와 하숙을 같이 하기 전에는 다른 집 어머니들도 으레 그러려니 했을 뿐 이었다.
몇 년 전 외가 쪽 친척들을 수소문해 어렵게 친어머니 사진을 몇 장 구할 수 있었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에 희미하게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삼 십 대 초반 어머니와 오 십 대 후반 아들의 첫 만남이었다.세상에……부모보다 늙은 자식이 있던가? 참으로 불효막심한 일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지 않은 요즈음 생에 마지막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꿈속에서라도 어머니 얼굴을 한번 뵙고 이렇게 한 번 불러 보고 싶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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