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정원칼럼> 수필 > LIFE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Vancouver
Temp Max: 8.6°C
Temp Min: 6.24°C


LIFE

문학 | <문예정원칼럼> 수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현주기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9-27 18:23 조회1,385회 댓글0건

본문

음주의 변辯
                                                                                                                         노정숙 / 수필가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한 잔 하면서 저녁을 먹는다. 속이 비어서인지 따끈한 사케 석 잔에 취기가 온다. 오랜만에 발동이 걸려 노래방을 거쳐서 라이브 카페까지 갔다. 일 년에 몇 번 가동되는 풀 코스다. 살짝 취해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면 실실 웃음이 나온다. 나른해진 마음 따라 몸도 둥실 허공에 뜬 듯 가벼워진다. 조금 전까지 들끓던 불편한 생각들도 무게를 벗는다. 가끔 무장해제가 필요하다. 느슨해져야 한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서 놓여나야 한다. 이럴 때 음악도 한 몫 하지만 술이 도움이 된다.


글을 놓고 마주 앉은 자리는 겸연쩍다. 쓴 소리 한 마디를 하려면 먼저 달콤한 몇 마디를 흘리고 운을 뗀다. 건정건정 곰파지 못한 문장이 딱 걸리는 건 당연지사다. 눈높이와 취향에 따라 평가도 각각이다. 문학에 정답은 없지만 감동과 공감에는 기준이 있다. 사실 비평보다 정신 차리기 위해 마주 보고 앉은 자리다. 너를 보며 나를 만나는 일, 자신의 한계를 아프게 새기는 시간이다. 혹여 서운했을까 상대도 배려하고, 바닥이 드러난 민망한 시간을 보냈으니 누구보다 내 영혼을 어루만지고 달래야 한다. 그래서 술이 필요하다.


술은 가슴 깊이 묻어둔 감정을 끌어올려 도섭을 부리게 한다. 잊었던 용기를 끌어내고 눌러두었던 아픔도 풀어헤치게 한다. 강냉이가 터지듯 속살을 뒤집어 제친다. 깊었던 상처가 성나기도 하고 새 살이 돋기도 한다. 술주정뱅이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지만 부끄러움과 함께 정작 중요한 것까지 잊는 게 문제다.


술을 마시며 자주 필름이 끊기는 그 사람이 신기했다. 맨 정신에 할 수 없는 호기로운 행동을 기억 못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시도해 보았으나 술 분해 능력이 강한 유전자 때문인지 아직 정신을 놓아보진 못했다.


술을 오래 즐기려면 경계를 잘 지켜야 한다. 남을 불쾌하게 하는 음주는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눈물을 질금대거나 길어지는 넋두리까지는 봐 줄 수 있지만 아무에게나 강호령을 하는 건 참으로 밉살스럽다. 그 좋은 술을 게워내서도 안 된다. 위로 넣은 것은 아래로 내려 보내는 게 순리다. 순리를 거스르면 보는 사람은 물론 본인도 오래 괴롭다. 어느 작가는 취해서 개가 자신의 다리를 물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아파, 아파? 했다지만 이렇듯 유체이탈에 이르는 것도 곤란하다. 선을 넘지 않으려면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잘 알아채야 한다. 내 몸은 이미 낡은 부대자루다. 셈 없이 빠지기엔 벅차다. 바동대던 마음을 내려놓고 넉넉해진 웃음을 흘리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강호에 소문난 주당 삼총사는 매일 만나서 술을 마셨다. 며칠에 한 번씩 만나서 흠씬 마신다. 오직 술 마시는 일로 십 년 넘는 세월을 보내니 나름대로 주력을 인정받는 실력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당1이 금주 선언을 했다. 최근에 술에 대한 불감증이 생겼다는 것이다. 십 년 넘게 똑같은 행태의 반복에 몸이 지겨워하며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당1은 주당2, 3과 결별하고 제대로 된 음주 비법을 터득하겠다며 산으로 들어갔다.

 

주당1이 강호를 떠난 지 3년, 비로소 제대로 된 음주비법을 터득하였다. 그 비법은 조용한 곳에서 마시고, 침묵하며 마시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하며 마시는 것이다. 이는 바람소리와 함께 마시고, 빗소리와 함께 마시고, 눈 내리는 소리와 함께 술을 마신다는 기록파다. 이건 소설 속 술꾼 이야기다.


나는 음주의 고수가 되기는 글렀다. 요즘 내 음주는 만취의 고지에 이르기 전에 배만 부르고 더 이상 알코올이 넘어가주지 않는다. 술자리를 피하지 않은 그 동안의 공력으로 내 속에 뻐센 심이 빠졌는지 단 몇 잔으로도 기분 좋은 지경에 이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술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비바람 소리보다 조근조근 속삭이는 말소리, 때론 흥분해서 커지는 목소리, 남의 말머리를 제치고 달려드는 말소리까지 아슴아슴 날아와 박히는 것을 맥 놓고 즐긴다. 술자리에서 너울거리는 말, 취중진담 - 어느 때보다 속내가 드러나는 진솔한 그 말, 좌충우돌 날아가는 말들을 주워 볼만도 하다. 나도 이제 객기客氣를 버리고 필기筆記를 해야 할까 보다.


열변을 토하던 친구는 살짝 취해 무대로 나가 노래를 부르고, 나는 앉은 채로 흔들거리며 열렬히 박수를 쳤다. 취한다는 건 허허 속 몰입이다. 언젠가 취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그 사태를 생각만 해도 슬프다. 무엇에 취한다는 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41 LIFE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10-10 16:19:24 문학에서 이동 됨]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IFE 목록

Total 5,739건 26 페이지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신문광고 & 온라인 광고: 604.544.5155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338-4501 North Rd.Burnaby B.C V3N 4R7
Tel: 604 544 5155,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