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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고은의 편지] 인간의 생태계 파괴가 인간의 재앙으로 환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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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온라인중앙일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8-28 11:02 조회1,2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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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고 은
시인
미우(彌友)에게

 여름이 가면서, 자네가 오면서 이 속절없는 사이에 나는 있네. 자네의 노독을 위로하네.

 여기 우화 하나가 있네.

 두 마을의 아이들 불장난은 그 아이들의 성장기에 성장을 가로막는 미숙에서 한 발짝도 나아간 것이 아니네. 현실이 이런 딱한 우화 속에 처박혀서는 안 되겠네.

 ‘지난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라는 제례적(祭禮的)인 영탄은 차라리 우리네 현실을 추상화하는 역설의 서정이 되어야겠네.

 낮에는 뻐꾸기 소리를 듣고 밤은 소쩍새 소리로 깊어지는 여름이 그 마지막을 늦추는 동안에도 살찐 뱀들은 곧 허물을 벗을 것이네. 그네들 뻐꾸기와 소쩍새는 이름만 달랐지 한 집안일 것이네. 하나는 낮을 맡고 하나는 청승맞은 밤을 맡았네. 하나는 초여름을 울고 하나는 늦여름을 울어야 했네. 그래서 하나가 먼저 떠나면 그 뒤 하나는 나중에 떠나야 하는 철새의 세시(歲時)이기도 하겠네.

 이런 낮과 밤의 소리가 제아무리 지극정성을 다해도 그네들 자신의 행위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울음소리의 세상에 사는 인간의 해묵은 정서로는 한갓 향수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네.

 이 뻐꾸기·소쩍새를 이어 여름의 끄트머리는 온몸의 전율로 외쳐대는 매미 쓰르라미의 울음이네. 하기야 7년의 지하생활 끝에 지상으로 솟아난 전신(轉身)의 오열이라면 그 소리에 청각의 발작을 일으키는 쪽이 옳은 노릇도 아니겠네. 이 대낮과 대낮을 넘어 불야성의 밤마저 군림하는 사나운 매미소리도 곧 떠날 것이네.

 올여름은 가뭄이 길었네. 빗방울을 애타게 빈 것은 농부만이 아니었네. 그래서 대대로 천지불인(天地不仁)이건만 그 하늘은 하느님이고 땅은 땅대로 대지모신(大地母神)으로 섬겨야 했네.

 라틴아메리카의 초시간적인 소설은 심지어 7년 동안이나 비가 내리는 극한의 환경을 그려내지만 한반도의 남과 북 농경시대는 예로부터 5풍10우(五風十雨)를 이상적인 날씨로 삼아왔네. 닷새마다 바람 불어주고 열흘마다 비를 내려주는 그 풍작의 복지(福祉) 말일세.

 이제 이런 안성맞춤의 보우(保佑)는 턱도 없네. 봄 여름 가을 겨울도 그 운율을 잃고 제멋대로라네. 아니 기후 전체가 어쩌면 필사적으로 안정되어 온 근대 자연의 기율을 더는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네.

 옛 간빙기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 인류에게 지구상의 기온은 생사의 열쇠였네. 오늘의 인구 70억은 무엇인가. 얼어죽은 옛 조상들 가운데서 어쩌다 하나둘 살아남은 그 기구한 생명의 후예 아닌가.

 이런 엄중한 생존환경에서 때의 변동과 곳의 형세에 따라 인류는 자신의 세상을 씨족과 부족 그 이후의 선사(先史)로 이루어왔네. 이런 과정에서 온대의 남북 회귀선 23도 5분과 남북 양극 66도 5분의 위선(緯線) 사이가 인류의 보금자리로 된 것도 당연한 것 아닌가.

 온대는 한대와 열대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도 맡아서 양극단에도 어느 만큼 접속되어야 했네. 이른바 자연의 중도가 여기 있네.

 우선 이 남온대 북온대는 열대의 여름과 한대의 겨울이 각각 분명하네. 특히 북온대 동아시아는 그 남쪽의 떡갈나무와 북쪽 졸참나무의 숲이 서로 창화(唱和)하듯 우거진다네. 겨울의 한대지방 기단(氣團)과 여름의 해양 열대 기단의 영행으로 겨울이 겨울답고 여름이 여름다운 고온다습이라네.

 고대 백제가 나당연합에 패망한 직후 많은 유민이 일본으로 건너간 첫해 여름 그 망명지의 푹푹 찌는 습기 속에서 그 절반이 죽어간 사실이 있네. 이런 여름과 겨울의 차이 덕분에 그 앞뒤로 봄과 가을이라는 찬란한 금수강산이 있게 된 것 아닌가.

 세계문명의 분포가 결코 한대나 열대 아니고 온대에 집중된 사실은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연환경에 절대 의존하는가를 실증하고 있네. 그렇다면 그토록 자연을 수단과 객체로 삼는 문명이야말로 자연의 한갓 객체에 불과하지 않는가.

 한대의 원주민 종족들을 보면 오래전 간빙기의 조상이 떠오르네. 적도 일대의 벌거벗은 원주민을 만나면 문명 따위 전혀 필요 없이도 행복하게 살았던 옛 조상을 짐작해 보네. 그런데 우리네 온대의 이 축복받은 천연의 낙원을 숙명적으로 보장하는 날씨의 의지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네.

 기온은 지상의 모든 생사를 좌우하네. 그래서 인도의 극락설(極樂說)은 제일 먼저 시원한 바람 부는 날씨부터 말하고 지옥은 고온다습이거나 엄동설한의 열대·한대로 그려지고 있네. 

 지금 산업의 심각한 대기오염이나 생활의 자연파괴는 그 끝을 모르고 있네. 그 결과로 나타난 기후변화는 이 지상에서 열대 폭염의 여름만 남겨 북극곰과 남극의 펭귄들을 다 멸종시킬지 모르는 상황이네.

 나 하나의 삶에도 그 전반부의 가난을 견딘 자연의 행복과 후반의 풍요에 따라붙는 번뇌가 바로 잃어버린 계절을 닮고 있다네.

 할머니·할아버지 같은 천 년의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이네. 시간 속의 고향상실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의 긴 가뭄도 특이한 현상이 아니겠네.

 지구 생태계와 대기의 작용을 파괴하는 이 같은 재앙이야말로 이제 인간의 재앙으로 환원되고 있음이 틀림없네.

 지금 세계는 인간의 욕망이 이끌어온 문명이 문명의 반대인 야만을 낳아버렸네. 문명의 성장이야말로 야만의 팽창이네.

 몇 번째의 파국이나 멸종을 말하는 생태학의 경고가 ‘기후이탈’이라는 사태에 이른다면 더 이상 인류의 생명 존속은 눈곱만치도 보장하지 않을 대기의 지옥도가 눈앞에 그려지겠네. 그래서 여름 내내 열흘마다 내리는 비는 고사하고 백 일 만에 내리는 비도 어림없는 그 고갈(枯渴)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 아닌가. 저 소설 속 7년간의 비는 허구이고 이제 내일에 닥칠 7년 이상의 가뭄은 현실이겠네. 

 자네가 떠난 뒤 이런 여름의 고난에 또 하나의 고난이 더해졌네. 나라 안에 사막의 역병이 건너와 사회 전체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날이었네. 여기저기서 목숨이 목숨줄을 놓았네. 이 난국에 국가가 펑 하고 구멍 났다는 지적들이 귀에 쟁쟁했네.

 현실이 참담할수록 그 현실을 유추하는 회상도 따라붙었네. 내 이런 시절의 광경도 그래서 다시 한번 선열했네.

 해방 직후 한반도 전역에 퍼진 콜레라에 대한 기억이네. 그것은 소설 ‘페스트’ 따위를 전혀 모르던 시절의 생생한 상황이었네.

 고향의 두메 자연부락에 그 역신(疫神)이 퍼져 마을 전체를 숨막히는 공포의 격리 상태로 몰아넣었네. 감염자가 늘고 감염자 사망이 늘어갔네. 환자의 집 일대와 환자의 마을 일대에 금줄을 둘러 막아버렸네. 그럴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서로 원수가 되어 눈길도 마주치지 않게 되었네. 오랜 두레의 뿌리 깊은 공동체정신이나 상부상조, 그리고 도타운 정(情)은 그 언제였더냐 하고 지워지고 말았네.

 그 뒤의 전쟁시기 좌와 우라는 체제 미망(迷妄)의 이념에 끼어든 피의 세월도 그 무정과 비정의 연장 아니었던가. 요컨대 콜레라든 이데올로기든 일상의 이웃을 비상의 적으로 바꾸어버리는 인간 본성의 작희(作戱)야말로 절망의 광경 아니었던가.

 나는 어린 시절 동몽선습(童蒙先習)에서 익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첫머리보다 그 뒤의 ‘인간은 인간에게 이리’라는 신랄한 단정에 이따금 머리를 끄덕인 적이 있네. 맹자의 성선설을 외골수로 편들지 않고 순자의 편에 기울어지는 상황도 없지 않았네.

 지난해 여름을 진도 앞바다 생죽음에 멍든 가슴으로 보내고 그것이 올여름의 가뭄과 메르스의 세파로 이어진 책벌을 오는 가을 아침에나 내려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저 뻐꾸기·소쩍새도 가고 매미도 가고 이제 밤 지새우는 귀뚜라미의 때인데 이런 새와 벌레들의 은덕에 인간의 사악한 소음들은 이제 그만두어야 하겠네. 인간 또한 가장 아름다운 표현으로 그네들의 시혜(施惠)에 수혜의 답례를 바쳐야 하지 않겠는가.

 이 동아시아 한반도의 여름 하늘에는 이제 강남 제비가 없네. 저 지중해의 한 반도에 자리 잡은 밀라노에서도 베네치아에서도 제비들은 아직 하늘을 다 차지하고 있겠지. 자네가 거기서 왔네.

고은 시인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41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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