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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사랑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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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은경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1-19 10:12 조회1,2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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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캐나다 한국문협.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없이 그리워하던 부모님이 오셨다. 늦은 나이에 낯선 

땅에서 공부를 시작한 딸을 대신해 손녀들을 돌봐주시겠다며 어렵게 시간을 내서 오신 것이다. 

공항에서 아빠와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던 순간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엄마다, 엄마! 아빠!”

하얀 머리에 금테 안경을 쓴 아빠의 모습은 유난히 더 늙고 초췌해 보였다. 오랜 시간 비행을 한

탓에 피로가 쌓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리움을 품고 흘려보낸 세월 앞에 한껏 작아진 모습이었다. 

아린 마음을 묻어두고, 비로소 늙은 부모님의 품에 안겼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과 

편안함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엄마의 가방에서는 신토불이 먹거리가 끊임없이 쏟아져나왔다. 죽순, 곤드레나물, 더덕, 고사리, 

참깨, 매실액, 북어포, 멸치, 다시마, 미역, 떡에 누룽지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떨어져 있어서 나눌 수 없었던 사랑을 원 없이 주고 가겠다는 엄마의 굳은 의지가 

어려있었다. 

부모님이 함께 계신 집은 비로소 진정한 안식처가 되었다. 

달큼한 밥내와 고소한 기름내가 코끝을 간질이며 아침을 깨웠다. 한 상 차려진 밥상 앞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표 밥상이다. 먼저 알록달록 채소를 품은 계란말이가 

정겹게 눈길을 끌었다. 고추장 양념을 한 더덕구이와 구수한 된장국은 일미 중의 일미였다. 

텔레비전 광고의 한 장면처럼 우리 가족은 기쁨과 감격 속에 그렇게 아침을 먹었다. 

내 옆에는 늘 엄마와 아빠가 있었다. 유난히 자상하고, 정이 많은 부모님 덕분에 서른이 훌쩍

넘고,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도 마냥 철부지 아이처럼 살았던 것 같다. 내 나라를 떠나오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부모님의 소중함과 감사가 가슴 깊숙이에서 터져 나왔다. 든든히 먹고

부모님이 계신 집을 나와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평소와 달리 가볍게 느껴졌다. 천 명의 군사와

마리의 군마를 얻은 기분이랄까?

그리고 고된 하루의 끝자락에서도 집에 부모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감회가 마음속에 뭉클

하게 차올랐다.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침에 집을 나올 때 만큼이나 경쾌했다. 

‘엄마’를 외치며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를 반기는 어린 딸아이의 명랑한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에 우리 엄마가 있었다. 

“엄마!”
“오늘도 고생했네. 배고프지?”
엄마가 있는 집은 내가 엄마라는 사실도 잊게 할 만큼 넉넉하고, 자유로웠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누룽지 과자를 입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는 딸들처럼 나 또한 마음 놓고 어린아이가 되어 누룽지 

과자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엄마의 보호 아래 있는 

어린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 오는 날, 학교에서 올 딸을 마중 나간 아빠는 한 시간을 꼬박 밖에서 기다렸단다. 우산을 손에 

든 일흔을 코앞에 둔 아빠는 그렇게 마흔이 넘은 딸이 오기를 목을 빼고 기다렸나 보다. 길이 

엇갈려 먼저 집에 들어온 나는 다시 아빠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고등학생 딸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올때면 큰길까지 마중 나와 있곤 하던 젊은 아빠의 모습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뇌리를

스쳤다. 

 

아빠는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사랑을 그렇게 소리 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꿈같이 흘러가고 있다. 사람들은 내 얼굴이 전에 없이 윤이 나고,

생기 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엄마, 아빠로부터 넉넉히 사랑받고 있고,

보호받는 중이다. 물이 차고 넘쳐야 흘러가는 것처럼 사랑도 차고 넘쳐야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누군가에게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랑이 있다면 그 원천은 부모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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