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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현상과 인식, 그리고 굴레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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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도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7-12-11 09:16 조회1,2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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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아내가 화났다. “바닷가까지 뛰어갔다 와!" 아들에게 소리친다. 방과 후 운동장에서 놀다, 집에 돌아와 잠시 공부하고 오후 5시에 저녁을 먹는 아들의 일상. 저녁 먹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들의 운동량이 부족할까 봐 아내가 불안해진 모양이다. "오케이" 아들도 소리쳐 답하고 뛰어나간다. 언덕길을 800미터 정도 뛰어 내려가면 바닷가이다.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뛰어갈까? 엄마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꿈, 친구들과 오늘 밤 온라인상에서 나눌 이야기들?

 

 다음 날 새벽이다. 오전 5시에 벌써 이리 밝은 걸 보니 봄이 어느새 깊어진 듯하다. 아침 산책도 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으려고 홀로 집을 나서기로 했다. 내게는 참 소중한 시간이다.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현관문지방 한가운데 조개 조각들이 놓여있다. 이게 뭐지? 가지런히 한가운데 놓여 있는 걸 보니, 밤새 동물들이 두고 간 것 같지는 않고. 어제저녁 아들이 바닷가에서 주워다 놓은 조개 껍데기들이구나. 웃음이 나왔다. 진짜 바닷가에 다녀왔냐고 엄마가 따져 물을까 봐 증거물로 들고 온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재미 삼아 현관문 한가운데 놓아둔 것이다. 아들은 언덕을 뛰어내려가며 아빠, 엄마를 웃겨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나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만약 아내와 아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면 내가 조개껍데기들을 보면서 웃을 수 있었을까?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누가 이런 이상한 짓을 한 걸까 의심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진실을 몰라서 두려워하며 사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우리는 진실을 모르면서 어리석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버트런드 러셀이 쓴 "철학이란 무엇인가 (The Problems of Philosophy)”라는 책이 있다. 읽은 지 30여 년이 지나 이제 책 제목마저 기억에 가물가물하다. 그 책에 대략 이런 부분이 있었다. 우리가 색깔을 인식하는 것은 빛의 반사로 인해서이다. 아무 빛이 없는 동굴 속에 들어가면 노란색 물건도 노란색을 낼 수 없다. 빛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노란색 물건의 진짜 색은 무엇인가? 노란색인가? 검은색인가? 즉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이 상황을 직접 경험했다. 몰리브덴 광산을 개발, 생산한 적이 있다. 몰리브덴은 환한 회색빛, 밝은 은색이 나는 금속이다. 스테인리스 제품을 만들 때 쓰는 재료 중 하나다.  광산 개발 중 지질가들과 갱도에 들어가 광석들을 검토하던 어느 날. 안전모에 거치된 전등에 의지하여 갱도를 걸으며 암석을 살피는데, 암석의 곳곳이 빛나는 회색이었다. 지질가들이 고품위의 몰리브덴 광석을 보고 놀랐다. 아무리 높은 품위라지만 이렇게 많이 있을 수 있나. 대박이다. 워낙 믿기지 않아 찬찬히 생각들을 모았다. 이런! 안전모에 거치된 전등의 전구가 회색에 가까운 밝은 빛을 내는 LED 전구가 아닌가. 요즘 유행하는 밝은 LED 전구 빛에 반사되어 실제보다 더 많은 몰리브덴 색깔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약간 실망도 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금세 찾아 들었다. 실제 품위 및 광량을 잘못 인식해서 투자한다면 큰 손실을 볼 것이었기 때문이다.

 

"진실을 살기(Living the Truth)”라는 정신분석학 수필집이 있다. 정신병 치료의 첫걸음은 과거 경험의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정신병은 우리 삶을 구속하는 굴레이다.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진실을 찾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병은 아니지만, 몰리브덴 광석량을 잘 못 판단했다면 큰 투자 손실이라는 굴레에 나는 갇혔을 것이다. 아내와 아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면 내게 큰 웃음을 선사한 조개껍데기가 의심과 두려움의 굴레에 나를 가둬 놓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매일 접하는 여러 현상을 성급히 판단하지 않아야겠다. 성급한 인식에 근거하여 불긋불긋 일어서는 부정적 감정들에 휩쓸리지 않아야겠다. 차분히 진실을 찾아서, 발견한 진실에 근거하여 행동하여야겠다. 이것이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참 자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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