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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 [한나의 우아한 비행] 혼자 먹는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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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 한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1-02 09:08 조회3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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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서 굴국밥 시켰어요." 용건이 있어 메세지를 주고 받던 그는 점심을 먹어야 한다며 '굴국밥' 사진을 보내왔다. 시계를 보니 점심때가 좀 지났다. 굴이라는 단어만으로 바다의 비릿한 향이 전해온다. 사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이 시린 겨울날 어울려 보인다. 그다운 메뉴였다. 그의 노동이 뜨거운 국밥으로 소박하게 나마 위로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의 혼자 먹는 밥 사진을 보니 시 한편이 떠올랐다.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 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 넣어주는/먹는 일의 거룩함이여/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풀어진 뒷머리를 보라/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황지우, 거룩한 식사) 

 

나이든 남자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혼자 먹는 밥은 흔해졌다. 한국은 ‘혼족’이 증가하면서- 1인가족이 520만명이 넘는다- ‘혼밥혼술’ 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혼자 밥 먹기는 대세이다. 기꺼이 즐겨도 된다며 다양한 아이템으로 소비를 부추긴다. 보쌈과 삼겹살도 1인 양에 맞춰 도시락 용기에 담아 나오는 식당이 생기고, 남들 눈치 보지 않고 혼자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식당도 꽤 된다. 나 역시 한달 전 룸메이트와 헤어지고 그나마 일주일에 한 두번은 같이 밥을 먹던 식구(食口) 가 없다. 대부분의 끼니를 안팎에서 혼자 해결한다. 

 

글벗 요한은 연어회 한상 맛깔 나게 차려놓고 여유롭게 혼자 먹을 때가 가장 큰 쉼이라 했다. 누군가에게 가끔 혼자 먹는 밥은 즐거움이지만, 매번 혼자 먹는 밥은 형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퇴근 후 허기져서 아무 모양 없이 담긴 찬 음식을 먹어야 할 때면 괜시리 울컥해진다. 집 떠나 혼자 사는 것이 더 선명해진달까. 

 

엄마는 식구(食口) 중 누가 혼자 밥을 먹어야 하면 그 앞에 앉아 반찬을 얹어주며 말벗이 되어주곤 했다. 그 따뜻함의 의미가 이제서야 새겨진다. 그 사랑이 우리를 살찌웠던 것이다. 여럿이 둘러 앉아 맛있다고 호호 불며 먹던, 누구의 말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던 식구들의 동그란 식탁이 그리운 날이다. 그래서 그런가 혼자 먹는 밥이 흔해진 지금이라지만 누군가 혼자 밥을 먹고 있다면 그 앞에 앉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먹는 일엔 내남을 토닥거려주고 싶다. 

 

먹는 일은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거룩’한 일이다. 그 밥알이 몸 안을 돌아 살이 되고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에너지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집 떠나 혼자 먹는 밥을 통해 절실해졌다.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린, 시달릴 내 몸을 보살피는 거룩한 의식.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캐나다에서 엄마가 전화가 왔다. 하나하나 뭐 먹는지 반찬을 물으니 꼭 엄마가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따뜻해졌다. ‘이 세상의 혼자 밥 먹는 자들’의 거룩한 식탁에 하늘의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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