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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 본고장의 차지고 시원한 맛…장흥 내저 ‘실크매생이’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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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작성일18-01-23 13:50 조회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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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품질이 가장 뛰어나다는 장흥 내저 ‘실크매생이’로 끓인 국 한 대접. 현지 남성이 제대로 된 매생잇국을 보여주겠다며 끓였는데 국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장흥에서는 매생잇국을 젓가락으로 평가한다. 국 가운데 쇠젓가락을 꼽아 넘어지지 않고 서 있어야 하고, 먹을 땐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숟가락으로 떠 먹을 수 있는 매생잇국은 냉동품 등 품질이 좋지 않은 재료를 썼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생이 철이 오면 내저(內楮)마을에 가려고 3개월 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장흥군 대덕읍 ‘풀로만목장’에서 열린 쇠고기 성분 비교분석 발표회에 갔다. 거기서 내저마을이 멀지 않았다. 내저 매생이가 품질과 역사로 최고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 국을 끓이면 부드럽고 차지면서 맛이 시원하다. 향은 깊고 진하다. 요즘이 바로 제철이다. 설 무렵까지 절정이다.
현지인 남성이 서울 사람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끓인 매생잇국. 신선한 매생이가 많이 들어가 국이 아니라 반죽 같았다. 찬밥 두 수저만 말아서 먹었는데 한 끼 식사로 모자라지 않았다.

현지인 남성이 서울 사람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끓인 매생잇국. 신선한 매생이가 많이 들어가 국이 아니라 반죽 같았다. 찬밥 두 수저만 말아서 먹었는데 한 끼 식사로 모자라지 않았다.

취재 가기 전, 서울에서 매생이 음식 잘하는 집을 수소문해 먹어봤다. 다시 내저 매생이를 쓰는 서울의 음식점을 수소문해 이번 겨울 들어 서울 날씨가 가장 춥던 날(지난 11~12일) 찾아가 먹어봤다. 그리고 13일 장흥에 갔다. 서울~내저 직선거리는 약 350㎞인데 대중교통으로 7시간 가까이 걸렸다. 오전 7시에 길을 나서 오후 2시가 다 돼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까지 3차례 매생이 음식을 먹었다. 그러고 나니 서울의 매생이 음식점을 소개하거나 추천할 자신이 없어졌다. 대신 그곳 사람들이 매생이 음식을 해 먹는 방법과 손쉽고 믿을 만한 구입처를 소개하려고 한다.
장흥군 대덕읍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식당 점심상에 오른 매생잇국. 현지인들은 너무 묽다고 했다.

장흥군 대덕읍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식당 점심상에 오른 매생잇국. 현지인들은 너무 묽다고 했다.

장흥군 대덕읍 식당의 점심상 반찬으로 오른 매생이 나물. 국보다 물을 아주 적게 잡고 볶듯이 익힌다. 그곳에서는 ‘덖는다’고 한다. 국은 뜨겁게 먹지만 나물은 차게 먹는다.

장흥군 대덕읍 식당의 점심상 반찬으로 오른 매생이 나물. 국보다 물을 아주 적게 잡고 볶듯이 익힌다. 그곳에서는 ‘덖는다’고 한다. 국은 뜨겁게 먹지만 나물은 차게 먹는다.

도착해서 바로 대덕읍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이곳에는 매생이 음식을 독립 메뉴로 파는 식당이 없다고 했다. 상차림에 국이나 반찬으로 섞여 있을 뿐이다. 관광객이 많은 장흥읍에는 손님들이 자주 찾으니까 국과 전을 파는 식당이 몇 있다. 현지에서 합류한 4명과 돼지갈비를 주문하니까 매생잇국과 나물이 상에 올라왔다. 미리 부탁해 준비한 것이다.
 
매생잇국에 꼽은 쇠젓가락이 서 있어야
이곳에서 매생잇국의 평가 기준은 젓가락이다. 그릇에 퍼 담은 국에 쇠젓가락을 꼽아 넘어지지 않고 서 있어야 제대로 된 매생잇국이라 했다. 적어도 쪼개지 않은 나무젓가락은 서 있어야 한다. 매생이 농도가 진해야 한다는 말인데, 판매 기본단위인 1재기(380~400g)로 3인분을 끓이면 나무젓가락을 세울 수 있다.
 
또 수저로 떠먹어지면 좋은 매생이가 아니라 했다. 상온에 오래 둬 신선도가 떨어졌거나 냉동했다가 풀어서 가닥이 잘게 부러진 것이다. 신선한 내저 매생이는 가닥이 서로 뭉쳐있어 국수처럼 젓가락으로 먹어야 한다. 실제로 먹어보니 자연스럽게 파스타 먹는 자세가 나왔다. 왼손에 숟가락, 오른손에 젓가락. 현지인들은 젓가락만으로 ‘후룩’ 소리를 즐기며 먹었다.
 
매생이로 가장 많이 해 먹는 음식은 국이다. 이곳에서는 탕 또는 죽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지인 5명에게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끓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매생잇국의 기본재료인 매생이와 굴.

매생잇국의 기본재료인 매생이와 굴.

매생이를 씻어 거름망에 밭쳐둔다.

매생이를 씻어 거름망에 밭쳐둔다.

굴을 참기름으로 볶아 60~70%쯤 익힌다. 장흥 사람들은 ‘덖는다’고 표현했다.

굴을 참기름으로 볶아 60~70%쯤 익힌다. 장흥 사람들은 ‘덖는다’고 표현했다.

참기름으로 볶은 굴.

참기름으로 볶은 굴.

볶은 굴에 물을 붓고 끓인다.

볶은 굴에 물을 붓고 끓인다.

물이 끓으면 매생이를 넣는다.

물이 끓으면 매생이를 넣는다.

매생이 2재기(760~800g)을 넣었다.

매생이 2재기(760~800g)을 넣었다.



매생이가 고루 펴지도록 나무젓가락으로 이리 저리 헤집는다.

매생이가 고루 펴지도록 나무젓가락으로 이리 저리 헤집는다.

▷재료: 매생이 1재기, 굴 적당량, 물 맥주잔 1컵, 참기름·조선간장 약간, 다진 마늘(취향 따라).
▷조리
①물에 잘 헹군 매생이는 거름망에 밭쳐 물기를 뺀다. 헹굴 때 뭉친 펄이나 대나무 발에서 갈라진 거스러미 같은 이물질을 골라낸다.
②굴은 소금물에 살살 흔들어 씻고 물로 서너 번 헹군 뒤 체에 밭쳐 둔다. 굴의 쩍(얇은 껍질 조각)을 잘 고른다.  
③두꺼운 냄비에 참기름 두르고, 굴을 넣고 볶는다. 장흥 지역에서는 이 과정을 ‘덖는다’고 표현했다. (이때 원하면 다진 마늘을 넣는다.)
④굴이 60~70% 익어 향이 우러나면 물을 붓는다.
⑤물이 끓으면 매생이를 넣고 고루 익도록 젓가락으로 펴준다.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다(간을 하지 않기도 한다). 냄비 가장자리가 끓다가 복판에서 기포가 두어 개 올라오면 불을 끈다. 너무 끓이면 매생이가 녹아 곤죽이 돼서 먹기 어렵다.  
⑥그릇에 퍼 담고 참깨 몇 알 얹고 참기름 두어 방울 쳐서 먹는다.
완성된 매생이국. 간을 따로 하지 않았다. 내 입에는 싱거워 먹으면서 간장을 조금 넣었다. 매생잇국은 김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미운 사위에게 끓여준다는 얘기가 전한다. 뜨거운지 모르고 먹다가 입천장을 데게 해서 분풀이하려 함이다. 실제로 김이 많이 나지 않았다.

완성된 매생이국. 간을 따로 하지 않았다. 내 입에는 싱거워 먹으면서 간장을 조금 넣었다. 매생잇국은 김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미운 사위에게 끓여준다는 얘기가 전한다. 뜨거운지 모르고 먹다가 입천장을 데게 해서 분풀이하려 함이다. 실제로 김이 많이 나지 않았다.

매생잇국은 먹기 직전에 참기름을 두어 방울 치면 맛이 확 살아난다.

매생잇국은 먹기 직전에 참기름을 두어 방울 치면 맛이 확 살아난다.

매생잇국은 밥을 조금만 말아 잘 익은 김장김치를 올려 ‘삼합’으로 먹으면 가장 맛있다고 현지인들이 추천했다.

매생잇국은 밥을 조금만 말아 잘 익은 김장김치를 올려 ‘삼합’으로 먹으면 가장 맛있다고 현지인들이 추천했다.

매생이에 굴 대신 쇠고기·돼지고기·김치도
매생잇국에는 밥을 조금만 말아 잘 익은 김장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맛이 가장 좋다. 이 또한 이름하자면 ‘매생이·밥·김치 삼합’이다. 굴 대신 소고기를 넣어도 좋고, 돼지고기와 김치를 볶다가 매생이를 넣고 살짝 끓여도 맛있다. 된장을 옅게 풀고 돼지고기를 덖다가 물 붓고 매생이 넣어 국을 끓이기도 한다. 매생이에는 숙취 해소에 좋다는 아스파라긴산 성분이 콩나물의 3배나 들어있다. 그게 시원한 맛을 내기도 하니 해장음식으로 더할 나위가 없다.
 
매생잇국보다 물은 아주 적게 넣고 간을 약간 세게 해 볶아서 식은 뒤 먹으면 매생이 나물이 된다. 이렇게 볶는 것을 현지인들은 ‘덖는다’ 하고 나물 대신 매생이 덖음이라 부르기도 한다. 매생이 떡국도 쉽다. 국물이 끓고 떡이 익으면 매생이를 넣고 살짝 끓어오를 때 바로 불을 끈다. 매생이 칼국수도 비슷하다. 매생이를 많이 넣으면 맹물에 끓여도 국물이 시원하다. 지난 12일 ‘온지음’에서 저녁의 한 순서로 매생이 떡국을 먹었는데 사골과 멸치 육수를 섞은 국물로 끓였다. 매생이는 향만 내려는 듯 살짝 들어갔다. 아주 얌전한 맛이었다.  
장흥에서 남자들끼리 매생이 전을 부치는 과정이다. 일단 밀가루 반죽을 만들었다. 내저 매생이 제대로 알리기에 발벗고 나선 곡인무영 스님이 찍어서 보낸 사진이다.

장흥에서 남자들끼리 매생이 전을 부치는 과정이다. 일단 밀가루 반죽을 만들었다. 내저 매생이 제대로 알리기에 발벗고 나선 곡인무영 스님이 찍어서 보낸 사진이다.

반죽에 매생이를 많이 넣고 섞었다. 그밖의 다른 재료는 넣지 않았다.

반죽에 매생이를 많이 넣고 섞었다. 그밖의 다른 재료는 넣지 않았다.

반죽을 팬에 올릴 때는 주걱이나 국자로 할 수 없다. 집게로 들어 옮겨야 한다.

반죽을 팬에 올릴 때는 주걱이나 국자로 할 수 없다. 집게로 들어 옮겨야 한다.

팬에 반죽을 올린 모습.

팬에 반죽을 올린 모습.

익어가는 매생이 전.

익어가는 매생이 전.

매생이 회무침도 있다. 간은 하지 않고 매생이에 파·마늘 다져 넣고 식초로 버무린다. 밑간한 무채를 섞어도 좋다. 매생이 전에는 밀가루 반죽에 매생이를 섞고, 사정이 되는 대로 굴·낙지·문어·김치 같은 것을 곁들여 부친다. 최근에는 다양한 요리법이 개발돼, 라면·파스타·계란말이·빵에도 매생이를 넣는다. 현지인들이 매생이 요리 양념을 두고 극명하게 갈리는 취향은 마늘이었다. 처음 덖을 때 다진 마늘을 넣어야 맛있다는 사람도 있고, 마늘이 매생이 향을 죽이니까 넣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진공 포장한 매생이 10재기 1상자. 택배로 주문할 경우 총 비용은 3만9000원이다.

진공 포장한 매생이 10재기 1상자. 택배로 주문할 경우 총 비용은 3만9000원이다.

 

인터넷몰 ‘농민 & 어민’이 판매하는 매생이를 재기마다 낱개로 진공 포장하고 있다.

인터넷몰 ‘농민 & 어민’이 판매하는 매생이를 재기마다 낱개로 진공 포장하고 있다.

당일 훑은 '내저 매생이' 진공 포장해 택배
내저 매생이를 집에서 받아서 해 먹고 싶으면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인터넷쇼핑몰 ‘농부 & 어부(http://dyad5824.cafe24.com/전화 010-8538-5824)’를 이용하면 된다. 사이트는 허술해도 매생이는 믿을 수 있다. 12월 말부터 2월까지는 당일 생산한 물건을 1재기씩 진공 포장해 택배로 발송하고, 3월부터 12월 초까지는 진공 포장해 냉동해둔 것을 판매한다. 요즘 시세는 10재기 3만5000원, 6재기 2만1000원. 포장비 1000원과 택배비 3000원은 별도다.
 
매생이는 겨울 바깥 상온에서 4~5일, 진공 포장하면 1주일쯤 신선도가 유지된다. 진공 포장해서 김치냉장고에 두면 열흘까지 가능하다. 더 보관하려면 냉동해야 한다. 
마을 입구 언덕에서 내려다본 장흥군 대덕읍 옹암리 내저마을. 처음 매생이를 양식했고, 가장 품질이 좋은 매생이를 생산하는 마을이다. 도로표지에는 ‘내저매생이2길’이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 밭둑에선 매생이 양식 발을 말리고 있다.

마을 입구 언덕에서 내려다본 장흥군 대덕읍 옹암리 내저마을. 처음 매생이를 양식했고, 가장 품질이 좋은 매생이를 생산하는 마을이다. 도로표지에는 ‘내저매생이2길’이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 밭둑에선 매생이 양식 발을 말리고 있다.

전남 장흥군 대덕읍 옹암리 내저마을 초입에는 작은 고개가 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내저마을’이라 새긴 큰 비석이 우뚝하고, 길가에는 매생이 양식에 쓰는 대나무 발들이 제 일을 한 차례 마치고 둘둘 말린 몸을 밭둑에 기댄 채 나란히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마을 어디를 봐도 그런 광경이 펼쳐진다. 길가 전봇대에는 ‘내저매생이2길’이라고 쓴 도로표지가 걸려있다.  
매생이 양식장이 펼쳐진 내자마을 갬바우 일대. 이곳에서 나오는 매생이가 품질이 가장 우수하다는 오리지널 내저 매생이라고 한다.

매생이 양식장이 펼쳐진 내자마을 갬바우 일대. 이곳에서 나오는 매생이가 품질이 가장 우수하다는 오리지널 내저 매생이라고 한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매생이 양식 발들이 서서히 수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매생이 양식 발들이 서서히 수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마을 앞바다는 섬에 둘러싸여 호수처럼 보였다. 지척에 있는 작은 섬은 동쪽부터 초완도·원도·넙도이고, 그 너머 큰 섬은 조약도·고금도다. 이 섬들은 눈앞에 있지만, 행정구역상 완도군에 속한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말장(말뚝처럼 펄에 박은 대나무 장대) 수천 개가 울창한 대숲처럼 박혀 있다. 말장 사이 간지에는 매생이 발이 매달려 갯벌에 몸을 뉘고 햇볕을 한껏 쬐고 있다. 마을에는 나보다 한걸음 앞서 오전에 ‘국민배우’ 최불암씨가 다녀갔다고 했다. KBS ‘한국인의 밥상’ 제작팀이 다음날까지 이틀간 내저마을 매생이를 취재하는 중이었다.
 
양식 첫 성공한 박월례 여사는 아직 현역
선착장에서 매생이 양식이 주업인 주민 김영운(47)씨를 만났다. 그의 차는 에쿠스였다. 값을 알아보니 1억대였다.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귀향한 지 17년째라고 한다. 그의 어머니 박월례(68) 여사는 매생이 양식으로는 이 마을 원조이자 대한민국의 원조임을 자랑스러워했다.
매생이 양식에 처음으로 성공한 박월례 여사가 집 마루에 걸터앉아 42~43년 전 김 양식을 실패하는 바람에 매생이를 키우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매생이 양식에 처음으로 성공한 박월례 여사가 집 마루에 걸터앉아 42~43년 전 김 양식을 실패하는 바람에 매생이를 키우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영운씨는 최초로 매생이를 양식한 내저마을 박월례 여사의 아들이다. 도시에 살다가 2001년 귀향해 17년째 매생이를 양식하고 있다. 그의 도움으로 양식장 안에 들어가 보았다.

김영운씨는 최초로 매생이를 양식한 내저마을 박월례 여사의 아들이다. 도시에 살다가 2001년 귀향해 17년째 매생이를 양식하고 있다. 그의 도움으로 양식장 안에 들어가 보았다.

박 여사는 “내가 스물예닐곱 살이던 해(1975~6년)였다. 김 양식 발을 높이 매달았더니 김은 안 자라고 매생이가 길게 자랐다. 매생이라도 팔아야 먹고 사니까 훑어서 장흥·관산·대덕 장에 이고 나가 팔았다. 멀리는 영암 독천 장까지 갔다. 매생이 양식을 할 줄 모르던 때라 값이 비쌌다. 40년 전에도 1재기에 4000원 받았다. 여기 사람들은 김만 돈이 된다고 양식을 열심히 하였지 매생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해 김 값이 유난히 안 좋았다. 그래서 다음 해에도 김 대신 매생이를 조금 막아서 양식을 했다.(※매생이 포자가 붙은 대나무 발을 바다에 띄워놓는 것을 이곳에서 ‘막는다’고 했다) 이웃 서너 가구가 함께 했다. 양이 많지 않으니까 다라(함지)에 이고 장에 팔러 다녔다. 이후로 김 양식은 하지 않고 매생이만 계속했다. 6~7년 지나고서야 동네 사람들이 너도나도 매생이를 시작해 지금은 온 마을이 다 한다. 매생이는 예전부터 먹었다. 양식하는 걸 몰랐으니까 김 양식장 통대(김발 끈을 묶어 고정하는 기둥)에 매생이가 붙어 조금씩 자라면 긁어다가 명절에 석화 넣고 덖어서 차례상에도 올리고 나물로 먹었다. 귀해서 매일 먹지는 못했다”고 회상했다.
 
매생이는 옛 기록에 매산(苺山) 혹은 매산태(莓山苔)라는 이름으로 여러 차례 등장한다. 한자 ‘매’는 모두 이끼를 뜻한다. 장흥 매생이 얘기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는 전라도에서 세금으로 바치는 토산품으로 김·감태와 함께 ‘매산’을 언급했다. 『동국여지승람』(1481)에는 ‘매생이가 장흥 특산품으로 왕실에 진상됐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중 『연산군일기』(1509)에는 연산군 10년(1504) 3월 29일 “(임금이) 전라도 관찰사 김영정에게 유시하기를 ‘맛이 좋은 매산이를 가려 많이 봉해 올리라’ 하였다(諭全羅道觀察使金永貞曰 山擇其味好者多封進)”는 내용이 나온다. 정약전(1758~1816)이 흑산도에서 쓴 『자산어보(玆山魚譜)』(1814) 잡류 해초편 매산태(莓山苔)조에는 “누에 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척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며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러워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상세히 기록했다.

 
"갬바우가 품질 최고 내저 매생이의 고향"
현지인들은 “대덕읍 신리·옹암·내저마을과 회진면 죽도에서 나는 매생이가 장흥 매생이”라며 “그중에서도 갬바우(갯포) 매생이가 오리지널 내저 매생이다. 품질이 우리나라에서 최고다. 죽도 매생이는 갬바우보다 질이 떨어진다”고 했다. 갬바우는 내저마을 해안 일대를 이르는 지명이다. 이 마을의 나이 든 사람들은 아직도 매생이를 ‘매산이’라 부른다.
바다 쪽에서 들여다본 매생이 양식장. 양식 발을 지탱하는 대나무 말장이 숲을 이뤘다. 물속에서 자라는 매생이는 검게 보인다. 뒤로 보이는 동네가 내저마을이다.

바다 쪽에서 들여다본 매생이 양식장. 양식 발을 지탱하는 대나무 말장이 숲을 이뤘다. 물속에서 자라는 매생이는 검게 보인다. 뒤로 보이는 동네가 내저마을이다.

 

물이 빠지자 어민이 양식장에 나가 흐트러진 발을 정리하고 뭔가 줄을 당겨주기도 했다.

물이 빠지자 어민이 양식장에 나가 흐트러진 발을 정리하고 뭔가 줄을 당겨주기도 했다.

햇빛을 받도록 줄을 당겨 들어올린 매생이 양식 발.

햇빛을 받도록 줄을 당겨 들어올린 매생이 양식 발.

때로는 뱃전에 배를 걸치고 매생이 발을 정리하기도 한다. 2~3년 전까지는 수확할 때 저런 자세로 매생이를 훑었다.

때로는 뱃전에 배를 걸치고 매생이 발을 정리하기도 한다. 2~3년 전까지는 수확할 때 저런 자세로 매생이를 훑었다.

자부심의 근거는 무엇일까. 장흥환경운동연합을 이끌면서 내저 매생이 제대로 알리기에 발 벗고 나선 곡인무영 스님의 설명을 들었다.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매생이는 대부분 물에 잠겨서 자란다. 내저마을 매생이는 다르다. 갯벌 생태가 살아 있는 청정해역의 조간대(潮間帶)에서 자란다. 밀물 때는 발이 갯벌에 내려가 펄의 영양을 흡수하면서 햇빛[日光]과 햇볕[太陽熱]을 받아 광합성과 복합적인 영양활동을 하고, 물이 들어오면 바닷물에 잠겨 해류의 영양을 머금는다. 물밖에 나오지 않고 잠겨서 자라는 매생이는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날마다 일정 시간 물밖에 나와 있는 내저 매생이는 자라는 게 마디다. 크고 작은 섬으로 둘러싸인 앞바다는 내만(內灣)이 깊으며 펄의 경사가 완만하고 물이 들고 나는 유속은 느려 매생이를 부드럽게 쓸어주므로 가닥이 상하지 않고 적당한 물살에 유연한 힘을 키우며 자란다. 그게 ‘내저 매생이의 힘’이다. 천혜의 생장환경 덕분에 내저 매생이는 가닥이 길고 부드러우며 국으로 끓여도 풀어지지 않을 정도로 찰기가 있다. 맛과 향은 진하고 깊다. 이 매생이만을 찰매생이라고 부른다.”
내저마을 매생이 양식장 전경. 왼쪽 끝 선착장까지 둥그렇게 호를 이룬 양식장 길이는 약 2㎞에 이른다.

내저마을 매생이 양식장 전경. 왼쪽 끝 선착장까지 둥그렇게 호를 이룬 양식장 길이는 약 2㎞에 이른다.

발을 들어올리니 푸른 매생이가 잘 자라고 있다. 10~15㎝로 자라면 수확한다. 15㎝ 넘게 자라면 풍작이다.

발을 들어올리니 푸른 매생이가 잘 자라고 있다. 10~15㎝로 자라면 수확한다. 15㎝ 넘게 자라면 풍작이다.

장흥 ‘청정해역 갯벌생태산업 특구’ 선정
장흥 갯벌은 지난해 9월 전국 처음으로 ‘청정해역 갯벌생태산업 특구’로 선정됐다. 청정해역 갯벌을 활용해 매생이·무산김·다시마·낙지 등을 친환경 양식하고 천연자원을 복원해 지역 특화산업으로 육성하도록 정부가 보호·지원하는 바다라는 말이다. 이 바다에서 나는 것에 붙인 ‘찰매생이’라는 이름을 일부 다른 지역에서 따라 써서 이곳 사람들은 ‘실크매생이’라는 새 이름을 준비하고 있다.
 
내저 매생이가 품질은 좋아도 일반 소비자는 잘 모르고 시장에서 구별해 거래하지도 않는다. 전국 생산량이 장흥 30%, 타 지역(완도·고흥·강진) 70% 정도로 나뉜다. 내저마늘은 양식 규모가 가구당 80~100대인데 바다가 넓은 완도에서는 1000대까지 한다. 생산량으로 따라갈 도리가 없다. 몇 년 전까지는 내저 매생이 값을 1재기에 500원 더 쳐줬다. 적어도 200원 차이는 났는데 지금은 다 같은 값에 나간다.
 
김씨는 “도시에서 일하다가 2001년 고향으로 돌아와 매생이에 전념하고 있다. 귀향 초기에는 70대 양식해서 3개월 만에 1억3000만원을 벌었다. 그때 산지 출하가격이 1재기에 6000원 했는데 올해는 1500원에서 왔다 갔다 한다. 이번 시즌 소득은 5000만원대로 예상한다”고 했다. 5년 전까지는 내저마을 가구 평균 매생이 소득은 1억이 넘었다. 요즘은 4000만~5000만원으로 떨어졌다.
매생이 훑는 작업을 하는 집 마당에 BMW 740Li 승용차가 서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출시가격이 1억6000만원대였다.

매생이 훑는 작업을 하는 집 마당에 BMW 740Li 승용차가 서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출시가격이 1억6000만원대였다.

세척 제외한 생산 전 과정 여전히 수작업
매생이 양식 작업은 기계화·자동화가 거의 안 돼 있다. 씨받기부터 자연 그대로다. 추석~상강(10월 23일쯤) 사이 갯벌 가장자리 돌밭(내저마을에서는 이곳을 ‘삼박골’이라 한다)에 대나무를 쪼개서 엮은 매생이 발을 깔아놓으면 포자가 발에 달라붙는다. 매생이 포자는 물이 들 때 가장 늦게 닿는 상층에 있고, 김·파래 포자는 그보다 아래쪽 바다에 있다. 그러므로 바다 가장자리부터 발을 쳐야 한다. 박 여사가 김 발을 높이 맸더니 김이 안 자라고 매생이가 길게 붙었다고 말한 것은 이런 현상의 결과였다. 물이 들고 나면서 돌에서 씨가 올라와 발에 붙기를 25일쯤 기다리면 포자가 자리를 잡는다. 돌은 자연석이 아니면 씨가 붙지 않는다. 
매생이 양식 발이 물이 빠진 펄에 내려와 햇빛과 햇볕을 쬐고 있다. 이때 매생이는 펄의 영양을 흡수한다. 가장자리 돌에는 석화가 붙어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는 ‘돌굴’이라 했다. 늦가을 이런 돌에 붙어있던 매생이 포자가 발에 착생한다.

매생이 양식 발이 물이 빠진 펄에 내려와 햇빛과 햇볕을 쬐고 있다. 이때 매생이는 펄의 영양을 흡수한다. 가장자리 돌에는 석화가 붙어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는 ‘돌굴’이라 했다. 늦가을 이런 돌에 붙어있던 매생이 포자가 발에 착생한다.

첫발을 깔고 일주일 뒤 바다 안쪽 다음 칸에 발을 깐다. 열흘 더 있다가 세네째 칸에 발을 편다. 김씨의 경우 80대의 발 가운데 50~60대를 이렇게 씨받이 해서 매생이를 키운다. 발을 채종지에 오래 뒀다가 바다로 옮기면 매생이 성장이 빠르고 수확량도 많다. 섬에서 양식하는 사람들은 일주일 빨리 씨받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포자가 충분히 붙으면 발을 통째로 들어서 옮긴다. 만조 때 수심이 2~3m 되는 갯벌에 박은 말장들 사이에 발을 수평으로 펼쳐 매어 놓는다. 이 작업을 이곳 사람들은 ‘발을 막는다’고 한다. 그로부터 40~50일 지난 12월 하순께 첫 수확을 하고, 다시 씨받기해 발을 막는다. 두 번째 발을 치는 걸 ‘2중 발 막는다’고 한다. 이것은 2월 중순에 훑는다. 보통은 1년에 두 차례 수확하지만 3월 초까지 세 차례 하기도 한다.  
 
김씨의 나머지 발 20~30대는 채종과 다르게 본종(펄 씨받기)을 넣는다. 본종은 채종보다 늦은 시기에 자갈밭이 끝나는 곳에서 25~30m 내려간 곳에 말장을 박아 펄에서 두 뼘 높이에 발을 걸어서 물이 들고 날 때 펄에 붙었다가 물에 뜨기를 반복하면서 포자가 착생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다. 양식장 수심이 깊어 발이 펄에 닿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생이를 키우면 생산량은 많지만, 채취 시기가 늦어져 제값을 받기 어렵다.
 
겨울 깊을수록 '실크매생이' 맛도 깊어져 
매생이 소비는 겨울이 깊어지면서 늘어나 설 대목에 정점을 찍고 정월 대보름 지나면 급감한다. 유통상들은 이때 저장용 매생이를 사 모아 냉동해두고 다음 해 햇 매생이가 날 때까지 판매한다.
가운데 들어가서 본 매생이 양식장. 대나무 말장 2개 사이를 말하는 1간지마다 길이 4.4m의 발이 걸리고 그게 10개면 1대다.

가운데 들어가서 본 매생이 양식장. 대나무 말장 2개 사이를 말하는 1간지마다 길이 4.4m의 발이 걸리고 그게 10개면 1대다.

매생이 양식 발을 바다에 수평으로 펼칠 때 양쪽 끈을 묶으려고 펄에 박는 말장 더미.

매생이 양식 발을 바다에 수평으로 펼칠 때 양쪽 끈을 묶으려고 펄에 박는 말장 더미.

마을에서 양식 규모를 재는 단위를 ‘대’라고 한다. 1대는 10간지다. 1간지는 말장~말장 사이를 말한다. 간지마다 가로 2m, 세로 4.4m 대나무 발을 묶어 바다에 수평으로 띄운다. 중간 연결 부분을 합하면 1대의 전체 길이는 50m쯤 된다. 내저마을 어촌계에서는 양식 발 수를 집집이 80~100대로 나눴다. 양식할 수 있는 바다 면적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씨네가 막은 80대의 길이는 합하면 십 리(4㎞)쯤 된다.  
양식장에서 걷어온 발을 펼쳐놓고 매생이를 손으로 훑고 있다. 이 작업을 하는 일손은 아르바이트 대학생이나 외국인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작업대 양쪽으로 사용한 발 더미가 쌓여있다.

양식장에서 걷어온 발을 펼쳐놓고 매생이를 손으로 훑고 있다. 이 작업을 하는 일손은 아르바이트 대학생이나 외국인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작업대 양쪽으로 사용한 발 더미가 쌓여있다.

발을 걷어 집으로 가져가서 마당에서 훑은 매생이를 세척하려고 선착장 공용 세척기가 있는 곳으로 옮기고 있다.

발을 걷어 집으로 가져가서 마당에서 훑은 매생이를 세척하려고 선착장 공용 세척기가 있는 곳으로 옮기고 있다.

매생이 수확은 기계로 걷는 김과 달리 배를 타고 양식장에 나가 뱃전에 허리를 걸치고 엎드린 채로 바다에 친 발을 들어 올려 손으로 훑었다. 2~3년 전까지 그렇게 했다. 요즘은 바다에서 발을 걷어 올려 배에 싣고 나와 집 마당으로 옮긴 다음, 스테인리스 쇠파이프로 상판 없는 긴 테이블처럼 만든 거치대에 올려놓고 서서 훑는다. 운반·채취·세척 등 힘든 일은 주로 외국인 노동자나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이 한다.
 
이 마을은 대학생들 겨울방학 아르바이트 낙원이다.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작업복도 주고 일당 7만원을 준다. 외국인은 러시아·태국 사람이 많다. 태국은 부부가 많이 오는데, 부부에게 한 달에 300만원(남 170만원, 여 130만원)을 준다. 러시아 사람들은 남자 한 사람이 200만원을 받는다. 그만큼 일을 잘한다고 한다. 한국이 가장 추운 12월 하순~2월에 매생이를 훑다 보니 추운 나라 사람이 유리하다.
내저 선착장에 설치한 매생이 세척기는 마을 공동시설이다. 마주 보이는 섬은 완도군 초완도.

내저 선착장에 설치한 매생이 세척기는 마을 공동시설이다. 마주 보이는 섬은 완도군 초완도.

작업 대기 중인 매생이 세척기의 통 안.

작업 대기 중인 매생이 세척기의 통 안.

발에서 훑어낸 매생이에 섞인 갯물과 펄을 씻어내려고 세척기에 넣고 있다.

발에서 훑어낸 매생이에 섞인 갯물과 펄을 씻어내려고 세척기에 넣고 있다.

발에서 훑어낸 매생이를 공동세척장에서 세척하고 있다. 통 안에 매생이를 넣고 호스로 바닷물을 퍼 올려 포크 같은 발을 회전시키면서 세척하고 한쪽으로 물을 빼고 있다. 세탁기와 같은 원리다. 매생이 생산 과정에서 유일하게 기계화된 부분이다.

발에서 훑어낸 매생이를 공동세척장에서 세척하고 있다. 통 안에 매생이를 넣고 호스로 바닷물을 퍼 올려 포크 같은 발을 회전시키면서 세척하고 한쪽으로 물을 빼고 있다. 세탁기와 같은 원리다. 매생이 생산 과정에서 유일하게 기계화된 부분이다.

세척을 마친 매생이는 망으로 된 통에 쏟아지게 해 물을 뺀다.

세척을 마친 매생이는 망으로 된 통에 쏟아지게 해 물을 뺀다.


세척하고 물을 뺀 매생이. 마지막 작업을 하려면 실내 공동작업장으로 옮겨야 한다.

세척하고 물을 뺀 매생이. 마지막 작업을 하려면 실내 공동작업장으로 옮겨야 한다.

깨끗이 씻어 꼭 짠 뭉치 '재기'는 380~400g
훑은 매생이는 선착장에 설치한 공동세척장으로 싣고 가서 바닷물로 씻는다. 아주 큰 세탁기 같은 통에 넣고 바닷물을 끌어올려 회전식으로 세척을 한다. 유일하게 기계화가 된 작업이다. 그걸 다시 마을 가운데 있는 실내 공동작업장에 가지고 가서 바닷물로 찰찰 헹궈 건지면서 어른 주먹 크기로 다듬고 손으로 눌러 물기를 뺀다. 수십 년 숙련된 마을 아주머니들이 맡는 이 작업을 ‘짠다’고 하고, 그렇게 짠 뭉치를 ‘재기’ 혹은 ‘지기’라고 부른다. 무게는 380~400g이다. 재기로 지은 내저 매생이를 보면 대나무 참빗으로 곱게 빗어 동백기름 바르고 비녀 꽂은 할머니의 쪽 찐 머리가 떠오른다.
 
양식장 1대에서 한 번에 매생이 300~700재기가 나온다. 작황 따라 생산량 격차가 크다. 발에 착생한 포자에서 매생이 가닥이 누에고치 실처럼 가늘게 자란다. 40~50일 지나면 10~15㎝쯤 된다. 15㎝ 넘어가면 풍작이다. 그러면 1대 소출이 700재기는 된다. 1재기를 예전에는 보통 420~450g으로 잡았다. 그게 400g으로 내려오더니 380g으로 더 내려갔다. 한 주민은 “최근에는 360g까지 내놓은 것을 봤다. 이건 조금 심하다. 적어도 380g은 넘어야 한다”고 양 줄이기 경쟁을 걱정했다.
세척기에서 씻은 매생이를 다시 한번 씻으며 건져 물을 짜고 모양을 다듬어 상자에 담는다. 하나를 하는 과정이 10초쯤 걸리는 듯했다. 이 작업을 여기서는 ‘짠다’고 말한다.

세척기에서 씻은 매생이를 다시 한번 씻으며 건져 물을 짜고 모양을 다듬어 상자에 담는다. 하나를 하는 과정이 10초쯤 걸리는 듯했다. 이 작업을 여기서는 ‘짠다’고 말한다.

매생이를 ‘재기’ 지어 상자에 담은 모습을 보면 옛 여인들의 쪽 찐 머리가 생각났다.

매생이를 ‘재기’ 지어 상자에 담은 모습을 보면 옛 여인들의 쪽 찐 머리가 생각났다.

매생이 ‘짜는’ 작업이 한창인 오후 3시 무렵의 내저마을 매생이 공동작업장.

매생이 ‘짜는’ 작업이 한창인 오후 3시 무렵의 내저마을 매생이 공동작업장.

매생이를 마지막으로 씻고 건져 물기를 빼고 모양을 다듬은 뭉치를 ‘재기’라고 한다. 계량의 기본단위로 무게는 380~400g다. 숙련된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 작업을 하는 실내 공동작업장.

매생이를 마지막으로 씻고 건져 물기를 빼고 모양을 다듬은 뭉치를 ‘재기’라고 한다. 계량의 기본단위로 무게는 380~400g다. 숙련된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 작업을 하는 실내 공동작업장.

장흥이 김을 키워 한창 돈을 벌 때 매생이는 김 양식장의 천덕꾸러기였다. 밭에 나는 잡초 같다 하여 ‘잡태’로 불렸다. 그러다가 시세가 좋으니까 매생이 양식에 몰렸다. 젊은 사업가들이 어민이 많지 않은 섬 해역을 확보해 300대, 500대, 1000대까지 대규모로 양식한다. 1000대를 하면 수확기에 하루 8000~1만 재기씩 생산한다. 1재기에 1000원만 받아도 800만~1000만원 매출, 인건비 주고도 600만~700만원 수익이 난다. 그 물량이 시장을 흔든다. 물량 공세에 영세 토착어민들은 새우등이 터진다. 그런 어려움이 3~4년 이어지고 있다. 과잉생산으로 값이 내려가 이제는 김보다 시세가 못하다고 한다. 게다가 올해는 작황이 좋아 물량이 더 넘쳐나고 값은 자꾸 내려간다. 대규모 양식장은 바다의 흐름을 막고 물길을 바꿔 놓아 매생이 품질을 떨어뜨린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질서 해치는 상인 탓에 '내저 매생이' 피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상인들이 있어 내저 매생이는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달 초, 수확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서울 시장에는 햇 매생이가 팔렸다고 한다. 그걸 먹은 사람들은 맛이 없어 실망했다. 지난해 팔다가 남은 매생이를 냉동했다가 녹여서 잘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햇물이라고 속여 판 것 같다고 내저 사람들은 의심했다. 냉동한 건 얼린 대로 팔아야 하는데 상인들이 장난을 친다는 것이다. 소비자 우롱이고 생산자의 뒤통수를 치는 일이다.
 
불량품을 먹은 사람들은 ‘매생이는 맛이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생산량은 과잉인데 인식이 나빠져 소비가 줄어드니 피해는 결국 좋은 품질의 매생이를 생산한 사람들에게 돌아온다. 매생이가 맛이 없고 향이 덜한 것은 냉동했던 것을 녹였거나, 그런 것을 섞은 것이라고 한다. 매생잇국을 젓가락이 아닌 수저로 떠먹을 수 있으면 신선하지 않은 것이다. 냉동했던 매생이를 녹이면 윤기·끈기·탄력이 적고 가닥이 짧게 끊어진다. 심하면 부서져 가루처럼 된다. 맛이 떨어지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뿐만 아니다. 상인 상당수는 생산지와 관계없이 매생이 택배 발송지를 ‘내저마을’로 표시한다. 생산한 매생이의 판매를 택배로 소비자와 직거래하거나 상인에게 의존하는 어민들로서는 속수무책이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저마다 수집상과 연결돼 있어서 매생이를 짜 놓으면 일괄 수거해 간다.
생육환경이 아주 좋은 갬바우 해역 양식 발에서 잘 자라고 있는 매생이.

생육환경이 아주 좋은 갬바우 해역 양식 발에서 잘 자라고 있는 매생이.

포장 차별화, 제품 개발 등 자구책 모색 중
내저마을에서 주민들은 “그런 상인들이 없어져야 우리가 산다”고 한목소리로 목청을 높였다. 그들은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면서 “2~3년 고생하더라도 법인을 만들어 뭔가 자구책을 강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포장용 박스, 밀봉 테이프, 인증 스탬프 등을 다른 곳 물건과 다르게 만들어 소비자가 바로 구별할 수 있게 출하하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차별화 방안 두 가지도 고민하고 있다. 하나는 건 매생이 생산이다. 감태처럼 말렸다가 물에 풀면 가닥이 끊어지지 않고 제 모양대로 풀어지도록 말리는 기술이 필요하다. 매생이가 나지 않는 일본에서 말려서 보내 달라고 의뢰가 왔지만, 기술이 없어 하지 못했다. 또 해수를 정화해 깨끗하게 세척해서 소비자가 봉지만 뜯어 바로 조리해도 되는 청정 포장제품 생산도 연구 중이다. 매생이를 민물로 세척하면 하루만 지나도 상하기 때문에 바닷물로 세척해야 한다. 자본이 제법 들어가는 일이어서 시간이 걸린다.
 
때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뜻있는 사람들이 나섰다. 직거래를 위해 ‘농민 & 어민’ 인터넷몰을 만들고, 곡인무영 스님처럼 가치를 제대로 알리기 활동으로 측면에서 돕기도 한다.
장흥에 다녀온 지 이틀 뒤 인터넷쇼핑몰 ‘농민 & 어민’에서 보낸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매생이 2재기와 굴 1봉지가 들어있었다.

장흥에 다녀온 지 이틀 뒤 인터넷쇼핑몰 ‘농민 & 어민’에서 보낸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매생이 2재기와 굴 1봉지가 들어있었다.

택배로 받은 매생이 반 재기에 굴·떡과 조선간장 1작은술만 넣고 집에서 끓인 매생이떡국. 국이 끓자 매생이가 산뜻한 녹색으로 빛깔이 살아났다. 별다른 양념이 필요하지 않아 산지에서 먹은 국 맛과 다르지 않았다.

택배로 받은 매생이 반 재기에 굴·떡과 조선간장 1작은술만 넣고 집에서 끓인 매생이떡국. 국이 끓자 매생이가 산뜻한 녹색으로 빛깔이 살아났다. 별다른 양념이 필요하지 않아 산지에서 먹은 국 맛과 다르지 않았다.

반 재기를 넣고 집에서 끓인 매생잇국 한 대접. 쇠젓가락은 서지 않았지만 나무젓가락은 넘어지지 않고 서 있었다.

반 재기를 넣고 집에서 끓인 매생잇국 한 대접. 쇠젓가락은 서지 않았지만 나무젓가락은 넘어지지 않고 서 있었다.

※추기: 장흥에 다녀온 지 이틀 뒤 인터넷몰 ‘농민 & 어민’에서 진공 포장한 매생이 2재기와 굴 한 봉지를 담은 상자가 택배로 도착했다. 내 설명에 따라 아내가 매생이 1재기를 반으로 나눠 국과 떡국을 끓였다. 참기름·조선간장 말고는 어떤 양념도 넣지 않았다. 국이 끓자 검푸르던 매생이가 산뜻한 녹색으로 살아났다. 시원한 맛도 진하게 우러났다. 장흥에서 먹던 맛과 비슷했다. 쇠젓가락은 서지 않았지만 쪼개지 않은 나무젓가락은 섰다. 서울 음식점들의 매생잇국과 가장 다른 점은 색깔이다. 서울에서 먹는 국은 매생이의 산뜻한 초록이 살아나지 않고 죽거나 바랜 녹색이 다반사다. 목숨만 생사 유별이 아니다. 맛도 생사가 분명하게 유별하다.

[출처: 중앙일보] [이택희의 맛따라기] 본고장의 차지고 시원한 맛…장흥 내저 ‘실크매생이’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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