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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 [江南人流]십(十)화점 vs 백(百)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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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2-02 12:22 조회1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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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쇼핑은 머리 아픈 숙제가 된다. 방대한 종류의 물건들 속에서 내가 찾는 ‘괜찮은 물건’을 골라내기까지의 과정이 꽤 피곤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쇼핑을 하면서 ‘선천적 결정 장애’로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내 맘에 쏙 드는 물건이 없을 때, 차선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100가지가 진열된 상점보다, 10가지라도 내 마음을 움직이는 물건이 있는 곳에 가고 싶은 이유다. 글=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물건보다 경험…가성비보다 가심비
삶의 방식 제안하는 라이프 스타일 편집 숍이 뜬다


 

 
백화점엔 필요 없는 물건도 있다    

 
가정집을 개조한 인포멀웨어의 실내 풍경.

가정집을 개조한 인포멀웨어의 실내 풍경.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에 위치한 리빙 편집 매장 인포멀웨어의 문은 숨겨져 있다. 한 집씩 주소를 확인하며 찾아야 돌출 계단에 가려진 나무문이 눈에 들어온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매장이라 들어설 때는 누군가의 집에 방문한 것처럼 조심스럽기도 하다. 일단 들어서면 별세계다. 1940년대 영국 정보부가 비행사 탈출용으로 제작한 지도가 그려진 실크 스카프부터, 일본 작가가 만든 독특한 그릇, 태국의 공예마을에서 수공업으로 제작된 소형 베게, 심지어 저지 소재의 속옷까지 약 50㎡(약 15평) 남짓의 매장 곳곳에 눈길을 끄는 다양한 물건이 놓여있다. 품목도 놀랄 만큼 다양하다. 리빙 소품은 물론 가구·의류·커피 원두까지 판매한다. 하지만 각 물건의 분위기는 비슷하다. 단정하며 단순한 디자인이 대부분이고, 쓰임새 또한 확실하고 실용적인 물건들이다. 숍을 운영하는 홍성찬 대표는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모았다”며 “직접 써보고 좋다고 느낀 제품을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빙 편집 숍 인포멀웨어에 전시된 빈티지 글라스. 1825년 설립된 덴마크의 유리 제조 업체 홀메고드의 디캔터로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리빙 편집 숍 인포멀웨어에 전시된 빈티지 글라스. 1825년 설립된 덴마크의 유리 제조 업체 홀메고드의 디캔터로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최근 인포멀웨어와 같이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소규모 편집 매장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청담동의 1LDK, 한남동의 MTL, 신사동의 챕터원, 성수동의 더블유디에이치 등이 대표적이다. 식당이면서 각종 먹거리와 생활 소품을 판매하는 논현동의 굿사마리안레시피, 동네 슈퍼마켓이면서 잡화까지 취급하는 한남동의 보마켓도 이에 속한다.
공통점은 ‘규모는 작지만 품목은 다양하고, 해당 품목별로 소수의 선택된 브랜드만 소개한다’는 점이다. 가능한 선택의 폭을 넓고 다양하게 준비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던 기존 판매형태와는 확연히 다르다. 말하자면 수많은 물건과 브랜드 중 특정한 취향의 것들만 선별해 소개하는 형태다. 품목별로 최대한 다양한 브랜드와 제품을 종합적으로 취급하는 백(百)화점에 비교해 십(十)화점이라 부를만하다.
『물욕 없는 세계(스가쓰케 마사노부, 항해)』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빔스의 시라타 요 대표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책에서 그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범위를 축소해 나가는 것이 편집 숍의 역할”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편집 숍은 ‘십(十)화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백화점에 가면 뭐든 있지만, 필요 없는 물건도 있다”며 “편집 숍은 ‘이것만 있으면 돼’ 하는 물건을 골라준다”고 설명했다.  
     

 

1LDK 입구에 전시된 옷장. ‘내 방 옷장 안에 들어있으면 하는 것들’이 콘셉트다.

1LDK 입구에 전시된 옷장. ‘내 방 옷장 안에 들어있으면 하는 것들’이 콘셉트다.

시라타 대표가 언급했듯 십화점이 물건을 고르는 기준, 즉 필터는 ‘취향’이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편집 숍 1LDK의 한범수 대표는 어떤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하나 묻자 “내 방 옷장 안에 들어있으면 하는 것들”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1LDK 매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커다란 옷장을 마주하게 된다. 현재 ‘가장 주목할 만한 제품’들을 진열한 곳이다. 매장에는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의 일본 스트리트 스타일 의류를 중심으로 함께 매치하면 좋을 신발·가방은 물론 빗자루·거울·펜 등의 잡화까지 구비돼 있다. 1LDK는 일본의 주거 용어로 방 1개와 거실(Living), 주방(Dining), 부엌(Kitchen)으로 구성된 집을 말한다. 규모는 작지만 주인장인 한 대표의 집처럼 꾸며 놓았음을 의미하는 상호명이다.
편집 숍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숍의 정체성을 물으면 대부분 한 마디로 표현하지 못한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리빙 편집 숍 챕터원꼴렉트의 김세린 팀장은 “그냥 챕터원스러운 것을 판다”고 대답했다. 그 콘셉트에 딱 맞는 단어는 없지만 ‘느낌’은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챕터원의 김가언 대표는 “북유럽 디자인이 인테리어 시장을 장악했을 때, 그 외의 다른 것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브랜드가 바로 챕터원”이라고 했다.
십화점은 오너의 취향을 바탕으로 트렌드를 제안한다. 모두가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을 이야기할 때 오스트리아 가구 브랜드 GVT와 브라질 가구 브랜드 솔로스 등을 소개해왔던 챕터원꼴렉트 실내 전경.

십화점은 오너의 취향을 바탕으로 트렌드를 제안한다. 모두가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을 이야기할 때 오스트리아 가구 브랜드 GVT와 브라질 가구 브랜드 솔로스 등을 소개해왔던 챕터원꼴렉트 실내 전경.

바로 이 점이 기존 백화점 판매 시스템과 가장 크게 차별되는 점이다. 규모가 크고 다양한 브랜드를 취급하는 백화점의 경우, 시즌에 맞춰 해당 브랜드의 모든 신제품을 진열하고 고객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만드는 구조다. 스타일을 제안하기보다 제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장소로서의 개념이 크다. 반대로 십화점은 오너의 취향을 바탕으로 소수의 물건을 선택하고 역으로 트렌드를 제안하기도 하며 이를 바탕으로 고객을 설득한다.
트렌드 분석가인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백화점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인을 취향 제안 능력의 부재에서 찾았다. 김 소장은 “과거 큰 공간에서 많은 물건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백화점에 갔지만 요즘은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멋지고 세련된 물건의 모든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며 “단순히 여러 물건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해 제품을 제안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삶의 방식이 상품

 
서울 소월길의 남산맨션 안에 위치한 보마켓은 동네 슈퍼·카페·분식집을 겸하고 있는 독특한 콘셉트의 가게다. 일반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스팸·치약·라면도 팔지만 내추럴 와인이나 마비스 치약, 동전 파스 같은 색다른 수입품도 소개한다. 가게 한편에는 커피·샌드위치·시리얼 등을 먹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모든 물건이 빽빽하게 놓인 일반 슈퍼마켓과는 진열방식도 다르다. 벽에 붙은 선반에는 품목별로 10개 미만의 물건이 세련된 편집 매장마냥 놓여 있다. 보마켓 유보라 대표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들렀던 ‘미제 가게’의 추억을 담은 공간”이라며 “동네 주민들이 야외 테라스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식사도 하면서 자연스레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어떤 물건을 구매하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즐기고 경험하는 장소라는 말이다. 슈퍼마켓의 십화점 버전인 셈이다. 


 

보마켓은 슈퍼마켓이면서 동네 사랑방 역할도 한다.

보마켓은 슈퍼마켓이면서 동네 사랑방 역할도 한다.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상품을 팔고, 식당·커피숍·꽃집 등 다양한 기능의 숍들까지 포함된 ‘복합 공간’이라는 점도 십화점의 또 다른 특징이다. 2017년 12월 문을 연 논현동의 굿사마리안레시피는 유기농 식재료로 요리하는 식당과 같은 공간에 조명·가구를 판매하는 리빙 숍, 꽃·식물을 판매하는 플라워 숍이 함께 있다. 한남동에 위치한 MTL은 카페로 유명하지만, 실내 한쪽에선 의류·잡화 및 작은 가구 등을 판매한다. 청담동의 편집 매장 1LDK도 의류·잡화 등을 판매하는 매장 안쪽에 꽤 넓은 공간의 카페를 두었다. 모두 판매하는 상품 하나하나보다, 삶의 방식과 스타일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는 공간들이다. 1LDK 한범수 대표는 “매장을 기획할 때 공간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감도 높은 공간 연출은 오프라인 라이프 스타일 숍이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향은 성신여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다양한 볼거리·만질거리·즐길거리로 무장한 라이프 스타일 복합공간은 온라인 시장에 주도권을 뺏긴 오프라인 시장의 새로운 돌파구”라고 분석했다.
 

 

 
성능보다 마음을 움직여라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물질사회를 사는 요즘 사람들이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건 너무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책 『맥락을 팔아라(정지원 외, 미래의창)』의 저자는 상품이 과잉된 현재, 소비가 수단에서 목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수단으로서의 소비는 생필품, 이를테면 생수·쌀·식료품 등 없으면 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것들이다. 이런 소비는 현재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대한 많은 상품을 보고, 원하는 상품을 빨리 손에 넣을 수 있는 온라인 숍이 이런 소비에 적합하다. ‘카테고리 킬러(category killer)’라고 불리는 전문점들도 비슷한 양상이다. 다이소, 올리브영, 이케아 등이 대표적으로 한 품목에서 가성비 높은 제품을 최대한 다양하게 제공해 살아남는 게 특징이다.
식당과 플라워 숍 등이 한 공간에 있는 굿사마리안레시피.

식당과 플라워 숍 등이 한 공간에 있는 굿사마리안레시피.

십화점은 이런 온라인 숍, 카테고리 전문점과 대척점에 있다. 수단으로서의 소비가 아닌, 목적으로서의 소비를 추구한다. 물건을 효율적으로 구매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소비 그 자체가 목적이 되도록 매장과 상품을 준비한다. 성능과 가격을 따지는 ‘가성비’보다 소비 과정에서 즐거움과 경험을 추구하고 마음의 만족을 중시하는 ‘가심비(價心比)’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십화점이 오프라인 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여겨지는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편집 숍이 유통업계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특히 패션계에선 무이, 쿤, 한스타일 등 이미 10여 년 전부터 수입 브랜드 편집 숍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의 십화점은 이들보다 진화한 2세대 편집 숍이라고 할만하다. 새로운 브랜드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보다 깊고 뾰족하게 다듬어진 취향을 선보이고, 쇼핑 경험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진화했다.
디자이너 작품과 빈티지 제품이 섞여있는 챕터원꼴렉트 매장.

디자이너 작품과 빈티지 제품이 섞여있는 챕터원꼴렉트 매장.

개성 있는 라이프 스타일 십화점이 점점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이런 소비문화를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기에 가능하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소장은 “소비 패턴이 그만큼 다양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마켓의 유보라 대표 역시 “소득이 높아지고 사회가 성숙할수록 다양한 삶의 방향이 존재하고 이를 인정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며 “개성 있는 십화점에 대한 선호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십화점도 한계는 있다. 이향은 교수는 “성공한 작고 개성 있는 십화점이 많은 일본만큼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깊게’ 파고들 수 있어야 선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처: 중앙일보] [江南人流]십(十)화점 vs 백(百)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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