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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취미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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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숙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2-05 09:22 조회1,9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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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숙 인/ 캐나다한인문학가협회원 시인, 수필가  

                                                                                

 

체감 온도가 섭씨 영하 십 오도를 가리키는 한파가 계속되고 있다. 비씨주의 플로리다라는 켈로나는 비가 오지 않는 대신 일조량이 많고 눈이 많이 오는 도시이다.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엄청난 양의 눈이 내려 다니던 수영을 중단하니 온 몸의 근육들이 대반란을 일으켰다. 공기가 차가워지면 나무의 결이 틀어지듯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혈관들과 근육들이 저마다 아우성을 쳐댔다. 지구 온난화와 라니냐 현상으로 인해 이번 겨울은 지구촌의 기상이변이 잦으며 특히 북미 대륙 전역에 걸쳐 그 어느 때보다도 눈이 많이 오고 기온이  내려갈 것이라 했는데 일기예보가 적중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였다.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에 나는 일찌감치 동면할 계획을 세웠다. 눈이 녹기 전까지는 꼼짝하지 않고 집에서만 은둔할 생각으로 부랴부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고 식료품과 간식거리들을 장만해 두었다. 드디어 눈이 내리고 장장 열흘 넘게 집에서만 뒹굴거렸다. 그 흔한 스트레칭조차도 해주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각오로 운동을 시작하는 것도 한 해의 좋은 출발이 되지 않을까 싶어 운동을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전혀 녹지 않은 눈과 얼음이 덮인 도로를 운전하는 것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중의 하나였지만 새해이니만큼 인내심 을 발휘해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운전대를 잡았건만 출발한지 오 분도 되지 않아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게끔 사람들의 뇌구조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새해고 뭐고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나, 왜 굳이 이 빙판길에 나와 고생을  할까’ 깊은 후회를 곱씹으며 가까스로 수영장에 도착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힘을 주고 운전을 했더니 담이라도 걸린 듯 어깨가 무척이나 아팠다. 뜨근뜨근한 탕으로 바로 직행했다. 굳어진 어깨를 풀며 두 가지 의문이 일었다. 이십 사년 동안의 한결같은 취미가 늘 나를 편히 쉬지 못하 게 만드는 건 아닐까라는 부정과 어쩌면 그 한결같은 취미로 인해  늘 내가 부지런한 것은 아닐까라는 긍정이 동시에 일었다. 찬 것을 싫어해 아이스크림도 전자렌지에 돌려 먹는 내가 매일 찬물에 들어가는 것이 참말로 신기하기는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쉬지 않고 물살을 가르며 물속에서 헤엄칠 때마다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며칠 동안 수영을 하지못해 양 어깨죽지에서 날개라도 돋을 듯 내부로부터 뻗어나 오는 알 수 없는 근질거림에 근육이 뒤틀리고 사지가 불안정했었다. 수영을 하며 살아오는 동안 나에게 아가미가 생기기라도 한 걸까. 물속에서의 호흡이 그리 편할 수가 없었다. 먼저 오리발을 끼지 않고 천천히 스무 바퀴를 돌았다.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함이었다. 엄마 뱃속을 유영 하는 태아처럼, 이제 막 태어나 처음 가보는 넓은 바다에서 이런 저런 구경을 하며 천천히 헤엄치는 물고기마냥 자유롭게 팔을 내저으며 편안히 헤엄을 쳤다. 넓은 수영장엔 몇 명의 사람들만이 있었고 휴일이라 나른한 분위기의 음악을 틀어놓아 더욱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뒤로 드러누워 온몸의 힘을 빼고 팔을 젖지 않은 채로 물 위에 떠서 가만히 있었다. 그대로 눈을 감고 아무 생각을 애써 갖지 않으려 했다. 

아주 오래 전에 벽을 마주 본 체로 명상의 시간을 가졌던 생각이 났다. 하얀 벽을 바라보다 너무 한 곳을 오랫동안 쳐다봐서 눈알이 시리고 아파 눈물이 절로 흘러나와 정신이 하나도 없던 상황이었는데 스님은 다 잡은 방망이를 서로 빗대어 치며 잡념을 버리라고 벽을 마주하고 앉은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오가며 대갈일성을 해댔다. 스님이 방망이를 내려칠 때마다 명쾌한 소리가 법당의 공기를 가르며 피어올랐고 그럴수록 나는 방망이가 내는 소리를 따라 오히려 갖가지 틀린 생각들을 머릿속으로 하염없이 피워내고 있었다. 그러다 무척이나 배가 고프던 차에 먹고 싶은 음식들이 줄줄이 벽에서 나오는 환각을 체험했었다. 

나는 몸의 힘을 빼고 양팔을 가지런히 옆구리에 놓아두고 물위에 온전하고 반듯하게 누운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가만히 떠 있었다. 그때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모든 번뇌가 일시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공놀이를 하며 떠들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았고 나른하게 들리던 음악 소리도 먹먹해지더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정적만이 흘렀다. 온 몸의 힘을 빼니 비로소 나에게 들러 붙어 망상을 일으키던 나쁜 기(氣)들이 서서히 빠져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깃털같은 몸과 영혼에 자유 한 자락만을 싣고 정처없이 떠가는 빈 나룻배처럼 가벼운 느낌이 꿈결의 몽롱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두 주 동안 느꼈던 날개가 돋을 것처럼 쉴 새 없는 근질거림과 불편했던 근육의 뒤틀린 기운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짐을 느꼈다. 더할 나위 없이 정신은 맑고 상쾌했다.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새처럼 날을 것 같았다. 비로소 나는 물위에 누이었던 몸을 일으키고 오리발을 신었다. 이제는 좀 더 속력을 내기 위해 달려야 했다. 다시 스무 바퀴를 바람개비처럼 돌고 돌며 어느 덧 나는 바다위를 신나게 헤엄치며 점프하는 돌고래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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