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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예정원] 쉰 번째 밴쿠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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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2-26 10:18 조회5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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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진 양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봄 비에 촉촉한 땅을 밀치고 솟아 올라 피어나는 보라 빛 하이아신스와 노오란 수선화를 볼 때 마다 어설펐던 밴쿠버의 첫 봄이 떠오른다.  1968년 3월 10일 김포 비행장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날이자 밴쿠버 공항에 도착한 날이다. 이곳에 봄은 이미 와 있었고, 어느덧 올 봄으로 밴쿠버 나이 쉰 살이다. 단신으로 와서 할미가 돼 있으니 어쩌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는지! 

 

    대학에서 선교사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밴쿠버에 사는 캐나다인 여학생 하나를 소개 받았다. 편지로 교제를 시작한 인연으로 이민 도착지를 밴쿠버로 결정하게 되었다. 당시 20대 청춘의 가슴에 북미에 대한 동경심이 부풀어 있던 때라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혀서는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지금 쉰 살이 되었는데도, 아니 점점 더 낱말들이 가물거리고 머리에서 입술로 제때 전달을 못해 준다. 남들은 말하기를, “그렇게 영어권에서 오래 됐으면 대화에 문제 없겠네.” 라고 하지만 그들도 살아보라지, 그게 되는가. 이민 초기에는 말 상대가 주로 캐나다인이던 것이 점점 이민자 수가 늘어가면서 직장 밖에서는 거의 한국식 생활을 하게 됐으니 젊었을 때 잘 했던 발음도 지금 원치 않는 액센트가 섞여 나와 되물음을 당할 경우 민망할 때가 종종 있다. 학생 시절, 전국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 본 경험도 있건만….! 

 

    처음 계획으로는 밴쿠버에 영주하려던 것이 아니었지만 간호원(RN) 자격증을 손에 쥐고 보니 직장을 찾게 됐고, 천생 연분이었는지 여기서 결혼을 하게 되어 새로운 가정 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이 년 뒤부터는 태어나는 아이들을 돌보며 그 당시 공부하는 남편과 눈 코 뜰 새 없이 지냈다. 십육 개월 터울이 아들 둘이 조금 자라니 영어와 국어의 혼란 속에서 데이 케어(Day Care)를 거쳐 초등학생이 되었다. 외국 땅에 뿌리 내리며 인정 받고 살자니 우리는 각각 직장에도 충실해야 했다. 그런 중에도 집을 한 칸 마련하고 몇 년 뒤에는 시부모님을 모셔왔으니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튀듯 처음 십 년이 흘러갔다.  

 

    그 다음 십 년도 가정과 직장에 충실하면서 이민 20년 되던 3월 10일에는 편지 친구(Pen Pal)와 그의 부모 형제를 초대하여 그 동안의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며 감사와 축하 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대접했다. 30년 되니까 자연 나이로 말하면 ‘설흔 살에는 가정과 사회에 모든 기반을 닦는다’는 이립에 도달 했다. 그때 즈음에는 생활이나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그 해에 마침 미국에 정착한 옛 정동교회 동료들이 캐나다 록키산맥을 관광하기 원해서 우리 집으로 초청했다. 우리를 포함한 네 가정이 십오 인승 자동차를 빌려 남편들이 돌아가며 운전하고 아내들은 식사를 담당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의 여행을 했다. 모든 가정이 비슷한 시기에 북미로 와서 정착하는 과정은 누구나 힘들었지만 각각 전문직에 종사하며 하나님 잘 믿고 살아서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했다. 일행 중에 내과 전문의였던 장로님이 하나님 말씀을 담당해서 기회가 되는 대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찬양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잊히지 않는 귀한 재 상봉이었고 그 후에 그 장로님은 먼저 하나님 곁으로 갔다. 그 때 만나지 않았더라면 영영 보지 못했을 것이다.

 

    불혹의 나이 마흔을 거쳐 이제 ‘하늘의 명을 안다’는 지천명 쉰 살이다. 이쯤 되어야 자기가 해 나가야 할 일이 보인다고 하는데 실제 나이는 이미 많이 들어버렸다. 지금이라도 무엇이 보이는가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대로 그 동안 밴쿠버도 많이 변했다.  지난 달에는 오십 해를 자축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십 여 년 전에 가보았던 멕시코의 플라야 델 카멘 (Playa Del Carmen) 이라는 곳에 휴가 차 일주일간 다녀왔다. 이곳은 마야 (Maya) 문명지의 한 부분이다. 그곳 역시 환경이나 인심이나 생활하는 모습들이 많이 달라져있음을 보고 느꼈다. 어디 거기뿐이랴. 장수 시대에 살고 있으니 앞으로 어떤 세상을 살게 될지 궁금하다. 

 

    김포 공항을 떠날 올 때 전송 나왔던 한 친구가 나중에 편지로 알려준 이야기인데 어머니께서 얼마나 서운해 하시든지 그릇이 있었다면 흘리시는 눈물을 받아 채웠을 것이라고 했다. 어머님의 그 심경을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떠올리며 나약한 여인의 가슴 한 켠을 훔쳐온 것 같아 매우 안쓰럽고 죄송 했다. 살아계신 동안 몇 번 모셔다가 이곳 저곳 구경시켜드리고 잘 해드린다고 했지만 헤어질 때 마다 김포에서 그렇게 우셨다는 심정을 반의 반이라도 느끼며 보답했을까! 지금까지 지내오는 동안에 진정으로 감사한 것은 건강한 유전자를 물려주신 부모님 은혜이다. 또한 맑은 영혼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남은 생애를 감사하며 살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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