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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김언호의 세계 책방 기행] 일본 꿈나무들이 평화·생명의 정신 배우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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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redbear300 작성일15-06-27 11:07 조회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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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어린이책방 ‘크레용하우스’

작가 오치아이 게이코가 76년 설립 
힘들고 외로운 어린 시절의 힘 돼준 
책의 추억을 아이들에게 베풀 요량 

대지진 이후 사회운동 전파 역할도 
책방엔 반핵·평화 슬로건 붙여놔 
"꽃과 책의 소중함 일깨우고파"

 

 

“아이들은 먹고 놀고 잠잘 권리가 있다”고 페스탈로치가 말한 바 있지만, 나는 하나 더 보태고 싶다. “아이들에겐 책 읽을 권리가 있다”고.

일본 도쿄(東京)의 JR 야마노테선을 타고 고풍스러운 하라주쿠(原宿)역에서 내린다. 가로수가 아름다운 패션거리를 600m쯤 걸으면 오모테산도(表參道) 지하철역이 나온다. 그 뒷골목에 어린이책 전문서점 크레용하우스가 있다.

“아이의 관점에서, 여성의 관점에서, 친환경의 관점에서 문화를 생각합니다. 어린이나 여성, 핸디캡이 있는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는 누구에게나 살기 좋은 사회입니다.”
1976년에 크레용하우스를 창립한 작가 오치아이 게이코(落合?子·70)를 만났다.

“지난해 여성월간지 『좋겠다(いいね)』를 창간했습니다. 좋겠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세상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좋겠다’고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해나가고 싶습니다. 세상이 '안돼(No!)’라고 외치는 것만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넓혀나가고 싶습니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가르치는 『월간 쿠욘』을 30년째 발행하고 있다. 어린이, 여성, 가족, 유기농을 키워드로 아이들의 삶을 응원하는 잡지다. 


혼외딸로 태어난 외로움, 책으로 달래

1945년생인 오치아이는 67년 문화방송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차별을 당했다. 한 정치인의 혼외딸로 태어나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일 나가고 혼자서 책과 놀았다. 어린 시절, 책으로 그 외로움을 이겨냈다.

“아파트 계단에서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책의 주인공과 친구가 되어 놀았습니다. 책은 하늘이고 바다였습니다. 우주였습니다.”

아파트 근처에 서점이 있었다. 그의 놀이터였다.

“점원이 총채로 책의 먼지를 탁탁 털고 있었습니다. 왜 나가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초등학생이었지만, 먼지 털지 않고 책 읽는 아이들 그냥 놔두는 서점, 책 읽는 아이들에게 캐러멜 한 개씩 나눠주는 서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회의식 같은 것이 어린 시절부터 생겼다. 중학교 때는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고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와 친구가 되었다. 방송일 하면서도 그의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었다. 방송의 ‘소리’는 그때뿐이었다. 순간 사라지는 것이었다. 시집을 열심히 모았다. 


크레용은 자기 인생을 자기 색깔로 그리는 도구

74년에 퇴직하면서 전업작가로 나섰다. 한 여성 주간지에 에세이를 연재했다. 『스푼 하나의 행복』이란 시리즈로 출간했는데 많이 팔렸다. 이 책의 인세가 크레용하우스 개관의 기반이 되었다.

“아이들이 처음 손에 쥐는 표현 도구가 크레용이지요. 어른도 크레용 좋아하잖아요. 자기 색깔로 자기 인생을 그립니다.”

아이들의 심성과 향기가 느껴지는 책방 크레용 하우스. 아이들에겐 환상의 세계를 꿈꾸게 하고 어른들에겐 문득 순수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오치아이 씨에게 그림책이란 무엇인가요?”

“내면에 깊고 풍부한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닐까요? 영상·활자· 음악 등 이런저런 미디어를 통합하는 ‘슈퍼 미디어’라고 생각합니다.”

“크레용하우스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참 많겠습니다.”

“아이, 어머니, 할머니 삼대가 온 적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중학생때 자주 어머니와 함께 크레용하우스에 왔었습니다. ‘지금은 삼대가 함께 신세지고 있습니다’고 한 그 말이 10년, 20년 후를 목표로 뛰던 저에겐 정말 기쁜 말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양서 코너에서 데이트를 하던 남녀가 지금은 아이를 데리고 옵니다. 1986년 오사카(大阪)점을 여는 날, 아버지와 아들 2대 손님이 ‘오사카에 서점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칸센 요금이 부담스러웠거든요’라고 반색했습니다. 쉬는 날에 책 사기 위해 도쿄로 왔다고 했습니다.” 


반품하지 않는 서점, 베스트셀러 강요 안해 


크레용하우스의 스태프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신간회의’를 한다. 읽고 검토한 신간들을 설명하고 추천한다. 

“우리는 반품하지 않습니다. 좋다고 선택한 책은 책임지고 판매합니다.”

지금 일본의 신간 가운데 40%가 출판사로 반품된다. 

“반품되어 파손되는 책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크레용하우스를 시작할 때 도매회사 직원들은 반품제도의 활용을 권유했지만 오치아이는 그 관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큰 서점들은 베스트셀러만 판매합니다. 우린 많이 팔리는 책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는 현재 통권 414호에 이르는 월간 『크레용하우스통신』에 ‘오치아이 게이코의 크레용하우스 일기’를 쉬지 않고 쓰고 있다. 어린이책과 세계와 사회를 보는 그의 철학이 담긴다.

그는 스태프들에게 특정한 책을 권하지 말라고 한다. 한두 종의 책을 집중해서 진열하지도 않는다. 이런 책 저런 책을 두루 진열해서 독자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이른바 베스트셀러란 미디어까지 가담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크레용하우스는 어린이 서점을 넘어서고 있다. 3층 ‘미즈 크레용하우스’는 여성 전문서점이다. 먹거리에 관한 책뿐 아니라 페미니즘 고전까지 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시몬 드 보부아르, 한나 아렌트도 있다. 전쟁과 평화에 관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다룬 책들도 있다. 소설도 에세이도 있다.

“어린이의 인권도 여성의 인권도 어른의 인권, 남성의 인권과 똑같이 중요하지요. 어린이를 위해서 여성이 사회적으로 희생되는 것도, 여성 자신의 삶을 위해서 어린이를 희생시키는 것도, 그 어느 쪽도 행복하지 않은 일입니다.”

2층은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과 핸드크래프트를 판다. 아이들이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빨기 때문에 값은 조금 비싸지만 주로 독일에서 수입한 자연친화 장난감이다. 영국의 장애우들이 만든 장난감도 비치해놓았다. 지하에는 유기농산물을 판매하고 유기농산물로 조리하는 식당이 있다. 카페 기능도 함께한다.

“40대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계속 약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약을 먹어야 하나 했습니다. 먹거리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베지테리언데이를 합니다.”

크레용하우스는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늘 열려 있다. 졸업 없는 시민들의 평생학교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어린이책 학교’다. 개점 이래 한 달에 한 번씩 작가와 독자가 대화한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 배운다. ‘여름 학교’도 해마다 열린다. 올해에는 8월 2일부터 2박 3일간 진행되는데, 노벨문학상 작가로 평화운동에 나서고 있는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가 특강한다. 


"전쟁을 중단하라!" 외치는 서점

2011년 3월 11일, 그날의 동일본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를 계기로 그해 5월부터 매달 한 번씩 ‘아침 교실’을 열어, 핵 문제를 시민들이 함께 학습한다. 오치아이가 직접 주재하는 프로그램이다.

크레용하우스의 화분엔 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다. 서점 외벽에 ‘전쟁을 중단하라’ ‘핵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사랑과 평화’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책 읽는 소녀는 자라서 작가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소망대로 책방을 열어 주재하면서, 반핵·반전·반차별 운동을 펼치고 있다. 역사를 왜곡하는 정치인 아베 신조(安倍晋三)에게 위안부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라고 발언하고 있다. 오키나와(沖?)의 군사기지 반대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2012년 7월 16일 도쿄의 요요기공원에서 열린 ‘10만 인 집회’에서 오치아이는 역설했다.

“우리는 이런 중대한 범죄와 침략행위의 공범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존재를 걸고 싸우는 걸 멈추지 않을 겁니다. 원자력발전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것은 단 하나, 생명입니다.”

그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 어떻게 해서, 그 사람 자신이 되어가는가』 등 100권 이상의 책을 써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 반대에 나서면서부터 그의 생각과 실천을 담은 책 『하늘을 찌르는 성난 머리카락』(天衝く怒っている?)에서 그의 분노는 폭발한다.

“나는 화가 난다. 원자력 발전에, 원자력 발전의 구조에 나는 화가 난다. 이런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에 화가 난다. 일부의 이익을 위해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에 화가 난다. 이제부터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원자력 발전을 추구해온 사람들에게 나는 화가 난다. 이 인권침해에, 생명에 대한 범죄와 테러리즘에 나는 분노한다.”

반전·평화 운동을 펼치면서 아베 정권과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주간 금요일』의 편집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는 오치아이는 나와 인터뷰하는 6월의 그날도 ‘군사기지 반대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오키나와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년에 600개씩 사라지고 있는 서점의 소멸 현상에 가슴을 쳤다. 크레용하우스를 시작하던 76년, 일본에는 3만 5000 개의 서점이 있었다. 지금은 1만 5000 개로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크레용하우스를 통한 그의 책과 삶의 운동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꽃입니다. 길섶에 피어 있는 꽃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꽃과 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서점이 되고 싶습니다.”
크레용하우스와 한길사는 같은 해에 창립했고 그와 나는 같은 해에 태어났다. ‘책’을 삶으로 삼는 사람들은 이내 이심전심이 된다. 나는 일본에 책구경 갈 때마다 책방 크레용하우스에 들른다. 동심을 만난다. 책의 유토피아가 거기 있다. 

 

남윤호 기자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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