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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문학가 산책] 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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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onymou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11-03 15:28 조회1,0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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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 모퉁이에 여린 새순들이 돋아나 있기에 처음엔 잡풀인가 싶어 별로 관심을 두지도 않았는데 초여름이 되자 작은 마름모꼴의 녹색봉지들이 줄기마다 매달려있어 살펴보니 꽈리가 분명하다. 

손가락으로 열매를 만져보니 밴쿠버의 기후나 풍토가 서울과 달라서인지 꽈리 알이 콩알만큼 작다. 

뒤뜰에 심겨진 꽃나무 몇 그루에 가끔 물이나 주고, 저 혼자 무성해지다 여름이 되어 꽃이 피면 감상이나 했었는데, 꽈리나무를 발견한 후엔 아침마다 물 주고 마른 잎 따내 주며 꽈리 알이 얼마나 여물었는지 살펴보며 시간을 보낸다.

며칠 전에 언니 두 분이 밴쿠버에 다니러 왔다.  즐겁게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다 먼 추억을 회상해 보려 꽈리를 보여주었다. 언니들은 이곳에도 꽈리가 있다는 게 신기한가 보다.“옛날에 언니들이랑 꽈리 불며 놀던 기억이 난다”하니 이젠 할머니가 된 언니들도 옛 생각이 나는지 한 마디씩 한다. 어렸을 때 마루에 앉아 입이 아픈 줄도 모르고 꽈리 불던 이야기를 하며 사랑이 햇살처럼 내리던 고향집을 눈앞에 그려본다. 

채송화 맨드라미 봉숭아 나팔꽃, 담 밑에 자라던 꽈리, 방울토마토 보다 더 작고 예쁜 꽈리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돌려가며 만지다 뾰족한 옷핀으로 씨를 빼내 입안에 물고 꽈르륵 꽈르륵 개구리 우는 소리를 내곤 했다. 

옛 시절엔 공기놀이 소꼽놀이 고무줄놀이 꽈리불기 등이 여자아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놀이 기구였다.  

허지만 아파트 생활로 생활환경이 많이 바뀌고 수 많은 새로운 장난감들이 나오면서 꽈리 불던 놀이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이름도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꽈리를 들여다보니 열매 하나하나가 작은 등이 되어 나를 감싸주는 기분이 든다. 

가을이 깊어지며 마치 등불이 매달린 듯 한꺼번에 꽃불이 일기 시작한다. 

햇살, 바람, 흙이 고향 같지 않았을 텐데 한결같이 똑같은 등불을 매달고 있다. 

이곳에선 등불이 담긴 초롱같다고 'Chinese living lantern' 이라 불리는 이 열매, 행복했던 기억들이 열매에 알알이 담겨 있다. 

유년의 나를 즐겁게 해주었던 꽈리가 있는, 고향을 닮은 뒤뜰을 가져본다는 기분은 참으로 멋지고 포근한 일이다. 

이주희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9-28 17:12:20 LIFE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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