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부동산 경제 | 비트코인 웹소설 '누가 사토시 나카모토를 죽였나' (3) 중산층의 몰락 > 밴쿠버 중앙일보 뉴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Vancouver
Temp Max: 0°C
Temp Min: -3°C


밴쿠버 중앙일보 뉴스

부동산 경제 | 13) 부동산 경제 | 비트코인 웹소설 '누가 사토시 나카모토를 죽였나' (3) 중산층의 몰락

사도시 기자 입력18-02-08 08:01 수정 18-02-08 16:58

본문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불리는 사토시 나카모토를 둘러싼 이야기를 픽션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편집자> 

 

금융의 재앙에 휘말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운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많은 사람은 운에 속는 경향이 높다. 신입 사원과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난다. 

 

“한 번의 횡재를 실력으로 생각하며 베팅을 크게 하다 보면 다 잃어버리는 것이 금융계 속성이야. 주식이든 채권이든 파생상품이든 금융은 종전의 가격들로는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이례적이야. 극단적인 가격의 움직임들로 가득한 게 오히려 일반적이지.”

 

“네. 명심하겠습니다. 선배.”

 

“응. 내 말을 금과옥조로 생각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원칙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버지니아 페어팩스 시티 비엔나에 있는 나의 집. 워싱턴 근교의 이곳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집 앞 구석에 놓아둔 농구대는 내 게임기였다. 그때의 순수함과 풋풋함을 뒤로 하고 나는 거대한 탐욕의 집단에서 돈놀이에 물들어 있었다. 나의 어머니는 한국계 일본인이고 아버지는 미국인이다. 그들은 독일에서 유학했는데 그곳에서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어머니는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아버지는 은퇴를 앞둔 미국 재무성 공무원이다. 간만에 아버지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일련의 월가의 사태에 대해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건을 복기하는 것은 예측하는 것보다 항상 쉬운 거야. 1999년에서 2000년 초반의 닷컴 버블의 붕괴 역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 아니겠어.”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심한데요.”

 

“그래. 난 그 원인을 말하는 거야. 2000년 중반 내 기억으로 연방준비은행이 결정하는 정책 금리인 기준금리가 6.5%였지. 그 기준금리가 2003년 6월 1%까지 떨어졌어. 음.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였다고 보면 되겠다. 그 말은 미국의 은행들이 연방준비은행에서 거의 공짜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는 거야.”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개념이다. 그게 마이너스니 공짜나 다름없다는 거다.

 

“네. 분명히 기억이 나요. 월가의 은행들은 그 돈을 부동산에 투자했어요. 상환능력도 없는 일반인에게 대출을 해주었는데 부동산이 워낙 호황이라 대출을 받은 서민들이 당연히 원금을 갚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죠.”

 

금융위기 이전에 전 세계적으로 주택가격의 버블 논쟁은 한창이었다. 버블은 항상 생각보다 오래가고 어느 순간 터진다. 그리고 그것이 버블이었다는 것은 한 참 후에 터져야만 안다. 

 

“버블이었어. 빌, 인간은 버블이 생기면 으레 오르는 말에 올라타서 뛰어 내릴 채비를 하지. 그러나 그 뛰어 내리는 순간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주식도 부동산도 버블이 꺼진 후에는 제 값을 받고 팔기가 상당히 힘들어. 경우에 따라서는 오랜 인고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거야. 우리는 이제 그런 고통을 감내해야 해.”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앞날을 걱정하는 공직자의 표정이었다. 

 

“모기지 상품의 기간이 30년이 되는데 원금과 이자를 당장 회수하는 게 어렵지. 이를 당장 현금화하려면 누군가에게 팔아야 하는데 너도 알다시피 쪼개기를 하는 금융기법(증권화)이 필요했던 거야.”

 

이 쪼개기 한 파생상품이 전 세계로 불티나게 팔려갔다. 그 중에는 신용등급이 낮은 모기지인 서브 프라임 모기지도 있었다. 그 쪼갠 상품이 세계적인 문제로 번졌다. 

 

“부동산 열기가 과열되자 폭등하는 주택 가격을 우려한 연방은행이 긴축정책을 감행한 게 화근이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니. 기준금리도 올리니 대출 금리도 상승할 수밖에 없지. 서민들에게 집 한 채 주겠다는 정부 정책이 선의였는지 몰라도 결국은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온 거야.”

 

서민들은 의도하지 않게 피해의 대상이 되었다. 감당이 안 되는 집사기를 감당한 것이 파산이라는 슬픔으로 다가 온 것이다. 아버지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공직자로서 복잡한 심정을 토로하는 입장이었다. 아버지는 미국의 경제처방에 대한 자기반성의 느낌을 소회하고 있었다. 

 

“워싱턴 컨센서스(합의)에 요즘 회의를 느껴. 미국이 다른 나라에게 요구하는 이 경제 개혁 처방이 나라를 불문하고 효과가 있는가에 의문이 든다. 물론 원래 의도는 그런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었어.”

 

워싱턴에는 재무부를 비롯하여 많은 부처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미주개발은행(IDB) 같은 국제금융기구가 모여 있다. 미국의 관계, 경제학계, 금융계가 합의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식 시장경제의 대외확산 전략을 상징한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되받는다. 

 

“그래요.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죠.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정책이란 것 말이에요. 그래서 많은 국가의 시민단체는 이를 제국주의로 비난하지요.”

 

“응. 미국이 90년 대 들어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념과 철학에 따라 세계화를 추진하며 미국 기준의 경제개혁을 강요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 그래서 맹공격을 받았지. 반 세계화 진영의 구호나 출판물에도 흔히 볼 수 있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세계 경제에 미국 기업이 진출하기 쉽게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금융자본주의의 음모’라고 풀이될 수 있겠죠.”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원작자의 뜻은 그게 아니었어. 미국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정치경제학자 존 윌리엄스 이야기야. 그는 1989년 남미경제를 위한 정책보고서에서 10가지 개방개혁처방을 제안했어. 그 제2장의 제목이 이 단어였어.”

 

나도 안다. 그가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꼭 나쁜 의도만은 아니었다. 물론 미국 우월주의를 완전히 버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 역시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공무원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우리는 과연 세계를 위해서 일하는 건지에 의문이 들어. 원조의 규모도 줄여나갔고 우리가 개입한 전쟁의 상흔은 여기저기에 있어. 하지만 자유주의를 수호하고 냉전시대를 극복한 미국의 공을 너도 알아야 해.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더 좋은 세상을 꿈꾸며 이제 한 인격체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나의 아버지 제임스 스미스. 그는 나의 우상이다. 하긴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도 워싱턴 컨센서스를 ‘시장근본주의’이라고 비난했다. 199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개발도상국에 고금리 정책을 강요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세계은행에서 나오면서 이 용어를 거론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같은 언론들은 ‘워싱턴 혼란(Confusion)’, ‘워싱턴 불화(Dissensus)’라며 폭격을 가했다. 

 

“존 윌리엄스는 억울했을 거야. 수차례 기고문을 통해 순수성을 입증하려고 했지. 그의 중남미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으로 변질이 되는 지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을 거야. 빌. 누구나 생각이란 도그마에 빠질 수 있단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이론이나 처방이 어디 있겠니?”

 

“네. 그렇죠.”

 

“존 윌리엄스도 어쩌면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야. 그는 항변을 멈추고 2000년에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글로 피력했지. 그가 중남미의 한 경제학자에게 자기가 생각했던 말의 원래 의미대로 단어를 사용하도록 설득하려고 했던 거야. 음 그에게 돌아온 답변은 냉정했어. ‘그 단어의 지적소유권이 이미 당신에게서 인류에게로 넘어갔다’는 거야. 책을 쓰면 해석은 독자가 하는 거지.”

 

“아마 그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것 같아요.”

 

“정책의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니고 한 나라의 정책 처방이 다른 나라에 맞는다는 보장은 더 더욱 없는 거야.” 

 

한 학자의 중남미경제개혁프로그램에 대한 개념규정이 인류가 쓰는 개념으로 확장 발전되었다. 그건 세계적 차원에서의 큰 흐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워싱턴 컨센서스라 일컬어지는 기획은 우리에게 ‘세계화’ 라는 이름으로 강요되었다. 

 

“빌. 세계화는 분명히 공과 과가 있는 거다. 세계는 양적으로 성장을 했고 2000년 일시적으로 중남미는 호황을 누렸지. 그리고 금융위기 이후 높은 원자재 가격과 유가상승으로 베네주엘라는 중남미의 패권국가가 되기도 했어. 높은 유가 덕분에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을 자국민에게 썼고 우방에도 상당한 자금을 제공하였지.”

 

“네. 그들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저주했지요. 하지만 워싱턴 컨센서스를 떠나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파도와 같은 자연현상이 되었어요. 어느 한 국가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은 아니죠. 하지만 미국식 세계화에 대해서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내게 어린 시절 뛰놀던 길모퉁이의 농구대가 보인다. 농구공을 가져와서 슛을 계속했다. 어느 순간 농구공이 내 친구 릭의 집 잔디밭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그곳은 팻말이 꽂혀 있었다. 안 그래도 릭을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For Sale(집 팝니다)’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아! 릭의 집까지.”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아마도 은행이 저당을 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중서부 지역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뉴스에서 나왔다. 릭의 집에 아무도 없어 보여 어머니에게 부리나케 달려가 물었다. 어머니의 대답은 담담했다. 

 

“법원에서 퇴거 명령을 받았어. 평생 살던 집에서 나가라는 통지였는데, 가혹하지. 너와 추억이 담긴 집이었는데. 에고. 이번 경우는 릭의 엄마 사업이 안 된 것도 관련이 있어. 무리하게 집을 하나 더 샀는데, 대출금리가 오르니 집을 유지할 방법이 없었던 것 같아.”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어머니가 쭉 목격하셨나 봐요.”

 

“응. 지금까지 정든 집에서 떠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야. 법정에 서서 하소연도 했고 나도 방청객으로 참여도 했는데 법은 냉정하더구나.”

 

“돈에는 모두가 약하죠.”

 

“그래. 어느 날 아침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부동산 브로커가 찾아왔어. 손에는 법원 등기 서류를 쥐고 있었지. 그의 뒤에는 장전된 총을 찬 보안관이 서 있었다.”

 

“무서웠죠?”

 

“그럼. 그는 릭의 가족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생필품만 챙겨서 집에서 나가라고 요구했어. 그러면서 말하더라. ‘우리도 정말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지만, 법원의 명령에 따라, 이제 이 집은 은행의 소유입니다.’ 음. 말은 그렇게 신사처럼 하는데 은행이 정말 가혹한 곳이더군. 네가 일하던 월가도 그런 곳이었니? 릭네는 그렇게 집에서 내쫓겼어.”

 

그러면서 어머니는 릭이 사는 곳을 알려 주었다. 그렇게 쫒겨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게 내 친구네 어머니일 줄은 몰랐다. 집을 버리고 몰래 도망가는 사람이 속출한다는 소식도 익히 알고 있었다. 세계의 중심 미국이 휘청하면 전 세계는 몸살을 앓는다. 미국 시민으로서 월가의 금융인으로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 2002년에서 2006년 미국의 집값은 평균적으로 50% 상승했다. 전체 대출에서 서브프라임의 비중은 9%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것이 세계를 흔들게 된 것이다. 부동산 가격 폭락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갑자기 내나라 미국이 달러라는 무기로 세계를 좌지우지 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아버지는 여느 재무성 공무원과 달리 상당히 진보적인 인물이었고 인류애가 넘친 분이다. 아버지 친구들 중에서 헌신적인 U.S AID (미 원조청) 공무원도 상당수 있었다. 물론 그들도 개인적인 신념과 미국 정부의 국가 이익 우선주의 사이에서 갈등하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앞으로 미국의 미래를 어떻게 보세요?”

 

“중국은 세계적인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무너지던 2008년 9월 이후 일본을 제치고 미국 국채의 최대 보유국이 되었다. 중국이 호시 탐탐 미국의 자리를 넘볼 거야. 2009년부터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 및 경제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 역시 속단 할 수 없지만 중국도 과잉투자나 부채 같은 위험을 많이 내포하고 있어.”

 

조금 뒤의 일이지만 2010년 중국은 일본을 추월해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였다. 세계적으로 중산층의 쇠퇴와 그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가 또 다시 도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친구와 가까운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밖에 나갈 채비를 하는 나를 보시며 어머니가 목도리를 챙겨 주셨다. 어머니는 문을 열고 나가는 나를 보며 한숨을 크게 쉬며 말씀하셨다. 

 

“릭의 엄마가 그러더구나. 정든 집을 떠나는데 오죽 설움이 복받쳤겠어. 집은 문서가 아니라 보금자리고 추억이라고. 그런데 은행이 집으로 돈 벌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몰랐단다. 그들에게 집은 지켜야 할 보금자리가 아니라 굴려야 할 상품이었어.”

 

 

“에고, 참 안되었네요.”

 

“세상이 잘난 사람한테만 기대고 있어. 승자독식의 문화가 따로 없어. 승자의, 승자를 위한, 승자에 의한 나라가 미국이란 거야.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이란 대통령의 이야기는 거짓이었다고 내게 항변하는데 나도 눈물이 나더구나. 릭네는 집 하나는 남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야.” 

 

실업률이 1940년대 이후 최고조에 달하고 60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5000만명이 집을 빼앗겨 거리에 나앉았다. 그때에도 1%의 금융 권력은 수억 달러의 수익을 챙겼다. 그 속에 내가 있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관련 뉴스

회사소개 신문광고: 604.544.5155 온라인 광고: 604.347.7730 미디어킷 안내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상단으로
주소 (Address) #C 927 Brunette Ave, Coquitlam, BC V3K 1C8
Tel: 604 544 5155, Fax: 778 397 8288, E-mail: info@joongang.ca
Copyright © 밴쿠버 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Developed by Vanple Netwroks Inc.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