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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만두, 함경도순대…탈북 요리사 윤종철의 ‘동무밥상’

posted Sep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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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밥상’은 간판도 따로 없어 처음 가면 찾기 쉽지 않다. 이동식 현수막이 유일한 표지다.

 

평양 ‘옥류관’에서 요리를 배운 함경도 출신 요리사 윤종철(59)씨를 만나러 갔을 때, 그의 작은 식당 ‘동무밥상’(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길10/전화 02-322-6632)은 찹쌀순대를 만드는 날이었다. 지난해 11월 13일 개업한 북한음식 전문 식당이다. 10개월이 채 안 됐는데 북한음식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순대였다. 남쪽에선 함경도식 순대를 아바이순대라고 하는데 함경도에 그런 음식이 있는지 물어봤다.
 
“순대를 많이 해 먹기는 하지만 그런 말 없다. 함경도에서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를 아바이라고 부른다. 당 고위간부를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함흥냉면이 함흥에 없는 거나 같다. 아바이 동네에 아바이순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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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속을 만드는 과정은 다진 돼지고기, 채 친 깻잎과 삶은 배추, 볶은 대파, 불린 찹쌀을 잘 섞은 다음 소금·설탕·된장·참기름을 넣고 고루 섞이도록 버무린다. 3단계로 선지를 갈아 넣고 바닥까지 뒤집어 한번 더 버무리면 준비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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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속을 만드는 과정은 다진 돼지고기, 채 친 깻잎과 삶은 배추, 볶은 대파, 불린 찹쌀을 잘 섞은 다음 소금·설탕·된장·참기름을 넣고 고루 섞이도록 버무린다. 3단계로 선지를 갈아 넣고 바닥까지 뒤집어 한번 더 버무리면 준비가 끝난다.

 

오후 2시쯤, 순대 속을 준비하는데 양이 엄청나다. 체중 79kg인 내가 들어가 앉아도 남을 만한 고무함지가 그득하다. 다진 돼지고기, 잘게 썬 깻잎과 삶은 배추, 볶은 대파, 불린 찹쌀, 된장·참기름·소금·설탕, 믹서로 간 선지를 넣고 손으로 비빈다. 선지는 냉면기 두 그릇쯤, 생각보다 적게 들어갔다. 밥을 물에 말아 서둘러 점심을 마친 윤씨 부부와 함경도 동향인 직원 부부까지 4명이 함지를 둘레에 돌아앉아 속을 넣는다. 순대 껍질은 진짜 돼지 작은창자를 손질해서 쓴다. PET병 주둥이 자른 걸 깔때기 삼아 속을 채우고 주둥이를 실로 묶는 손놀림이 빠르다. 돼지 창자 손질에만 오전에 2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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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출신 윤종철 요리사 부부가 준비된 속을 채워 함경도식 찹쌀순대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모두 건강재료, 천연재료만 쓴다. 북한에서도 이렇게 재료가 풍부하게 들어가는 순대는 함경도뿐이다. 내가 함경도 출신이면서 평양에서 요리를 배워 아는데, 평양순대는 채소 같은 것만 많이 들어가지 고기나 이런 고급재료는 들어가지 않는다. 함경도에서는 돼지 한 마리 잡을 때 순대 만들면 머리고기 전체가 다 거기 들어간다. 오늘 만드는 게 많은 것 같지만 이렇게 만들어 놓아도 한 주일도 못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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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채운 순대를 삶을 때는 불만 때면 되는 게 아니다. 익어가는 과정을 계속 들여다보고 저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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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채운 순대를 삶을 때는 불만 때면 되는 게 아니다. 익어가는 과정을 계속 들여다보고 저어줘야 한다.

 

목소리에 예전과 다른 자신감이 흐른다. 사업이 많이 안정됐다는 표현일 터이다. ‘동무밥상’의 주력 음식은 냉면이다. 지난 여름 기록적 무더위만큼 애호가들 사이에선 ‘냉면 수다’도 뜨거웠다. 냉면 전문 음식점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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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철 요리사가 긴 젓가락을 저어가며 냉면을 삶고 있다. 젓가락에 걸리는 면의 저항감으로 냉면이 익은 정도를 감지한다. 오른쪽 아래 들통의 국물은 화구 위에서 열을 식히는 냉면 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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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밖으로 옮겨 식히고 있는 냉면 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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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아 헹군 냉면 1인분을 손에 사려 그릇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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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를 붓기 전의 냉면. 면은 허연 편이고, 바닥엔 통 들깨가 몇 알 보인다.

 

“말도 마라. 대단했다. 그 뜨거운 날에 그늘도 없는 골목에 가득 줄을 서는데, 하루에 냉면 160그릇을 판 날도 있었다. 이 좁은 식당에서.”

식당에는 좌석이 17석(2인석 8개+1인석)뿐이다. 다른 음식을 먹은 사람도 있었을 테니 최소 한 자리마다 10명 이상이 식사를 하고 갔다는 얘기다. 흔히 ‘회전율’이라고 하는 이 수치가 10 이상이면 음식점 주인에게는 꿈같은 일이다.
 
간판도 변변히 걸지 못한 ‘동무밥상’의 메뉴는 모두 북한음식이다. 북한냉면(평양냉면/9000원), 오리국밥·오리국수(온면)·평양찐만두·평양만둣국(각 8000원), 오리불고기(반 마리/ 1만8000원), 소고기회(수육)무침·찹쌀순대(각 1만2000원), 돼지껍데기볶음·명태식해(각 6000원)가 있다. 하루 전에 예약하면 웬만해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전통 신선로(7만원)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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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고명’의 북한말)까지 얹어 완성한 ‘북한냉면’. 메뉴에 적힌 음식 이름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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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찐만두는 피가 얇아 익으면 속이 훤히 비치지만 쫄깃하다. 소는 맛이 고소하고 달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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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수육을 채소와 함께 초간장 양념에 무친 소고기회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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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식 돼지껍데기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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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맛보기 힘든 명태식해. 잘 익으면 다른 생선의 식해보다 맛이 아주 시원하다.

 

기사 이미지신선로는 재료음식을 굽그릇에 담고 육수를 부어 상에서 끓이면서 먹는다. 하루 전에 예약해야 준비할 수 있다. 들어가는 전·완자 등을 일일이 만들기 때문이다. 4~5인용 안주로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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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밥상’에서 삶아서 식힌 모습과 잘라서 접시에 담은 함경도식 순대.
 

“도저히 좁아서 안 되겠어, 넓은 데로 옮겨야지. 여기서는 몰리는 손님을 다 받을 수가 없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이유를 알겠다. 그를 만나러 갔을 때가 화요일 오후 1시30분이었는데 자리는 가득 찼고, 대기손님도 있었다. 대기자 이름 적는 명부에는 “두어 번 불러서 오시지 않으면 다음 순서로 넘어갑니다. 전화는 드리지 않습니다”라고 공지를 하고 있었다. 몰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얼마다 애를 먹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알림이다.
 
2014년 12월께, 윤종철 요리사를 처음 만난 곳은 식당이 아닌 요리교실이었다. 15명이 회비 내고 모여서 그가 북한음식 조리하는 과정을 참관하고 나눠 먹는 자리였다. 대개는 요리 공부하는 젊은이들이었다. 때늦은 중년의 나는 공부가 아니라 미각적 호기심에 이끌려 거기 갔었다. 세 가지 김치를 포함해 여러 음식을 먹었는데 내 입에는 호오(好惡)가 반반이었다. 양배추물김치와 명태식해는 입에 맞아 1만원어치씩 포장해 와서 오래 두고 먹었다. 그게 떨어지고, 그 음식이 그리워질 무렵인 지난해 4월 요리교실에서는 ‘윤종철의 동무밥상’이라는 팝업 식당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이틀은 요리교실을 개방해 북한음식 식당으로 외부 손님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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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찬 가운데 별미인 양배추물김치.

 

그해 여름 냉면 먹으러 거길 열심히 들락거렸다. 사람들도 많이 데리고 갔다. 팝업 식당은 반응이 좋았다. 평양 옥류관에서 배운 요리사가 냉면을 한다는 소식이 퍼져 이북이 고향인 어르신들도 많이 찾아왔다. 손님이 있지만 제면기를 설치할 사정이 안 됐다. 면을 사다 쓰니 요리하는 사람도 냉면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밤잠을 설쳐가며 공들여 뽑았다는 육수가 아까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후원자와 상의 끝에 아담한 음식점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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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람 냉면. 윤종철 요리사와 나의 비밀용어다. 양을 곱빼기로 달라는 말이다. 북한에서는 남쪽보다 냉면 한 그릇 양이 아주 많다고 한다.

 

내가 갈 때 주방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인사를 하면 그는 빙그레 미소 띤 얼굴에 두 손으로 둥그런 모양을 지어 보이며 “냉면 북한식으로 드시겠습네까” 하고 묻는다. 손으로 고봉밥 모양을 짓는 것이다. 냉면 좋아하는 내 식성을 기억해주는 반가운 인사다. 북한에서는 냉면 한 그릇의 양이 남한의 갑절만큼 많다고 한다. 그는 남쪽 사람들이 냉면을 조금 먹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나는 냉면집에 가면 반드시 사리를 추가해 먹으니 양 많은 북한식을 더 좋아한다고, 앞으로 그렇게 달라고 얘기한 걸 기억하는 것이다. 북한 스타일의 곱빼기 냉면을 국물까지 싹 비우자 윤씨는 “냉면을 먹을라믄 이리케 먹으야지요” 하며 얼굴이 환해졌다.
 
소고기 양지와 닭고기 육수를 섞은 ‘동무밥상’ 냉면 국물은 맛이 새롭다. 익숙한 서울의 다른 냉면집에 비하면 민낯 같은 맛이다. 부드러운 듯 도도하고, 강하면서 시원하다. 은은한 고기 맛이 잔잔하면서 빈틈없이 배어 있다. 아무 양념도 치지 않고 수저로 홀짝거리며 계속 떠먹게 되는 맛이다. 냉면에는 갈지 않은 들깨가 20여개 떠있다. 남쪽 냉면에서는 보지 못한 모습이다. 이북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들깨가 한두 개 씹히면 향이 입 안에서 폭죽놀이를 한다. 톡톡 터지면서 음식과 입맛이 서로 익숙해지다 보니 둔해진 미각을 일깨워준다.
 
‘냉면 수다’에 빠지지 않는 소재이고, 누구나 궁금해하는 면 반죽의 배합 비율은 의외다. 흔히 아는 유명 냉면집들에 비해 메밀 함량이 적다. 메밀 40, 고구마전분 40, 밀가루 20 비율로 섞는다. 면발을 씹어 보면 연하다. 메밀 함량 60~70%짜리에 비해 뚝뚝한 기운이 덜하다. ‘동무밥상’이 냉면광들 다섯 손가락 중 하나를 차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 아닐까 싶다.
 
평양만두의 소는 서울에서 잘한다는 만두와 중국 딤섬의 중간쯤이다. 만두를 쪼개면 즙이 툭 튀면서 접시에 주르르 흐른다.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한 참기름 향과 여러 재료에서 우러난 달금한 맛이 부드럽게 입 안에서 어우러진다. 피는 반투명하게 얇지만 차지다.
 
‘북한음식 전문 요리사'로 이름을 얻은 윤씨는 요리교실 시절에는 ‘북한음식 전문 강사’로 불리는 걸 더 좋아했다. 함경북도 온성 태생인 그는 평양 옥류관에서 요리에 입문해 인민군 장성 식당에서 요리사로 군 복무를 한 북한의 정통 요리사 출신이다. 할아버지가 요리를 했지만 북한에선 요리사에 대한 대우가 낮아 스스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18세에 군에 입대했는데 할아버지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군사훈련 대신 바로 평양 옥류관으로 가라고 했다. 거기서 몇 달간 요리를 배웠다. 이후 10년간 인민군 장성 전용식당 주방에서 일하면서 많은 장군들 입에 맞는 요리들을 하다 보니 북한 전역의 음식을 두루 익히게 됐다. 온갖 고급재료도 다 다뤄봤다. 제대 후엔 요리사로 살기가 싫어 회령경공업단과대학에서 발효를 공부해 된장·간장 등 발효식품이나 사이다를 만들고, 강의하러도 다녔다. 경력이 있어 중앙(평양)에 큰 행사가 있으면 가끔 불려가서 칼질을 하기도 해 요리 솜씨는 녹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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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교실에서 북한음식을 가르치던 ‘강사’ 시절의 윤종철 요리사.

 

1998년 탈북한 그는 중국을 거쳐 2000년 한국에 들어왔다.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가다(건설 일용직)부터 갖가지 허드렛일까지 안 해본 게 없다. 다단계에 기웃거리다 낭패도 겪고, 사기도 몇 차례 당했다. 남한의 마지막 벼랑에서 그를 잡아준 것은 요리였다. 2013년 후원자를 만나 ‘음식으로 소통하자’는 설득에 다시 칼을 잡았다.
 
그는 서울 살림이 안정됐지만 외식을 하지 않는다. 북한음식 맛을 잊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다. 외래음식 영향으로 빠르게 바뀌고, 북에 없는 여러 가지 조미료가 들어가는 서울음식에 맛을 들이면 미각이 변해 북한에서 배운 음식의 정체성이 흔들릴까 봐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북한음식의 원형을 남쪽 사회에 알리고 보전하는 것이 그의 남은 소망이다. 민족문화로서 북한음식의 원형을 남쪽 사람들도 알아야 통일이 돼도 저쪽 동포들이 낯설지 않을 거 아니겠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가 ‘북한음식 전문 강사’라는 직함에 애착을 보인 데는 그런 뜻이 깃들여있다. 문화 중에서도 가장 밑바탕이 음식문화이니 그의 소망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뜻을 펼치기 위해 운영하는 ‘동무밥상’도 민족문화 전승의 소명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번에 그는 북한음식의 진수를 알릴 좋은 기회를 얻었다. 유명 케이블채널 요리대결 프로그램에 나간다. 조만간 방송될 예정이다. 또 다음주에 어느 미식 프로그램에서 ‘동무밥상’을 소개한다. 내가 간 날 프로그램 진행자가 일행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냥 식사하러 온 게 아니라 일 삼아 온 것으로 보였다. 그렇잖아도 좁은 식당이 식사 때마다 붐비는데 방송에 나가면 한동안 접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9시(일요일은 오후 3시까지 / 준비시간 오후 3시~5시30분). 매주 월요일은 쉰다.



이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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