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우아한 비행] 길 떠나기

posted Dec 30, 2016

 

길에서 만난 역사의 편린(片鱗)들, 아직 만나고 싶은 것 많아

 

 

                                                      

지난 한해 수시로 길로 나섰다. 기회를 만들어 한국 여기저기를 가보고 싶었다. 그 동안 접하지 못했던 한국 역사와 그 풍경이 궁금했다. 역사 현장을 찾아 그 시절을 헤아렸고, '한국의 미'가 가득 지닌 곳에 가서 모국의 의미를 되새겼다. 무엇보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건 좋은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 믿었다. 매달 도시를 둘러싼 역사의 기억을 찾는 발걸음을 떼었다.

 

5월, 하루 동안 36년 전 오월의 광주를 살았다. 도대체 이 도시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80년 5월 18일 오후 1시에는 광주 전남도청 앞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가 있었다. 2016년 같은 시간, 도청에서부터 피로 물들었던 금난로를 걸었다. 그날의 뜨거운 태양, 눈을 뜨기 힘든 최루탄, 터질듯한 총성, 시민들의 함성이 환영으로 부서져 내린다. 수 많은 무고한 생명이 말도 안되게 죽음 당해야 했던 이 도시. 내가 서울이 아닌 광주에서 태어났다면, 아빠나 삼촌을 잃었을 나의 일이다.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 버린 듯 한 광주, 그 광주는 죽음과 죽음 사이에서 피눈물 흘리는 ‘우리나라의 십자가’였다.

6월, 잊혀진 진보도시 대구를 찾았다. 대구에는 아픈 역사의 조각들이 있다. 사전 지식이 하나도 없던 차에 대구로 내려가는 길에 읽었던 자료집의 충격은 현장에서 더 깊어졌다.  역사현장에 올 때마다 알고야 마는 조국에게 희생 당한 무수한 희생자 숫자와 그 이유는 받아드리기가 어렵다. 피해자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유가족을 만나는 일, 역사의 현장을 지키는 활동가의 해설을 듣는 일, 실제 피해자들을 유골로 만나는 일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대구의 진면모, 야성이 살아 있던 이 도시의 새로운 기억이 내게 새겨졌다.

7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의 도시였던 군산 땅을 밟았다. 쌀 수탈의 전지기지였던 군산에는 식민유산이 많이 남아있었다. 일제의 착취와 폭압에 항거한 항쟁의 흔적으로 농민의 피눈물을 감히 가늠해 보는 시간이었다.  8월, 참여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묻던 봉화마을. 9월, 전쟁과 분단의 개항도시였던 인천. 11월. 이념의 대립으로 잔혹한 세월을 묻은 제주도로 떠났다.   

그리고 12월, 또 다른 역사가 쓰여지고 있는 광장에서 촛불을 밝혔다. 현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현장에서만 할 수 있는 기도가 있다. 여러 생각과 혼란이 정리되는 곳, 그곳에서 기도하는 우리가 있었다. 우시는 하나님도 거기에 계셨다. 현장에서야 기도가 완성된다.

 

각 도시는 역사를 온몸으로 치른 흔적을 가지고 있다. 그 역사의 상처와 수치와 한이 깊이 서려있다. 그때 역사의 현장을 바라본 길과 나무는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와 현시대를 살고 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하는 역사는 되풀이된다.’아픈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냐를 묻기 위해 여러 도시를 찾아야만 했다.  모국의 한 많은 역사에 공감 할 수 없어 안타까웠던 마음은 이제 어떻게 풀어낼 것이냐 하는 숙제로 남았다. 또 떠날 것이다. 떠나보니 알게 되는 이야기는 특별하다. 각각의 길마다 나무마다 마을마다 가진 아프고도 찬란한 이야기를 받아 적으러 열심히 떠날 것이다. 아직 갈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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