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정원] <꽁트> 시계는 놓고 갑니다

posted Jan 09, 2017

 

                                    

 

꼬끼오, 꼬끼오~ 깊은 밤을 열어 만물을 깨우는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려온 듯하다. 여전히 남아 있는 시대의 어둠을 걷어 내는 소리다. 비록 환청이라 할지라도 분명히 2017년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이 밝았다. 삼라만상에 시각을 알리며 세상을 여는 닭 울음소리는 예로부터 행운의 소리와 동의어로 인정받아 왔다.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가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죄를 회개한다. 성 목요일 밤에 있었던 일이다. 닭 울음소리는 바로 속죄와 부활의 소리라고 해도 실언이 아니다.

 

이경남은 정오에 문학 동호회 신년 모임이 예정된 한식집 세월각으로 나갔다. 이 문학 동호회는 창립 당시부터 송년회 대신 신년회로 친목을 다져왔다. 동인지 출판기념회를 겸한 이 모임에서는 지난 한 해 회원들의 문학적 성과를 격려하고 새해의 내실 있는 문학적 성취를 다짐한다. 오늘은 회원 전원이 참석했다. 정해진 회의 순서가 끝나고 나서 회식이 시작되었다. 주로 문학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를 이루다가 새해의 전망이나 각오 같은 현실적인 당면 문제가 조명을 받았다. 그러다가 회원 대부분이 50~60대이다 보니 은연중에 세월의 덧없음을 개탄하는 쪽으로 말머리가 돌아갔다. 서로가 더해 가기만 하는 백발과 얼굴 주름살의 깊이를 바라보면서 닥친 노년기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제각기 내심을 털어놓았다. 그 표현과 분석이 실감 나고 날카로운 면모가 글쟁이들다웠다.

소설가 朴이 잔잔한 어조로 세월의 덧없음을 털어놓았다.

“우리에게 시간은 정말 가혹하리만큼 빨리 지나갑니다그려. 안 그런가요. 여러분?”

“시간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남자는 자기가 느끼는 만큼 나이를 먹고 여자는 남에게 보이는 만큼 나이를 먹는다지 않습디까.” 서로가 맞장구를 치고 받는 사이에 시인 李가 술잔을 만나게 비우고 나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우리에게 고루 주어지지만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지나가지요. 다 같은 시간일 수 없다는 데 묘미가 있는 게 아닐까요.”

”좋아요. 그러다 당장 멋진 시 한 편이 나오겠구먼. “

시인 李 바로 옆에 앉은 수필가 宋이 지체하지 않고 추임새를 넣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세월’을 잡고 돌아가기 시작하자 좌중은 서서히 달아올랐다. ‘세월’, ‘시간’이라면 할 말이 많은 글쟁이들이다. 문학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바로 세월, 신간을 파헤치고 다독여서 글로 나타내는 작업이 아니던가. 문학 동호회 회장은 년 초부터 회원들이 내실 있는 소재를 다루는 게 흐뭇했다. 이대로 듣고 있을 수 없다 싶었는지 적극적으로 멍석을 깔았다.

“여러분, 제가 일전에 미국에 갔다가 들은 이야깁니다. 혹시 오늘 여러분이 회자하는 화제에 적합할 듯해서 소개합니다.”

뉴욕 주 서포크에 사는 스미스 씨가 겪었던 실화이다. 건축회사에 근무하는 그는 아침 출근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집 앞 길가에 세워둔 차에 사고가 생겼다. 시동이 안 걸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동차 보닛을 열었다. '어~라?' 멀쩡했던 배터리가 사라지고 없다. 낭패였다. 그렇다고 머뭇거릴 처지가 아니라 급한 대로 택시를 불러 출근했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문 앞에 새 배터리와 함께 편지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너무 급해서 댁의 배터리를 빼다가 썼습니다. 사죄의 뜻으로 새 배터리와 뮤지컬 표 두 장을 드립니다.> 순간 스미스 씨는 호쾌하게 웃었다. 기분이 무척 좋아져서 새 배터리를 자기 차에다 달고 부인과 함께 뮤지컬을 감상하고 나서 저녁 식사도 즐기고 돌아왔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부부가 기분 만점으로 외출한 사이 집을 도둑에게 깡그리 털리고 말았다. 우편함에는 역시 그 도둑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값나가는 물건이 많아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거실의 큰 시계만은 손을 안 댔습니다. 남의 시간까지 도둑질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좌중은 충격을 먹은 듯 너무나 조용했다. 회장은 자기 잔에다 맥주를 가득 따라 들고 느닷없이 소리쳤다. “자, 여러분 그 도둑을 위하여, 남겨 놓은 시계를 위하여 건배합시다!”

다들 '위하여!'를 크게 외치고 건배했던 잔을 술상에 놓고 나서야 비로소 잠시 깔렸던 침묵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비록 도둑질은 할망정 철학을 아는 친구가 분명하지 않소. 여러분?” 첫 번째 반응자는 문학평론가 南이었고, 아동문학가 金의 두 번째 반응도 뜸을 들이지 않았다.

“시계는 놓고 갔으니 주인을 배려한 정성이 장난 아니구먼. 앞으로 그 시계, 아니지 그 시간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어.”

“아니, 아니 이야기가 요상하게 돌아가는데 정확한 교정이 필요할 것 같네요. 이 이야기에서 초점은 시계가 아니라 뮤지컬 표가 아니겠소? 잿물도 먹는다는 공짜 말이외다. 그리고 옜다 시계나 끌어안고 살아라. 하는 도둑의 알량한 선심에 감지덕지한다는 거요, 뭐요 시방?”

말수가 적은 시조시인 安이 벌컥 소리를 내지르는 바람에 장내가 수런거렸으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회장이 바로 수습에 나섰다.

“자, 잠깐만요. 우리 安 시조시인께서 한국의 현실적인 농단(壟斷)을 의식하신 것 같은데 우리의 화제 중심은 여전히 시계, 시간, 세월이 아닌가요. 그리 양해들 하시고 깊이 있는 대화를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시계가 시간을 돌릴 수는 없지요. 시계를 훔쳐간다고 시간이 정지하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너희에게는 시계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고 인도의 한 노인이 말했다 합디다. ”

“그러니까 양상군자께서는 공짜도 바라지 말고, 주어진 시간도 귀하게 여기라는 풍자가 무성한 충고를 했다는 해석이 나오겠네요.” 수필가 吳가 부언하고 나서자 시인 徐가 이렇게 거들었다.

“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 때문에 더욱 짧아진다. S. 존슨이 한 말이 생각나는군요.”

“이대로 가다가는 한도 끝도 없겠네요. 아무튼, 새해에는 닭 울음소리, 그러니까 시계소리, 세월이 가는 소리를 소재로 좋은 작품을 많이 발표하시기 바랍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

회장은 적당한 시점에서 문학 동호회의 신년 모임을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灘川 이종학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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