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원대 수퍼 전기차, 테슬라의 벼랑 끝 베팅인가

posted Apr 25, 2016

전 세계는 ‘테슬라 신드롬’에 빠졌다. 이달 초 일론 머스크(45)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4000만원대(보조금 받을 경우 2000만원대) 보급형 전기차 ‘모델3’를 발표하면서다. 애플이 아이폰을 세상에 내놨을 때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았다.

 

자동차 시장 이단아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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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2017년 출시 예정인 2000만원대 보급형인 ‘모델 3’는 전기차답게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이 막혀 있다. [사진 테슬라]


뉴스에 적극 반응한 이들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당장 사고 싶다며 흥분한 테슬라 매니어와 ‘안티 테슬라’ 진영. 테슬라 옹호자들은 스포츠카 못지않은 주행 성능과 압도적인 1회 완충 시 최대 주행거리(346㎞), 테슬라 특유의 디자인과 파격적인 가격을 보고 성공에 베팅했다.

반면 회의론자들은 제아무리 테슬라라고 하더라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모델3를 제때 출고할 수 있을지, 충전 인프라가 부족해 잘 달릴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분석했다. 심지어 자금난을 견디다 못한 머스크의 ‘초조한 몸부림’이라고 깎아내렸다. 디트로이트가 아닌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자동차 회사. 지구촌을 들썩이게 한 테슬라 신드롬의 실체를 분석했다.

전기차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는 물론이고 제너럴모터스(GM) 같은 굴지의 회사도 90년대 전기차를 선보였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기름차와 맞붙을 때마다 짧은 주행거리가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테슬라가 전기차에 뛰어든 타이밍이 좋았다. 전기차는 결국 배터리 싸움인데 기술 발전 덕분에 시중에 과거보다 강력하면서도 가벼운 배터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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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가 스페이스X의 우주 로켓 앞에 섰다. 그는 로켓 재활용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 스페이스X]


그렇더라도 쉽진 않았다. 경제 전문가들이 ‘진입 장벽’의 개념을 설명할 때 흔히 언급하는 분야가 자동차 산업이다. 시장에 뛰어드는 것만도 막대한 자본이 든다. 극도로 복잡한 기술을 개발하고 디자인·마케팅해야 한다. 부품 네트워크와 생산 시설, 유통, 서비스 채널을 관리해야 하고 미로처럼 복잡한 규제까지 충족시켜야 한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을 100년 가까이 사업해 온 거대 자동차 회사보다 더 잘해야 한다.

| 페이팔 → 스페이스X → 솔라시티
손대는 것마다 창업신화 일궈
전기차 ‘모델3’도 사전주문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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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머스크 CEO의 혁신 리더십이 최고 강점을 발휘했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처럼 테슬라는 머스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회사다. 인터넷 전자결제 업체 ‘페이팔’(1999년 창업)→항공우주 업체 ‘스페이스X’(2002년)→태양과 에너지 공급 업체 ‘솔라시티’(2006년)까지 종횡무진 창업 신화를 써내려 온 그의 경영노트엔 2004년 경영에 합류한 테슬라도 올라 있다.

머스크는 존재하는 기술 가운데 최고만 받아들여 가차 없이 비용을 줄이고 금융 노하우를 동원해 경쟁 회사 제품보다 나은 제품을 만드는 그만의 성공 방정식을 전기차 개발에도 적용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모델3’처럼 적절한 가격의 전기차를 만들고자 했지만 당장 그런 목표를 이루긴 어렵다는 걸 알았다. 자동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만들어 출시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그래서 최대한 외부 전문가를 끌어들였다. 구동 장치만 개발한 다음 유럽·미국에서 충돌 안전 테스트를 통과한 디자인을 채택하는 식이었다. 소재도 당시로선 혁신적인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을 적극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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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은 2008년 출시한 고급 스포츠카 전기차 ‘로드스터’였다. 소량 생산해 10만 달러(약 1억1400만원)에 팔았다. 2012년엔 좀 더 많이 팔 수 있는 고급 세단 전기차 ‘모델S’(5만 달러·약 5700만원)를 선보였다. 그리고 2017년 모델3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는 테슬라가 초창기부터 철저히 계획한 공식에 따른 생산이었다. ①고성능 차부터 개발하고 ②그 과정에서 배운 기술을 활용해 좀 더 많이 팔 수 있는 세단을 만들고 ③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보급형 차를 대량 생산하는 아이디어다.

그렇게 만들어낸 테슬라 전기차는 뭐가 특별할까. 머스크는 입버릇처럼 “테슬라는 가장 좋은 ‘전기차’가 아니라 가장 좋은 ‘자동차’를 만들기 원한다”고 말한다. 일단 디자인부터 튄다. 손을 살짝 대면 문짝에서 손잡이가 튀어나온다. 내부엔 버튼을 거의 없앤 대신 17인치 LCD 터치스크린을 달았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이르는 시간이 3.9초(로드스터)밖에 안 걸린다.

| 배터리 불안 우려에 “안전 자신”
승차감 높인 럭셔리 디자인 내놔
“미래 밝다” 미·일서 투자 잇따라


무엇보다 큰 경쟁력은 소형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나온다. 머스크는 파나소닉이 만든 리튬이온 배터리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양산 배터리 중 에너지 밀도가 가장 높은 데다 내구성이 강하다. 게다가 값도 싸다”고 설명한다. 노트북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에서 쓰는 이 배터리는 오랫동안 검증된 ‘옛날’ 방식이다. 하지만 테슬라는 그 덕분에 배터리 공급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대부분 전기차가 고도로 전문화한 대형 배터리를 쓰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존 전기차가 보통 뒷좌석 밑에 넣는 배터리 때문에 탑승 공간, 짐칸이 좁다는 문제도 해결했다. 배터리를 바닥에 깔아 실내 공간을 넓히고 무게중심을 낮춰 승차감·안전성을 높였다. 게다가 가볍다. 납작한 수천 개 배터리를 용접해 붙이는 대신 접착제로 붙인 덕분이다. 그래서 테슬라 전기차를 ‘본드의, 본드에 의한, 본드를 위한 전기차(of the bond, by the bond, for the bond)’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리튬이온 배터리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손상·과열될 경우 불이 나거나 심지어 폭발할 수 있다. 머스크는 조목조목 반박한다.

“기름차는 1300대당 1대, 모델S는 8000대당 1대꼴로 화재가 납니다. 통계적으로 테슬라 전기차가 훨씬 안전하죠. 우리는 배터리팩을 만들 때 뒤흔들고, 굽고, 소금물을 뿌리는 등 온갖 테스트를 거칩니다. 그로도 모자라 화재로부터 안전하도록 퓨즈를 삼중으로 연결하고 배터리마다 열 차단 커버를 씌웁니다.”

충전·방전을 거듭하면 (다른 배터리에 비해) 성능이 급속히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테슬라를 제외한 다른 자동차 회사가 이 배터리를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터리 충전 문제 해결을 위해 테슬라 측은 배터리 교체 서비스를 구상 중이다. 머스크는 “배터리 충전 기술이 발전하면 곧 해결될 문제”라고 일축한다.

| 첫 전기차, 생산비용 못 맞춰 손해
2012년 모델S도 출고지연 실망 줘
작년 말까지 11분기 연속 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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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리는 SUV 전기차 ‘모델 X’. [사진 테슬라]


테슬라라고 성공만 해온 건 아니다. 첫 모델인 로드스터는 출시 초기 자재값만 14만 달러(약 1억6000만원)에 달해 팔수록 손해였다. 출고 일자를 맞추지 못해 고객 비난이 쏟아졌다. 생산 문제는 테슬라의 고질병으로 지적된다. 이후 출시한 모델S·모델X도 생산 일정에 차질이 생겨 출고를 늦췄다(비관론자들이 모델3의 성공을 반신반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죽음의 계곡’(개발비가 많이 드는데 판매 수익은 들어오지 않아 심각한 현금 유동성 문제에 직면하는 시기)을 수차례 거쳤다. 2008년엔 직원 363명 중 87명을 해고했다. 결국 2012년 1월 로드스터 생산을 중단했다. 지난해 4분기까지 11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머스크는 결국 깡통을 차게 될 것”이라고 보도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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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출시한 고급세단 전기차 ‘모델 S’. [사진 테슬라]


그래도 테슬라는 오뚝이처럼 일어서 왔다. 다임러·도요타 같은 굴지 업체가 잇따라 테슬라 지분을 사들였다. 2009년엔 미국 에너지부가 4억6500만 달러(약 5300억원)를 빌려줬다. 2010년엔 파나소닉이 테슬라에 3000만 달러(약 340억원)를 투자했다. 시장도 테슬라의 미래 가치에 반응했다. 2010년 나스닥에 상장한 첫날 2억2600만 달러(약 2600억원)를 끌어모았다. 2012년 출시한 모델S는 출시까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미국 소비자 매체 컨슈머리포트로부터 100점 만점에 99점을 받아 ‘최고의 차’에 올랐다. 컨슈머리포트 역사상 최고 점수였다.


경쟁사도 잇따라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며 시장 파이를 키웠다. 닛산 ‘리프’(2010년), GM ‘볼트’(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2010년), BMW ‘i3’(2013년)가 시장에 나왔다. 머스크 특유의 도박사 기질도 빛을 발했다. 배터리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미국 전역에 직접 무료 급속 충전소(수퍼차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014년엔 갖고 있던 모든 전기차 관련 특허를 공개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란 식의 자신감의 발로이자, 전기차 시장 자체를 키우겠다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머스크가 각종 인터뷰·기고문에서 유독 강조하는 말이 있다. “크게 생각하라(You have to think big)”다. 헨리 포드는 자동차를 부자의 사치품이 아니라 일반 대중도 살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 끌어내렸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MS)는 컴퓨터를 전문가가 쓰는 도구가 아니라 일반인이 집에서 쓰는 재미있는 액세서리로 만들었다. 테슬라는 전기차로 그런 도전에 나서고 있다. 그래서 테슬라가 설령 내일 문 닫는다 해도 자동차 업계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길 것은 분명하다. 물론 테슬라는 문 닫을 계획이 전혀 없지만.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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