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한의원의 체질 칼럼] 한의학이 과학입니까?

posted Dec 14, 2016

육체 근간인 '정신', 그 오묘한 느낌과 흐름을 아는 것이 중요

 

 

 

지난 주, 진료 도중, 젊은 친구(현지 대학원생)가 “한의학이 과학입니까?”라고 물어온다. 그의 질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한의원에 왔다가 한의사의 진료하는 방식이 좀 가당치 않아 보여서 그랬을까. 혹은 한방치료가 좀 새롭고 신기해보여 그런 것일까. 그런데 그 질문 앞에서 조금도 불쾌하거나 무거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한의학은 과학이 아닙니다” 그리고 간단히, 아주 간단히 "한의학은 이런 것"이라고 답변해 주었다.

 

한의학은 과학이 아니다. 필자가 아는 한 과학은 최소한, 어떤 가설을 세운 후 그를 확증하기 위해 실험을 하고 타당성이 입증이 되고 법칙화된 것이 과학이다. 한의학은 어찌 보면 실험결과 후에 확증된 것에 의한 법칙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원칙에 따라 사람을 관찰하고 질병을 치료한다. 이를 어찌 과학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혈액형은 4가지, 이것은 과학이다. 입증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사람의 체질은 네가지라는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과학이 아니다. 누가, “아니야, 사람의 체질은 여덟가지야” 혹은“아니, 사람의 체질은 스물 네가지야.” “아니 아니, 세상에 체질이라는 것이 어디 있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의 체질은 물리나 화학적인 실험으로 입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학이 아닌 것은 다 받아들여질 수 없고 실용화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철학은 과학이 아니다. 그렇다면 철학은 無用한 것일까? 10년 전 쯤이다. 서울대학교 소광섭 교수라는 분이 쓴 짤막한 글에서 감동을 받은 귀절이 있다. “철학이 과학보다 앞선다.” 과학이 규명할 수 없는 것은 철학으로 풀어야 하고 또 풀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철학으로 풀 수 없는 것은 종교로 풀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과학은 물질이요, 철학은 정신이요 종교는 영이다. 세상이 물질에 물질에 근거하고 매달린다면, 사람 사는 세상은 그저 초목이나 짐승이 사는 세상과 하등 다름이 없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인간은 물질 넘어 정신 세계, 소위 철학과 종교로 사람의 삶을 궁구해 왔고 여기에 의미가 있다)  한의학을 굳이 정의하라면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요,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 규명이란 면에서 철학이 과학보다 앞서고 그러기에 인간 존재와 생명의 흐름 (氣)을 다루는 한의학에 意義(의의)가 있다.   

간에 혼이 내재되있다고 한의학은 말한다. 간에 색깔이 있는데 청색이라고 한다.  간에 맛이 있는데 신맛이라고 한다. 이런 한의학을 과학이라 할 수 있고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과학화하여 입증된 것만 받아들이는 현대적 사고 방식이 타당할 것 같지만 그 결과 현대사회는 물질화되버렸다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탄하는 식으로 풋념한다.

각설하고, “한의학에서 말하는 혼이 뭐지?” “혼이 뭔데 간에 들어있다는 거야?”

 

간은 將軍之官(장군지관)으로서 謀慮(모려:사물을 분별하는 판단력과 대처하는 힘, 결단력)가 나온다. 간은 외부로부터의 침범을 막고 대책을 고려하며 병사에 저항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간은 물질덩어리가 아니다. 뇌가 모든 정신세계를 주관하는 것은 맞지만 각 장기로 스며드는 혹은 내재하는 정신세계는 또 다르다. 예로부터 한의학은 혼을 간에 귀속시켰다. 간은 혼이다. 간에는 혼이 들어 있다. 혼은 생명의 힘의 하나다. 혼은 투쟁하는 힘이다. 혼은 저항하는 힘이다. 혼은 결단하는 힘이다. 간이 약한 것은 혼이 약한 것이다. 간이 약하면 투쟁하는 힘, 저항하는 힘 그리고 결단하는 힘이 떨어진다. 간의 힘이 떨어지면 소화력도 떨어진다. 무엇보다도 정신력이 약화된다. 슬프고 우울하고 수동적이고 사람의 원기도 떨어뜨린다. 간의 힘-생명의 기운-혼을 약화시키면 안된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好不好(호불호)가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 좋아하는 음식,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 좋아하는 색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색 등등에서. 그런데 사람의 오장육부 역시, 각각이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음도 알아야 한다. 혼이 내재되어 있는 간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고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

 

지난 주 태양인 체질 두 환자에게 그들의 간은 기름(육식을 포함한 모든 기름)을 무척 싫어한다고 하면서 일절 육식을 끊을 것을 강조한 적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간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기름아, 난, 너 싫어. 가까이 오지 마.” 밀가루를 싫어하고 고추가루를 싫어하고 커피를 싫어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소화를 못시키고 피부가 좋지 못하며 만성피로로 고생해 왔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것을 알고 간의 기운을 키워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간이 힘들어진다. 간이 힘들어지면 혼의 힘이 떨어지고 그 사람 자체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의 간이 다 기름을 싫어할까? 자연은 획일적이지 않다. 이것이 자연 법칙 중 하나다. 장미 한송이도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나비도 그렇다. 하물며 사람의 세계에 있어서랴.

지난 주 목양인 (태음인)으로 감별된 환자의 눈에서 눈물을 본적이 있다. 필자는 그 눈물에서 그의 간의 내재되어 있는 혼을 나름대로 유추해 본다. 혼이 약해진걸꺼야. 육식을 드세요. 뿌리 야채를 잘잡수세요. 산에 가셔서 나무를 보고 하늘을 보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세요. 그러면 간의 혼이 조금씩 생기를 찾을 겁니다.

 

서양의 합리주의와 과학우선주의가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생명의 힘-혼신의백지(魂神意魄志)를 인간에게서 떼어놓고 말았다. '혼신의백지'가 빠진 인간은 물질에 불과하다. 면역계, 신경계, 내분비계 (호르몬) 등 모든 영역이 물질계다. 사람의 위장에 생각하는 힘 (意-뜻, 사고력)이 있다고 하면 웃고 만다. 하물며 사람의 신장에 志 (지-의지, 지혜와 기교)가 있다는 것을 어찌 이해할수 있으리.

필자는 사람의 오장육부에는 각각 생명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 배웠고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맞는 말이다. 더 나아가 모든 세포 하나 하나에 생명의 힘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혼신의백지가 담겨져 있고 끊임없이 칠정(喜怒憂思悲恐驚:희노우사비공경-즐거음, 노함, 근심, 생각, 슬픔, 두려움, 놀람)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 五志 (혼신의백지)가 빠져나가고 七情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이 죽음이라고 하면 틀린 인식일까?

<한의학의 최고 고전인 황제내경에 이런 귀절이 있다.>
“상고 시대의 사람들은 사람의 길을 알고 있었어요. 음양의 법을 거스르지 않고, 가야할 길과 가고 있는 길을 조화롭게 하였고, 먹는 것을 함부로 먹지 않았고, 일상의 삶에서도 ‘도’가 있었으며, 과하게 일을 하지 아니하였고, 몸과 정신(육체와 영혼)이 함께 성숙하여 천수를 누려도 그 끝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러니, 백살이 훌쩍 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답니다.” (상고천진론)

지금은 물질만능 우선시대다. 그런 시각이 의학에도 점철되어 있는 듯 하다. 육체는 보이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어 육체에 나타나는 현상만 중요시할 수 있지만 그 육체의 근간이 되어 있는 정신(마음)과 영혼을 무시한다면 육체의 힘은 쉬이 소진되고 소멸된다. 세상이 아무리 편리와 감각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 편리 감각 위에 원천적 힘이 있음과 그 힘이 오장육부에 내재되어 있음을 인지한다면 여기에 건강과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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