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수첩' 앞에 무너진 삼성 방어벽

철옹성같던 삼성그룹의 방어벽은 안종범(5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남긴 사초(史草) 앞에 무너져 내렸다.

지난 16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여행용 대형 캐리어 1개를 끌고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열린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했다. 캐리어 안에는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입증에 쓸 증거들이 들어있었다. 핵심은 지난달 26일 특검팀이 새로 입수한 안 전 수석의 수첩 39권과 안 전 수석과 박상진(64) 삼성전자 사장의 진술조서였다.

특검팀 관계자는 “안 전 수석의 수첩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금융지주회사’등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키워드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잔뜩 적혀 있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이 수첩의 내용들을 영장전담판사에게 제대로 어필하기 위해 내용을 전부 문서화하고 단어들의 의미와 배경이 되는 상황들을 자세히 정리해 제출했다고 한다.

 

특검팀은 영장실질심사에서 1시간 30분에 걸친 변론을 대부분 새롭게 확보한 증거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사용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재청구된 영장의 발부 여부는 대체로 새로운 증거가 얼마나 추가됐는지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전 수석과 박 사장은 수첩과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들의 메모에서 드러난 내용들에 대해선 대체로 시인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게 특검팀의 설명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안 전 수석이 적은 수첩의 내용들은 소환조사 과정에서 나온 관련자들의 진술이 거짓인지 참인지를 판별하는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영장실질심사와 때를 맞춰 안 전 수석의 변호인 측이 열흘 전 특검팀에 제출한“특검팀의 수첩 추가 입수에 안 전 수석이 동의하지 않아 불법수집 증거”라고 주장하는 의견서를 공개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특검팀은 “보관자였던 김모 비서관이 변호인까지 입회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제출한 것이어서 입수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맞대응을 자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영장전담판사도 수첩 입수경위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첫 영장실질심사 때부터 첨예한 쟁점이었던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 측에 제공한 금품의 대가성을 인식했느냐’는 문제는 이날도 격렬하게 다퉈졌다. 지원의 성격과 규모, 시기 등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이 이를 모를 수 없는 위치라는 특검팀의 주장과 오히려 이를 알기 어려운 위치라는 삼성 측의 주장이 맞섰다고 한다.

 

또 삼성 측은 강요의 피해자가 뇌물의 공여자가 될 수 없다는 해외 판결례 등을 다량 제시하며 법리적 측면을 보완하는데 신경을 썼다. 특검측에서는 수사팀의 실무책임자였던 한동훈(44ㆍ사법연수원 27기) 부장검사가 주로 발언대에 섰고, 삼성 측 변호인단에서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송우철(55ㆍ연수원 16기) 변호사가 주로 대응했다고 한다. 특검팀 관계자는 “팩트와 법리의 대결 양상이었다”고 전했다.

결국 한정석(40ㆍ연수원 31기) 영장전담판사는 17일 오전 5시36분“새롭게 구성된 범죄 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종합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임장혁ㆍ정진우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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