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힘세설] 한글로 읽는 대학

 

 

 

수신정심修身正心-몸을 닦기 위해서는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

 

유가儒家는 공자로부터 비롯되었으나 공자 자신은 선대의 성현들로부터 모두 배웠다고 했다. 자신이 만들어내고 꾸며낸 말이 아니라 요왕과 순왕, 주나라의 문왕과 주공에게서 배워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공자를 이어 맹자 역시 자신은 다만 공자를 배우기를 원할 뿐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공맹의 유가는 애초부터 배운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삶의 출발로 여겼다.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 것인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사람다운 삶이 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지적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고 숙려해야 한다고 여겼다.

공맹이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쇠퇴한 주나라를 중심으로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되어 서로 패권을 잡으려고 피나는 쟁투를 벌이던 시대였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천하를 통일할 것인가를 노심초사하던 시대였다. 모든 제후국의 왕들은 부국강병할 수 있는 묘안을 찾으려고 인재를 모으고 모사와 술사들을 가까이 하였다. 사실 공맹은 이러한 왕들의 욕구에 부응할 수 없는 묘안을 제시한 셈이다.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성이 없어서 겉으로 말의 뜻은 좋으나 당장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은 왕의 뜻과는 멀었다.

나라를 위해 큰 뜻을 펴려는 사람은 우선 자기 수양을 통해 덕을 쌓고 지혜를 모으는 일이 최우선임을 강조했다. 세상은 커다란 관계와 관계 속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한다고 보았다. 관계 사이에서는 각각 다른 윤리가 작용하는데 그 모든 관계를 꿰뚫는 한 줄기는 인仁과 의義라 하였다.

 

유가를 대표하는 네 가지 경전 중에 <大學>은 이와 같은 공맹의 정신을 압축해서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본래 대학은 <예기>49편중에 제42편으로 들어 있던 것으로, 서한(西漢)의 유향(劉向)(기원전77-6)은 그의 <별록>에서 대학을 통론류에 넣었다. 남송에 내려와 주자(주자 1130-1200)가 이정(二程)(정호, 정이)의 뜻을 받들어 대학을 숭상하고 정이의 <대학정전>을 기초로 하여 <대학장구>를 썼다. 이로써 논어, 맹자, 중용과 함께 사서(四書)로 성립되었다. 대학은 중국 고대의 최고학부로 소학과 상대되는 학교의 명칭이었다. 대학은 결국 최고학부인 대학의 교육이념을 기술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은 대인지학(大人之學), 즉 치자의 학문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몸을 닦고 나아가 사람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 학문이다. 대학의 저술자는 분명하지 않다. 작자가 불명하면 대개 성인의 이름을 거명하게 되는데 공자가 저술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증자가 공자의 뜻을 따라 적었다는 것도 연대가 일치하지 않아 성립될 수 없다. 저자가 불명함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유가를 대표하는 경전으로서 손색이 없다. 대학 한 권은 극히 짧은 글이기는 하나 유가의 주장과 목적이 가장 조직적으로 서술된 것이어서 다른 부피 있는 경전에 못지않게 중요시되어 왔다. 사서 중에서도 제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은 이 처럼 유가의 사상을 단적으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배움이 있기 때문인데 이 점을 강조하면서 대학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사람이 나서 여덟 살이 되면 곧 왕공으로부터 서인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다 소학에 들어가게 하여 물 뿌리고 쓸고 응대하고 나아가고 물러가는 절차며 예와 풍류와 활을 쏘는 것과 말 타는 것과 글씨와 산수의 글을 가르치고 (禮樂射御書數)

열다섯 살이 되면 대학에 들어가게 하여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도리를 가르치니, 이것은 또 학교의 가르침이 크고 작은 절차로 나뉘게 된 것이다."(窮理正心修己治人)

대학의 처음과 끝은 삼강령 팔조목에 있으니 배움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암기하고 체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모르면 유학을 모르는 것이다.

 

삼강령(三綱領)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히 착한 데 머무름에 있다.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하며 재신민(在新民)하며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이니라.

명명덕(明明德)은 자신의 밝은 덕을 밝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고, 고본 《대학》에 는 백성과 친하게 된다는 친민(親民)으로 되어 있으나 주자가 신민(新民)으로 해야 전체적인 글뜻과 맞는다고 해서 바꾸었다. 지어지선(止於至善)은 최선을 다하여 가장 합당하고 적절하게 처신하고 행동하는 것인데 글뜻 자체는 '지극한 선에 머문다'는 것으로 여기서 선은 착함만이 아니라 최상의 의미이다.

 

팔조목(八條目)

예전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집을 정돈하고, 그 집을 정돈하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닦고, 

그 몸을 닦으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아는 것을 극진히 해야 할 것이니, 아는 것을 극진히 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에 있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先治其國하고 欲治其國者는 先齊其家하고  欲齊其家者는 先修其身하고  欲修其身者는 先正其心하고 欲正其心者는 先誠其意하고 欲誠其意者는 先致其知하니

致知는 在格物하니라. 致, 推極也. 知, 猶識也. 格, 至也. 物, 猶事也. 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 治國平天下.

 

사물의 이치가 궁구된 뒤에야 앎에 이르고 앎에 이른 뒤에야 뜻이 정성스러워지고, 뜻이 정성스러워진 뒤에야 마음이 바르고, 마음이 바른 뒤에야 자신의 덕이 닦이고, 자신의 덕이 닦인 뒤에야 집이 정돈되고, 집이 정돈된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평하게 된다. 

格物而后에 知至하고 知至而后에 意誠하고 意誠而后에 心正하고 心正而后에 身修하고 身修而后에 家齊하고 家齊而后에 國治하고 國治而后에 天下平이니라.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자신의 덕을 닦음으로써 근본을 삼는다.

自天子로 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이니라.

 

그 근본이 어지럽고 말단이 다스려지는 사람은 없으며, 그 두텁게 할 것을 얇게 하고, 그 얇게 할 것을 두텁게 할 사람은 있지 않을 것이다.

其本亂而末治者 否矣며 其所厚者에 薄이요 而其所薄者에 厚하리 末之有也라 本, 謂身也. 所厚, 謂家也.

 

"물건은 근본과 끝이 있고, 일은 끝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자신의 덕을 닦는 일이 가장 처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덕을 닦는 데는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여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대학의 결론이다. 修身正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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