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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호텔 엘리베이터 층마다 설 정도로 평양에 관광객 붐벼”

posted Oct 21, 2016
평양에 다녀온 박경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교수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은 것보다는 작은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게 낫고, 특히 거창한 말만 떠들썩하게 하는 것보다는 작은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게 더 낫습니다.”
 

대북제재 분위기 무색할 정도로
고려항공·호텔 매진돼 이용 불편
속은 알 수 없지만 겉으로는 태연
평양 초고층 건물은 계속 건설 중

북한 대학 교수 6명 자본주의 교육
캐나다에서 금융·무역 등 배워
사회주의 경제권 거의 사라져
싫든 좋든 자본주의 경제 배워야

 

독일의 ‘동방정책’을 설계한 빌리 브란트(1913~92) 전 서독 총리의 충고다.

 

지금 남북관계는 꽉 막혀 있다. ‘선제타격’ ‘서울 초토화’ 등 험악한 말들이 휴전선을 넘나들고 있다. 남북이 이처럼 치고받고 싸우는 동안 해외 기관들은 조용히 평양을 찾고 있다. 브란트 전 총리가 말한 작은 걸음이다.

 

박경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 교수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2011년부터 북한 학자들을 UBC로 초청해 교육을 시키는 ‘캐나다-북한 지식교류 협력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UBC 연수뿐 아니라 평양 학술회의, 현장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박 교수는 작다면 작은 걸음이지만 ‘교육이 북한을 발전시킬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올해는 지난 5~6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지속적 발전에 관한 평양국제토론회’를 개최했다. 북한의 관심이 경제 개발에서 환경 영역으로 확대된 것이다. 10월 4~11일 평양에 머물면서 토론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잠시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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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애 교수는 “북한이 함경북도 수해로 인해 산림 조성 등 환경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는 등 경제개발구가 정해지면 그에 따른 환경보호계획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을 공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진 박종근 기자]

질의 :북한은 현재 강화된 대북제재로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현지 분위기는.
 
응답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가 발효된 지 7개월째다. 그래서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에서 고려항공을 탈 때만 해도 승객이 거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비행기는 만석이었고 숙소인 고려호텔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관광객들이 10월 1일부터 일주일, 국경절 연휴를 맞아 평양으로 몰려온 것 같았다. 북·중 정부 간에 티격태격해도 관광은 제재 대상이 아니라 그런지 관광객들로 호텔이 북적거렸다. 엘리베이터로 호텔 로비에 내려오는데 매 층 서는 바람에 짜증 나기도 했다.”
질의 :과거보다는 2270호가 촘촘한 제재인데.
 
응답 :“속으로는 아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재를 수십 년 동안 받아온 터라 외부에서 예상하는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영어로 표현하면 business as usual(여느 때와 다름없다)이 적당하다고 할까. 속은 몰라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질의 :제재의 효과가 미미해 더 강한 제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
 
응답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북한의 모습은 2270호가 발효되고 한 달 뒤인 지난 4월에 갔을 때와 이번의 차이를 못 느꼈다. ‘북한의 강남’으로 불리는 미래과학자거리는 초고층 건물들이 이번에 갔을 때도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솔직히 제재가 발효된 지 시간이 좀 흘러 북한이 긴장해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은 분위기였다.”
질의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제6차 핵실험을 할 것으로 점쳐졌는데 그냥 넘어갔다.
 
응답 :“노동당 창건일엔 평양에 있었다. 바깥에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제6차 핵실험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과 달리 평양 시내는 정말 조용했다. 숙소인 고려호텔 주변에도 예년처럼 국가 명절을 맞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지난해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행사를 열어서인지 조용하게 넘기려는 분위기였다.”
질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나칠 정도로 핵 개발에 집착하는 것 같은데.
 
응답 :“북한 사람들은 핵 문제를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국가·체제·개인 모두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핵은 반드시 가져야 하는 필수 요소라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 그리고 차기 미국 행정부와 협상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인식하고 있다.”
질의 :이번 학술회의의 주제가 환경 문제인데,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응답 :“북한이 개발에 따른 환경의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올해 함경북도 수해로 인해 산림 조성 등 환경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생각된다. 북한 사람들은 산에 나무가 거의 없고 제방 시설이 허술해서 여름만 되면 불안해한다. 북한 사람들은 ‘가물(가뭄) 끝은 있어도 홍수 끝은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가뭄은 아무리 심해도 거둘 게 좀 있지만 홍수가 지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북한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질의 :그래도 먹고살기 바쁜 북한이 경제 개발 다음으로 환경을 생각할 텐데.
 
응답 :“2년 전만 해도 산에서 나물을 캐고 사냥을 하는 관광상품을 개발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외국 관광객들이 이해하지 못할 발상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자연을 훼손하면서 관광 개발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큰 환경 문제를 초래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개발구가 정해지면 그에 따른 환경보호계획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을 공감하고 있다. 북한의 환경 문제는 한국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북한이 밉더라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질의 :이번 회의에 북한에선 어떤 인사들이 참석했나요.
 
응답 :“정영남 국토환경보호성 부상과 농업성, 도시경영성, 국가관광총국 등 내각의 관련 부처 간부들, 과학·교육 기관 연구원 등 130여 명이 참석했다. 당초 100명으로 제한하려 했지만 지원자가 너무 많이 몰려 인원이 늘어났다. 그리고 북한은 10월 7일자 노동신문 4면, 10월 8일자 5면에 행사 내용을 보도했다.”
질의 :북한 참가자들의 반응은.
 
응답 :“자화자찬이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미국·캐나다·중국·인도·영국 등지에서 참석한 환경 전문가들은 ‘북한 참석자들의 지식 수준과 배우려는 열정에 감탄했다’고 전했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는 등 지식 교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최근 환경 기술을 알고 싶으니 책을 보내달라는 주문이 많았다.”
질의 :특히 북한 참가자들이 보인 관심 분야는.
 
응답 :“산림에서 발생하는 병충해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다. 북한 전역에 걸쳐 산림 병충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이 5·24 대북제재 조치 이후 병충해 방제 약제의 지원을 중단하자 해외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이다.”
질의 :그 외에 관심을 보인 다른 분야는.
 
응답 :“농업성 관계자들은 다른 나라의 유기농·목축업 등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질 좋은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강원도 세포군에 대규모 축산단지를 조성했다. 그래서 선진화된 축산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
질의 :‘캐나다-북한 지식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응답 :“정치적 상황이 어려울 때에는 비정치적 분야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캐나다 학자와 외무성 관리들이 함께 평양을 방문했고 그 이후 2010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이 프로그램을 제안하면서 본격화됐다. 북한은 예상과 달리 프로그램에 적극적이었고 올해 6년째다. 저는 지금까지 북한을 15차례 방문했다.”
질의 :UBC 연수는 어떻게 운영하나.
 
응답 :“UBC 연수는 북한 대학 교수 6명을 해마다 초청해 자본주의 경제를 접하게 한다. 올해는 지난 7월부터 김일성종합대학·김책공업종합대학·인민경제대학 등의 교수들이 참가하고 있다. 이들은 UBC에서 6개월 동안 국제경영·국제경제·재정·금융·무역 분야 등 5개 코스를 배우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장실습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북한 경제 전문가들이 일주일간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경제개발 경험을 배웠고, 같은 해 11월 유엔 기구인 유엔훈련조사연구소(UNITAR)와 공동으로 스위스 제네바와 베른에서 농업 및 축산업에 대한 강습 과정을 진행했다. 스위스 베른은 수의과 대학이 우수하다. 목축을 잘하려면 수의 기술을 함께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질의 :이들에게 자본주의 강의를 접하게 하는 이유는.
 
응답 :“과거에 북한이 교역했던 사회주의 경제권은 거의 없어졌다. 앞으로 북한은 싫든 좋든 자본주의 시장들과 교역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에 필요한 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질의 :그 효과는.
 
응답 :“교육을 받은 교수들이 귀국해 UBC에서 배운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우수한 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질의 :북한은 어느 기관에서 교수들을 추천하나.
 
응답 :“각 대학과 내각의 교육위원회(전 교육성)에서 추천한다. 한국의 교육부에 해당한다.”
질의 :주로 북한의 파트너가 내각의 기관들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응답 :“학술 교류를 하다 보니 교육위원회가 파트너가 됐다. 그리고 학술회의와 현장실습 주제에 따라 농업성·대외경제성·국토환경보호성 등과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질의 :북한과 6년째 프로그램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는데.
응답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원칙이 있다. 투명성이다. 비밀스럽게 운영하면 어딘가에서 오해가 싹트고 결국에는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된다. 저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운영하려고 한다. 프로그램을 북한에 제안하면서 끝날 때까지 외부에 공개한다.”
질의 :가장 어려운 점은.
 
응답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으면 경우에 따라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은 기업이 아니고 순수한 학술 교류를 지원하는 재단 등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 다행히 저의 작은 정성을 이해하는 분들이 계셔서 지금까지 잘 꾸리고 있다. 이 일은 제가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뜻있는 분들이 저를 내세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의 :그만두고 싶은 유혹도 많았을 텐데.
 
응답 :“기획부터 펀딩, 진행까지 모든 일을 내가 도맡아 해야 한다. 이번처럼 주제가 환경이면 내가 모르는 분야라서 사람 섭외부터 고민하게 된다. 이럴 때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이런 유혹을 이기고 온갖 고생 끝에 행사가 잘 끝나고 북한 사람들이 배우는 것을 즐거워하며 많이 배웠다는 얘기를 할 때면 힘들었던 일들이 눈 녹듯이 녹는다(웃음).”
질의 :가장 큰 보람은.
응답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학문적으로 발전해 승진을 하거나 다른 기관으로 진출해 배운 지식을 나눠 갈 때다. 그것을 지켜보면 저의 고생이 도움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낀다. 평양에 와서 UBC를 다녀간 사람들을 만날 때는 친척집을 방문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번 회의에서도 그들과 만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눴다. 이제는 그들도 가족과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