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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 | 애완의 철학 - 개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경계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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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8-02-09 11:49 조회2,7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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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살아 있다는 것은 언제나 기적… 사람이 키우는 동물에게 그 기적은 오로지 우리 인간들에 의해 가능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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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애완동물과의 경계가 조금씩 사라지게 되면 우습게도 사람 사이의 경계가 더 고질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개 한 마리가 짖는다. 얼마나 기쁜 일이냐, 한 마리 개는. 새벽녘에는 닭까지 울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든다…. 시란 감정이 아니라 경험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시, 여러 사람과 갖가지 사물을 보아야 한다. 동물의 마음, 비상할 때 새가 느끼는 감정, 자그마한 꽃이 새벽녘에 필 때의 몸짓을 알아야 한다. -릴케, <말테의 수기> 중에서

 

 

늑돌이와 함께 춤을!


“늑돌이 엄마, 점심 맛나게 드세요.” 지난 약사재일, 집 앞 절에서 기도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공양간(식당)으로 들어간 내게 주지스님이 건넨 말을 나는 처음에 잘 못 알아들었다. 그러다 곧 이해하고는 “네, 잘 먹겠습니다”하고 웃었다. 이때까지 한 번도 ‘늑돌이 엄마’라고 불린 적이 없지만, 개를 키우는 여자는 흔히 ‘개엄마’라 불린다.(반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양집사’라고 부른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개에게 엄마 노릇을 하고,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집사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누가 붙였는지 참 잘도 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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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지스님이 나를 ‘늑돌이 엄마’라고 부른 것은, 기도를 붙이는 가족카드에 둘째 아들로 ‘갑오생, 김늑돌’이라는 이름이 올라있어서였을 것이다. 사실 산책길에 우연히 들른 이 절에서 주지스님을 처음 만난 설날 저녁, 남편과 함께 늑돌이도 있었다. 또 다른 어떤 절에 ‘2남, 늑돌, 2014년 갑오생’으로 올리면, 접수를 받는 종무소 직원이 “어머, 늦둥이신가 봐요”라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웃으며 “네, 혼외(婚外) 자식입니다”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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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어느 날 용돈을 아껴서 모은 돈으로 햄스터를 사왔다.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경계선이 강하지 않아 동물에게도 금방 다가선다.

나도 모르는 새 ‘개엄마’가 되어 있었다 

 

늑돌이가 절의 가족카드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봄 오대산 적멸보궁에 처음 기도를 붙였을 때, 늑돌이는 당당히 ‘차남’으로 등록되어, 스님들이 기도할 때마다 ‘갑오생, 김늑돌’이라는 이름을 부르곤 한다. 그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들었을 때 나는 낯설면서도 뭉클했고, 같이 간 언니는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삯순이’의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걸 못내 아쉬워했다.



늑돌이를 키우기 전, 나는 실내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며 스스로 ‘엄마’ 또는 ‘아빠’라고 부르며 애완동물에게 쩔쩔매는 이들을 텔레비전이나 거리에서 볼 때마다 약간 한심하다고 생각해왔다. ‘저런, 미친!’, ‘엄마라니, 그럼 자기가 개란 말인가?’ 딱히 비난은 아니지만 절로 한숨이 나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개가 집에 있어서 예뻐했었지만 나 자신을 한 번도 개의 ‘언니’라든가 ‘엄마’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저렇게 유별나게 굴지 않아도 개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늑돌이가 집에 오고 어느 날 남편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늑돌아, 아빠한테 와봐”라고 말하기 시작한 지 한참 지나고서도 나는 나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길 꺼려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로 와”라는 말이 나오려 했지만, 의식적으로 참았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참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인지 기억도 할 수 없지만 나의 굳은 의지도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평소 속으로 비웃어왔던 ‘개엄마’가 되고 만 것이다.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엄마라는 감정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개가 아무리 똑똑해봤자 사람으로 치면 한 살 반 정도의 지능밖에 안되니 언제나 어린애 같고, 엄마 찾는 아이처럼 주인을 졸졸 따르며 사람과 끊임없이 교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호칭마저 ‘엄마’ ‘아빠’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실내에서 같이 생활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예전처럼 마당 있는 집에서 개를 키우던 사람은 부모처럼 굴지 않고 그냥 개주인일 뿐이다. 개에게는 개의 세계가 있고, 사람은 사람대로 산다. 서로 존중하되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관계다. 그런데 개가 실내로 들어오니 그 경계선은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린다. 경계선이란 게 이토록 무력한 것이었단 말인가?

오래 산 사람일수록 경계를 지키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너’와 ‘나’를 분리해주는 경계선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고 할까. 나만의, 우리 가족만의, 우리 고향만의, 우리 학교만의, 우리나라 사람만의 영토 안에서 숨 쉬고 사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내 세계 안에서만 살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어도 나와는 상관없어 보인다. 하물며 사람 아닌 동물이나 식물이야 더더욱 나와는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나는 집안에서 개는 물론이고, 어떤 동물도 키우는 게 내키지 않는다. 아니 마당에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이라 해도 자신이 없다. 집안에 식물을 멋지게 키우는 이들이 부러워 몇 번 사다가 키워보았다가 실패하고는 이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동식물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동식물은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 각자 경계 안에서 편하게 살자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다른 존재를 키우는 데 자신이 없다. 생명을 키우는 일은 기쁨이기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으로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 생명의 행과 불행이 나에게 좌우되는 상황이란 얼마나 무거운 짐인가. 한 번 인연 맺은(나의 경계 속으로 들어온) 생명체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헌신하게 될 테고, 거기다 불행한 사태라도 생기면(정원도 마당도 없는 좁은 집안에 사는 것이야말로 개로서는 이미 어느 정도 불행한 상황 아니겠는가?) 마음은 그지없이 심란해질 텐데, 뭐 하러 그런 수고로운 짐을 질 것인가. 그러니 그런 일은 안 벌이는 게 상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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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애완용 상어 다음에 데리고 들어온 동물은 소박하게도 금붕어였다.

 

화려한 리스트, 아들의 동물 편력 

 

그런데 아들을 키우면서 나는 내내 ‘그런 일’이 언젠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예감을 느껴왔다. 그래서 2년 전 어느 날 아들이 늑돌이를 데리고 왔을 때, 떠오른 생각은 바로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였다. 아들로 말할 것 같으면, 유치원 시절 처음 바퀴벌레를 보고 내뱉은 말이 “아, 예쁘다!”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동물에 대한 아들의 특별한 감수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냥 어린애다운 편견 없는 반응이라고 보았다. 아들이 내가 사온 나물용 유채꽃에서 나온 조그만 달팽이에 열광하고(그 달팽이는 꽤 여러 날 산 것 같다. 달팽이를 이파리와 함께 그릇에 담아놓으면 밤새 기어 나와 카펫 위에 진액을 남기며 어디론가 숨었다 다시 나타나곤 했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을 때도 그저 아이들은 모두 그러니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는 고양이나 강아지 대신 열대어 두 마리를 키우는 것으로 아이를 겨우 달랬다. 작고 예쁜 어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까만 열대어와 빨간 열대어가 헤엄치는 모습을 아이와 한참씩 보곤 했지만, 산소공급 장치가 달리지 않은 어항으로 키우다 보니 오래가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2학년 때인가, 어느 날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눈도 못 뜬 새끼 고양이를 안고 잔뜩 흥분한 채 들어왔다. 아파트 화단 정리를 하는데 마침 길고양이가 새끼를 키우는 굴을 파헤치게 됐는지, 어미는 도망을 가고 새끼만 남아서 아이들이 하나씩 가진 모양이었다. 눈도 못 뜬 고양이를 데리고 온 소년의 기쁨과 흥분 앞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떠올렸다. 그 병아리를 마침내 닭으로 키워낸 사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새끼 고양이가 가엾어 마음이 불편했고, 아들의 행복한 희망이 실망으로 변하는 걸 보기도 싫었다.

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새끼고양이를 살리기 위해선 특별한 우유를 먹여야 하며, 계속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같았으면 그 우유를 동물병원에 가서 사왔을 텐데, 그때만 해도 나는 그런 걸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짐작도 못했다. 개를 키워보긴 했어도 동물병원이란 데는 가본 적이 없는데다 나는 주변머리도 지독히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우유를 데우고, 천 조각을 찾아 덮어줄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새끼고양이를 안고서 끝없이 쓰다듬었다. 아이의 팔이 아프면 내가 잠시 교대로 쓰다듬어 주었지만, 결국 아이도 지쳐 잠이 든 밤이 지나고 나자 고양이는 기력이 쇠했고, 얼마 못가 죽고 말았다. 지금이라면 살리든 못 살리든 그 특별하다는 우유를 사오고 밤새도록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경계선이 강하지 않다. 그러므로 동물(사람이 아닌 다른 종의 동물)에게도 금방 다가선다. 그 동물이 특히 털이 북실북실한 귀여운 개나 고양이라면 말이다. 그러니 아들이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 아이는 개나 고양이뿐만이 아니었다. 동물에 대한 아들의 감정이 조금 유다르다는 것을 나는 점차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영어 수업시간에 키우고 싶은 동물이 무어냐는 물음에 ‘호랑이’, 그 동물에게 주고 싶은 선물에는 ‘인삼’이라고 적었다고 선생님이 전화를 해왔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진짜로 호랑이를 키우고 싶으냐고. 아이는 그렇다고, 호랑이뿐만 아니라 악어나 기린 같은 것도 키우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말에 열망이 느껴졌다. 그래도 괜찮다. 걔가 진짜로 동물원을 통째로 사든 말든 그걸 고민할 땐 나와 상관없는 일일 테니까. 다만 지금 개나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만은 막고 싶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신나게 잡으러 다니는 노린재를 빼고 세상에 예쁘지 않은 동물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바퀴벌레를 키우겠다거나 시궁쥐를 키우겠다고 나설까봐 늘 조마조마했다.(실제로 고등학교 때 바퀴벌레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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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아니라 인간의 ‘매너(자세)’가 관건 

 

남편과 나는 아이의 열망을 짓누르지 않으면서도 집안에 동물을 들이지 않게 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애를 썼다. 아이는 고집을 부리기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형이었다. 쥐꼬리만한 용돈을 모아 어느 날 햄스터 한 마리를 사왔다. 그 햄스터를 애지중지 씻고 닦고 했으니, 당연히 햄스터는 얼마 못가 죽고 말았다. 그러기를 몇 번, 정을 꽤 붙인 햄스터 한 마리가 아프게 되자 나는 난생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동물병원을 찾게 됐다. 워낙 작은 햄스터라 치료가 거의 불가능했지만, 아이를 위해 주사를 맞히고 입원까지 시켰다. 5,000원도 안 하는 햄스터의 치료비가 20만원 남짓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일을 겪고 마침내 햄스터 우리와 햄스터 두 마리가 드디어 우리집에 공식적으로 입성하게 되었다. 그래, 작은 우리에 갇혀 있으니 그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나는 몇몇 벌레를 제외하고서는 특별히 어떤 동물에게 편견도 애정도 없지만, 실제로 동물과 같이 사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특히 쥐는 썩 내키지 않았으나 햄스터는 꼬리가 없어서인지 그런대로 볼 만했다. 그래도 선뜻 만지지는 못했다.

그런데 앙칼진 암놈 펄과 순둥이 얼음이, 점잖은 수놈 땡이를 보고 있자니 점점 정이 들었다. 그 작은 놈들도 각각 개성이 얼마나 분명한지 모른다. 대개 암컷들은 식탐이 강하고, 서열은 분명치 않지만 강자와 약자가 갈린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어쩌다 남편과 아이가 여행 가서 나 혼자 집에 남을 때는 햄스터들이 먹이를 볼 가득히 채워 넣거나 쳇바퀴를 돌리며 노는 모양을 하염없이 구경하다 우리 옆에서 잘 정도로 그 작은 생명체가 주는 온기는 대단했다. 나중에는 햄스터를 손으로 만질 수도 있게 되었고, 순둥이 땡이는 어깨 위에 올려두게도 되었다. 얼음이는 새끼를 낳지 않았지만 새로 사온 어린 암컷과 땡이는 부지런히 새끼를 낳더니 곧 대가족을 이루었다. 나는 햄스터가 새끼를 낳고 때로 제 새끼를 물어죽이기도 한(아마 살기 힘든 놈이었을 것이다) 현장을 보기도 했다. 귀여운 새끼들은 내놓으면 도망가서 피아노 속으로 숨어들었다.

햄스터에 정을 들인 우리 가족은 수십 마리로 불어난 햄스터 가족을 수용하기 위해 우리를 또 사고, 가계도를 그려 이름을 적어놓기도 했다. 새끼를 한두 번 낳았을 때까지는 새끼들 이름도 붙이고 다 구별할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사를 계기로 아이를 설득해서 햄스터와 우리를 모두 기부하게 되었다. 아이를 설득하는 데는 좀 야박하긴 하지만, 햄스터 우리를 씻고 새 톱밥을 깔고 채소 등 먹이를 주는 일이 모두 남편과 나의 일이 되었다는 점을 들었다. 아이는 거든다고 해도 그런 일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아이가 제 혼자 힘으로 동물을 키울 나이가 되어 처음 들인 동물은 상어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베란다에 놓인 큰 대야에 상어가 몇 마리 헤엄치고 있었다. 작은 크기의 관상용 상어(아마도 까치상어)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아이의 동물에 대한 열망이 초등학교 시절로 끝날 일이 아니란 것도 분명히 알게 됐다. 솔직히 골치가 아팠다. 연못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대야에서 어떻게 상어를 1미터 이상 될 때까지 키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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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돌이를 키우게 된 후에는 이웃이 키우는 개에 대해서도 관심과 사랑을 갖게 되었다.

거북이 늑돌이에서 강아지 늑돌이까지 

 

상어 다음에 데리고 들어온 동물은 소박하게도 금붕어였다. 이 금붕어가 어디서 났는지는 이제 물어보지도 않게 되었다. 어항을 살 돈이 없으니, 아이는 이웃이 쓰다 버린 큰 화분 같은 사기그릇을 주워와 씻고 물을 담고 간단한 산소 공급 장치도 사서 달았다. 친구와 함께 옷을 다 적셔가며 금붕어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니 조금 짠하기도 했다. 그렇게나 힘들게 동물을 키우고 싶은지, 나는 아직도 아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식탁 아래 둔 금붕어 어항은 그런 대로 괜찮았다. 물은 증발하니 수시로 보충해주고 가끔씩 어항 청소만 해주면 된다. 그런데 금붕어로는 만족을 못했는지, 아이는 어느 날 늑대거북이를 들여왔다. 내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방안에 마련된 통 안에서 늑대거북이가 한 마리 굼뜨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동물 편력에 마음을 비운 지 오래지만, 늑대거북이가 외국에서 들어온 놈으로 잡식성에다 수명이 100년도 더 된다는 말에 조금 마음이 쓰였다. 이 녀석을 언제까지 키울 것이며, 나중에 물가에 내놓으면 생태계도 교란시키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은 늑돌이(이 늑대거북이의 이름이 늑돌이었다)를 끝까지 키울 테니 그런 걱정은 할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결국 아들과 함께 늑돌이의 느린 움직임을 지켜보며 먹이를 먹는 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심지어 통 안에 돌멩이라도 몇 개 넣어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면서.

그 무렵 아이는 수험생이었는데도 집 앞 세검정 천변에서 천둥오리를 잡고 놀았다. 용케 오리 한 마리를 잡아 옆구리에 끼고 바위에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호통에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는데, 그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아이는 틀림없이 그 청둥오리를 집으로 데리고 왔을 것이다. 욕조도 없는 화장실 안에 청둥오리 한 마리가 어떻게 지냈을지 생각하면, 나는 그 할아버지가 정말 고맙다.

책임질 수 없는 조건에서 동물을 들이는 것은 자칫 생명을 앗는 무모한 짓이 되기 쉽다. 나는 아이에게 수없이 그런 말을 했지만, 아이는 언제나 잘 돌볼 수 있다고 장담한다. 내가 아무리 키울 수 없는 환경을 들먹여도 아이는 못 키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의 말이 크게 틀리진 않은 것 같다. 생명을 기르는 데는 환경조건도 중요하지만 기르는 자의 마음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환경만 따진다면 사람도 집 평수대로 아이를 낳아야 할 것이고, 환경이 좋은 집안 아이들만 행복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개를 기르는 데 가장 필요한 것도 마당이나 고급 사료가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마음이다. 마당에 묶어만 놓는 개보다 하루 여러 번 산책하며 사랑받는 개가 더 행복할 것이다. 그래도 욕실의 청둥오리는 너무 심했다.

늑대거북이 늑돌이는 거북이보다는 꼬리가 길어 도마뱀에 가까웠다. 꼬리까지 우둘투둘한 피부로 덮여 있는 것이 어찌 보면 악어 미니어처로 보이기도 했다. 채소도 먹지만 벌레를 주식으로 하는 육식동물답게 인상도 좀 매서웠다. 빛깔도 시커먼데, 움직임만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했다. 표정도 읽을 수 없는 늑돌이와 무슨 교감이나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아이는 늑돌이를 예뻐했다. 이제 아이의 동물 편력은 내 영역 밖이었고, 늑돌이는 작은데다 조용한 동물이니 가끔 구경하는 일 말고 내가 신경 쓸 일도 없었다.

문제는 아이가 늑돌이 곁을 떠나고 난 뒤 일어났다. 아이가 대학에 진학해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면서 늑돌이를 집에 두고 가게 됐다. 아이는 물론 데리고 가고 싶어했지만, 남편과 내가 말렸다. 우리가 잘 보살펴주겠노라고. 대신 금붕어는 세검정천에 풀어주고 그 어항에 늑돌이를 키우기로 했다. 때마침 내가 병을 앓고 난 뒤라 남편이 늑돌이를 전담하게 되었다. 아이가 집을 떠나고 한동안은 괜찮았다. 그런데 날씨는 점점 더워지는데 남편이 바쁘다 보니 물을 갈아주는 걸 잊었나보다.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은 늑돌이가 죽은 것을 발견하고 마침 바깥에 있던 내게 전화로 알려주었다. 그 말에 나는 놀랍게도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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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노인들에게 반려견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게 해줄 수도 있다. 생명을 기르는 데는 환경조건도 중요하지만 기르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더 중요하다.

 

경계를 넘어 나와 다른 종을 받아들이기 

 

내가 돌보지도 않았던 늑돌이의 죽음에 왜 나는 그리도 안타까웠을까. 무표정한 늑돌이었지만 아들이 물에 넣어준 먹이를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아들이 늘 귀여워하던 광경이 떠오르고, 탁한 물 안에서 산소부족으로 죽어갔을 녀석의 고통에 가슴이 무거웠다. 늑돌이의 죽음은 내게 의외의 파장을 남겼다. 늑돌이의 죽음을 전화로 아들에게 알렸을 때 아들은 슬퍼하는 내게 화를 냈다. 아들은 말 못하는 어린애였을 때도 슬픈 만화영화를 보면 우는 대신 화를 냈다. 지금 생각하면 늑돌이는 아들의 사랑, 아니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해 죽은 것 같다.

늑돌이의 죽음에 나도 아팠는데, 아들의 심정은 얼마나 더 아팠는지 모르겠다. 아들이 까만 강아지를 데리고 온 날, 그 강아지 이름은 늑돌이라고 했다. 그렇게 지금 늑돌이는 죽은 늑대거북이의 이름을 이어받게 되었다. 나는 거북이 늑돌이가 미처 살지 못했던 백년의 수명을 지금 늑돌이가 조금이라도 이어받아 오래 이 세상에 머물게 되기를 바란다. 늑돌이와 나는 이후 생사의 고비를 몇 차례 넘게 되니 더욱 그렇다. 무릇 살아 있다는 것은 언제나 기적이다. 그리고 사람이 키우는 동물에게 그 기적은 오로지 우리 인간들에 의해 가능해진다.

강아지 늑돌이가 처음 집에 들어온 날 밤, 나는 늑돌이가 아들 방에서 낑낑대며 우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 어린 시절, 식구 중 누군가 데려온 강아지도 그랬었다. 그 소리가 내 마음을 얼마나 어지럽혔는지, 나중에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조디포스터가 “꿈만 꾸면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했을 때, 그게 어떤 심정인지 단박에 이해했다. 다행히 늑돌이는 그리 심하게 울지는 않았다.

비록 늑돌이가 집 안으로 들어왔지만, 처음부터 늑돌이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까만 눈에 까만 털로 뒤덮인 이 생명체는 귀엽긴 하지만 내게 낯선 외계의 존재로, 말도 통하지 않는 이 녀석을 굳이 이해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녀석은 금붕어나 늑대거북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존재감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 방 저방 기웃거리며 언제라도 경계를 넘어서려 했다.

“네 방과 마루까지만 다니게 하자. 안방이나 엄마 공부방까지는 못 오게 하자.”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공표하고 강아지가 침범할 수 없는 경계를 정했다. 처음 얼마간 늑돌이는 아들 방에서 주로 생활하고, 아들이 사료를 물에 불려 먹이거나 배변 훈련을 시키려고 화장실에 가야할 때만 방에서 나왔다. 늑돌이의 집은 걸레를 담아두는 작은 빨간 플라스틱 통에 낡은 티셔츠를 깔아 마련했다. 늑돌이는 그 안에 쏙 들어가 헝겊에 솜을 채운 인형을 안고 졸거나 아들의 가방 위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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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미니시리즈 기획 - 애완의 철학①] 개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경계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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