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이 최근 한국영화의 부진을 뚫고 개봉 15일 만에 올해 첫 1000만 영화가 된다. 무거운 한국영화에 지친 국내 관객들이 가벼운 코미디 영화에 관심을 보였고 설 연휴 기간 이렇다 할 경쟁작이 없었다는 게 빠른 흥행 비결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6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극한직업 누적 관객 수는 939만7163명이다. 개봉 10일째인 지난 1일 '국제시장', '변호인',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다른 1000만 영화보다 빠른 속도로 500만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는 설 연휴 시작인 지난 2일부터는 하루 평균 100만 관객을 불러모았다.
 
이 같은 속도라면 극한직업은 이날 1000만 관객을 돌파한다. 지난해 8월 '신과함께-인과연'에 이어 역대 23번째로 1000만 영화 클럽에 가입한다. 코미디 영화로는 '7번방의 선물' 이후 6년 만이다.
 
극한직업이 단기간에 1000만을 돌파한 데는 무엇보다 장르의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국가부도의 날', '마약왕' 등 지난해부터 잇달아 나온 무게감 있는 한국영화에 부담을 느낀 국내 관객들이 가벼운 코미디 영화를 찾았다는 게 영화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 영화는 해체 위기의 마약반 형사 5인방이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위장 창업한 치킨집이 전국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기존에 무겁고 사회성 있는 작품을 찾았던 한국 관객들이 가벼운 영화를 선호할만한 시점이 왔을 때 이 영화가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이어 "극한직업이 주는 가벼운 웃음이 관객의 요구와 맞아 떨어진 것"이라며 "이 밖에 연기자들의 연기도 뛰어나다"고 덧붙였다.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많이 웃긴 영화라는 것이 1000만 돌파 비결"이라며 "'웃기고 싶었다'는 이병헌 감독의 연출 의도와 코미디에 감이 있는 배우들이 만나서 앙상블이 잘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설 연휴 전에 이미 500만 명을 돌파해 이미 본 관객들의 입소문도 주효했다"며 "영화가 쉬워서 남녀노소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코미디와 범죄 장르를 버무린 구성과 짠내나는 등장인물들도 매력이 있다. 대사에 녹아있는 아재 개그의 웃음 타율이 제법 높고 범죄조직을 잡기 위해 치킨집을 창업한다는 설정은 기발하다. 서민들이 즐겨 먹는 치킨을 소재로 삼아 소시민의 애환도 담았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짠내나는 소시민들이라 생업 전선에 있는 사람들이 공감대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극한직업이 설 극장가를 장악한 데는 강력한 경쟁자가 없었던 덕분이기도 하다. 극한직업보다 일주일 늦게 개봉해 설 극장가를 양분할 것으로 예상했던 '뺑반'은 겨우 100만을 넘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꿈으로 불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알리타: 배틀 엔젤'은 지난 5일 개봉했지만 개봉일이 연휴 막바지인 탓에 극한직업의 흥행 돌풍을 막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설 연휴에는 한국영화, 특히 코미디가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설 연휴 기간 최고 흥행작은 2009년과 2018년을 제외하고 모두 한국영화였으며 이 중 7편이 코미디였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