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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속은 25세, 겉은 70대 김혜자 “늙는 건 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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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03 22:00 조회1,2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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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배우 김혜자는 갑자기 노인이 돼버린 25세 혜자(한지민)의 마음을 코믹하고도 절절하게 그려낸다. [사진 JTBC]

아나운서를 꿈꾸던 25세 혜자(한지민)는 아버지(안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를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하루아침에 70대 할머니(김혜자)가 돼버린다. JTBC 월화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시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타임루프물. 하지만 기존 작품들과는 확연히 결이 다르다. 영화 ‘수상한 그녀’(2014, 황동혁 감독)의 할머니가 갑자기 젊어져 예전의 꿈을 이룬다면, 이 드라마의 혜자는 지금껏 상상해보지 못했던 노년의 힘겨움을 체험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2013,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주인공이 수시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던 것과 달리, 혜자는 자신의 의지로는 25세 청춘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한창 푸르러야 할 청춘이 순식간에 폭삭 늙어버리는 거짓말 같은 판타지에 시청자가 몰입되는 건, 배우 김혜자(77)의 ‘눈부신’ 연기 덕분이다.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이후 3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그는 70대 노인의 육체에 갇힌 20대 청춘의 마음을 공감 가면서도 ‘웃프게’(웃기면서도 슬프게) 그려낸다. 56년 연기 내공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사전 제작된 이 12부작 드라마는 절반이 지난 현재 6.6%(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까지 시청률이 올랐다. 첫 회 3.2%로 시작해 매회 꾸준히 상승세를 탄 결과다.
 

25세 혜자(한지민·가운데)의 친구들은 노인이 된 혜자와도 여전히 속을 터놓는 친구 관계로 지낸다.

김혜자는 ‘김혜자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회를 거듭하며 입증해낸다. 철 없는 오빠 영수(손호준)와 티격태격하는 순간, 친구들과 수다 떨며 소녀 감성으로 돌아가는 순간, 아빠에게 살가운 애교를 부리는 순간 등 25세 혜자의 소소한 버릇과 말투까지 그대로 옮겨온 세밀한 연기로 김혜자의 얼굴에 한지민이 겹쳐보이는 마법 같은 장면을 수시로 만들어낸다.  
 
제작진은 기획부터 김혜자를 염두에 두고, 주인공 이름도 실명을 그대로 가져왔다. JTBC 개국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석윤 PD는 “국민배우 김혜자가 아니면 안 되는 코미디가 있다. 대안의 여지가 없는 캐스팅이었다”고 치켜세웠다.
 
특히 엉뚱함이 깃든 천진무구한 눈망울로 스물다섯 청춘의 발랄한 감성과 70대 노년의 씁쓸한 눈빛을 동시에 표현해내는 연기는 어떤 찬사로도 부족하다. JTBC 김지연 CP는 “슬픈 장면을 찍을 때는 현장 스태프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며 “아직도 보여줄 새로운 모습이 많다는 게 놀랍고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과거 김혜자가 출연한 조미료 광고의 명대사 ‘그래, 이 맛이야’를 적극 차용하는 등 혜자의 노년 적응기를 코믹한 터치로 그려내고 있지만, 혜자에겐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는 노년의 현실은 쓸쓸하고 외롭기 그지없다.  
 

혜자가 연민과 애정을 품는 청년 준하(남주혁).

밥만 먹어도 기운이 넘쳤던 때와 달리, 탁자에는 엄마(이정은)가 챙겨준 약들로 빼곡하다. “잘 걷고 잘 숨 쉬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서러운 절규, “하루가 다른 게 이런 거구나. 얼마나 더 나빠지는 건가”라는 담담한 고백은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사는 이들의 가슴에 뭉클하게 다가간다.
 
영수의 인터넷방송 시청자들을 향해 혜자가 쏟아붓는 “늙는 거 한순간이야. 너희들 이딴 잉여 인간 방송이나 보고 있지? 어느 순간 나처럼 된다. 나도 몰랐어. 내가 이렇게 늙어버릴 줄”이란 넋두리는 눈부신 시간을 허비하는 청춘들에 대한 일갈이자, 소중함도 모른 채 청춘을 떠나보낸 그 자신의 통렬한 반성이 된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시청자 각자의 연령대에서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드라마”라며 “소중한 시간의 가치를 뒤늦게서야 깨닫는 혜자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진정성 있게 그려내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들의 삶만 버거운 게 아니다. 드라마는 막막하기 그지없는 청춘의 현실 또한 뼈아프게 조명한다. 현실의 벽 앞에서 아나운서의 꿈을 접어버린 25세 혜자. 취업을 포기하고 방구석에서 ‘잠방’ ‘먹방’이나 찍어대며 부모에 기생하는 영수, 꿈꾸던 기자가 되지 못하고 홍보관에서 노인들의 온정어린 돈을 뜯어내며 자기혐오에 빠져 사는 준하(남주혁) 등 누구 하나 희망적인 청춘이 없다.
 
드라마는 70대 노인의 몸을 지닌 25세 청춘이란 판타지를 통해 우리 시대 청춘과 노년의 모습을 데칼코마니처럼 포개놓는다. 세상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청춘들, ‘틀딱충’이란 비하를 받으며 짐짝 취급을 받는 노인들 모두 출구 없는 처지인 건 마찬가지다.  
 
윤석진 드라마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도전해야 할 청년 세대가 노년 세대와 다를 바 없이 무기력하게 늙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가슴 아프면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공희정 평론가는 “소외라는 공통된 고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과 노인들이 서로의 고단한 삶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세대 공감’ 이상의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노화 앞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감싸 안으려는 혜자의 모습을 통해 드라마가 도달하려는 종착점은 무엇일까. ‘어느 하루도 눈부시지 않은 날은 없다’는 드라마 포스터 문구에 해답이 있는 듯하다. 김지연 CP는 “지금 이 시간의 소중함과 인생에 대한 얘기”라며 “기본적으로 슬픈 얘기지만 슬프지 않게, 공감 가게 그려 가려 한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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