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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동일본 대지진 8주기...그래도 꽃은 피고, 삶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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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12 22:00 조회1,1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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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봄은 온다' 한 장면. 올해 8주기를 맞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피해지역에 싹튼 희망을 담았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사상‧실종자만 2만여 명. 일본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된 동일본 대지진이 3월 11일로 8주기를 맞았다. 피해 생존자들의 이후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봄은 온다’가 14일 국내 개봉한다. 메가폰을 잡은 윤미아(44) 감독은 재일동포 3세 출신. 미·일합작영화, NHK 방송, 영화제작사 등에서 제작 프로듀서를 거쳐 이번 영화로 연출에 데뷔했다.  

 
그가 2016년 여름부터 10개월 동안 인터뷰한 생존자는 100여명. 다큐는 거대 쓰나미가 할퀸 미야기현‧이와테현‧후쿠시마현에서도 가장 피해가 극심했던 마을들을 비추지만 그 참혹함, 그에 대한 연민보다는 계절이 바뀌고 변화하는 풍경 속에 여전히 삶을 일구는 사람들의 희망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 후생성 아동복지문학상을 받고 영국‧프랑스‧미국 등에도 소개된 다큐다.  
  
개봉 전 e-메일로 만난 감독은 “비참한 사고일수록 남겨진 이들의 고통은 클 것이다. 그런 어둠 속에도 빛이 있음을 동북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배웠다”며 “일본에서 소수자, 약자로 차별받아온 재일교포란 저의 포지션이 대지진 피해자들의 아픔과 무의식적으로 연결됐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또 “동북지역이 내 고향 나가노현과 유난히 추운 겨울, 언제나 산이 보이는 풍경이 닮아 개인적으로도 좋아했다. 다큐멘터리 ‘꽁치와 카타르, 오나가와의 사람들’(2016)에 제작 프로듀서로 참여할 때 3년간 이 지역 주민들과 마음을 나눈 경험도 큰 계기가 됐다.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돌이켰다.  

피해지역에서 활발히 자원봉사를 펼치고 있는 엔도 부부. 대지진 당시 쓰나미로 세 아이와 살던 집을 한꺼번에 잃었다. 다른 이재민들을 돕는 활동을 통해 슬픔을 이겨내며 조금씩 웃을 수 있게 됐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직접 만난 생존자 가운데 어떤 이들의 사연을 영화에 주로 담았나.  
“새로운 목표를 향해 고군분투하며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 대지진 당시가 아닌 현재에 초점을 맞췄다. 또 일본 정부 부흥청이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투자했기 대문에 그들의 요청대로, 피해를 본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 3개 현 목소리를 고루 실으려 노력했다.”
 
쓰나미로 집과 어린 세 자녀를 한꺼번에 잃은 목공예 장인 엔도 부부를 가장 비중 있게 다뤘는데.  
“촬영 초기 대지진 재해 2000일 추모행사에서 심정을 물었더니 ‘아이들을 못 본 지 벌써 2000일이나 지났네요’ 하시더라. 따로 질문드렸는데 두 분이 똑같이 답하셨다. 세월을 느끼는 기준이 사랑했던 아이들을 더는 볼 수 없는 가혹한 날들의 합이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런 시련에도 부부는 ‘주변의 응원이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했다.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이란 것을 알았다’면서 자원봉사에 앞장섰다. 두 분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리라 생각했다.”
 
생명과 삶에 대한 여러 관점도 드러난다. 텅 빈 마을에서 방사선에 피폭된 소 300여 마리를 차마 도살처분 하지 못한 채 6년째 보살펴온 농장주도, 정부 방침상 수확한 쌀을 못 팔고 다시 땅에 묻어 버려야 할 줄 알면서도 계속해서 논밭을 일구는 부부도 있다. ‘농부가 농사짓는 건 당연하다’는 철학이 인상 깊다.
“그 농부가 가와우치 마을의 아키모토 부부다. ‘전쟁이나 냉해, 기근을 극복하고 이 땅을 일궈왔을 선조처럼 우리도 이 사고를 극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해줘야 한다’며 매년 농사를 짓고 계신다.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자신들은 하나의 통과 점에 지나지 않기에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다짐하신 것 같았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인간은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전에 피해를 당하였지만 ‘농한기에 도시로 돈 벌러 나가야 했던 가난한 시골 마을 경제를 원전이 살려냈는데, 그런 사실을 다 잊고 일방적으로 원전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도 하셨다. 단, 오해는 금물이다. 결코 원전 자체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지금까지 혜택을 잊고 일단 사고가 나면 일제히 악당으로 몰아가는 세태를 비판하신 것이다.”
 

8년 전 임신중 결혼해 3월 11일 혼인신고할 예정이던 오쿠다 에리카씨는 바로 그날 쓰나미로 남편을 잃고 6개월 뒤 딸 리사토를 낳았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리사토는 사진 속 아빠에게 종종 응석도 부린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결혼 닷새 만에 대지진으로 남편을 잃은 신부가 여섯 달 뒤 출산한 딸은 어느덧 주산 공부에 푹 빠진 초등학생이 됐다. 재해 당시 학생들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미국 원어민 교사의 부모는 모금한 성금으로 딸의 이름을 딴 책장을 피해지역 학교에 기증하는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있다. 쓰나미에 휩쓸려간 점포의 대출금과 상품값을 지금도 조금씩 갚아나가는 모녀도 있다. 그들은 “10년도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오늘을 한껏 살 뿐”이라 말한다. 이런 진심 어린 속내가 카메라 너머로 담담하게 전해온다. 아픔의 크기만큼 단단하게 여문 저마다의 삶이 그려진다.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지 않고 이야기해주시는 것들을 전력을 다해 들으려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확 없는 대화가 돼도 좋다, 조금이라도 폐를 끼치거나 무리해서 촬영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촬영했어요.” 
 
다큐가 너무 긍정적인 측면만 비춘단 인상도 준다. 원전 피해 지역에서 재배됐지만, 방사선 수치가 나오지 않았다는 농산물에 대해선 정말 그럴까 의구심도 생긴다.  
 
감독은 “영화에 담기지 않은 부정적인 면들이 있지 않냐는 비판은 일본에서도 있었다”며 “물론 재해 복구를 둘러싸고 아직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가와우치 마을의 방사선이 검출되지 않은 농산물, 포도 농장은 현실 그대로”라고 했다. “방사선 피해에 대해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 정보량의 차이 때문일 것”이라며 “무엇이 무서운 것인지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지진 재해 지역 중에는 큰 피해를 천만다행 비껴나 옛 아름다움을 간직한 지역들도 있다. 극심한 피해를 본 인근 지역 주민들이 한때 누렸고, 지금은 잃어버린 삶이자, 추억이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후쿠시마현 피해지역 중 유난히 평화롭게 그려지는 가와우치 마을에 대해선 “원전과 가깝지만, 풍향 등에 의해 처음부터 방사선량이 다른 곳보다 낮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이곳 전원풍경과 자연을 벗하는 생활이 후쿠시마 다른 지역 주민들이 잃어버린 삶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로 처음 한국 출장을 와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아 기쁘다”는 그는 영화 개봉을 앞둔 지금 “최악으로 치달은 한일 관계”를 십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일본에서 혐한은 인터넷에도, 실제 사회에도 있고 피해를 본 한국계 또는 친한파 유명인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구도는 ‘일본 대 한국’이 아닙니다. 지금의 일본은 혐한 외에도 눈 뜨고 보기 힘든 지성의 열화현상이 여기저기 나타납니다. 정치인의 질이 떨어지고, 국민이 정치에 대해 포기한다는 느낌이 큽니다. 한국에 대한 증오는 그 흐름을 탄 것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가끔 100년 전 일어난 조선인 학살사건(일본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마구잡이로 살해한 사건)이 현대에 재발할지 모른다고 상상합니다. 주위에서 도와줄 양심 있는 일본인이 있으리란 기대도 해봅니다. 특히 일본 여성 중엔 한국을 좋아하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지금 일본의 정치에 위기감을 가진 이들도 한국의 민주화 역사에 존경심을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일본에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사람과 사람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으니까요. 이번 영화를 만들며 제가 배운 진실입니다.”

동일본 대지진 사상자를 추모하는 촛불 회의 행사.[사진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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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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