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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엄마여서 더 아팠던 세월호 얘기, 정치적 메시지라면 출연 안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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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03-30 22:00 조회1,1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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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에서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순남 역할을 맡은 전도연. [사진 NEW]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잖아요. 아픔을 들춰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라면 시나리오가 아무리 좋아도 출연 못 했을 것 같아요.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관객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영화여서 용기 냈습니다.”
 
다음 달 4일 개봉하는 영화 ‘생일’에서 아들을 잃은 엄마 순남을 연기한 전도연(46)의 말이다. 아들 수호(윤찬영)는 세월호 참사로 숨진 고교생. 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해외에 있던 남편 정일(설경구)이 2년 뒤 순남과 어린 딸 예솔(김보민)을 찾아오지만, 순남은 결코 반기지 않는다. 부부는 수호의 추모 생일 모임을 여는 일로도 갈등을 겪게 된다.  
 
연출자 이종언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 ‘시’ 등 연출부를 거쳐 이번이 장편 데뷔작. 참사 이듬해부터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해온 봉사활동경험 등을 바탕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센서등 깜빡임, 아들 영혼일까 싶어… 

 

순남 가족의 단란했던 한때. 남편 정일(맨 왼쪽)이 해외로 일하러 나가기 전 캠핑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사진 NEW]

영화에선 일상 깊이 스민 순남의 그리움이 고스란히 와 닿는다. 수호 또래 소년들이 장난치는 소리가 들려올 때, 현관 센서등이 저 혼자서 깜빡일 때, 그 때마다 순남은 아들의 부재를 불에 덴 듯 절감한다. 그런 슬픔을 전도연은 마치 빙의한 듯 연기한다.
 
개봉 전 만난 그는 “유가족 시사회 때 센서등 장면에서 ‘우리 집도 그렇다’는 분이 많았다”며 “감히 너무 죄송해서 그분들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어머님들이 천으로 만든 지갑에 손수 노란 리본을 묶어 쥐여주시면서 ‘고맙다’고 하시는데 눈물만 났다. 극장을 나올 때까지 한 번도 고개를 못 들었다”고 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지금 영화로 다루는 게 맞느냐고도 하시는데, 저는 (그분들을 위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연기고, 기회가 왔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할 땐 그의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다.  
 
“참사 당시 뉴스를 보며 아이들과 함께 배가 가라앉으리라곤 저뿐 아니라 누구도 생각 못 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 모두의 트라우마가 됐죠. 뭐라도 할 수 있을 때와 다르게 오히려 더 회피했던 것 같아요. ‘생일’ 시나리오를 받고 미안함부터 앞섰어요.”
 

 

 
"엄마여서 더 아팠다, 안 했다면 후회"

 

영화 '생일'의 주연배우 전도연을 지난 26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사진 NEW]

출연을 고사했다가 마음을 돌렸다고.  
“시나리오를 오열하면서 봤다. 저도 아이 엄마여서 더 아팠다. 이런 아픔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부담됐다. 근데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다시 살아가려는 가족의 이야기여서, 그 힘이 가장 컸다. 감독님이 ‘밀양’ 스크립터 할 때 만나 ‘종언아’, ‘언니’ 하고 부르던 사이다. 장편 데뷔한다기에 기특했는데 시나리오 읽고 바로 ‘감독님’이라 불렀다. 존중이 생길 만큼 글이 좋았다.”
 
‘밀양’의 신애도 아이 잃은 엄마였다. 이 영화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며 ‘칸의 여왕’이라 불렸는데.  
“저도 처음엔 신애를 떠올렸지만, 막상 촬영할 땐 오롯이 순남에 충실했다. ‘밀양’ 때는 아이가 없었잖나. 자꾸 뭔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알 수 없는 감정을 어떻게든 받아들여 보려고 진짜 발악을 했다. 이번엔 반대였다. 오히려 순남보다 제삼자인 제 슬픔에 젖을까 봐 의심하며, 한발 물러서 감정의 결에 집중했다.”
 

 

 
실제 세월호 희생자 생일 모임, 영화로 각색

 

수호를 추모하는 생일 모임은 출연자 50여명이 동시에 카메라 3대로 30분간 롱테이크로 촬영했다. 저마다 추억담을 말하며 울고 웃는 광경을 한 번도 끊지 않고 찍어 관객도 마치 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는 듯한 몰입감을 더했다. [사진 NEW]

그는 가장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장면으로 먼저, 수호의 생일 모임을 들었다.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생일에 유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기억을 나누는 자리다. 아들의 넋을 붙들고만 살았던 순남은 이곳에서 처음 죽음을 제대로 마주한다.  
 
다큐 ‘친구들:숨어있는 슬픔’에서 세월호로 친구를 잃은 또래 아이들을 비췄던 감독이 실제 4년 전 안산에 있는 치유 공간 ‘이웃’에서 참여한 행사가 바탕. 영화는 50여명 배우가 동시에 연기하는 이 장면을 3대의 카메라로 약 30분간 끊지 않고 롱테이크로 촬영했다. 수호 친구들의 엉뚱한 추억담에 미소가 서리다가도, 차마 못다 했던 고백이 들려올 땐 어김없이 눈물이 터진다. 극 후반부에 배치된 장면이라, 사정을 다 아는 관객도 그 속에 함께 앉아 있는 듯 울고 웃게 된다.  
 
전도연은 “그렇게 많은 인원이 롱테이크를 찍은 적은 처음”이라며 “울기도 많이 울어 탈진할 수도 있었는데 다들 서로 힘이 돼줬다”고 말했다.  
 

 

 
공감하거나 지겹거나…우리 사회 축소판

 

정일이 해외로 가고, 수호가 세상을 떠난 뒤 단둘이 의지해온 순남과 딸 예솔. 다정했던 오빠를 또렷이 기억하는 예솔은 오빠의 사고 이후 바다를 무서워한다. [사진 NEW][사진 NEW]

그가 꼽은 장면은 또 있다. 순남이 수호의 빈방에서 죽은 아들을 위해 새로 사 온 옷을 안고 통곡하는 순간이다. 그런 순남을 바라보던 카메라는 어느새 방 밖으로 빠져나와 동네 풍경을 비춘다. 순남의 곡소리를 듣고 달려와 함께 우는 이웃이 있는가 하면, 한때 함께 울었던 누군가는 이제 진절머리를 친다. 베란다에 나와 순남의 집 방향을 묵묵히 지켜보는 낯모르는 주민도 있다. 세월호를 둘러싼 우리 사회 축소판 같다. 이종언 감독은 “유가족분들의 이야기지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닥쳐온 그 사건이 우리 모두의 일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계속 눈에 밟혔던 건 둘째 예솔이였어요.” 전도연이 말을 이었다. “수호의 아픔에 가려 처음엔 잘 안 보였는데, 촬영하며 이 여자가 어떻게 어린 딸과 하루하루 살아가는지를 보며 너무 아팠어요. 수호 때문에 예민해져 예솔이를 괜히 혼내고는 잠든 모습을 보며 ‘엄마가 못나서 미안하다’ 속삭이죠. 그렇게 어떻게든 오늘을 버텼겠구나. 가슴에 많이 남았습니다.”  
 

 

 
"배우 전도연에게 갖는 부담스러움 알아"  

 

18년 전 전도연과 설경구가 호흡을 맞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20대이던 전도연이 학원강사, 설경구가 이웃 은행의 노총각 사원으로 등장한다.

상대역 설경구와는 로맨틱 코미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후 18년 만에 작품을 함께했다. 
 
“이번에 우리가 18년 만이래, 하면서 둘 다 웃었어요. 중간중간 사석에서 보고, 어릴 때 만나 연기해서 그런지 친오빠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익숙하고 편한 사람이 곁에서 자기 자리를 지켜준 것만으로 큰 의지가 됐죠.”
 
그는 '밀양'만 아니라 최근에도 ‘남과 여’ ‘협녀, 칼의 기억’ ‘무뢰한’ ‘집으로 가는 길’ 등 감정적으로 혹독한 역할을 잇달아 맡아왔다.  “그렇게 익숙해지는 게 싫어서 비슷한 작품들을 거절하다 보면 자꾸 공백이 생기더군요. 다는 아니겠지만, 사람들이 전도연이란 배우에게 갖는 부담스러움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진지해서일 수도 있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서일 수도 있고요. 이번 작품도 세월호의 무게감에 전도연이란 무게를 더하는 것 아닐까, 걱정이 있었죠.”
 
그러나 전도연 아닌 순남이 가능했을까. 삶과 죽음이 헝클어지듯 뒤엉킨 슬픔을 이토록 섬세하게 연기해낼 배우가 그 말고 또 있었을까.  
 

 

 
"영화 한편으로 뭐가 달라질까, 다만…"

 

순남이 수호가 다니던 학교 교실 창문에 붙은 쪽지를 바라보는 모습. 쪽지엔 참사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에게 쓴 메시지가 담겼다. [사진 NEW]

이 영화를 하고 나서 “달라진 것은 사실 없다”고 그는 담담히 말했다. “왜냐면 제가 연기했고, 영화가 나왔지만,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싶어요. 아직 (세월호 참사는) 진행형이고 과정의 일부에 머물러 있잖아요. 다만…”하고 말을 이었다.   
 
“영화 보신 유가족분들이 우찬엄마(김수진) 같은 이웃이 어딨어, 하더라고요. 순남이 울고 있을 때, 너무 힘들어서 놔버리고 싶을 때, 옆집 사는 우찬엄마가 와서 안아주는데, 저는 그냥 연기인 데도 뭔가 다시 서러워지면서 또 쏟아낼 에너지가 생겼거든요. 그래서 ‘생일’을 봐주시는 관객들이 그런 누군가의 이웃이 될 수 있다, 내가 그 입장에 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한 걸음, 한 걸음씩 모여 만든 영화가 바로 ‘생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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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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