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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소품처럼, 장난감처럼…드라마, 클래식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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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7-22 03:00 조회9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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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악마판사’의 파티 장면. 왈츠 음악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을 편곡해 사용했다. [사진 각 방송사]

#정체 불명의 역병이 2년 만에 끝난 대한민국. 전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라이브 법정 ‘시범재판부’의 부장 강요한(지성)과 법무부장관 차경희(장영남)가 이를 악물고 웃으며 포토라인에서 대화를 나눈다.시범재판부 첫 재판에서 강요한이 차경희의 뜻과 다르게 국내 1위 대기업 총수에게 ‘235년형’을 선고한 뒤 처음 만난 자리다.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던 중 왈츠가 시작됐고,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3박자로 편곡한 곡이다. (드라마 ‘악마판사’)
 

‘악마판사’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무브 투 헤븐’ 베토벤 월광 등
드라마 음악 퀄리티 점점 높아져
국내 연주자 참여는 아직 낮은 편

#유품정리사 한그루(탕준상)는 의뢰를 받은 집을 정리하기 전 이어폰을 꽂고, 오래된 mp3로 클래식을 듣는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장 인턴을 하다 사망한 청년 김정우씨의 집에선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고독사한 이영순씨의 집을 치울 때는 드뷔시 ‘달빛’이 깔린다. 집에서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은 이선영씨의 집에서는 베토벤의 ‘월광’을, 응급실에서 일하다 난동을 부리던 약물중독자에게 목을 찔려 사망한 젊은 의사 정수현씨의 집에서는 브람스 ‘피아노트리오 1번’을 틀었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드라마가 클래식을 입었다. 6회까지 방영중인 tvN ‘악마판사’,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브 투 헤븐’, 지난 5월 종영한 tvN ‘빈센조’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 유명한 몇몇 곡의 기존 음원을 삽입하던 수준을 넘어 각종 편곡으로 극 분위기에 맞추는 등 음악의 퀄리티도 높아지는 추세다.
 
드라마 ‘악마판사’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왈츠씬에 맞춰 3박자로 편곡해 사용한 정세린 음악감독은 “기존의 왈츠곡보다 묘한 감정, 강렬한 주제가 잘 들리는 곡이라 골랐다”며 “판사 강요한의 계략 테마곡으로, 여러 버전으로 편곡해 극 중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곡은 체코 현지의 체코국립관현악단을 섭외해 녹음했다.
 
드라마 4회에서 상습폭행으로 태형 30대를 선고받은 아들(영민)의 형 집행지휘서를 받아든 차경희 장관이 괴로워하는 장면에는 에릭사티의 ‘그노시엔느’가 깔린다. 정 감독은 “비틀린 정치적 야망과 모성애, 태형장으로 끌려가는 영민의 두려움과 태형집행장의 기묘한 느낌을 모두 살릴 수 있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너무 낯선 곡은 효과가 없고, 너무 알려진 곡도 재미가 없다”며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싶지만 제목은 잘 모르는 클래식을 장면과 잘 맞춰, 분위기를 휘감아 끌고가는 효과를 노렸다”고 말했다.
 

JTBC ‘알고있지만’ 주인공 나비의 전 남자친구가 참여한 전시회 장면에 쇼팽 에튀드 ‘나비’가 흐르고 있다. [사진 각 방송사]

극 중 상황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기 위해 클래식의 기존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한다. JTBC ‘알고있지만,’에서 주인공 나비(한소희)의 전 남자친구가 참여한 전시회 ‘나비’ 장면엔 쇼팽 에튀드 작품 25 제 9번 ‘나비’가 깔렸고, SBS ‘펜트하우스’에서 천서진(김소연)이 치는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4번 ‘마제파’는 불륜을 소재로 한 곡이다. JTBC ‘스카이캐슬’에서 김주영(김서형)의 테마로 반복해 등장하는 슈베르트 ‘마왕’은 아이를 쫓는 마왕의 이야기였다. ‘알고있지만,’ ‘스카이캐슬’의 김태성 음악감독은 “‘나비’의 경우 그냥 들어도 전시회의 묘한 분위기가 나고, 제목을 알고 들으면 더 섬뜩한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클래식이 드라마의 소품처럼, 장난감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tvN ‘빈센조’다. 주인공 빈센조(송중기)의 테마곡처럼 쓰이는 바흐 ‘샤콘느’는 빈센조가 이탈리아에서 마피아들을 죽이고 탈출하는 장면에 처음 등장해 비장하게 쓰이지만, 이후 빈센조와 관련된 온갖 사건에 10초씩 짧게 쓰이며 우스꽝스러움을 더했다.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장난스런 소품처럼 활용한 tvN ‘빈센조’. [사진 각 방송사]

‘빈센조’의 첫 장면에 쓰인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CG로 만든 이탈리아 배경에 이탈리아 느낌을 더하는 역할을 했지만, 웃기기 위한 소재로도 쓰였다. 빈센조가 한국에 들어와 낡은 집에서 샤워를 하는 장면에선 물이 나왔다 끊겼다 하는 데 맞춰 음악도 나왔다 끊겼다 늘어졌다를 반복했다.
 
최근 ‘영화같은’ 드라마가 늘어나면서 클래식의 쓰임새는 더 많아졌다. 정덕현 평론가는 “전반적으로 연출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드라마 음악의 퀄리티도 같이 높아지는 경향”이라고 분석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요즘엔 드라마도 영화같은 필름 질감의 화면이 많아서 클래식을 삽입할 경우 잘 어울리게 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제작 비용이 커지면서 음악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올해 국내 콘텐트 제작비로 5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을 밝히는 등 OTT발 제작비 확장이 뚜렷해지는 상황이다. tvN 관계자는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도 음악 작업의 중요도가 높아져서, 총 제작비 증가분보다는 적지만 음악 제작비도 꽤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드라마의 클래식 활용이 늘고 있지만 국내에 드라마 음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클래식 연주자나 오케스트라는 많지 않다. 드라마 ‘악마판사’의 음악을 체코국립관현악단이 연주하게 된 이유다. 반면 독일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은 지난 6월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등 스타 연주자들을 데리고 한국 드라마 OST를 클래식으로 연주한 음반을 따로 발매하기도 했다. 한정호 평론가는 “국내 연주자들의 기량으로 영화·드라마 음악에 참여한다면 존 윌리엄스, 히사이시 조 같은 음악이 나올 수도 있는데, 아직은 벽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간 음악에 대한 투자가 적어 국내 연주자들 관심이 적었지만, 점차 투자가 늘어난다면 고퀄리티의 드라마 음악을 기대해볼 수 있을 거라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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