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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 조강수의 시선: 송종의(전 법제처장)의 슬기로운 노년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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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중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9-22 13:33 조회1,2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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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
조강수 기자중앙일보 논설위원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맨 오른쪽)가 지난 13일 송종의 전 법제처장의 팔순 생일을 맞아 논산시 양촌면 자택을 찾아 『 밤나무 검사의 음악편지』e북과 종이책 출간을 축하하고 있다. 맨 왼쪽부터 논산바른디자인 이희찬 대표, 박현상 변호사.                  [강민구 판사 제공]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맨 오른쪽)가 지난 13일 송종의 전 법제처장의 팔순 생일을 맞아 논산시 양촌면 자택을 찾아 『 밤나무 검사의 음악편지』e북과 종이책 출간을 축하하고 있다. 맨 왼쪽부터 논산바른디자인 이희찬 대표, 박현상 변호사. [강민구 판사 제공]

노년이 되면 힘이 떨어지고 열정도 사그라든다. 경제 활동과 멀어지며 사회 중심부에서 밀려난다. 정신적으로도 위축된다. 코로나19 시대엔 더욱 그렇다. 확진자 치명률이 다른 연령층보다 높다. 기저질환이라도 있으면 목숨마저 위태롭다. '노년은 죽음의 풍자적 모방'이라는 비관적 분석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추석 직전, 팔순을 맞은 송종의 전 법제처장을 보면 말이다. 그는 어찌보면 법조계의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존재)다. 검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공직 퇴임 후 영농인의 길을 택했다. 26년 전, 검찰총장직에 후배가 임명되자 사퇴한 직후다. 낙마 이유에 대해 그는 "('슬롯머신 사건'을 지휘한) 서울지검장과 대검 차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여러 번 권부 실세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철저한 수사보안으로 최고 정보기관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검찰 고위직 인사가 퇴임하면 으레 대형로펌 등 법률 비즈니스에 투신하는 게 상례일 때였으나 그는 달랐다. 충남 논산시 양촌면 산간에 농업회사법인을 차리고 밤나무를 길렀다. 마을 60~70대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수익금 일부로 자신의 호에서 이름을 딴 공익법인(천고법치문화재단)도 설립했다. 법치주의 확립에 공이 큰 개인·단체에 매년 상을 준다. '밤나무 검사'라는 별칭이 그래서 생겼다. 그는 청빈하고 올곧은 검사의 표상이다.
검사의 칼은 그에겐 숙명이었다. 특수통으로, 대전지검장 때인 1991년 당시 심재륜 차장검사와 함께 오대양 집단살해 암매장범 6명의 전격 자수 사건을 지휘해 전모를 밝혀냈다. 국내 형 집행 사상 최초이며 최후인 하루 8명에 대한 사형 집행 지휘자도 그였다. "억울하다고 발버둥 치는 사형수들을 황천길로 쫓아버리고 사무친 원망을 들으며 수많은 사람을 내 손으로 구속했는데도 역술가가 예언한 수명 77세(2017년)를 넘겨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용할 뿐이다."(『밤나무 검사의 글자취』)
그의 말마따나 '대자유인'인 영농인으로 변신한 후 칼 대신 펜을 들었다. '검사 일에 너무 열중해 가정을 소홀히 한 죄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서'였다. 25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외아들을 잃었을 때 겪었던 상명지통(喪明之痛)의 번민도 녹아 있을 것이다. 다작은 아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비매품 책이 두 권 있다. 2005년 미국에 사는 딸에게 쓴 편지 형식의 『밤나무 검사가 딸에게 쓴 인생 연가』를 두고 그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 대신 그보다 더 소중한 글을 선물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출간한 자전적 수필집 『밤나무 검사의 글자취』에선 자신의 인생행로를 '춘몽(春夢) 80년'이라고 정의했다.
 음양오행에 익숙한 백발 할아버지가 최근 엉겁결에 전자책 『밤나무 검사의 음악편지』를 냈다. 이 음악편지는 원래 그가 2006년 미국에 사는 초등 6학년 등 외손녀 세 명(현재 미국 명문대 재학)을 위해 쓴 육필 원고와 손수 음원 소스를 찾아 CD로 구워 보냈던 클래식 명곡 250여 곡이 바탕이 됐다. 작곡가의 생애와 지리·인문학적 배경 등을 이야기체로 쉽게 설명했고 '정제된 삶'에 대한 인생 철학이 녹아 있다. 송 전 처장의 고교·대학 17년 후배로 법원 내 최고 디지털 전문가인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휴일 밤샘 작업을 해가며 보름 만에 유튜브 스트리밍 시대에 맞게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80세 퇴직 검사와 63세 현직 판사의 협업인 셈이다. 전자책용 유튜브 음원 인터넷 주소 URL과 종이책용 QR코드를 같이 기재해 양쪽에서 공히 음원을 재생하는 듀얼모드 시스템을 채택했다. 국내 음악서적 최초의 창의적 시도라고 한다.

음악편지 QR코드. 스마트폰으로 찍고 들어가면 구수한 설명과 함께 250여곡의 명곡을 감상할 수 있다. bit.ly/2ZlZ8y9

음악편지 QR코드. 스마트폰으로 찍고 들어가면 구수한 설명과 함께 250여곡의 명곡을 감상할 수 있다. bit.ly/2ZlZ8y9

 코로나19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대권을 쟁취하기 위한 혈투가 한창이다. 여야 1·2위 대선 후보에 법조인 출신이 3명, 언론인 출신이 1명이다. 그런데도 국가의 미래 정책은 내놓지 않고 진흙탕 싸움만 한다. 윤석열 후보를 겨냥한 '고발 사주' 의혹과 이재명 후보를 공격하는 '화천대유 주인' 공방이 공론장을 뒤덮고 있다. 이런 때 송 전 처장의 삶의 궤적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우울하고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편지의 일독·일청을 권하는 이유다.
 "노년이 우리의 이전 삶의 우스꽝스러운 모방이 되지 않게 하는 해결책은 단 하나밖에 없다. 우리의 삶에 의미를 주는 목표를 계속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든, 대의명분이든,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일이든, 지적·창조적 일이든, 그 무엇에 헌신하는 길밖에 없다."(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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